탈출구 없는 ‘전세대란’ - 1억 올려주실래요? 월세로 바꾸실래요?
탈출구 없는 ‘전세대란’ - 1억 올려주실래요? 월세로 바꾸실래요?
세입자가 울고 있다. 전세가격은 치솟고, 매물도 찾기 어렵다. 서울 아파트의 전세가격은 1년 새 2666만 원이나 올랐다. 울며 겨자 먹기로 월세로 내몰린다. 임대차 계약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 또한 40%를 넘어섰다.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초저금리에 돈 굴릴 곳을 못 찾은 집주인은 앞다퉈 월세로 전환 중이다. 월세 수입이 전세보다 쏠쏠하니 당연한 현상이다.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전세자금대출도 급증하고 있다. 단칸방에서 방 2칸으로, 전셋집으로, 그리고 마침내 ‘내 집 마련’에 성공하던 공식은 무용지물이다. 정부가 전월세 대책을 내놨지만 소득의 상당 부분을 주택 임대료로 쓰는 ‘렌트푸어’의 눈물을 닦아주기엔 모자랐다. 집 없는 사람이 서럽지 않은 때는 없었다. 고도 성장기에 농촌에서 도시로 대거 이동한 지금의 50~60대는 대부분 단칸방의 설움을 겪었다. 미닫이 문 여는 소리, 냄비 달그락거리는 소리까지 눈치를 봐야 했던 그 시절, ‘새댁, 애가 너무 운다’는 집주인의 한 마디에 자는 아이의 입을 슬쩍 막으며 눈물을 흘렸다는 어머니들의 가슴이 먹먹한 이야기가 있었다. 하나 밖에 없는 공동 화장실에 얽힌 웃지 못할 이야깃거리도 제법 많았다. 많은 이들이 아파트에 사는 요즘도 생활은 조금 편리해졌지만 나름 설움은 있다. 못 하나 박는 게, 문턱 하나 없애는 게 일일이 다 보고 거리다. 이사철이 되면 벽이고 장판에 애들이 해놓은 낙서 때문에 단 몇 만원이라도 물어주고 나와야 한다.
그래도 차곡차곡 돈을 모아 좀 더 좋은 환경, 좀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가는 맛이 있었다. 이게 가능했던 건 하나의 공식이 통했기 때문이다. 방이 하나 더 늘수록, 평수가 좀 더 넓어질수록 집값이 비쌌다. 같은 전세살이라도 몇 년 동안 돈을 모았다가 더 큰 평수로 옮기고, 그리고 마침내 ‘내집 마련’에 성공하는 일종의 패턴이 있었다. 지금 이 패턴이 무너지고 있다. 돈을 모아도 더 큰 집은커녕 오른 전세금 맞춰주기도 버겁다. 답은 대출인데 원금을 갚는 속도보다 전세 가격 오르는 속도가 더 빠르다. 어디서부터 꼬인 줄을 풀어야 할지 답이 안 나온다.
경기도 안양시 석수역에 사는 김태섭(39)씨는 결혼 9년차 회사원이다. 올해 9월 재계약한 80㎡(약 24평) 아파트에 4년째 살고 있다. 4년 전 김씨가 처음 이 아파트에 들어올 때 전세 가격은 1억5000만 원이었다. 2012년 재계약할 땐 6000만 원이 오른 2억1000만 원, 올해는 2억6000만 원에 계약했다. 4년 새 1억1000만 원이 오른 것이다. 처음 이 집에 들어올 때부터 대출이 4000만 원가량 있었는데 2년 전 전세금을 올려주며 3000만 원을 더 대출받았고, 이번 재계약땐 이전 대출을 정리하고 1억 원을 새로 대출받았다. 김씨는 “애들이 크고 있어 이번엔 좀 큰 집으로 옮기려 했는데 대출이 너무 늘어나는 게 부담스러워 결국 포기했다”며 “평수는 그대론데 대출금만 늘고 있다”고 탄식했다. 한 달 대출이자는 32만 원 정도. 저금리에 이자 부담이 크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지만 돈 나올 구멍이 없어 김씨는 최근 50만 원씩 쓰던 한 달 용돈을 40만 원으로 줄였다. 실제로 최근 전세가격의 고공행진은 위험 수준을 넘어섰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10월 전국 주택 전세가격은 9월에 비해 0.33% 상승했다. 최근 6개월 중 상승폭이 가장 컸다. 수도권(0.45%)과 서울(0.33%)이 가격 상승을 주도했다. 전세매물 부족에 가을 이사철이란 계절적 요인까지 겹쳤다. 수도권의 경우 상대적으로 보증금이 저렴한 외곽지역과 그간 소외 받았던 중 대형 주택으로까지 전세 수요가 확산하고 있다. 아파트의 매매 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도 9월에 처음으로 70%대에 오른 뒤 0.1%포인트 더 올라 70.1%를 기록했다.
서울의 경우 전세가격이 1년 사이 9.3% 가까이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10월 서울 아파트의 평균 전세가격은 3억1341만 원으로 지난해 10월(2억8675만 원)보다 2666만 원 상승했다. 전세 계약 기준(2년)으로 환산하면 5300만원이 넘는다. 대기업 대리급 직원이 1년 연봉에 맞먹는다. 서초구·강남구 등의 가격 상승폭이 가장 컸지만 2000만 원 이상 오른 구가 19개에 달할 정도로 범위가 넓었다. 한국감정원 관계자는 “신규 입주물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저금리 여파로 집주인의 월세 전환이 가속화하고 있어 수급 불균형에 따른 전세 가격 상승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기간에 걸친 전세가격 상승에 따라 전세 수요 일부가 매매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매매가격 상승세는 주춤했다. 최근 분위기라면 집주인 입장에선 굳이 전세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 월세로 거두는 임대 소득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두 차례 걸쳐 금리를 낮추면서 기준금리는 사상 최저 수준인 연 2.0%까지 내려왔다. 이에 따라 정기예금 중엔 금리가 1%대로 떨어진 상품도 등장했다. 전통적으로 집주인들은 전세 보증금을 은행에 맡긴 뒤 이자 소득을 거뒀지만 워낙 금리가 떨어진 탓에 이 공식이 더 이상 안 통한다.
서울 상도동에 84㎡(약 26평) 아파트를 소유한 이태섭(51)씨는 얼마 전 세입자와 재계약을 하지 않고 월세로 바꿔 부동산에 내놨다. 현재 이 아파트의 전세 시세는 4억6000만 원 정도. 이씨는 보증금 2억5000만 원, 월세 110만 원에 내놨다. 이씨가 전세금을 받아 은행 정기예금(금리 2.2% 기준) 에 2년간 넣어 둘 경우 이자 소득은 약 2000만 원. 이자 소득세를 빼면 1700만 원 정도다. 하지만 월세로 바꿀 경우 월세 2640만 원과 은행 정기예금 이자로 약 900만 원(이자소득세 제외)을 둘 다 손에 쥘 수 있다. 이씨는 “월세로 바꾸면 소득이 두 배로 는다는 조언을 듣고 바꿨다”며 “월세를 찾는 이가 없을까 걱정이었지만 벌써 3명이 집을 보고 갔고, 조만간 계약을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와 같은 선택을 하는 집주인이 늘면서 주택 임대차 계약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40%를 넘어섰다. 월세 가격도 떨어지는 추세다. 집주인들이 앞다퉈 월세로 전환하지만 세입자는 여전히 전세를 선호하면서 일시적 공급 과잉이 발생하고 있어서다. 올 8월까지 17개월 연속 하락했던 전국 월세 가격은 잠깐 보합세를 나타내다 10월 다시 0.2% 하락했다.
전월세전환율 역시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전월세전환율은 전세금을 월세로 바꿨을 때 적용되는 비율이다. 비율이 높으면 전세에 비해 상대적으로 월세 부담이 크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전세금 1억 원의 아파트를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50만 원으로 바꾸면 전월세전환율은 6.7%(600만 원[연간 임대료]/9000 만원[전세 보증금-월세 보증금]x100)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3분기 전국 아파트의 전월세전환율은 6.4%로 2011년 1분기 8.4% 대비 2.0%포인트 하락했다. 은행권의 정기예금 금리가 2011년 1분기 3.61%에서 올해 3분기 2.38%로 떨어진 것과 궤를 같이 한다.
2000년대 초까지 전월세전환율은 10%가 넘었다. 워낙 월세 물량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최근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하는 주택이 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전월세전환율이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며 “일단 과거보다 월세 세입자의 부담이 줄어든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여전히 전월세전환율이 전세자금대출 금리보다 높아 세입자 입장에선 월세가 전세보다 더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러니 세입자 입장에선 전세 매물을 찾기도 어렵고, 찾더라도 높은 임대료를 지불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결국 방법은 대출뿐이다. 전세가격이 급등하자 은행권 전세 대출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8월 말 기준으로 금융권 전세자금 대출 잔액은 지난해보다 4조8000억 원 더 늘어난 32조8000억 원이다. 연말엔 35조 원에 도달할 것이란 게 업계의 공통된 관측이다. 2011년 18조2000억 원이던 전세자금대출은 2012년 23조4000억 원, 2013년 28조 원으로 매년 약 5조 원씩 증가하고 있다.
이익 감소에 고심하던 금융권은 전세자금대출 증가로 짭짤한 장사를 하고 있다. 현재 시중은행의 전세자금대출 금리는 주택담보대출보다 높다. 은행 입장에서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고 주택금융공사가 원금의 90%를 보증해 손실 가능성이 거의 없는 전세자금대출은 그야말로 알짜다. 한은이 기준금리 인하를 발표할 때 발 빠르게 예·적금 금리를 낮췄던 은행들은 전세 자금대출 금리 인하엔 미온적이다. 석 달 새 기준금리는 0.5% 포인트 낮아졌지만 은행 대출금리는 약 0.2~0.3%포인트 떨어지는 데 그쳤다.
이를 의식한 듯 새로 취임한 김재천 주택금융공사 사장은 “공사가 보증해주는 은행의 전세대출 금리를 인하할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면서 “은행별 금리 비교를 강화하면 은행이 부담을 느끼고, 수요자의 선택권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은행별 금리 비교는 이미 시행하고 있는 방안이어서 새롭지 않은 대책이란 지적이 나온다. 김 사장은 금리가 높은 은행에 자금 공급을 중단하는 등 강도 높은 수단을 쓸 것이냐는 질문에 “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금 은행이 생색내듯 금리 0.1~0.2% 낮춰봐야 대출을 받은 가구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느냐”며 “결국 천정부지로 솟는 전세 가격을 잡지 못하면 서민층의 부담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연이어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전세 가격의 고공행진과 월세 전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경기 침체로 소득 증가율이 정체된 상황에서 세입자들이 대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형국이다. 소득 중 상당 부분을 주택 임대료로 쓰는 ‘렌트푸어’도 늘고 있다. 저금리에 이자 부담은 예전보다 줄었지만 대출금을 갚지 못한 상태에서 오른 전세가격을 맞추려 추가로 대출을 받기 시작하면 나중엔 상환이 어려운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세입자를 렌트푸어로 보긴 어렵다. 심교언 교수는 “전세 세입자 중엔 저금리와 월세에 비해 주거비 부담이 낮은 장점 때문에 일부러 전세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며 “집값이 오르길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굳이 집을 사려고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력이 있어도 집을 사는 걸 꺼린다는 의미다. 정태일 하나중개사무소 대표는 “10억 원 정도의 재산을 가진 전세 세입자의 경우 집주인이 보증금을 1~2억 원 올려달라고 해도 집을 사려하지 않고 대출을 받아 보증금을 올려준다” 며 “대출 이자가 워낙 싸기 때문에 그게 더 낫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월세 세입자다. 앞으로 주택 임대차 거래 중 월세 비중이 60~70%까지 상승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관측이다. 최근 월세로 전환하고, 기대수익률을 낮추는 집주인이 많아 월세전환율 역시 더 떨어져 5%선까지 내려올 전망이지만 여전히 세입자 입장에선 월세가 훨씬 큰 부담이다. 월세 세입자의 경우 소득의 약 30% 정도를 임대료로 쓴다. 자산 증식 속도가 더뎌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젊은 세대와 저소득층이 주로 거주하는 중소형 주택의 월세 전환 속도가 훨씬 빠르다. 이들이 종잣돈을 모아 주택 매매시장에 신규 진입할 가능성이 작아진다는 의미다. 10월 30일 정부가 발표한 전월세 대책도 월세 세입자의 부담을 줄이는데 초점을 맞췄지만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지 못하면 결국 무용지물이란 사실을 이미 알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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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차곡차곡 돈을 모아 좀 더 좋은 환경, 좀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가는 맛이 있었다. 이게 가능했던 건 하나의 공식이 통했기 때문이다. 방이 하나 더 늘수록, 평수가 좀 더 넓어질수록 집값이 비쌌다. 같은 전세살이라도 몇 년 동안 돈을 모았다가 더 큰 평수로 옮기고, 그리고 마침내 ‘내집 마련’에 성공하는 일종의 패턴이 있었다. 지금 이 패턴이 무너지고 있다. 돈을 모아도 더 큰 집은커녕 오른 전세금 맞춰주기도 버겁다. 답은 대출인데 원금을 갚는 속도보다 전세 가격 오르는 속도가 더 빠르다. 어디서부터 꼬인 줄을 풀어야 할지 답이 안 나온다.
경기도 안양시 석수역에 사는 김태섭(39)씨는 결혼 9년차 회사원이다. 올해 9월 재계약한 80㎡(약 24평) 아파트에 4년째 살고 있다. 4년 전 김씨가 처음 이 아파트에 들어올 때 전세 가격은 1억5000만 원이었다. 2012년 재계약할 땐 6000만 원이 오른 2억1000만 원, 올해는 2억6000만 원에 계약했다. 4년 새 1억1000만 원이 오른 것이다. 처음 이 집에 들어올 때부터 대출이 4000만 원가량 있었는데 2년 전 전세금을 올려주며 3000만 원을 더 대출받았고, 이번 재계약땐 이전 대출을 정리하고 1억 원을 새로 대출받았다. 김씨는 “애들이 크고 있어 이번엔 좀 큰 집으로 옮기려 했는데 대출이 너무 늘어나는 게 부담스러워 결국 포기했다”며 “평수는 그대론데 대출금만 늘고 있다”고 탄식했다. 한 달 대출이자는 32만 원 정도. 저금리에 이자 부담이 크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지만 돈 나올 구멍이 없어 김씨는 최근 50만 원씩 쓰던 한 달 용돈을 40만 원으로 줄였다.
서울 아파트 전세 가격 1년 새 9.3%↑
서울의 경우 전세가격이 1년 사이 9.3% 가까이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10월 서울 아파트의 평균 전세가격은 3억1341만 원으로 지난해 10월(2억8675만 원)보다 2666만 원 상승했다. 전세 계약 기준(2년)으로 환산하면 5300만원이 넘는다. 대기업 대리급 직원이 1년 연봉에 맞먹는다. 서초구·강남구 등의 가격 상승폭이 가장 컸지만 2000만 원 이상 오른 구가 19개에 달할 정도로 범위가 넓었다. 한국감정원 관계자는 “신규 입주물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저금리 여파로 집주인의 월세 전환이 가속화하고 있어 수급 불균형에 따른 전세 가격 상승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기간에 걸친 전세가격 상승에 따라 전세 수요 일부가 매매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매매가격 상승세는 주춤했다.
저금리에 돈 굴릴 곳 없는 집주인 월세로 전환
서울 상도동에 84㎡(약 26평) 아파트를 소유한 이태섭(51)씨는 얼마 전 세입자와 재계약을 하지 않고 월세로 바꿔 부동산에 내놨다. 현재 이 아파트의 전세 시세는 4억6000만 원 정도. 이씨는 보증금 2억5000만 원, 월세 110만 원에 내놨다. 이씨가 전세금을 받아 은행 정기예금(금리 2.2% 기준) 에 2년간 넣어 둘 경우 이자 소득은 약 2000만 원. 이자 소득세를 빼면 1700만 원 정도다. 하지만 월세로 바꿀 경우 월세 2640만 원과 은행 정기예금 이자로 약 900만 원(이자소득세 제외)을 둘 다 손에 쥘 수 있다. 이씨는 “월세로 바꾸면 소득이 두 배로 는다는 조언을 듣고 바꿨다”며 “월세를 찾는 이가 없을까 걱정이었지만 벌써 3명이 집을 보고 갔고, 조만간 계약을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와 같은 선택을 하는 집주인이 늘면서 주택 임대차 계약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40%를 넘어섰다. 월세 가격도 떨어지는 추세다. 집주인들이 앞다퉈 월세로 전환하지만 세입자는 여전히 전세를 선호하면서 일시적 공급 과잉이 발생하고 있어서다. 올 8월까지 17개월 연속 하락했던 전국 월세 가격은 잠깐 보합세를 나타내다 10월 다시 0.2% 하락했다.
전월세전환율 역시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전월세전환율은 전세금을 월세로 바꿨을 때 적용되는 비율이다. 비율이 높으면 전세에 비해 상대적으로 월세 부담이 크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전세금 1억 원의 아파트를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50만 원으로 바꾸면 전월세전환율은 6.7%(600만 원[연간 임대료]/9000 만원[전세 보증금-월세 보증금]x100)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3분기 전국 아파트의 전월세전환율은 6.4%로 2011년 1분기 8.4% 대비 2.0%포인트 하락했다. 은행권의 정기예금 금리가 2011년 1분기 3.61%에서 올해 3분기 2.38%로 떨어진 것과 궤를 같이 한다.
2000년대 초까지 전월세전환율은 10%가 넘었다. 워낙 월세 물량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최근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하는 주택이 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전월세전환율이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며 “일단 과거보다 월세 세입자의 부담이 줄어든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여전히 전월세전환율이 전세자금대출 금리보다 높아 세입자 입장에선 월세가 전세보다 더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러니 세입자 입장에선 전세 매물을 찾기도 어렵고, 찾더라도 높은 임대료를 지불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결국 방법은 대출뿐이다. 전세가격이 급등하자 은행권 전세 대출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8월 말 기준으로 금융권 전세자금 대출 잔액은 지난해보다 4조8000억 원 더 늘어난 32조8000억 원이다. 연말엔 35조 원에 도달할 것이란 게 업계의 공통된 관측이다. 2011년 18조2000억 원이던 전세자금대출은 2012년 23조4000억 원, 2013년 28조 원으로 매년 약 5조 원씩 증가하고 있다.
이익 감소에 고심하던 금융권은 전세자금대출 증가로 짭짤한 장사를 하고 있다. 현재 시중은행의 전세자금대출 금리는 주택담보대출보다 높다. 은행 입장에서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고 주택금융공사가 원금의 90%를 보증해 손실 가능성이 거의 없는 전세자금대출은 그야말로 알짜다. 한은이 기준금리 인하를 발표할 때 발 빠르게 예·적금 금리를 낮췄던 은행들은 전세 자금대출 금리 인하엔 미온적이다. 석 달 새 기준금리는 0.5% 포인트 낮아졌지만 은행 대출금리는 약 0.2~0.3%포인트 떨어지는 데 그쳤다.
이를 의식한 듯 새로 취임한 김재천 주택금융공사 사장은 “공사가 보증해주는 은행의 전세대출 금리를 인하할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면서 “은행별 금리 비교를 강화하면 은행이 부담을 느끼고, 수요자의 선택권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은행별 금리 비교는 이미 시행하고 있는 방안이어서 새롭지 않은 대책이란 지적이 나온다. 김 사장은 금리가 높은 은행에 자금 공급을 중단하는 등 강도 높은 수단을 쓸 것이냐는 질문에 “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금 은행이 생색내듯 금리 0.1~0.2% 낮춰봐야 대출을 받은 가구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느냐”며 “결국 천정부지로 솟는 전세 가격을 잡지 못하면 서민층의 부담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연이어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전세 가격의 고공행진과 월세 전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경기 침체로 소득 증가율이 정체된 상황에서 세입자들이 대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형국이다. 소득 중 상당 부분을 주택 임대료로 쓰는 ‘렌트푸어’도 늘고 있다. 저금리에 이자 부담은 예전보다 줄었지만 대출금을 갚지 못한 상태에서 오른 전세가격을 맞추려 추가로 대출을 받기 시작하면 나중엔 상환이 어려운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세입자를 렌트푸어로 보긴 어렵다. 심교언 교수는 “전세 세입자 중엔 저금리와 월세에 비해 주거비 부담이 낮은 장점 때문에 일부러 전세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며 “집값이 오르길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굳이 집을 사려고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력이 있어도 집을 사는 걸 꺼린다는 의미다. 정태일 하나중개사무소 대표는 “10억 원 정도의 재산을 가진 전세 세입자의 경우 집주인이 보증금을 1~2억 원 올려달라고 해도 집을 사려하지 않고 대출을 받아 보증금을 올려준다” 며 “대출 이자가 워낙 싸기 때문에 그게 더 낫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집값 상승 기대감 적어 ‘자발적 전세 세입자’도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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