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불 불가 특가 항공권’ 주의보 - 아에로플로트(러시아 국영항공사) 대놓고 배짱 영업
‘환불 불가 특가 항공권’ 주의보 - 아에로플로트(러시아 국영항공사) 대놓고 배짱 영업
2013년 10월 결혼을 앞둔 박종현(33)씨는 신혼여행지를 이탈리아로 정하고, 항공권 구입에 나섰다. 편의보다는 가격에 초점을 맞췄다. 비행거리가 긴 유럽은 상대적으로 항공사 간 가격 편차가 크기 때문이다. 이곳저곳 둘러보던 박씨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아에로플로트(러시아 국영항공사)가 내놓은 특가상품이었다. 가격은 1인당 왕복 100만원. 다른 항공사보다 20~30만원가량 저렴했다. 기쁜 마음에 결제까지 진행했지만 박씨는 곧 출국 일자를 잘못 예약했음을 깨달았다. 딱 하루 차였다. 정확한 날짜로 다시 항공권을 결제한 그는 먼저 예약한 항공권을 취소하려 했다. 악몽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여행사에서 특가상품이라 환불이 안 된다는 겁니다. 자신들은 도와줄 방법이 없으니 항공사에 문의해보라고 했죠. 그래서 항공사에 연락했더니 그쪽에서도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왔어요. ‘하루 차이로 항공권을 두 개나 끊었는데 취소를 못해준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따져도 ‘원래 취소와 환불이 불가능한 특가상품이라 어쩔 수 없다’는 대답뿐이었죠. 계속 따졌더니 결국 ‘앞서 결제한 항공권을 1년 내에 쓸 수 있는 항공권으로 바꿔주겠다’는 제안을 하더군요. 언제 어딜 갈 줄 알고 그런 걸 받느냐며 환불해달라고 끝까지 항의했지만 소용없었어요. 결국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박씨는 결국 이 항공권을 쓰지 못했다. 그는 “너무 화가나 꼭 쓰고 싶었지만 신혼여행을 갔다 온 지 1년 만에 또다시 유럽에 갈 여력이 안 됐다”며 “가까운 곳에라도 다녀오고 싶었지만 항공동맹체(아에로플로트는 대한항공과 같은 스카이팀) 소속 다른 항공사를 이용할 수 있는 티켓도 아니고,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조금 싸게 사려다 200만원을 고스란히 날린 셈이다. 환불 안 되는 특가 항공권에 제대로 당한 사례다.
해외 여행객이 사상 최대치를 또 경신했다. 올 1월 해외 여행객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9% 늘어난 183만4538명을 기록했다. 이는 역대 월별 내국인 출국 규모 중 최고치다. 비행기 타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얘기는 항공사의 경영 환경이 좋아진다는 뜻이다. 겉으론 ‘경쟁이 치열해져 남는 게 별로 없다’지만 때마침 유가 하락이란 훈풍까지 불어줬다. 지난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영업이익 흑자 전환에 성공했고, 저비용항공사(LCC) 중에서도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한 곳이 많았다.
먹고 살 만한데도 항공사의 ‘꼼수 판매’로 소비자 피해가 끊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환불 불가 특가상품’이 대표적이다. 특가상품은 항공사들이 비수기 때 가격을 대폭 할인해 판매하는 상품이다. 일반 항공권 가격보다 20~30%가량 저렴해 소비자 입장에선 구미가 당길 만하다. 그러나 싸다고 덥석 샀다가 후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가격이 싼 대신 환불이 불가능하거나 일정을 변경할 수 없는 등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물론 일반 항공권도 일정을 바꾸거나 취소할 때 일정한 수수료를 지불한다. 그러나 아예 환불이 불가능하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비행기를 못 타도 요금 전액을 취소 수수료로 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취소·환불은 항공권 관련 분쟁 중 비중이 가장 크다. 2013년 1월부터 2014년 9월까지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항공서비스 관련 피해 927건 중 424건(44.5%)이 ‘항공권 구매 취소 시 위약금(수수료) 과다 및 환급 거절’ 사례였다. 국내 항공사(122건)보다는 외국계 항공사(302건)에서 피해가 더 잦았다. 상대적으로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우리나라에 비해 환불 불가 상품 판매에 관한 규제가 덜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소비자 피해가 잇따르자 2012년 공정거래 위원회는 교통정리에 나섰다. 싱가폴항공·호주콴타스항공이 특가 항공권에 환불 불가 규정을 둔 것에 대해 시정 조치를 내렸는데 이후 두 항공사는 권고를 따랐다. 2013년에도 에어아시아·카타르항공·터키항공에게 같은 내용의 시정 조치를 내렸다. ‘환불 불가는 고객이 운임 할인으로 얻는 이익에 비해 지나치게 과한 손해배상의무’라는 게 공정위의 입장이다. 많은 외국계 항공사가 이러한 공정위의 권고를 받아들였지만 일부 항공사는 여전히 환불이 불가능한 특가상품을 팔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에로플로트는 최근 5월 11일까지 이용할 수 있는 블라디보스토크 왕복 항공권을 특가로 내놓으며 ‘환불 불가’ 조항을 달았다. 이 경우 출발 전 항공권을 취소하면 세금(공항세)과 유류할증료는 돌려받을 수 있지만 요금 자체는 아예 돌려받지 못한다. 베트남 LCC인 비엣젯항공 역시 인천-하노이 왕복 티켓을 약 26만원(공항세·유류할증료 포함)에 팔면서 환불 불가를 명시했다. 직접 항공사에 문의한 결과 비엣젯항공은 자사 룰을 내세워 세금도 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취소할 경우 한 푼도 돌려받을 수 없다는 의미다.
환불 불가 약관을 시정한 항공사가 많지만 여전히 특가상품을 구입할 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일반적으로 항공권은 좌석 등급이 높고, 요금이 비쌀수록 일정 변경이 쉽고, 취소 수수료가 저렴하다. 가격이 싼 특가상품은 당연히 수수료도 가장 비싸다. 수수료 또한 항공사별로 천차만별이다. 유럽으로 가는 가장 저렴한 요금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최대 4배 이상 차이가 난다. 베트남항공의 취소 수수료는 5만원이지만 아에로플로트는 200달러(약 22만원)다. 아에로플로트는 최근 파리·프랑크푸르트 등 유럽 주요 지역으로 가는 37만5000원(가장 저렴한 N등급)짜리 특가상품을 내놨다. 만약 이 항공권을 구매했다가 취소하면 요금의 약 60%에 달하는 200달러를 수수료로 내야 한다. 고작 15만5000원만 돌려받는다는 얘기다.
일정을 변경할 때도 마찬가지다. 싱가폴항공 유럽행 항공권의 변경 수수료가 2만원(최저 요금 기준)으로 가장 저렴한 반면 에어프랑스나 영국항공은 15만원의 변경 수수료를 받는다. 7.5배 차이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최근 소셜 커머스나 해외 직구(해외에선 환불 불가 상품 판매를 허용하는 경우가 많음)를 이용해 특가 항공권을 구입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지만 약관이 워낙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항공 용어가 많아 제대로 인지하기 쉽지 않다”며 “여행 일정이 3개월 이상 남은 경우라면 가급적 특가상품 구입을 자제하고, 구입 땐 결제 전에 반드시 환불 가능 여부와 취소 수수료를 확인하라”고 조언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여행사에서 특가상품이라 환불이 안 된다는 겁니다. 자신들은 도와줄 방법이 없으니 항공사에 문의해보라고 했죠. 그래서 항공사에 연락했더니 그쪽에서도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왔어요. ‘하루 차이로 항공권을 두 개나 끊었는데 취소를 못해준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따져도 ‘원래 취소와 환불이 불가능한 특가상품이라 어쩔 수 없다’는 대답뿐이었죠. 계속 따졌더니 결국 ‘앞서 결제한 항공권을 1년 내에 쓸 수 있는 항공권으로 바꿔주겠다’는 제안을 하더군요. 언제 어딜 갈 줄 알고 그런 걸 받느냐며 환불해달라고 끝까지 항의했지만 소용없었어요. 결국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죠.”
37만5000원짜리 티켓인데 취소 수수료가 22만원?
해외 여행객이 사상 최대치를 또 경신했다. 올 1월 해외 여행객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9% 늘어난 183만4538명을 기록했다. 이는 역대 월별 내국인 출국 규모 중 최고치다. 비행기 타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얘기는 항공사의 경영 환경이 좋아진다는 뜻이다. 겉으론 ‘경쟁이 치열해져 남는 게 별로 없다’지만 때마침 유가 하락이란 훈풍까지 불어줬다. 지난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영업이익 흑자 전환에 성공했고, 저비용항공사(LCC) 중에서도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한 곳이 많았다.
먹고 살 만한데도 항공사의 ‘꼼수 판매’로 소비자 피해가 끊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환불 불가 특가상품’이 대표적이다. 특가상품은 항공사들이 비수기 때 가격을 대폭 할인해 판매하는 상품이다. 일반 항공권 가격보다 20~30%가량 저렴해 소비자 입장에선 구미가 당길 만하다. 그러나 싸다고 덥석 샀다가 후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가격이 싼 대신 환불이 불가능하거나 일정을 변경할 수 없는 등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물론 일반 항공권도 일정을 바꾸거나 취소할 때 일정한 수수료를 지불한다. 그러나 아예 환불이 불가능하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비행기를 못 타도 요금 전액을 취소 수수료로 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취소·환불은 항공권 관련 분쟁 중 비중이 가장 크다. 2013년 1월부터 2014년 9월까지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항공서비스 관련 피해 927건 중 424건(44.5%)이 ‘항공권 구매 취소 시 위약금(수수료) 과다 및 환급 거절’ 사례였다. 국내 항공사(122건)보다는 외국계 항공사(302건)에서 피해가 더 잦았다. 상대적으로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우리나라에 비해 환불 불가 상품 판매에 관한 규제가 덜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소비자 피해가 잇따르자 2012년 공정거래 위원회는 교통정리에 나섰다. 싱가폴항공·호주콴타스항공이 특가 항공권에 환불 불가 규정을 둔 것에 대해 시정 조치를 내렸는데 이후 두 항공사는 권고를 따랐다. 2013년에도 에어아시아·카타르항공·터키항공에게 같은 내용의 시정 조치를 내렸다. ‘환불 불가는 고객이 운임 할인으로 얻는 이익에 비해 지나치게 과한 손해배상의무’라는 게 공정위의 입장이다.
소셜 커머스 특가, 해외 직구 때 수수료 잘 따져야
환불 불가 약관을 시정한 항공사가 많지만 여전히 특가상품을 구입할 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일반적으로 항공권은 좌석 등급이 높고, 요금이 비쌀수록 일정 변경이 쉽고, 취소 수수료가 저렴하다. 가격이 싼 특가상품은 당연히 수수료도 가장 비싸다. 수수료 또한 항공사별로 천차만별이다. 유럽으로 가는 가장 저렴한 요금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최대 4배 이상 차이가 난다. 베트남항공의 취소 수수료는 5만원이지만 아에로플로트는 200달러(약 22만원)다. 아에로플로트는 최근 파리·프랑크푸르트 등 유럽 주요 지역으로 가는 37만5000원(가장 저렴한 N등급)짜리 특가상품을 내놨다. 만약 이 항공권을 구매했다가 취소하면 요금의 약 60%에 달하는 200달러를 수수료로 내야 한다. 고작 15만5000원만 돌려받는다는 얘기다.
일정을 변경할 때도 마찬가지다. 싱가폴항공 유럽행 항공권의 변경 수수료가 2만원(최저 요금 기준)으로 가장 저렴한 반면 에어프랑스나 영국항공은 15만원의 변경 수수료를 받는다. 7.5배 차이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최근 소셜 커머스나 해외 직구(해외에선 환불 불가 상품 판매를 허용하는 경우가 많음)를 이용해 특가 항공권을 구입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지만 약관이 워낙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항공 용어가 많아 제대로 인지하기 쉽지 않다”며 “여행 일정이 3개월 이상 남은 경우라면 가급적 특가상품 구입을 자제하고, 구입 땐 결제 전에 반드시 환불 가능 여부와 취소 수수료를 확인하라”고 조언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 비트코인, 사상 첫 10만 달러 돌파
2신한투자증권 사장 후보에 이선훈 부사장…김상태 사장은 사임
3스타벅스 ‘버디 패스’ 통했다...충성고객 늘어
4신한금융, 정상혁 은행장 연임…카드·증권 등 9곳 CEO 교체
5연결된 세계, 함께 만드는 미래: 스마트 물류가 바꾸는 일상
6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 공표 연기…오류 발견
7티빙도 '숏폼'에 뛰어든다...무료 숏폼 서비스 제공
8KB자산운용, 업계 최초 육아휴직 2년…출산장려금 신설도
9고려아연, 장중 신고가…최윤범 임시 주총 앞두고 지분 17.5%로 늘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