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인터넷전문은행 등장하나? - 금산분리·금융실명제 놓고 갑론을박
한국형 인터넷전문은행 등장하나? - 금산분리·금융실명제 놓고 갑론을박
핀테크 기술의 발달이 21세기 은행의 모습까지 바꿀 수 있을까? 인터넷전문은행 등장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유형의 점포 없이 인터넷과 콜센터에서 예금 수신이나 대출 등의 업무를 보는 은행을 말한다. 소규모로 운영되고 별도의 부동산 비용이 들지 않아 예대마진과 각종 수수료를 최소화 하면서도 수익을 낼 수 있다. 고객 입장에서는 높은 예금금리를 보장 받을 수 있고, 낮은 대출금리와 수수료 혜택을 받아 장점이 많다. 이미 해외에서는 1990년대부터 인터넷은행이 다수 등장했고, 지금까지도 그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다. 불씨를 댕긴 것은 정부다. 금융위원회는 1월 9일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위한 태스크포스(TF) 첫 모임을 갖고 3월까지 연구· 검토를 거쳐 상반기 내에 정부안을 확정할 것’이란 계획을 발표했다. 새로운 기술과 제도를 도입해 선진화된 금융시스템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그 여파는 거셌다. 기존 은행이나 증권사를 운영하는 금융회사는 물론이고 핀테크 기술과 플랫폼을 갖춘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일반 대기업까지 새로운 은행을 만들 수 있는 후보가 된 까닭이다. 발표 이후 ‘~기업 인터넷은행 만든다’ ‘~인터넷은행 등장한다’ 등의 기사가 우후죽순 쏟아졌다. 해당 기업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의 중심에 섰다.
뜨거운 관심과 달리 아직까지는 불분명하고 어두운 전망이 더 많다. 네이버·다음카카오·삼성전자·현대차 등 인터넷전문 은행 설립이 거론된 대부분 기업은 “아직 도입 계획이 전혀 없다”며 한발씩 물러나는 모양새다. 금융위원회가 인터넷전문은행 도입 계획만 밝혔을 뿐 아직 구체적으로 나온 가이드라인이 없어 사업을 검토할래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식 인터넷전문은행의 기본 골격을 결정할 해결되지 않은 쟁점이 많다.
대표적인 게 금산분리다. 산업자본(비금융사업자)의 은행 지분 소유 한도를 4%까지로 제한하는 규정이다. 은행이 대기업 또는 개인 대주주의 개인금고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한 법안이다. 금융위원회의 별도 승인을 얻으면 은행 지분을 10%까지는 늘릴 수 있지만 4%를 넘는 지분에 대한 의결권은행사할 수 없다. 이 제도가 유효하면 비금융 회사인 삼성전자와 현대차 같은 대기업은 물론이고 네이버나 다음카카오 등 ICT기업도 인터넷전문은행을 설립할 실익이 별로 없다.
인터넷전문은행의 업무 범위를 놓고도 의견이 갈린다. 일각에서는 비금융권 기업도 인터넷전문은행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하되, 업무 범위를 개인을 대상으로 한 소액 대출업무로 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비금융권 기업이 기업대출·보험·카드·펀드 업무를 취급할 경우 금산분리 규정이 훼손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이 경우 사실상 반 쪽짜리 인터넷전문은행을 양산해 새로운 시스템 도입의 효과를 누릴 수 없다는 반론이 있다. 이미 시중에 양산된 소액대출 업체와 경쟁을 해야 해 사업성도 떨어진다.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위한 최소 자본금 요건에 대한 논의도 남았다. 현재 시중은행의 최소 자본금 요건은 1000억원, 지방은행은 250억원이다. 이 요건을 너무 완화하면 금융권의 부실 문제가 불거지고, 너무 높이면 많은 플레이어를 시장에 끌어들이겠다는 정부의 목표와 어긋난다.
정부는 최대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인터넷전문은행이 현실적으로 안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를 비롯한 미래창조과학부·산업통상자원부·방송통신위원회·중소기업청은 1월 15일 ‘한국형 인터넷전문은행 도입 방안을 마련하고 올 하반기 관련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2015년 업무계획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가장 큰 쟁점인 금산분리 문제에 대해서 금융위원회 TF팀 관계자는 “일단 대기업집단의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전했다. 이에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상호출자제한 기업 집단 중 30대 그룹의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여론이나 상황에 따라서는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전체의 설립을 막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안이 최종 확정되면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 속하지 않는 ICT기업 중심으로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이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범금융권 신년인사회에서 밝힌 “인터넷전문은행 등 더 가볍고 빠른 플레이어가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업권 사이의 칸막이를 완화하겠다”는 말과도 맥이 닿아있다. 하지만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 네이버와 다음카카오가 인터넷전문은행에 적극적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어 시장 활성화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네이버 김상헌 대표는 1월 14일 열린 ‘2015년 과학기술·정보통신인 신년인사회’에서 “아직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해 한다 안 한다 말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음카카오는 뱅크월렛 카카오, 카카오페이 등의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 부분을 더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나마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에 적극적인 곳은 금융권이다. 금산분리나 업무범위 한도 등 관련 쟁점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인터넷전문은행을 도입해 수익을 다각화하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 NH농협은행은 ‘스마트금융센터’를 개설할 예정이다. 인터넷·전화·스마트폰으로 금융 상담과 상품 추천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다. 1단계로 비대면 거래 상담 및 상품 판매 시스템을 4월까지 구축하고, 2단계로 상담 고객별 분석을 통한 상품 추천 시스템을 2016년 말까지 완료한다. 업계에서는 사실상 인터넷전문은행 도입의 전 단계로 보고 있다. 또 IBK기업은 스마트뱅킹 통합플랫폼 ‘IBK 원뱅크’를 6월 출시할 예정이고, 하나금융은 ‘원큐(One-Cue) 뱅킹’을 선보인다. 이들과 달리 신한금융지주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들 은행이 선보인 서비스들은 ‘인터넷전문은행’에 준하는 서비스일 뿐, 아직 인터넷전문은행을 도입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시중 대부분 은행이 제공하고 있는 ‘인터넷뱅킹’ 서비스와도 뚜렷한 구분이 가지 않는다. 또 인터넷전문은행이 금융권에서만 활성화되면 큰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정부가 제도를 도입하며 예시했던 중국 IT기업 텐센트와 알리바바가 선보인 인터넷전문은행의 사례와도 동떨어져 있다.
인터넷전문은행의 국내 도입 가능성이 비춰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1년 SK텔레콤·롯데·안철수연구소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브이뱅크’라는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추진했다. 하지만 여러 분야의 규제에 부딪혀 설립이 무산됐다. 2008년에는 금융당국이 나서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추진했지만 금융실명제법에 막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사례가 있다. 2001년과 2008년의 전철을 다시 밟지 않으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금융당국 TF가 추진하는 관련법 개정안 통과 여부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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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법 개정 전까진 계획 없어”
뜨거운 관심과 달리 아직까지는 불분명하고 어두운 전망이 더 많다. 네이버·다음카카오·삼성전자·현대차 등 인터넷전문 은행 설립이 거론된 대부분 기업은 “아직 도입 계획이 전혀 없다”며 한발씩 물러나는 모양새다. 금융위원회가 인터넷전문은행 도입 계획만 밝혔을 뿐 아직 구체적으로 나온 가이드라인이 없어 사업을 검토할래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식 인터넷전문은행의 기본 골격을 결정할 해결되지 않은 쟁점이 많다.
대표적인 게 금산분리다. 산업자본(비금융사업자)의 은행 지분 소유 한도를 4%까지로 제한하는 규정이다. 은행이 대기업 또는 개인 대주주의 개인금고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한 법안이다. 금융위원회의 별도 승인을 얻으면 은행 지분을 10%까지는 늘릴 수 있지만 4%를 넘는 지분에 대한 의결권은행사할 수 없다. 이 제도가 유효하면 비금융 회사인 삼성전자와 현대차 같은 대기업은 물론이고 네이버나 다음카카오 등 ICT기업도 인터넷전문은행을 설립할 실익이 별로 없다.
인터넷전문은행의 업무 범위를 놓고도 의견이 갈린다. 일각에서는 비금융권 기업도 인터넷전문은행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하되, 업무 범위를 개인을 대상으로 한 소액 대출업무로 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비금융권 기업이 기업대출·보험·카드·펀드 업무를 취급할 경우 금산분리 규정이 훼손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이 경우 사실상 반 쪽짜리 인터넷전문은행을 양산해 새로운 시스템 도입의 효과를 누릴 수 없다는 반론이 있다. 이미 시중에 양산된 소액대출 업체와 경쟁을 해야 해 사업성도 떨어진다.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위한 최소 자본금 요건에 대한 논의도 남았다. 현재 시중은행의 최소 자본금 요건은 1000억원, 지방은행은 250억원이다. 이 요건을 너무 완화하면 금융권의 부실 문제가 불거지고, 너무 높이면 많은 플레이어를 시장에 끌어들이겠다는 정부의 목표와 어긋난다.
정부는 최대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인터넷전문은행이 현실적으로 안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를 비롯한 미래창조과학부·산업통상자원부·방송통신위원회·중소기업청은 1월 15일 ‘한국형 인터넷전문은행 도입 방안을 마련하고 올 하반기 관련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2015년 업무계획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가장 큰 쟁점인 금산분리 문제에 대해서 금융위원회 TF팀 관계자는 “일단 대기업집단의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전했다. 이에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상호출자제한 기업 집단 중 30대 그룹의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여론이나 상황에 따라서는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전체의 설립을 막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안이 최종 확정되면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 속하지 않는 ICT기업 중심으로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이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범금융권 신년인사회에서 밝힌 “인터넷전문은행 등 더 가볍고 빠른 플레이어가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업권 사이의 칸막이를 완화하겠다”는 말과도 맥이 닿아있다. 하지만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 네이버와 다음카카오가 인터넷전문은행에 적극적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어 시장 활성화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네이버 김상헌 대표는 1월 14일 열린 ‘2015년 과학기술·정보통신인 신년인사회’에서 “아직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해 한다 안 한다 말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음카카오는 뱅크월렛 카카오, 카카오페이 등의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 부분을 더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나마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에 적극적인 곳은 금융권이다. 금산분리나 업무범위 한도 등 관련 쟁점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인터넷전문은행을 도입해 수익을 다각화하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 NH농협은행은 ‘스마트금융센터’를 개설할 예정이다. 인터넷·전화·스마트폰으로 금융 상담과 상품 추천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다. 1단계로 비대면 거래 상담 및 상품 판매 시스템을 4월까지 구축하고, 2단계로 상담 고객별 분석을 통한 상품 추천 시스템을 2016년 말까지 완료한다. 업계에서는 사실상 인터넷전문은행 도입의 전 단계로 보고 있다. 또 IBK기업은 스마트뱅킹 통합플랫폼 ‘IBK 원뱅크’를 6월 출시할 예정이고, 하나금융은 ‘원큐(One-Cue) 뱅킹’을 선보인다. 이들과 달리 신한금융지주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겹겹이 쌓인 규제
인터넷전문은행의 국내 도입 가능성이 비춰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1년 SK텔레콤·롯데·안철수연구소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브이뱅크’라는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추진했다. 하지만 여러 분야의 규제에 부딪혀 설립이 무산됐다. 2008년에는 금융당국이 나서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추진했지만 금융실명제법에 막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사례가 있다. 2001년과 2008년의 전철을 다시 밟지 않으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금융당국 TF가 추진하는 관련법 개정안 통과 여부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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