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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억만장자

겸손한 억만장자

타이 리(Thai Lee, 56)는 손수 차를 몰고 출근해, 앞에 빈 자리가 있음에도 주차장 가운데에 차를 세운다. 그가 일하는 작은 사무실은 직원들이 일하는 사무실 공간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다. 그는 비서 없이 일정 관리, 여행 예약, 서류 정리까지 모두 스스로 한다. 타이 리에게서는 화려한 특전이나 거만한 태도를 찾아볼 수 없다. 타이 리는 미국 최대 여성 소유기업의 소유주이며, 타이 리가 소유하고 있는 SHI는 아마도 소수인종 소유의 사업체를 통틀어 상위 3위권에 속할 것이다. 그리고 타이 리는 자신이 소유한 이 기업을 통해 억만장자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타이 리나 타이 리가 소유하고 있는 기업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타이 리가 경영하는 SHI 인터내셔널은 5명 남짓한 직원과 몇 안되는 고객사를 둔 다 쓰러져가던 소프트웨어 리셀러 기업에서, 전 세계적으로 3000여 명의 직원을 고용하며 6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세계 최대 규모와 높은 평판을 자랑하는 IT 업체로 거듭났다. 서드파티(third-party)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맞춤형 애플리케이션에서 컨설팅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제공하는 SHI 인터내셔널은 1만7500여 개에 달하는 고객사 기반을 구축했으며, 여기에는 보잉, 존슨&존슨 및 AT&T와 같은 내로라하는 기업도 포함되어 있다. 창립 이후 SHI의 매출은 매년 흑자를 냈고, 2014년에는 15%가 넘는 성장률을 기록했다. 비상장기업들은 수익을 공개하려 하지 않지만, CEO인 타이 리는 SHI의 순마진을 대략 3% 정도로 예상했다.

포브스가 SHI의 기업 가치에 대해 내놓은 가장 보수적인 추정치는 18억 달러를 웃돈다. 이는 지분의 60%를 소유한 여성 기업가 타이 리가 미국의 자수성가형 억만장자 여성 18명의 리스트에 속한다는 의미다. 포브스가 리스트에 올랐다는 사실을 말하며 처음 타이 리와의 접촉을 시도했을 때, 그는 절대로 자신의 이름이 리스트에 오르지 않도록 할 것을 SHI의 커뮤니케이션팀에 지시했다. 타이 리가 동의하든 하지 않든 포브스지가 리스트를 발표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타이 리는 마지못해 인터뷰에 응했다.

“제가 SHI 직원들을 존중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돈의 가치로 정확히 환산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타이 리의 말이다.

자칫 감상적으로 들릴 수 있으나, 이는 타이 리가 거대한 부를 축적한 핵심 원동력이었다. 타이 리가 몸담고 있는 산업에서는 다른 업체가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순간 바로 고객들이 이탈하는 현상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자신의 직원들을 진심으로 아끼는 것, 이것이야말로 타이 리가 거둔 성공 비결이다.

뉴저지 서머싯에 소재한 타이 리의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타이 리는 직속 보고서 19건을 인쇄해 건넸다. 보고서에는 타이 리가 쓴 각 직원의 입사일과 함께 하단에는 “평균 근속 기간 18년”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SHI의 기업 마케팅 홍보물은 SHI가 무려 99%에 이르는 고객유지율을 기록하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SHI가 비상장기업이라 확인할 방법은 없으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고객과 직원 만족을 철저히 추구한다는 점이다.

“지금은 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타이 리의 말이다. “저희는 경영진 전용 주차공간은 따로 없습니다. 경영진을 위한 특별보상체계도 없습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바는 모든 직원들이 자신이 가치있는 사람이라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회적 합의는 모든 직원이 자신이 존중받는다고 느끼게 했다.

태국 방콕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자주 이사했다. 저명한 한국인 경제학자였던 아버지는 전 세계 곳곳을 누비며 한국의 전후개발계획을 알리는 데 일조했다. 일남삼녀 중 둘째 딸이었던 타이 리는 유년 시절의 대부분을 한국에서 보냈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사려 깊고, 학구적이며 그 어떤 만일의 사태에도 준비가 되어 있는 아이였다.

“한국에서 살다 보면 ‘만약 북한이 쳐들어오면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타이 리의 여동생으로 SHI에서 근무하는 셀레스테 리(Celeste Lee)가 말했다. “함께 놀 때, 언니는 언제나 저희가 살아남기 위한 계획을 세웠지요. 저는 언니처럼 집중력이 뛰어난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어요.”
 방콕 출생, 아버지는 한국인 경제학자
타이 리와 언니 마가렛은 십 대에 미국으로 건너와 지인 가족과 함께 지내며 메사추세츠 앰허스트에 소재한 고등학교에 다녔고, 이후 앰허스트 대학으로 진학했다. 타이 리는 생물학과 경제학을 이중전공해 학사학위를 받았는데, 전공과목을 선택한 데에는 영어를 말할 때의 억양과 100%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는 유창성이 한 부분을 차지했다. “수업시간에 쓰기와 말하기를 해야 하는 전공을 무엇이든지 절대 피할 것이라고 단단히 결심했습니다.” 타이 리가 웃으며 말했다. “왜냐하면 저는 최고의 점수를 받아야겠다고 굳게 마음먹었거든요. 그렇다면 제가 성공할 가능성이 가장 큰 분야는 스스로 창업을 하는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제가 성공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모든 직업군을 지우고 나니, 창업이 유일하게 남은 대안이었습니다.”

아메리칸 드림을 향한 타이 리의 여정은 진지한 열의로 가득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에 소재한 자동차부품업체 ‘대성산업’에서 근무하며 MBA 학자금을 모았다. 몇 년 후 메사추세츠로 다시 돌아와 공부를 다시 시작해 1985년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타이 리는 창업이라는 불가피한 선택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 필요한 업무를 골라 일했다. 프록터&갬블에서 2년 동안 일하며 올웨이즈 및 크레스트와 같은 브랜드를 다뤘다. 그다음에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서 2년 동안 근무했다. “저는 제가 준비가 잘 되어 있어야 하는 성격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스스로 준비할 시간을 좀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20대에 저는 비즈니스에 대한 모든 것을 배워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의 장기계획은 30대에 창업을 하고, 40대에 결혼을 해 아이를 낳는 것이었다.

현실에서는 결혼이 먼저였다. 1989년 타이 리는 컬럼비아대학 출신 변호사인 리오 코구안(Leo Koguan)과 결혼했다. 코구안은 타이 리와 함께 창업이라는 꿈을 같이 했으며, 그해 말 이를 현실화할 기회를 포착하게 된다.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던 뉴저지 소재 소프트웨어 기업 라우텍은 로터스 1-2-3과 같은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비즈니스 라이센스를 주력으로 하는 소프트웨어 하우스라는 작은 사업부서를 두고 있었다. 고객수는 몇 되지 않았으나, 이 중 일부는 AT&T와 같은 대기업이었다. 부부는 소프트웨어 하우스가 IBM과 같은 벤더업체과 구축해놓은 관계에서 엄청난 잠재적 가치를 봤다. 저축한 돈과 소액 대출 몇 건을 받아 100만 달러가 채 안 되는 금액으로 소프트웨어 하우스를 인수했다. 전세계로 뻗어 나가겠다는 타이 리의 야망을 담아 인수 직후 소프트웨어 하우스 인터내셔널(SHI)로 사명을 바꿨다.

결혼은 도중에 파경을 맞았지만, 사업가로서의 파트너십은 여전히 살아있다. 십 대 자녀 두 명을 둔 부부는 2002년 이혼했다. 코구안은 경영권을 행사하지 않는 비 집행 사장직을 유지하며 SHI의 지분 40%를 보유하고 있다. (포브스는 코구안과의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SHI는 이를 거절했다)
 기술업계에서 여성적인 시각으로 차별화
대학 시절 창업을 하기로 했을 때, 타이 리는 “기술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그 당시는 개인용 컴퓨터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는 컴퓨터에 대해 제한적인 경험을 했을 뿐이었다. 새로운 기술을 먼저 받아들이는 얼리 어답터 타입도 절대 아니었다.

“사실 저는 아마도 이런 신기술을 가장 마지막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었을 겁니다”라고 타이 리가 말했다. “기기는 실질적인 유용성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기기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배우기 위해 내가 투입하는 것보다, 내가 이 기기에서 뽑아낼 수 있는 효용이 더 커야 하지요.” 타이 리는 기술에 대한 자신의 접근방식이 다른 대부분의 여성과 같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즉, 실용적인 시각에서 기술을 받아들이기 전에 그 유용성을 먼저 검증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마인드는 특히 SHI의 가장 큰 차별화 요소가 첨단 기술이 아닌 최고의 고객 서비스였던 초기 시절 SHI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우리는 재고를 갖추지 못했고, 자금이 거의 없었으며, 시장에서 존재감도 없고 마케팅이나 홍보활동도 전혀 없었습니다.” 신사업개발담당 수석부사장을 역임하고 있는 멜리사 그레이엄이 말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일을 성공하고 말겠다는 의지를 갖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타이 리 회장은 SHI를 의미 있는 기업으로 만들기 위한 요소를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타이 리는 사업 초기부터 직원들에게 고객관리에 대한 의사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회장님이 현장에 나가 새로운 사업을 따오는 활동을 하는 대외판매팀을 따로 부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여러분은 여러분 기업의 사장입니다.’ 그레이엄이 말을 이었다. “어떤 고객을 책임지고 있다면, 여러분이 그 사업의 주인인 것입니다. 이처럼 권한을 부여받는 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고객을 단순히 상자 속 컴퓨터를 사용하는 소비자가 아닌 파트너로 대하자 고객의 충성도가 개선되었고 수익이 상승했다. “기술분야의 벤더나 리셀러들 사이에서는 고객 이탈은 빈번합니다.” 15년 넘게 SHI와 거래한 던앤브래드스트리트를 이끌고 있는 앤소니 안드레아가 말했다. “하지만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좋은 벤더와 일한다면, 안정성이 보장됩니다. 다른 벤더로 갈 이유가 없지요.”

안드레아는 SHI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까닭으로 “타이 리 회장은 대단한 리더입니다”라며 그의 경영방식을 꼽았다. “아주 명석할 뿐 아니라 집중력이 높고 겸손합니다. 실질적으로 직원에게 권한을 부여해, 그들이 고객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해줍니다.”
 새로운 비즈니스 부서를 만들어 성공하다
그레이엄은 어느 금요일 SHI가 거래하던 최대규모 소프트웨어 고객사 중 한 곳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기억하고 있었다. 이 고객사는 타업체로부터 컴퓨터 하드웨어 구매에 연간 100만 달러를 지출하고 있었다. 그런데 벤더를 바꿔 컴퓨터 구매도 SHI를 통해서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바로 다음 주 월요일부터 말이다.

“저희가 이전에 컴퓨터를 판매해 본 적이 있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고객사는 저희와 매우 좋은 관계를 구축해 놓고 있었지요.” 그레이엄이 말했다. “그래서 저희 직원들이 타이 리 회장에게 ‘여기 우리에게 기회가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타이 리는 팀에게 한번 해 보라고 이야기했다. “수많은 직원이 주말 내내 우리가 어떻게 고객사의 요청에 대응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그레이엄이 말했다. 15년이 지난 오늘 이 고객사는 SHI의 상위 3개 고객사 중 하나다.

“이전에 전혀 해보지 않은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흥미진진한 일입니다.” 타이 리의 말이다.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시도했습니다. 그다음에는 이를 다시 반복했습니다. 다른 고객에게 다가가 ‘이제 우리가 이런 것도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이곳저곳에서 아이디어가 솟아 나왔다. 타이 리의 지인 할 재거는 중소기업들을 겨냥한 새로운 비즈니스 부서를 만드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재거는 그 당시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기업인 비즈니스 오브젝츠의 경영진이었다. 2008년도가 경제불황이었다는 사실에도 타이 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유효시장 규모는 1억5000만~2000만 달러였다”고 재거가 말했다. “여기서 시장이 3~4% 하락해도 SHI와 같은 기업이 공략해 볼 만한 거대한 시장이었습니다.”

타이 리는 재거를 기업세일즈담당 수석부사장으로 영입했다. 그 후 2년 동안 무(無)에서 시작해 새로운 비즈니스 부서를 만들어냈다. 대출은 절대 받지 않았고, 수중의 현금자본을 이용해 사업확장을 위한 자금을 충당했다. (SHI측 주장에 따르면 창립 이후 최대 규모의 확장이라고 하나, 이에 대한 상세한 금액은 전혀 밝히지 않았다)

도박은 성공을 거두었다. 7년 후 재거가 이끄는 기업 세일즈부서는 16억 달러가 넘는 매출고를 올렸다. 이렇게 사업을 확장하면서도 기업 내 여타 조직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았다. 7년 동안 엔터프라이즈, 공공 부문 그리고 글로벌 사업을 비롯한 SHI 그룹의 사업 규모는 두 배 확장됐다. 타이 리의 말에 따르면 매출이 60억 달러를 기록해서 가장 좋은 일은 여전히 더욱 성장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SHI와 CDW 및 인사이트와 같은 여타 IT 경쟁사들이 활동하는 시장은 향후 막대한 잠재력이 기대되고 있다. 기술연구기업 IDC는 2015년 전 세계적인 IT 제품 및 서비스 지출은 전년보다 3.4% 증가한 2조16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이제 기업의 IT 지출 판도가 뒤바뀌면서, SHI 역시 지속해서 새로운 비즈니스를 발굴해나가야 한다.

과거 대규모 IT 부서들은 SHI에 도움을 빌려 신규소프트웨어 구매 등의 업무를 처리했다. 소프트웨어 구매 프로세스가 플로피 디스크나 CD와 같은 물리적 형태의 제품 구매, 라이센싱 계약 협상, 그리고 이용료 지불과 같은 수많은 행정절차로 복잡하게 뒤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소프트웨어 벤더들은 고객들이 더 손쉽게 자사 제품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인터넷에서 프로그램을 다운로드 받아,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끝이다.

IDC의 수석부사장 다렌 비비의 말에 따르면, 그 결과로 소프트웨어 리셀링 사업은 급속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문제는 클라우드 기술로 인해 더욱 심화된다. “만약 고객사가 세일즈포스닷컴(Salesforce.com)과 같은 웹사이트를 통해 간단하게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여러분의 기업 가치는 그냥 사라지는 겁니다.”
 소프트웨어 사업에서만 35억달러 매출
지난해 35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한 SHI의 소프트웨어 사업은 여전히 잘 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 대비해 타이 리는 최근 몇 년 동안 서비스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했다. 직원이 사용하는 노트북 기종, 특정 프로그램의 사용을 허가받는 직원은 누구인지 등까지 세심하게 알아본다. 고객사 IT 인프라 내에서 이동하는 부품들을 추적하는 자산관리와 같은 서비스 상품이 있다. SHI가 고객사의 백엔드 서버 및 스토리지의 운영을 감독하는 데이터 센터와 같은 서비스도 있다.

물론 SHI와 경쟁사가 서비스 사업을 확장하며 가치 사슬의 위로 올라가기 시작하면서, 액센추어, 캡제미니 및 딜로이트와 같은 거대 컨설팅 기업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만약 이 모든 리셀러의 사업이 위축되기 시작하면, 이들 업체는 서비스 사업을 벌일 것이다. 그러면 기존 서비스제공업체들은 리셀러 사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다렌 비비가 말했다. 그동안 수차례 변화에 맞춰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어 온 경험이 있는 타이 리는 당황하지 않는다. 타이 리는 SHI의 매출이 2019년경 1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한다. “우리는 이미 지난 10년 동안 매년 두 배로 규모를 확장해왔습니다. 이 정도는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는군요.”

지난 25년여 동안 타이 리 삶의 중심에는 두 가족이 있었다. 바로 가정에 있는 두 자녀, 그리고 사무실에 있는 3000명의 직원이다. 20년 동안 뉴저지 레바논에서 산 그는 주말까지 일하는 것이 다반사이다. 이외에도 그는 자신이 믿고 있는 대의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금전적 기부를 하고 있다. 교육자선단체에 관심이 많고, 암 연구단체를 지원하고 있다. (타이 리의 언니인 마가렛은 췌장암을 앓은 바 있다.)

애초 계획했던 것의 대부분을 그는 이미 성취했다. “제가 이루려고 했던 모든 것들을 체크해봤다”고 타이 리가 웃으며 말했다. “창업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었지요.” 이제 그의 주요 목표는 SHI가 자신보다 더 오래 지속하는 기업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곧 SHI를 떠난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SHI가 주식공개를 하거나 다른 기업에 인수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동안 수차례 제안을 받았습니다.” 타이 리가 말을 꺼냈다. “회사는 이미 굳건한 입지를 구축해놓은 터라 그다지 매력적인 제안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파트너가 그다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업 매각은 타이 리가 은퇴한 이후 SHI의 미래를 보장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그에게도 편안한 출구전략이 될 수 있다.

“현재 시점에서 절대 누군가의 아래에서 일하고 싶지는 않다”고 타이 리가 말했다. “20년이 넘게 누군가를 위해 일해 본 적은 없습니다. 저도 주말에는 편히 쉬고 싶습니다. 취미생활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읽고 싶은 책도 정말 산더미 같습니다. 이것이 현재 제 목표 중 하나입니다.”

- DAVID M. EWALT 포브스 기자

위 기사의 원문은 http://forbes.com 에서 보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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