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위기의 해법 GMO에 있지만…
식량위기의 해법 GMO에 있지만…
미국 네브래스카주의 옥수수 재배 농민은 가뭄으로 성장이 멈춘 작물을 보며 혀를 찬다. 나이지리아의 얌 밭에선 농민이 쪼그라든 덩이줄기를 파내며 허탈해한다. 코스타리카에선 곰팡이병이 번져 수확을 망친 커피 농장주가 일꾼 수백 명을 해고했다. 나는 지난해 봄 뉴욕주 북부에 체리나무 몇 그루를 심었는데 여름이 되자 일본풍뎅이가 나무 껍질을 거의 다 먹어 치웠다.
세계 어디를 가나 그런 재난이 갈수록 흔해진다. 우리 지구는 기후변화와 글로벌 교역의 후유증으로 휘청거린다. 열기로 작물이 말라비틀어지고, 과잉 경작과 가뭄으로 토양이 황폐해지며, 해충이 바다를 건너가 무방비 상태의 농작물을 갉아먹는다. 농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써 왔다. 그러나 급속한 인구성장으로 상황은 갈수록 절박해진다. 우리가 세계를 먹여 살릴 수 없다면 궁극적으로 세계가 우리를 집어삼킬 것이다.
유엔과 전문가들은 세계의 식량 생산을 2050년까지 2배로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금 70억 명인 세계 인구는 그때가 되면 90억 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35년밖에 남지 않았다. 이젠 경작 가능한 새로운 땅을 찾을 수도 없다. 아니 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미국 농무부에 따르면 미국은 2002~2012년 경작 가능한 땅 29만5420㎢를 잃었다. 지난 몇 년 간 극심한 가뭄이 지속되면서 더 많은 땅이 불모지로 변했을 게 분명하다. 앞으로 작물 재배 조건은 더 나빠질 것이다.
그러나 곧 해결책이 나올지 모른다. 과학자들이 작물의 유전적 과정을 파악하고 조작하는 방법에 혁명을 일으킬 새로운 도구가 2012년 개발됐다. 크리스퍼(CRISPR-Cas9)로 불리는 ‘유전자 가위’다. 크리스퍼는 유전공학 분야의 기존 도구와 달리 아주 정교하다. 크리스퍼를 사용하면 단일 유전자에 초점을 맞춰 발현을 조절·제거하거나 다른 유전자로 대체할 수 있다. 새로운 하이브리드 작물을 개발하는 전통 방법인 접목을 ‘구석기 시대의 창’에 비유하면 크리스퍼는 ‘최신 F-16 제트 전투기’에 해당한다. 생물학자와 유전학자들은 크리스퍼로 제2의 녹색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가 허용만 한다면 말이다. 크리스퍼 발명에 기여한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 캠퍼스) 제니퍼 두드나 교수는 지난해 ‘혁신 유전체학 계획(Innovative Genomics Initiative)’을 시작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겐 지놈(유전체)을 개조하는 아주 쉽고, 빠르며, 효과적인 기법이 있다. 그 도구로 이전엔 불가능했던 실험을 할 수 있다.” 크리스퍼의 속도와 간단함은 농업에 획기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지구온난화에 견디고 적응할 수 있는 작물을 개발할 가능성 때문이다. 아울러 더 적은 작물로 더 영양가 높은 식량과 식품을 얻을 수도 있다.
과학계는 크리스퍼에 매료됐다. 지금까지 관련 논문이 150편 이상 발표됐고 급속히 늘어나는 추세다. 코넬대학 보이스톰슨연구소 산하 유전학 기반 작물개량 실험실을 운영하는 조이스 밴 에크 교수는 “쏟아지는 논문을 따라잡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이 분야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중이다.”
크리스퍼라는 이름은 원래 박테리아에서 염기서열이 짧게 반복되는 DNA 조각을 의미한다. 박테리아가 치명적인 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술에서 유래됐다. 침입하는 바이러스의 유전암호를 복제해뒀다가 바이러스가 다시 침입할 때 쉽게 식별해 조치하는 기법이다. 예를 들면 경찰이 게시판에 지명수배 포스터를 붙이거나 전투에서 적군에게 야광 페인트를 끼얹어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이 과정에는 조력자 2명이 필요하다. 안내 RNA라는 분자와 카스(Cas)로 불리는 단백질(효소)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효과적인 단백질이 Cas9이다. RNA는 DNA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운반체다. 세포 안에서 Cas9은 DNA 분자 주변에 상호작용할 수 있는 화학적 환경을 조성한 다음 RNA가 DNA의 선택된 부위를 찾도록 유도한다. 그 다음 RNA는 Cas9을 DNA 속으로 안내한다. Cas9은 DNA 이중나선 구조의 지퍼를 내린 뒤 과학자가 제공하는 화학적 지시에 따라 다음 3가지 중 1가지 일을 한다. 해당 부위의 작동 능력을 약화시키거나, 활성화하거나, 선택된 유전자를 잘라낸다. 그 후 세포의 수리공이 DNA 구조의 지퍼를 다시 채운다.
이 과정은 작물의 본질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DNA의 일부분을 쉽게 바꿔칠 수 있다. 그 결과 맛과 영양가가 개선되고, 더 신속히 판매할 수 있으며, 보관과 유통이 더 쉽고, 기계 수확이 가능하며, 재배할 때 물이 더 적게 필요하고, 혹서에 더 잘 견딜 수 있다.
지난 시절 자연 과정에 의존한 작물 육종은 오랜 세월이 걸렸다. ‘녹색 혁명의 아버지’로 알려진 미국 농학자 노먼 볼로그가 밀 종자를 개량하는데 거의 20년이나 걸렸다. 1940년 시작된 그 혁명은 빈곤 지역에서 작물 생산성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여러 작물의 생산성을 2~4배 개선했다). 이제 크리스퍼 기법으로 그 개발 주기를 며칠 또는 몇 주로 단축할 수 있다.
무엇보다 방대한 유전자 데이터를 저렴한 비용으로 신속히 처리·저장하고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세포화학과 유전자에 관한 지식이 급속히 성장했다. 특히 다수 종의 유전체 데이터베이스가 크게 확장됐다.
이상적인 경우 우리가 선호하는 주요 농작물의 유전체에 관해 단일 유전자의 위치까지 전부 알 수 있을 것이다. 캔자스대학 연구팀은 밀의 염색체 20개 중 가장 복잡한 첫 번째 염색체의 염기서열을 확인했다. 그 염색체는 쌀 유전체보다 훨씬 복잡하다. 연구팀은 3년 안에 나머지 19개 염색체의 염기서열을 전부 분석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밀의 유전체를 완벽하게 알 수 있다는 뜻이다. 밀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작물 중 3위로 단백질을 가장 많이 함유하며 식량과 요리 재료로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곡물이다.
과학자들은 유전체를 파악한 뒤 크리스퍼를 사용해 밀의 특성을 개선할 목적으로 유전자 염기서열 한 부분을 완전히 대체할 생각이다. 열대 지방에 위치한 에콰도르의 염습지(해수 소택지) 끝자락에서 자라는 밀을 생각해 보라. 미국 아이오와주 평원에서 무성하게 자라는 밀에 비하면 왜소하며, 낱알도 작고 맛이 쓰다. 그러나 미국 밀에 에콰도르 염습지 밀의 유전체 일부를 첨가하면 해수에 더 잘 견디면서도 수확량이 많은 품종을 얻을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런 과정이 새로운 종을 만들어내는 것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이다. 크리스퍼는 작물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주는 도구일 뿐이다. 야생 종의 유전자를 이용해 고유한 유전자 특성을 미세 조정한다는 뜻이다. 작물 DNA의 작은 부분을 표적으로 하기 때문에 종이 달라지지 않는다. 심지어 유전자형도 같을 수 있다. 과학자들이 보기에 이 기술은 작물 종의 오랜 세월에 걸친 진화 능력을 보존하면서 당면한 환경에 더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진화를 돕는다. 다시 말해 자연적인 진화 과정을 가속화할 뿐이다.
물론 신중함과 지침이 필요하다. 크리스퍼 시험의 초기 결과는 완벽한 성공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발표된 수치에 따르면 성공률이 최대 80%였다. 실험으로선 높은 성공률이지만 상업적 적용에는 충분치 않다. 코넬대학의 반 에크 교수는 “표적을 벗어난 DNA 상호작용이 문제”라고 설명했다. “표적으로 삼은 염기서열이 아니라 유전체의 다른 곳에 있는 아주 유사한 염기서열을 의도치 않게 바꿔놓을 수 있다는 뜻이다.” 과거 유전자변형 기술에서도 그게 큰 문제였다. 무조건 잘될 것으로 생각하고 작물의 유전체를 화합물로 뒤덮은 경우가 많았다. 그에 비해 크리스퍼는 상당히 정확하다. 그러나 아직 신중한 입장을 표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이 기술은 앞으로 더 발전할 것이다. 크리스퍼의 새로운 버전이 개발되거나 크리스퍼가 주어지는 임무를 더 정확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새로운 효소를 발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 에크 교수와 동료들은 토마토 실험에서 그 효과를 입증했다. “토마토는 동물 실험에서의 흰쥐처럼 작물 실험의 모범 종이다.” 그들은 곧 토마토의 내한성과 병충해 저항성을 개선하는 연구를 시작할 계획이다. “드럼 연주자처럼 정확하게 우리가 원하는 부위를 표적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반 에크 교수는 말했다.
적응력이 더 강하며, 광합성을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새로운 벼도 개발됐다. 그에 따라 크리스퍼 덕분에 물, 토양, 영양소, 기온 등 다양한 조건을 감안해 적절한 조절로 벼의 생산성과 영양가를 높일 수 있는 미래가 예상된다.
요즘 바이오텍 작물은 세계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미국은 농업용 유전자변형 작물 약 100종을 승인했다. 인도 목화의 거의 전부, 중국 목화의 90%가 유전자변형 작물이다. 세계에서 생산되는 콩의 80%, 옥수수의 35%도 마찬가지다. 방글라데시는 병충해 저항력을 강화해 수확량을 2배로 늘릴 수 있는 유전자변형 가지를 재배할 계획이다. 요리 전문 저술가 마크 비트먼에 따르면 우리는 이미 수년 전부터 무해한 유전자변형 파파야를 즐겨 먹었다.
그러나 일부 국가는 유전자변형 작물을 꺼린다. 세계 최초로 옥수수를 재배했던 멕시코는 지금 유전자변형 작물 반대 운동 때문에 옥수수를 수입하고 있다. 멕시코의 옥수수 생산성은 세계 평균보다 38% 낮으며, 미국보다 3배나 낮다(미국은 병충해 저항성을 강화한 유전자변형 옥수수 작물이 90%를 차지한다). 멕시코의 옥수수 밭은 왕담배밤나방, 검거세미나방, 가을멸강충 같은 해충으로 뒤덮여 있다. 그 해충이 옥수수 작물의 절반을 고사시킨다. 농민이 화학 살충제를 대량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
유럽연합(EU)이 승인한 유전자변형 작물은 단 1종에 불과하다. 그것도 사료용 옥수수다. 이유는 정치적이다. 우선 회원국 과반수가 유전자변형 작물을 승인해야 한다. 또 모든 유전자변형생물(GMO) 반대 정서가 매우 강하다.
주요 작물의 유전자변형 작업은 반대하는 사람도 많을 뿐더러 거센 파벌주의도 불러일으켰다. ‘황금쌀(Golden Rice)’이 대표적이다. 기존 쌀에 비타민 A 성분을 강화한 것으로 야맹증 치료와 식량 부족에 따른 영양소 결핍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됐다. 매년 어린이 280만 명을 실명에서 보호해주고 100만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쌀이다. 그러나 아직도 사용되지 못하고 실험실에 그대로 놓여 있다. 그린피스 같은 환경단체는 유전자변형이라는 개념에 질겁하며 폭력적으로 저항한다. 지난해 그들은 필리핀에서 실험용 ‘황금쌀’ 재배단지를 파괴했다. 비영리 단체가 아무런 상업적 조건 없이 황금쌀 프로젝트를 주도하며,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데도 그들은 완강히 반대한다.
과학계는 대부분 GMO가 안전하다고 말한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 리서치 센터가 최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과학자의 88%는 GMO 기술이 무해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일반 미국인은 33%에 불과하다. 미국 대법원은 최근 유전자변형 알팔파의 안전성을 인정했다. 미국 농무부는 철저한 검토 끝에 유전자변형 사탕무를 승인했다.
다양한 GMO가 동물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독립적인 연구가 지금까지 여러 건 진행됐다. 12건의 장기 연구와 12건의 다세대 연구를 메타 분석한 결과가 2012년 국제학술지 ‘식품과 독성학’에 실렸다. “유전자변형 작물이 일반 작물과 영양적으로 동등하며 음식과 사료용으로 안전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결론이었다. 독립 기구 바이오포티파이드(Biofortified)에 따르면 GMO 유해성에 초점을 맞춘 연구 100여 건이 실시됐지만 해로운 결과는 발견되지 않았다. GMO에 반대하는 운동가들은 과학 연구 2건을 곧잘 내세운다. 두 연구 모두 쥐, 유전자변형 옥수수, 독성 제초제 라운드업(Roundup)과 관련된 연구다. 또 두 연구 모두 프랑스 과학자 질레스-에릭 세랄리니가 주도했다. 세랄리니는 유전자변형 옥수수를 먹인 쥐가 대조군보다 조기 사망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논문을 싣기로 한 학술지 ‘식품과 독성학’이 게재를 취소했다. 유럽의 주요 과학·식품안전 기구 대부분이 그 연구 결과에 부적격 판정을 내렸다.
문제 중 하나는 실험에 사용된 쥐가 암에 걸리기 쉬운 특이종이었다는 사실이었다(일상적으로 종양에 생기는 쥐가 80%나 된다). 호주 애들레이드대학의 이안 머스그레이브 교수는 “이 결과가 보여주는 것은 대조군 설정이 잘못된 실험의 무작위적인 변이”라고 지적했다.
라운드업(주성분 글리포세이트)이라는 제초제는 실제로 악명 높다. 농화학 대기업 몬산토가 수익을 올리기 위해 수년 동안 추진한 양면 전술 중 하나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몬산토는 라운드업을 먼저 생산한 뒤 1996년부터 라운드업에 내성을 갖도록 유전자를 변형시킨 ‘라운드업 레디(Roundup Ready)’ 작물(콩, 옥수수, 알팔라)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작물에 해를 끼치지 않고 잡초를 제거할 수 있다는 뜻이다. 농민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라운드업 레디 종자엔 어두운 면이 있다. 그 종자를 구입하는 농민은 거기서 수확한 곡물의 종자를 구입하거나 저장하지 않겠다는 동의서에 서명해야 한다. 농민은 매년 몬산토에서 새 종자를 구입해야 한다는 뜻이다. 몬산토로선 수익성이 막대하다. 몬산토는 현재 400억 달러 규모에 이르는 세계 종자 시장의 약 3분의 1을 점유한다. 몬산토의 라운드업 논란은 거세다. 특히 라운드업 레디 작물의 유전자변형 DNA가 일반 작물을 오염시킬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또 다른 문제는 글리포세이트가 유해한 물질이라는 사실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글리포세이트가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소비자 브랜드도 ‘GMO 반대’ 운동에 적극 동참한다. 미국의 멕시코 음식 패스트푸드 체인 치포틀은 ‘No GMO’(유전자변형 식자재를 사용하지 않는다)를 표방한다. 일리가 있다. 미국인의 3분의 2 이상이 유전자변형 식품이 건강에 해롭다고 생각하는 현실에서 ‘GMO 프리’를 선언하면 수익성이 좋아질 게 뻔하다. 지방 정부도 개입하기 시작했다. 미국 버몬트주는 모든 유전자변형 식품은 반드시 상표에 GMO라고 표시하도록 의무화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세계적으로 유전자변형 전문 신생업체에 대한 투자는 활발하다. 벤처투자자들만이 아니라 글락소스미스클라인, 셀진, 노바티스 같은 기존 제약사도 생명의학 분야에서 유전자변형 연구 신생업체에 투자한다.
중국의 경우 농민은 유전자변형 작물에 두려움과 분노로 반응한다. 현재 중국에서 승인된 유전자변형 농산물은 파파야가 유일하다. 그러나 중국의 막강한 과학계는 유전자 연구를 지지한다. 실험실이 400개, 연구원이 3만 명이다. 이미 쌀 3000종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했다. 영양가, 수확량, 환경스트레스 내성에서 최상의 조건을 갖춘 유전자를 찾기 위한 준비 작업이다. 머지않아 ‘그린 슈퍼 라이스’가 등장할 전망이다.
중국 정부가 GMO 작물을 자국인에게 판매할 수 없다고 해도 동남아, 아프리카, 인도의 빈민층은 그런 작물을 환영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중국 최대 유전공학 연구센터 BGI의 장겡윤 생명공학 책임자는 “오늘날의 기술로 우리는 세계를 먹여 살릴 수 있다”고 공언했다.
-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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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어디를 가나 그런 재난이 갈수록 흔해진다. 우리 지구는 기후변화와 글로벌 교역의 후유증으로 휘청거린다. 열기로 작물이 말라비틀어지고, 과잉 경작과 가뭄으로 토양이 황폐해지며, 해충이 바다를 건너가 무방비 상태의 농작물을 갉아먹는다. 농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써 왔다. 그러나 급속한 인구성장으로 상황은 갈수록 절박해진다. 우리가 세계를 먹여 살릴 수 없다면 궁극적으로 세계가 우리를 집어삼킬 것이다.
유엔과 전문가들은 세계의 식량 생산을 2050년까지 2배로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금 70억 명인 세계 인구는 그때가 되면 90억 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35년밖에 남지 않았다. 이젠 경작 가능한 새로운 땅을 찾을 수도 없다. 아니 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미국 농무부에 따르면 미국은 2002~2012년 경작 가능한 땅 29만5420㎢를 잃었다. 지난 몇 년 간 극심한 가뭄이 지속되면서 더 많은 땅이 불모지로 변했을 게 분명하다. 앞으로 작물 재배 조건은 더 나빠질 것이다.
그러나 곧 해결책이 나올지 모른다. 과학자들이 작물의 유전적 과정을 파악하고 조작하는 방법에 혁명을 일으킬 새로운 도구가 2012년 개발됐다. 크리스퍼(CRISPR-Cas9)로 불리는 ‘유전자 가위’다. 크리스퍼는 유전공학 분야의 기존 도구와 달리 아주 정교하다. 크리스퍼를 사용하면 단일 유전자에 초점을 맞춰 발현을 조절·제거하거나 다른 유전자로 대체할 수 있다. 새로운 하이브리드 작물을 개발하는 전통 방법인 접목을 ‘구석기 시대의 창’에 비유하면 크리스퍼는 ‘최신 F-16 제트 전투기’에 해당한다. 생물학자와 유전학자들은 크리스퍼로 제2의 녹색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가 허용만 한다면 말이다.
DNA 지퍼를 다시 채우다
과학계는 크리스퍼에 매료됐다. 지금까지 관련 논문이 150편 이상 발표됐고 급속히 늘어나는 추세다. 코넬대학 보이스톰슨연구소 산하 유전학 기반 작물개량 실험실을 운영하는 조이스 밴 에크 교수는 “쏟아지는 논문을 따라잡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이 분야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중이다.”
크리스퍼라는 이름은 원래 박테리아에서 염기서열이 짧게 반복되는 DNA 조각을 의미한다. 박테리아가 치명적인 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술에서 유래됐다. 침입하는 바이러스의 유전암호를 복제해뒀다가 바이러스가 다시 침입할 때 쉽게 식별해 조치하는 기법이다. 예를 들면 경찰이 게시판에 지명수배 포스터를 붙이거나 전투에서 적군에게 야광 페인트를 끼얹어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이 과정에는 조력자 2명이 필요하다. 안내 RNA라는 분자와 카스(Cas)로 불리는 단백질(효소)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효과적인 단백질이 Cas9이다. RNA는 DNA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운반체다. 세포 안에서 Cas9은 DNA 분자 주변에 상호작용할 수 있는 화학적 환경을 조성한 다음 RNA가 DNA의 선택된 부위를 찾도록 유도한다. 그 다음 RNA는 Cas9을 DNA 속으로 안내한다. Cas9은 DNA 이중나선 구조의 지퍼를 내린 뒤 과학자가 제공하는 화학적 지시에 따라 다음 3가지 중 1가지 일을 한다. 해당 부위의 작동 능력을 약화시키거나, 활성화하거나, 선택된 유전자를 잘라낸다. 그 후 세포의 수리공이 DNA 구조의 지퍼를 다시 채운다.
이 과정은 작물의 본질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DNA의 일부분을 쉽게 바꿔칠 수 있다. 그 결과 맛과 영양가가 개선되고, 더 신속히 판매할 수 있으며, 보관과 유통이 더 쉽고, 기계 수확이 가능하며, 재배할 때 물이 더 적게 필요하고, 혹서에 더 잘 견딜 수 있다.
지난 시절 자연 과정에 의존한 작물 육종은 오랜 세월이 걸렸다. ‘녹색 혁명의 아버지’로 알려진 미국 농학자 노먼 볼로그가 밀 종자를 개량하는데 거의 20년이나 걸렸다. 1940년 시작된 그 혁명은 빈곤 지역에서 작물 생산성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여러 작물의 생산성을 2~4배 개선했다). 이제 크리스퍼 기법으로 그 개발 주기를 며칠 또는 몇 주로 단축할 수 있다.
무엇보다 방대한 유전자 데이터를 저렴한 비용으로 신속히 처리·저장하고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세포화학과 유전자에 관한 지식이 급속히 성장했다. 특히 다수 종의 유전체 데이터베이스가 크게 확장됐다.
이상적인 경우 우리가 선호하는 주요 농작물의 유전체에 관해 단일 유전자의 위치까지 전부 알 수 있을 것이다. 캔자스대학 연구팀은 밀의 염색체 20개 중 가장 복잡한 첫 번째 염색체의 염기서열을 확인했다. 그 염색체는 쌀 유전체보다 훨씬 복잡하다. 연구팀은 3년 안에 나머지 19개 염색체의 염기서열을 전부 분석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밀의 유전체를 완벽하게 알 수 있다는 뜻이다. 밀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작물 중 3위로 단백질을 가장 많이 함유하며 식량과 요리 재료로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곡물이다.
과학자들은 유전체를 파악한 뒤 크리스퍼를 사용해 밀의 특성을 개선할 목적으로 유전자 염기서열 한 부분을 완전히 대체할 생각이다. 열대 지방에 위치한 에콰도르의 염습지(해수 소택지) 끝자락에서 자라는 밀을 생각해 보라. 미국 아이오와주 평원에서 무성하게 자라는 밀에 비하면 왜소하며, 낱알도 작고 맛이 쓰다. 그러나 미국 밀에 에콰도르 염습지 밀의 유전체 일부를 첨가하면 해수에 더 잘 견디면서도 수확량이 많은 품종을 얻을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런 과정이 새로운 종을 만들어내는 것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이다. 크리스퍼는 작물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주는 도구일 뿐이다. 야생 종의 유전자를 이용해 고유한 유전자 특성을 미세 조정한다는 뜻이다. 작물 DNA의 작은 부분을 표적으로 하기 때문에 종이 달라지지 않는다. 심지어 유전자형도 같을 수 있다. 과학자들이 보기에 이 기술은 작물 종의 오랜 세월에 걸친 진화 능력을 보존하면서 당면한 환경에 더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진화를 돕는다. 다시 말해 자연적인 진화 과정을 가속화할 뿐이다.
물론 신중함과 지침이 필요하다. 크리스퍼 시험의 초기 결과는 완벽한 성공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발표된 수치에 따르면 성공률이 최대 80%였다. 실험으로선 높은 성공률이지만 상업적 적용에는 충분치 않다. 코넬대학의 반 에크 교수는 “표적을 벗어난 DNA 상호작용이 문제”라고 설명했다. “표적으로 삼은 염기서열이 아니라 유전체의 다른 곳에 있는 아주 유사한 염기서열을 의도치 않게 바꿔놓을 수 있다는 뜻이다.” 과거 유전자변형 기술에서도 그게 큰 문제였다. 무조건 잘될 것으로 생각하고 작물의 유전체를 화합물로 뒤덮은 경우가 많았다. 그에 비해 크리스퍼는 상당히 정확하다. 그러나 아직 신중한 입장을 표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이 기술은 앞으로 더 발전할 것이다. 크리스퍼의 새로운 버전이 개발되거나 크리스퍼가 주어지는 임무를 더 정확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새로운 효소를 발견할 수도 있다.
토마토에서 희망을 맛보다
적응력이 더 강하며, 광합성을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새로운 벼도 개발됐다. 그에 따라 크리스퍼 덕분에 물, 토양, 영양소, 기온 등 다양한 조건을 감안해 적절한 조절로 벼의 생산성과 영양가를 높일 수 있는 미래가 예상된다.
요즘 바이오텍 작물은 세계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미국은 농업용 유전자변형 작물 약 100종을 승인했다. 인도 목화의 거의 전부, 중국 목화의 90%가 유전자변형 작물이다. 세계에서 생산되는 콩의 80%, 옥수수의 35%도 마찬가지다. 방글라데시는 병충해 저항력을 강화해 수확량을 2배로 늘릴 수 있는 유전자변형 가지를 재배할 계획이다. 요리 전문 저술가 마크 비트먼에 따르면 우리는 이미 수년 전부터 무해한 유전자변형 파파야를 즐겨 먹었다.
그러나 일부 국가는 유전자변형 작물을 꺼린다. 세계 최초로 옥수수를 재배했던 멕시코는 지금 유전자변형 작물 반대 운동 때문에 옥수수를 수입하고 있다. 멕시코의 옥수수 생산성은 세계 평균보다 38% 낮으며, 미국보다 3배나 낮다(미국은 병충해 저항성을 강화한 유전자변형 옥수수 작물이 90%를 차지한다). 멕시코의 옥수수 밭은 왕담배밤나방, 검거세미나방, 가을멸강충 같은 해충으로 뒤덮여 있다. 그 해충이 옥수수 작물의 절반을 고사시킨다. 농민이 화학 살충제를 대량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
유럽연합(EU)이 승인한 유전자변형 작물은 단 1종에 불과하다. 그것도 사료용 옥수수다. 이유는 정치적이다. 우선 회원국 과반수가 유전자변형 작물을 승인해야 한다. 또 모든 유전자변형생물(GMO) 반대 정서가 매우 강하다.
주요 작물의 유전자변형 작업은 반대하는 사람도 많을 뿐더러 거센 파벌주의도 불러일으켰다. ‘황금쌀(Golden Rice)’이 대표적이다. 기존 쌀에 비타민 A 성분을 강화한 것으로 야맹증 치료와 식량 부족에 따른 영양소 결핍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됐다. 매년 어린이 280만 명을 실명에서 보호해주고 100만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쌀이다. 그러나 아직도 사용되지 못하고 실험실에 그대로 놓여 있다. 그린피스 같은 환경단체는 유전자변형이라는 개념에 질겁하며 폭력적으로 저항한다. 지난해 그들은 필리핀에서 실험용 ‘황금쌀’ 재배단지를 파괴했다. 비영리 단체가 아무런 상업적 조건 없이 황금쌀 프로젝트를 주도하며,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데도 그들은 완강히 반대한다.
과학계는 대부분 GMO가 안전하다고 말한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 리서치 센터가 최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과학자의 88%는 GMO 기술이 무해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일반 미국인은 33%에 불과하다. 미국 대법원은 최근 유전자변형 알팔파의 안전성을 인정했다. 미국 농무부는 철저한 검토 끝에 유전자변형 사탕무를 승인했다.
다양한 GMO가 동물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독립적인 연구가 지금까지 여러 건 진행됐다. 12건의 장기 연구와 12건의 다세대 연구를 메타 분석한 결과가 2012년 국제학술지 ‘식품과 독성학’에 실렸다. “유전자변형 작물이 일반 작물과 영양적으로 동등하며 음식과 사료용으로 안전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결론이었다. 독립 기구 바이오포티파이드(Biofortified)에 따르면 GMO 유해성에 초점을 맞춘 연구 100여 건이 실시됐지만 해로운 결과는 발견되지 않았다.
끊이지 않는 안전성 논란
문제 중 하나는 실험에 사용된 쥐가 암에 걸리기 쉬운 특이종이었다는 사실이었다(일상적으로 종양에 생기는 쥐가 80%나 된다). 호주 애들레이드대학의 이안 머스그레이브 교수는 “이 결과가 보여주는 것은 대조군 설정이 잘못된 실험의 무작위적인 변이”라고 지적했다.
라운드업(주성분 글리포세이트)이라는 제초제는 실제로 악명 높다. 농화학 대기업 몬산토가 수익을 올리기 위해 수년 동안 추진한 양면 전술 중 하나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몬산토는 라운드업을 먼저 생산한 뒤 1996년부터 라운드업에 내성을 갖도록 유전자를 변형시킨 ‘라운드업 레디(Roundup Ready)’ 작물(콩, 옥수수, 알팔라)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작물에 해를 끼치지 않고 잡초를 제거할 수 있다는 뜻이다. 농민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라운드업 레디 종자엔 어두운 면이 있다. 그 종자를 구입하는 농민은 거기서 수확한 곡물의 종자를 구입하거나 저장하지 않겠다는 동의서에 서명해야 한다. 농민은 매년 몬산토에서 새 종자를 구입해야 한다는 뜻이다. 몬산토로선 수익성이 막대하다. 몬산토는 현재 400억 달러 규모에 이르는 세계 종자 시장의 약 3분의 1을 점유한다. 몬산토의 라운드업 논란은 거세다. 특히 라운드업 레디 작물의 유전자변형 DNA가 일반 작물을 오염시킬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또 다른 문제는 글리포세이트가 유해한 물질이라는 사실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글리포세이트가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소비자 브랜드도 ‘GMO 반대’ 운동에 적극 동참한다. 미국의 멕시코 음식 패스트푸드 체인 치포틀은 ‘No GMO’(유전자변형 식자재를 사용하지 않는다)를 표방한다. 일리가 있다. 미국인의 3분의 2 이상이 유전자변형 식품이 건강에 해롭다고 생각하는 현실에서 ‘GMO 프리’를 선언하면 수익성이 좋아질 게 뻔하다. 지방 정부도 개입하기 시작했다. 미국 버몬트주는 모든 유전자변형 식품은 반드시 상표에 GMO라고 표시하도록 의무화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세계적으로 유전자변형 전문 신생업체에 대한 투자는 활발하다. 벤처투자자들만이 아니라 글락소스미스클라인, 셀진, 노바티스 같은 기존 제약사도 생명의학 분야에서 유전자변형 연구 신생업체에 투자한다.
중국의 경우 농민은 유전자변형 작물에 두려움과 분노로 반응한다. 현재 중국에서 승인된 유전자변형 농산물은 파파야가 유일하다. 그러나 중국의 막강한 과학계는 유전자 연구를 지지한다. 실험실이 400개, 연구원이 3만 명이다. 이미 쌀 3000종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했다. 영양가, 수확량, 환경스트레스 내성에서 최상의 조건을 갖춘 유전자를 찾기 위한 준비 작업이다. 머지않아 ‘그린 슈퍼 라이스’가 등장할 전망이다.
중국 정부가 GMO 작물을 자국인에게 판매할 수 없다고 해도 동남아, 아프리카, 인도의 빈민층은 그런 작물을 환영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중국 최대 유전공학 연구센터 BGI의 장겡윤 생명공학 책임자는 “오늘날의 기술로 우리는 세계를 먹여 살릴 수 있다”고 공언했다.
-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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