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리그’ 벗어날 수 있을까
‘그들만의 리그’ 벗어날 수 있을까
지난 7월 10일 상하이협력기구(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 SCO)의 제15차 정상회의가 러시아 우파에서 열렸다. 러시아·중국·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이 정회원국인 SCO는 이번 정상회의에서 옵서버 참가국인 인도·파키스탄을 정회원국으로 승격시키기로 합의했다. 또 벨라루스를 옵서버 참가국으로,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캄보디아·네팔을 대화상대국으로 참여시켰다. 당초 정식 회원국 참여를 신청한 이란은 이번에 회원국 자격을 얻는 데 실패했지만 이르면 내년에 다시 가입심사가 실시될 것이라고 SCO 한 관계자가 전했다.
이로써 서방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SCO가 서방을 견제하는 다자 안보기구로 본격적인 위세 과시에 나섰다. 아시아 대륙의 남쪽으로 권역을 확장해 제2차 세계대전 후 서방이 지배하는 국제기구에 대응하는 독자적인 기구를 만들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SCO의 권역 확장이 ‘다극체제’의 세계질서로 가는 중요한 이정표라고 해도 목적지에 도달하는 길은 길고 험난할 듯하다. 그 과정에서 동반자들이 각자의 길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 협상에 진척이 없다고 거듭 불만을 터뜨리며 대신 SCO가 더 낫겠다고 시사했다. 그는 2013년 러시아 방문에서 “우리가 SCO에 가입하면 EU엔 작별을 고하겠다”고 말했다. “SCO가 EU보다 낫고 영향력도 훨씬 크다. 파키스탄과 인도도 가입을 원한다. SCO가 우리를 원한다면 우리 모두 회원이 될 것이다.” 에르도안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이에 공개적으로 다정한 말은 오갔지만 아직 터키는 공식 초청장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준동으로 터키 남쪽 국경 지역이 불안정하고 푸틴의 의도가 갈수록 불확실해지는 상황에서 EU 대신 SCO를 택하겠다는 에르도안의 으름장은 공식적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진 않더라도 외관상 SCO의 신뢰도를 높여준다.
SCO는 1996년 상하이 파이브(Shanghai Five)로 출범했다. 소련 해체 직후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중국과 국경을 맞댄 중앙아시아의 옛 소련권 3개국(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이 서로간의 영토 분쟁을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 설립된 기구였다. 중앙아시아가 어느 정도 안정되자 2001년 상하이 파이브는 우즈베키스탄을 정회원국으로 받아들여 상하이협력기구로 개명했다. SCO의 본부는 베이징에 있지만 사무총장은 각 회원국이 3년 임기 순번제로 맡는다.
SCO는 설립 초기엔 지역 안보에 초점을 맞췄다. 테러, 분리주의, 극단주의에 대응하려는 중국의 구상이었다. 옛 소련권 국가들과 인접한 중국 서부 신장 자치구의 위구르족이 그런 예다. 2004년 이래 SCO는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에 지역테러대응센터(RATS)를 설립했다. 회원국의 안보·정보 전문가들이 협력해 테러 용의자 명단을 공유하고 상호 송환 절차를 효율화하는 조직이다.
만약 SCO가 중국의 위구르족 분리독립 운동을 억제하는 수단으로만 기능한다면 상대적으로 힘없는 기구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SCO는 거기에 머물지 않고 서서히 의제를 확대하면서 주요 회원국의 다양한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의 경제적 야망, 러시아의 영향력 유지를 위한 조치, 러시아와 서방의 갈등,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면서 생기는 권력 공백 등의 문제를 다룬다.
이런 노력으로 SCO는 앞으로 더욱 주목받겠지만 동시에 회원국 사이의 마찰도 많아질 듯하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의 경쟁의식과 상호 불신이 가장 큰 문제다. 이 핵심적인 이슈가 궁극적으로 SCO의 운명을 결정지을 것이다.
그렇다면 SCO가 국제관계에서 막강한 기구로 부상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뉴욕 바너드칼리지의 정치학 교수로 ‘중앙아시아의 새로운 패권 경쟁(Great Games, Local Rules: The New Great Power Contest)’의 저자인 알렉산더 쿨리는 “SCO의 주된 문제는 이 기구의 목적과 활동 범위를 둘러싸고 러시아와 중국의 근본적인 견해차가 심하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SCO를 서방과 미국의 영향력에 맞서기 위해 수정주의 의제를 개발하는 기구로 만들고 싶어한다.”
그와 달리 중국은 지역 개발과 인프라 투자에 초점을 맞춘다. 무슬림 위구르족의 소요가 잦은 신장 자치구를 안정시키고 중국 기업을 위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서다(2009년 7월 우루무치에서는 한족과 위구르족의 충돌로 유혈사태가 발생하면서 약 200명이 숨지고 1700여 명이 부상했다).
이처럼 러시아와 중국의 비전은 양립하기 어렵다. 카네기 모스크바 센터 아시아·태평양 프로그램의 러시아 담당 국장인 알렉산더 가부예프에 따르면 러시아는 SCO가 중앙아시아의 안보에 중추적 역할을 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러시아는 SCO보다 2002년 이웃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설립한 집단안보조약기구(CSTO)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가부예프 국장은 러시아도 중국도 상호 군사동맹 성격이 강한 국제기구를 원치 않는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SCO가 나토의 대안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특히 어느 한 회원국이 침략받게 되면 모든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집단안보 조치를 발동하는 나토 창설헌장 제5조와 비슷한 것은 절대 원치 않는다.
동시에 SCO의 의제를 경제개발 분야로 확장하려는 중국의 노력은 대부분 성공하지 못했다. SCO 개발은행과 자유무역지대 설립 제안이 대표적이다. 쿨리 교수는 “중국이 제안한 경제 분야의 제안 대부분을 러시아가 검토한다며 시간을 끌다가 거부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의 경제적 지배력 증가가 제도화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경제 측면에서 러시아는 SCO보다 독자적인 기구인 유라시아경제연합(EEU)의 강화를 원한다.”
SCO 개발은행 설립 제안은 출자 자본금 할당 기준 문제가 장애물이 됐다. 국내총생산(GDP)과 연계하면 중국이 자본금의 80% 이상을 차지해 사실상 완전한 주도권을 갖게 된다. 러시아의 제동으로 SCO를 경제개발 수단으로 발전시키려는 중국의 희망은 무산됐지만 경제 외교의 균형은 중국 쪽으로 기울고 있다. 따라서 중국은 SCO의 틀 밖에서도 그런 전략을 추진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2013년 9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SCO 개발은행 설립에 진전이 없자 10일 일정으로 중앙아시아를 순방하며 경제협력 협정을 잇따라 체결했다. 카자흐스탄 방문에서는 ‘실크로드 경제벨트’ 구상을 발표했다. 중앙아시아의 도로, 철도, 파이프라인를 잇는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대담한 제안이었다. 이를 통해 유럽 수출길을 육로로 트겠다는 의도다.
그 직후 시진핑 주석은 남아시아에 초점을 맞춘 ‘해상 실크로드’를 제안했다. 그에 따라 남아시아 국가들의 항만에 대규모 투자가 이뤄질 전망이다. 또 지난 4월엔 ‘신 실크로드’(일대일로) 구상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중국 정부는 인프라 사업 및 국내외 정책 사업에 대한 지원을 담당하는 국책은행(국가개발은행·수출입은행)에 620억 달러를 투입할 방침이다. 아울러 중국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을 주도해 유럽 등 세계 각지의 미국 동맹국들이 포함된 약 50개 국을 참여시켰다. 괄목할 만한 외교 성과다. 중국이 SCO를 통해 경제 의제를 추진할 수 없다고 해서 그냥 포기하진 않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중국이 실크로드 계획을 내놓은 것은 SCO의 지지부진함에 대한 좌절 때문만은 아니라고 가부예프 국장은 지적했다. 다른 중요한 요인은 경제성장 둔화로 중국의 인프라 기업들의 설비과잉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대응으로 중국은 산업을 서부 지역으로 이전해 중앙아시아를 통한 수출시장 개척을 시도하고 있다. 가부예프 국장은 “중국은 SCO에서 자유무역지대를 원하지만 러시아와 다른 나라는 값싼 중국 상품이 쏟아져 들어와도 관세장벽을 세울 수 없다는 점을 우려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들은 EEU를 택해 중국의 진입을 막으려 한다.”
최근 중국의 성장둔화 탈출 노력은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후 러시아와 서방의 관계가 최악에 이른 시점과 일치한다. 그런 특수 상황 때문에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처럼 미국·유럽 외에 국제관계의 다른 대안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
가부예프 국장은 “서방과 러시아의 관계가 조만간 이전 상황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아시아로 중심축을 이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러시아의 아시아로 중심축 이동은 결국 중국을 의미한다.” 이런 요인들이 어우러져 현재의 조건이 형성됐다고 관측통들은 지적했다.
한편으로 SCO의 위상 강화는 서방의 간섭이 없는 대안적 국제기구의 중심에 서려는 러시아의 욕구를 반영한다(미국의 SCO 옵서버 지위 신청은 2005년 거부됐다). 다른 한편으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국제적인 입지를 강화할 목적으로 SCO의 위상을 높이고 싶어한다. 따라서 러시아로선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의 경제적 지배를 억제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울며 겨자먹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쿨리 교수는 서방의 제재에 시달리는 러시아가 중국의 실크로드 계획을 묵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로선 대안이 없다.” 그는 지난해 말 러시아가 중국과 4000억 달러 규모의 천연가스 협정을 체결한 사실(양국의 협력 강화 상징으로 홍보됐다)이 이런 치열한 논쟁의 종결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중국이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와 유지해온 양자관계가 러시아의 영향에 못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쿨리 교수는 “동시베리아 파이프라인 협상에서 중국은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수입하는 천연가스의 저렴한 가격을 이용해 러시아의 에너지 대기업 가스프롬을 제압했다”고 말했다.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이 가진 경제적 영향력이 러시아의 핵심 국익에 타격을 준 대표적인 사례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서방 외에 다른 대안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애써 태연한 체했다.
그러나 러시아와 중국은 의도에선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대안적 세계질서를 창출하려는 욕구는 공유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런 목표 달성이 요원하다. SCO가 끌어안으려고 하는 아프가니스탄이 그 증거다. 아프가니스탄은 SCO 권역의 핵심부에 위치한다.
2005년 7월 카자흐스탄 수도 아스타나에서 열린 SCO 정상회의에서 회원국 수반들은 처음으로 서방의 관심을 끄는 성명을 발표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여하는 다국적군에 SCO 회원국에 있는 기지에서 철수할 기한을 밝히라고 요구한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은 자국에 있는 미군 기지를 6개월 안에 철수할 것을 통보했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올해 나토군이 마침내 아프가니스탄NEWSIS에서 철수하고 있지만 상황은 암울하다. 특히 IS가 득세하고 그 조직과 관련 있는 인물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새러 레인 연구원은 “SCO의 모든 회원국이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을 크게 우려한다”고 말했다. “중국도 예전보다 더 신경 쓴다. 물론 러시아만큼은 아니지만 예를 들어 중국은 아프간군·경찰의 막사 재건에 도움을 주고 제한된 훈련도 제공한다.”
가부예프 국장은 러시아와 중국,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안보 관리들로부터 IS가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사우디 정부기관의 합작품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1980년대 소련군을 물리친 아프간 무자헤딘 운동이 서방의 지원을 받은 것과 똑같다는 이야기였다. “그들은 IS가 이란과 중국, 러시아에서 불안정을 도모하고 곧 중앙아시아로 진출하려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푸틴 대통령이나 시진핑 주석의 의도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런 견해를 가진 정보 관리들이 있다.” 나토군이 철수한 뒤 그 공백을 아프가니스탄 주변 국가들이 어떻게 메울 것인가? SCO 회원국들은 조만간 그 문제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SCO가 말을 행동으로 옮기기 어려운 현실이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레인 연구원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대화를 많이 하는 건 바람직하지만 어느 시점에선 행동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때 아무도 나토의 역할을 대신할 생각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중국은 투자와 경제안정이 정치안정을 가져오리라고 생각하겠지만 SCO가 아프가니스탄과 관련해 직면한 문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아직은 잘 알려지지 않았고 비효율적인 기구지만 세계에서 좀 더 두각을 나타내려고 애쓰는 SCO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SCO가 회원국을 늘리려는 움직임은 여러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을 정회원국으로 가입시킴으로써 SCO는 세계 인구와 경제생산의 상당 부분을 대표하며 영향력이 커지는 국제기구라고 주장할 수 있다.
이는 대부분 러시아의 의도다. 더 많은 국가를 끌어들여 중국의 영향력을 희석함으로써 러시아와 중국 사이의 넓어지는 국력 격차를 줄이려는 생각이다. 특히 인도를 끌어들인 의도가 그렇다. 인도는 전통적으로 중국보다 러시아에 훨씬 가깝다.
중국으로선 원래 의도를 어느 정도 포기하고 SCO가 국제외교에서 주요 기구로 발전하려는 것을 마침내 수용한다는 뜻이다. 쿨리 교수는 “인도를 받아들일 자세가 됐다는 사실은 중국이 이 기구를 통해 경제적으로 중대한 일을 할 수 없다는 점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이전엔 인도의 가입에 반대했다. 하지만 이제는 파키스탄과 함께 인도를 일괄 가입시킴으로써 SCO의 상징적인 가치를 높이겠다는 생각이다.”
아무튼 이런 기구는 서방 관측통의 관심을 끈다. 세계질서가 서서히 변하고 있다는 현실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쿨리 교수는 “모두가 서방을 배제한 영향력 있는 국제기구가 어떤 모습일지 호기심을 갖는다”고 말했다. “서방 중심 국제기구와는 어떻게 다르고 얼마나 효과적일지 알고 싶어한다.”
베이징에 있는 SCO 본부에서 그 답을 찾기는 어렵다. 폴란드 대사관 맞은 편의 작고 노후한 건물이다. 낡은 에어컨 설비가 벽에 붙어 있는 오래된 저가 호텔처럼 보인다. 싸구려 꽃무늬 블라인드는 전부 내려져 있다. 앞쪽에는 회원국 국기가 나부끼지만 주차장은 차량 약 20대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뿐이다. 뉴스위크가 방문한 날에는 텅 비어 있었다.
[ With PETER LEGGATT ]- ANDY DAVIS NEWSWEEK 기자 /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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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서방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SCO가 서방을 견제하는 다자 안보기구로 본격적인 위세 과시에 나섰다. 아시아 대륙의 남쪽으로 권역을 확장해 제2차 세계대전 후 서방이 지배하는 국제기구에 대응하는 독자적인 기구를 만들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SCO의 권역 확장이 ‘다극체제’의 세계질서로 가는 중요한 이정표라고 해도 목적지에 도달하는 길은 길고 험난할 듯하다. 그 과정에서 동반자들이 각자의 길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 협상에 진척이 없다고 거듭 불만을 터뜨리며 대신 SCO가 더 낫겠다고 시사했다. 그는 2013년 러시아 방문에서 “우리가 SCO에 가입하면 EU엔 작별을 고하겠다”고 말했다. “SCO가 EU보다 낫고 영향력도 훨씬 크다. 파키스탄과 인도도 가입을 원한다. SCO가 우리를 원한다면 우리 모두 회원이 될 것이다.” 에르도안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이에 공개적으로 다정한 말은 오갔지만 아직 터키는 공식 초청장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준동으로 터키 남쪽 국경 지역이 불안정하고 푸틴의 의도가 갈수록 불확실해지는 상황에서 EU 대신 SCO를 택하겠다는 에르도안의 으름장은 공식적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진 않더라도 외관상 SCO의 신뢰도를 높여준다.
SCO는 1996년 상하이 파이브(Shanghai Five)로 출범했다. 소련 해체 직후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중국과 국경을 맞댄 중앙아시아의 옛 소련권 3개국(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이 서로간의 영토 분쟁을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 설립된 기구였다. 중앙아시아가 어느 정도 안정되자 2001년 상하이 파이브는 우즈베키스탄을 정회원국으로 받아들여 상하이협력기구로 개명했다. SCO의 본부는 베이징에 있지만 사무총장은 각 회원국이 3년 임기 순번제로 맡는다.
SCO는 설립 초기엔 지역 안보에 초점을 맞췄다. 테러, 분리주의, 극단주의에 대응하려는 중국의 구상이었다. 옛 소련권 국가들과 인접한 중국 서부 신장 자치구의 위구르족이 그런 예다. 2004년 이래 SCO는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에 지역테러대응센터(RATS)를 설립했다. 회원국의 안보·정보 전문가들이 협력해 테러 용의자 명단을 공유하고 상호 송환 절차를 효율화하는 조직이다.
만약 SCO가 중국의 위구르족 분리독립 운동을 억제하는 수단으로만 기능한다면 상대적으로 힘없는 기구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SCO는 거기에 머물지 않고 서서히 의제를 확대하면서 주요 회원국의 다양한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의 경제적 야망, 러시아의 영향력 유지를 위한 조치, 러시아와 서방의 갈등,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면서 생기는 권력 공백 등의 문제를 다룬다.
이런 노력으로 SCO는 앞으로 더욱 주목받겠지만 동시에 회원국 사이의 마찰도 많아질 듯하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의 경쟁의식과 상호 불신이 가장 큰 문제다. 이 핵심적인 이슈가 궁극적으로 SCO의 운명을 결정지을 것이다.
그렇다면 SCO가 국제관계에서 막강한 기구로 부상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뉴욕 바너드칼리지의 정치학 교수로 ‘중앙아시아의 새로운 패권 경쟁(Great Games, Local Rules: The New Great Power Contest)’의 저자인 알렉산더 쿨리는 “SCO의 주된 문제는 이 기구의 목적과 활동 범위를 둘러싸고 러시아와 중국의 근본적인 견해차가 심하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SCO를 서방과 미국의 영향력에 맞서기 위해 수정주의 의제를 개발하는 기구로 만들고 싶어한다.”
그와 달리 중국은 지역 개발과 인프라 투자에 초점을 맞춘다. 무슬림 위구르족의 소요가 잦은 신장 자치구를 안정시키고 중국 기업을 위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서다(2009년 7월 우루무치에서는 한족과 위구르족의 충돌로 유혈사태가 발생하면서 약 200명이 숨지고 1700여 명이 부상했다).
이처럼 러시아와 중국의 비전은 양립하기 어렵다. 카네기 모스크바 센터 아시아·태평양 프로그램의 러시아 담당 국장인 알렉산더 가부예프에 따르면 러시아는 SCO가 중앙아시아의 안보에 중추적 역할을 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러시아는 SCO보다 2002년 이웃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설립한 집단안보조약기구(CSTO)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가부예프 국장은 러시아도 중국도 상호 군사동맹 성격이 강한 국제기구를 원치 않는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SCO가 나토의 대안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특히 어느 한 회원국이 침략받게 되면 모든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집단안보 조치를 발동하는 나토 창설헌장 제5조와 비슷한 것은 절대 원치 않는다.
동시에 SCO의 의제를 경제개발 분야로 확장하려는 중국의 노력은 대부분 성공하지 못했다. SCO 개발은행과 자유무역지대 설립 제안이 대표적이다. 쿨리 교수는 “중국이 제안한 경제 분야의 제안 대부분을 러시아가 검토한다며 시간을 끌다가 거부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의 경제적 지배력 증가가 제도화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경제 측면에서 러시아는 SCO보다 독자적인 기구인 유라시아경제연합(EEU)의 강화를 원한다.”
SCO 개발은행 설립 제안은 출자 자본금 할당 기준 문제가 장애물이 됐다. 국내총생산(GDP)과 연계하면 중국이 자본금의 80% 이상을 차지해 사실상 완전한 주도권을 갖게 된다. 러시아의 제동으로 SCO를 경제개발 수단으로 발전시키려는 중국의 희망은 무산됐지만 경제 외교의 균형은 중국 쪽으로 기울고 있다. 따라서 중국은 SCO의 틀 밖에서도 그런 전략을 추진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2013년 9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SCO 개발은행 설립에 진전이 없자 10일 일정으로 중앙아시아를 순방하며 경제협력 협정을 잇따라 체결했다. 카자흐스탄 방문에서는 ‘실크로드 경제벨트’ 구상을 발표했다. 중앙아시아의 도로, 철도, 파이프라인를 잇는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대담한 제안이었다. 이를 통해 유럽 수출길을 육로로 트겠다는 의도다.
그 직후 시진핑 주석은 남아시아에 초점을 맞춘 ‘해상 실크로드’를 제안했다. 그에 따라 남아시아 국가들의 항만에 대규모 투자가 이뤄질 전망이다. 또 지난 4월엔 ‘신 실크로드’(일대일로) 구상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중국 정부는 인프라 사업 및 국내외 정책 사업에 대한 지원을 담당하는 국책은행(국가개발은행·수출입은행)에 620억 달러를 투입할 방침이다. 아울러 중국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을 주도해 유럽 등 세계 각지의 미국 동맹국들이 포함된 약 50개 국을 참여시켰다. 괄목할 만한 외교 성과다. 중국이 SCO를 통해 경제 의제를 추진할 수 없다고 해서 그냥 포기하진 않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중국이 실크로드 계획을 내놓은 것은 SCO의 지지부진함에 대한 좌절 때문만은 아니라고 가부예프 국장은 지적했다. 다른 중요한 요인은 경제성장 둔화로 중국의 인프라 기업들의 설비과잉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대응으로 중국은 산업을 서부 지역으로 이전해 중앙아시아를 통한 수출시장 개척을 시도하고 있다. 가부예프 국장은 “중국은 SCO에서 자유무역지대를 원하지만 러시아와 다른 나라는 값싼 중국 상품이 쏟아져 들어와도 관세장벽을 세울 수 없다는 점을 우려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들은 EEU를 택해 중국의 진입을 막으려 한다.”
최근 중국의 성장둔화 탈출 노력은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후 러시아와 서방의 관계가 최악에 이른 시점과 일치한다. 그런 특수 상황 때문에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처럼 미국·유럽 외에 국제관계의 다른 대안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
가부예프 국장은 “서방과 러시아의 관계가 조만간 이전 상황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아시아로 중심축을 이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러시아의 아시아로 중심축 이동은 결국 중국을 의미한다.” 이런 요인들이 어우러져 현재의 조건이 형성됐다고 관측통들은 지적했다.
한편으로 SCO의 위상 강화는 서방의 간섭이 없는 대안적 국제기구의 중심에 서려는 러시아의 욕구를 반영한다(미국의 SCO 옵서버 지위 신청은 2005년 거부됐다). 다른 한편으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국제적인 입지를 강화할 목적으로 SCO의 위상을 높이고 싶어한다. 따라서 러시아로선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의 경제적 지배를 억제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울며 겨자먹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쿨리 교수는 서방의 제재에 시달리는 러시아가 중국의 실크로드 계획을 묵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로선 대안이 없다.” 그는 지난해 말 러시아가 중국과 4000억 달러 규모의 천연가스 협정을 체결한 사실(양국의 협력 강화 상징으로 홍보됐다)이 이런 치열한 논쟁의 종결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중국이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와 유지해온 양자관계가 러시아의 영향에 못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쿨리 교수는 “동시베리아 파이프라인 협상에서 중국은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수입하는 천연가스의 저렴한 가격을 이용해 러시아의 에너지 대기업 가스프롬을 제압했다”고 말했다.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이 가진 경제적 영향력이 러시아의 핵심 국익에 타격을 준 대표적인 사례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서방 외에 다른 대안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애써 태연한 체했다.
그러나 러시아와 중국은 의도에선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대안적 세계질서를 창출하려는 욕구는 공유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런 목표 달성이 요원하다. SCO가 끌어안으려고 하는 아프가니스탄이 그 증거다. 아프가니스탄은 SCO 권역의 핵심부에 위치한다.
2005년 7월 카자흐스탄 수도 아스타나에서 열린 SCO 정상회의에서 회원국 수반들은 처음으로 서방의 관심을 끄는 성명을 발표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여하는 다국적군에 SCO 회원국에 있는 기지에서 철수할 기한을 밝히라고 요구한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은 자국에 있는 미군 기지를 6개월 안에 철수할 것을 통보했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올해 나토군이 마침내 아프가니스탄NEWSIS에서 철수하고 있지만 상황은 암울하다. 특히 IS가 득세하고 그 조직과 관련 있는 인물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새러 레인 연구원은 “SCO의 모든 회원국이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을 크게 우려한다”고 말했다. “중국도 예전보다 더 신경 쓴다. 물론 러시아만큼은 아니지만 예를 들어 중국은 아프간군·경찰의 막사 재건에 도움을 주고 제한된 훈련도 제공한다.”
가부예프 국장은 러시아와 중국,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안보 관리들로부터 IS가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사우디 정부기관의 합작품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1980년대 소련군을 물리친 아프간 무자헤딘 운동이 서방의 지원을 받은 것과 똑같다는 이야기였다. “그들은 IS가 이란과 중국, 러시아에서 불안정을 도모하고 곧 중앙아시아로 진출하려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푸틴 대통령이나 시진핑 주석의 의도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런 견해를 가진 정보 관리들이 있다.”
나토의 공백 메우기
아직은 잘 알려지지 않았고 비효율적인 기구지만 세계에서 좀 더 두각을 나타내려고 애쓰는 SCO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SCO가 회원국을 늘리려는 움직임은 여러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을 정회원국으로 가입시킴으로써 SCO는 세계 인구와 경제생산의 상당 부분을 대표하며 영향력이 커지는 국제기구라고 주장할 수 있다.
이는 대부분 러시아의 의도다. 더 많은 국가를 끌어들여 중국의 영향력을 희석함으로써 러시아와 중국 사이의 넓어지는 국력 격차를 줄이려는 생각이다. 특히 인도를 끌어들인 의도가 그렇다. 인도는 전통적으로 중국보다 러시아에 훨씬 가깝다.
중국으로선 원래 의도를 어느 정도 포기하고 SCO가 국제외교에서 주요 기구로 발전하려는 것을 마침내 수용한다는 뜻이다. 쿨리 교수는 “인도를 받아들일 자세가 됐다는 사실은 중국이 이 기구를 통해 경제적으로 중대한 일을 할 수 없다는 점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이전엔 인도의 가입에 반대했다. 하지만 이제는 파키스탄과 함께 인도를 일괄 가입시킴으로써 SCO의 상징적인 가치를 높이겠다는 생각이다.”
아무튼 이런 기구는 서방 관측통의 관심을 끈다. 세계질서가 서서히 변하고 있다는 현실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쿨리 교수는 “모두가 서방을 배제한 영향력 있는 국제기구가 어떤 모습일지 호기심을 갖는다”고 말했다. “서방 중심 국제기구와는 어떻게 다르고 얼마나 효과적일지 알고 싶어한다.”
베이징에 있는 SCO 본부에서 그 답을 찾기는 어렵다. 폴란드 대사관 맞은 편의 작고 노후한 건물이다. 낡은 에어컨 설비가 벽에 붙어 있는 오래된 저가 호텔처럼 보인다. 싸구려 꽃무늬 블라인드는 전부 내려져 있다. 앞쪽에는 회원국 국기가 나부끼지만 주차장은 차량 약 20대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뿐이다. 뉴스위크가 방문한 날에는 텅 비어 있었다.
[ With PETER LEGGATT ]- ANDY DAVIS NEWSWEEK 기자 /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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