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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삼의 ‘테드(TED) 플러스’] 세상에 완전한 평등은 없다

[박용삼의 ‘테드(TED) 플러스’] 세상에 완전한 평등은 없다

미국의 비영리 재단인 새플링에서 운영하는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는 ‘널리 퍼져야 할 아이디어’라는 모토로 경제·경영·사회·과학 분야에서 세계적 저명 인사들의 동영상 강의를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TED 웹사이트에 등록된 강의(1900여건)는 대부분 한국어 자막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뭔가 부족하다. 시사성 있는 강의를 선별해 소개하고, 그 의미를 해석하고 설명한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DJ나 VJ처럼 LJ(Lecture Jockey)로서 테드 강의를 돌아본다.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 도(道)를 깨쳤거나 영혼이 맑은 분들에게나 해당되는 얘기다. 현실은 다르다. 남달리 부지런하거나 수완이 특출나던지 아니면 그저 엄청나게 운이 좋든지 간에 생전에 제법 부(富)를 이루는 사람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 부가 자식들에게 이어지면 그 때부터 ‘공수(空手)’가 아니다. 불평등이 시작되는 것이다.

2011년 개봉한 과학영화 <인 타임(in time)> 은 불평등이 돈을 넘어 생명으로까지 이어지는 가상의 미래를 다룬다. 가까운 미래, 인간은 유전자 변형을 통해 25세가 되는 순간 팔뚝에 심어진 ‘카운트 바디 시계’에 남겨진 시간만큼만 살 수 있게 된다. 처음에 주어진 1년치의 시간이 다 소진되고 카운트가 영(0)이 되는 순간 세상과는 이별이다. 죽음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했던가? 허나 영화 속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부자들은 몇 세대에 걸쳐 영생을 누릴 수 있지만, 가난한 자들은 뚜벅뚜벅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하루를 힘겹게 살아야 한다. 불평등은 심화된다.
 부자는 ‘공수래 공수거’의 예외?
<상식 밖의 경제학> 으로 행동경제학의 열풍을 몰고 온 미국 듀크 대학교의 댄 애리얼리(Dan Ariely) 교수는 불평등에 대한 생각을 묻는 재미있는 설문조사를 했다. 미국인들을 대상으로두 가지를 질문했는데, 하나는 ‘현재 부의 불평등 정도가 어느정도라고 생각하는가’였고, 다른 하나는 ‘어느 정도의 불평등이 적합하다고 생각하는가’였다.

우선 미국 사회를 소득에 따라 가장 가난한 집단부터 가장 부유한 집단까지 정확히 20%씩 다섯 그룹으로 나눴다고 가정한다. 다음에 각 그룹에 어느 정도의 부가 집중되어 있을지를 질문했다. 설문에 응답한 미국인들은 소득 최하위 그룹이 전체부의 2.9%, 그 다음 하위 그룹이 6.4%, 그 다음이 12%, 그 다음이 20%, 마지막으로 가장 부유한 그룹이 58%의 부를 차지하고 있을 거라고 추측을 했다(독자 여러분들도 각자 짐작해보시길).

실제 미국 소득분포 자료에 따르면 가장 가난한 그룹부터 각각 0.1, 0.2, 3.9, 11.3%를 보유하고 있고, 가장 부유한 그룹이 전체 부의 84.5%의 부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잘사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잘 살고, 못 사는 사람들은 훨씬 더 못살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사회의 불평등 정도와 사람들이 생각하는 불평등 정도간에 인식의 괴리(Knowledge gap)가 크다는 것을알 수 있다.

다음 번 질문으로 5개 그룹간에 어떻게 부가 배분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어 봤다. 그런데 이 질문은 응답자 각자의 현재 소득수준이나 인종·종교·정치성향에 따라 크게 좌우될 공산이 크다. 애리얼리 교수는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응답자들에게 미국의 정치 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가 <정의론> 에서 제안한 ‘무지의 베일(Vei l of ignorance)’을 쓸 것을 요청했다. 즉 만일 자신이 5개 그룹 중 어느 한 그룹에 무작위로 배치된다고 상상했을 때, 가장 이상적인 소득분배 비율을 말해 보라고 요청한 것이다(형과 동생 중 한 명이 케이크를 나누고, 나머지 한 명이 먼저 고르게 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설문조사 결과 미국인들은 최하위 그룹에 10%의 부를 할당했고, 그 다음 그룹들에는 각각14, 21, 22, 32%를 할당했다.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우선 사람들은 이상적으로 완전한 평등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토피아에서조차도 어느 정도의 불평등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또 한가지는 불평등을 용인하되 최상위 그룹은 최하위그룹보다 3배(10% 대 32%) 정도 부유한게 적당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실제 현실인 845배(0.1% 대 84.5%)와 머리 속에 그리는 이상간의 괴리(Desirability gap)가 매우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부의 편중이 점점 심화되는 양극화 현상은 모든 사회가 안고 있는 공통의 문제다. 애리얼리 교수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실제로 가진 것(what we have)과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what we think we have), 그리고 올바르다고 믿는 것(what we think is right) 사이에 큰 격차가 있다는 점이다. 불평등 문제 해결의 출발은 추상적이고 감정적인 접근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 바람, 현실과의 간극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개선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불평등의 해법은 정확한 측정에서 출발해야
남보다 좀 더 갖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부의 사다리를 오르고 싶은 욕구야 말로 자본주의 사회의 견인차이다. 하지만 불평등의 정도가 지나치면 의욕 상실로 이어지고 결국 시스템 전체가 위태로워 진다. 더욱이 지금은 각종 유무선 미디어의 발달로 ‘모르고 지나쳤을’ 사실들까지 ‘모른 체 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기왕 이렇게 된 마당에 이제 불평등에 대해 좀 더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할 때다.

우선 중요한 것은 수학 문제 풀듯 답을 찾거나 힘겨루기로 승부를 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더디고 뜨뜻미지근할지라도 중간에서 절충하고 타협하는 수밖에 없다. 왜냐고? 아무리 ‘무지의 베일’을 뒤집어 써봤자 진정 머리를 비우고 새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입장이 갈리기 때문이다. 사기 진작을 위해 성과급 차이를 크게 하는 회사도 있는 반면, 일부 지자체 노조처럼 성과금을 다시 거둬 균등 재배분하는 곳도 있지 않은가. 여기서 시시비비를 따지기 시작하면 참 피곤해진다. 사고방식의 차이에 더해 경제적 득실과 정치적 계산까지 들어가면 더욱 복잡해진다.

다음은 객관적 상황 파악이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고, 관리할 수 없으면 개선할 수 없다”고 했다. 감정을 앞세워 밀고 당기다 보면 한발짝도 내딛지 못하고 힘만 빠진다. 부자라고 모두 부모 잘 만나고 탐욕스럽지 않듯이, 빈자라고 모두 게으르고 무능력한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부자라고 모두 자수성가한 것도 아니고, 빈자라고 모두억울한 사연이 있는 건 아니다. 구체적이고 납득할 수 있는 불평등 지표 개발과 정확한 실태 파악,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의 생각과 욕구를 수면 위로 드러내는 게 필요하다. 특히 불평등의 원인과 결과에 해당하는 부분을 구분하고 임팩트가 큰 것부터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여론의 움직임이나 정치적 필요에 따라 온갖 불평등 이슈들을 동시다발적으로 건드리는 순간 바로 멘붕에 빠지게 된다.

사지선다 퀴즈 하나. CEO와 일반 직원의 임금 차이는 어느정도가 적당할까? ①5배 ②10배 ③50배 ④100배. 우선 2014년 실태부터 보면 미국은 평균 370배(S&P 500대 기업 기준, AFL-CIO 자료)였고, 한국은 36배였다(시총 상위 30대 기업기준, 에프앤가이드 자료). 한편 우리나라 국민들의 생각은 12배 정도가 적당하다는 것이다(서울대 행정대학원 2013년 서베이). 사실 기업의 임금은 최저임금 등 법적 영역을 제외하고는 기업이 알아서 하면 될 일이다. 그럼에도 국가별 임금 분포, 또 그것을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 사이에도 불평등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보게 된다.
박용삼 - KAIST에서 경영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전자 통신연구원(ETRI)을 거쳐 현재 포스코경영연구원 산업연구센터 수석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분야는 신사업 발굴 및 기획, 신기술 투자전략 수립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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