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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아를의 여인>의 ‘손실회피 성향’

[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아를의 여인>의 ‘손실회피 성향’

빈센트 반 고흐의 ‘아를의 여인’. / 사진:중앙포토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해 본 사람이라면 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겠다는 말을 하는 순간 머릿속은 하얗게, 세상 모든 것은 까맣게 변한다. 이때 이성이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수십년간 쌓아온 지성도 필요 없다. 사랑은 집착으로 변하고, 집착을 제어하지 못하는 순간 비극으로 끝날 때가 많다.

알퐁스 도데의 <아를의 여인> 은 한 여인을 사랑했다 잊지 못해 자살로 삶을 마감한 한 청년의 이야기다. 이 작품은 ‘아를르의 여인’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는데 ‘아를르’는 ‘아를’의 잘못 표기된 지명이다. 원래는 단편소설로 발표됐지만 이후 희곡으로 각색됐다. 비제가 음악을 붙이면서 생명력이 더해졌다. 단편소설과 희곡은 내용이 다소 다르다. 1872년 발표됐다.
 사랑하는 여인을 잊지 못해 자살 택해
단편소설은 이렇다.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의 한 농가에 살던 ‘장’이라는 스무살 청년이 아를에 사는 한 여인에 반한다. 장의 부모는 장과 여인의 결혼을 승낙한다. 어느 일요일 저녁, 여인이 참석하지 않은 만찬에 한 사나이가 찾아온다. 사나이는 장의 아버지 에스테브를 만나 “아를의 여인은 내가 2년 동안 사귀어온 여인”이라고 밝힌다. 장과 여인의 결혼은 무산되지만 장은 여인을 잊지 못한다. 성 엘라의 축제일. 마을 전체가 흥겨운 잔치를 벌인 그날 밤, 장은 자살을 택한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그녀를 단념할 수가 없다. 이럴 바엔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 장은 오직 이 한 가지 생각에만 빠져 있었다. 사랑했던 여인과 헤어지기 힘든 이유는 뭘까. 경제학자에서는 ‘손실회피 성향’으로 설명한다. 손실회피 성향이란 사람들이 새로 얻는 이익보다 갖고 있던 것을 잃는 것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상을 말한다.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는 전망이론(prospect theory)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전망이론이란 인간의 행동은 주변 환경이나 심리적 요인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이론이다. 때문에 때론 합리성에서 벗어난다고 지적한다. 인간의 행동은 확률을 근거로 기대치를 계산한 뒤 이득을 본다는 믿음이 있을 때 이뤄진다는 ‘기대효용이론’의 반대쪽에 서 있다.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얻는 것과 잃는 것의 가치는 같아야 한다. 만약 90원을 얻는 대가로 100원을 얻을 수 있다면 당연히 이 거래에 응해야 한다.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그렇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카너먼과 트버스키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얻는 것보다 잃어버리는 것에 대해 2.5배가량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재미있는 실험이 있다.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2만원을 나눠준다. 그런 다음 주사위를 던져 짝수가 나오면 3만원을 더 주고, 홀수가 나오면 2만원을 돌려받겠다고 한다. 이긴다면 5만원을 받는 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게임을 포기했다. 갖고 있는 2만원이 더 크게 보였던 것이다. 이번에는 사람들에게 먼저 5만원을 줬다. 그리고 나서 3만원을 되돌려 받았다. 주사위를 던져 짝수가 나오면 이 3만원을 다시 주겠다고 한다. 사람들의 선택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게임에 참여했다. 처음 가졌던 5만원을 회복하고 싶기 때문이다. 실제 한 방송사가 서울 명동에서 행한 즉석 실험에서도 사람들은 이같이 반응했다.

손실회피 성향은 마케팅에 잘 적용된다. 라면을 굳이 살 생각이 없었던 홍길동씨. 대형마트에서 ‘2+1’ 행사를 보니 망설여진다. 사지 않으면 괜히 손해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에라 언젠가 살 꺼, 이번 기회에 사자”며 결국 카트에 담는다. 지난해 8월 24만원에 현대차 주식을 샀던 전우치씨. 주가가 13만원대로 떨어졌지만 좀처럼 손절매를 할 생각을 못한다. 현대차 주가는 엔저로 수출이 줄어들면서 당분간 회복될 기미가 없지만 ‘갖고 있으면 언젠가는 오르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믿음에 매도를 미루고 있다. 최소한 원금은 회복해야 주식을 내놓을 작정이다. 신용카드 할부판매는 손실회피 성향을 이용한 대표적인 금융상품이다. 당장 내 주머니에서 현금이 나가면 부담스럽지만, 몇 달 동안 분할돼서 나간다고 생각하면 카드를 긁을 여유가 생긴다. 할부에 붙는 가산금을 치면 실제로 납부하는 비용은 더 큰 데 말이다.

장이 아를의 여인을 잊으려 하면 그녀를 잊음에 따라 감소하는 효용(만족감)보다 새롭게 얻는 효용(만족감)이 2.5배 이상 많아야 한다. 새로운 효용은 새 여인일 수도 있고, 다른 즐거움일 수도 있다. 장은 아를의 여인을 잊기 위해 미친 사람처럼 일해 보지만 아를의 여인을 상쇄할 만한 효용을 얻지 못한다. 장의 부모는 성 엘라 축제의 흥겨움이 장을 달래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역시 효용은 낮았다.

아를의 여인과의 반강제적인 결별은 되레 장의 ‘보유효과’만 자극했다. 보유효과란 내가 어떤 대상을 소유하거나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그 대상에 대한 가치가 더 높게 느껴지는 현상을 말한다. 듀크대학의 경제학자 댄 애리엘리는 대학 농구 결승전 입장권으로 실험을 해봤다. 애리엘리는 아쉽게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만약 지금이라도 표를 구할 수 있다면 얼마를 지불하겠느냐”고 물었다. 이들이 제시한 가격은 평균 170달러였다. 애리엘리는 표를 구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얼마를 받으면 표를 팔겠느냐”고 물었다. 답변은 평균 2400달러였다. 사고 싶은 사람과 팔 사람의 표 가격 차이는 무려 15배나 났다.
 경매에서 낙찰받지 못하면 아쉬운 이유는
실제로 내 소유가 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보유효과는 작동한다. 이른바 ‘가상 소유권’이다. 가상 소유권이 가장 잘 발동하는 것이 경매다. 부동산이나 골동품 경매에 나온 물품은 아직 내 것이 아니지만 내가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의 것처럼 인식이 된다. 가상 소유권은 경쟁을 유발시키고, 때론 경매를 과열 양상으로 이끈다. 경매 끝에 해당 물건을 낙찰받지 못하면 괜히 내 것을 잃은 것처럼 느낌이 들어 아쉬워지기도 한다.

가족들이 아를의 여인과 헤어지라고 요구하면 할수록 장의 집착이 더 심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장과 아를의 여인은 약혼도 하지 않은 사이지만 장의 뇌리에는 이미 나의 여인이다. 내가 사려고 했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사지 못한 아파트 가격이 훗날 급등하면 배가 아픈 것도 마찬가지다. 사실 자신이 손해본 것은 없는데 말이다.

아를은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도시이기도 하다. 1888년 2월 고흐는 아를에 도착해 15개월을 머물면서 자신의 작품 3분의 1을 만들었다. ‘해바라기’ ‘밤의 카페’ ‘아를의 공원 입구’ ‘아를의 도개교’ ‘정신병원의 정원’ 등 300여점의 주요 작품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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