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으로 간 현대미술
수도원으로 간 현대미술
바르셀로나에서 자동차를 타고 서쪽으로 약 65㎞를 달리다 보면 뾰족한 봉우리들이 하늘을 찌를 듯한 몬세라트산이 나온다. 거대한 바위들이 파이프 오르간처럼 늘어선 이 산은 가우디(스페인 건축가)의 환상적인 석조 건축물의 모티프가 됐다. 이 산에는 유럽에서 가장 역사 깊은 수도원 중 하나인 산타 마리아 데 몬세라트가 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아일랜드 태생의 추상화가 션 스컬리가 최근 이 수도원에 자신의 작품을 기증했다. 지난 7월 2일 그는 그 작품들이 상설 전시될 아트 센터의 개관식에서 70회 생일을 기념했다.
스컬리는 총 22점의 작품을 기증했다. 추상화 6점과 벽화 3점, ‘홀리-스테이션(Holly-Stationes)’ 연작,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제단 1개, 십자가 2개가 포함됐다. 이 작품들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산타 체칠리아 교회에 상설 전시된다. 이 교회는 얼마 전 바르셀로나 지방의회의 자금 지원을 받아 이 지역 출신의 건축가 자비에 기타르트가 복원 공사를 마쳤다.
아방가르드 미술과 영성의 만남이라는 측면에서 이에 견줄 만한 사례는 프랑스 생 폴 드 방스의 마티스 채플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로스코 채플뿐이다. 추상표현주의의 전통을 따르는 진지한 화가로서 국제적 명성을 얻은 스컬리는 그런 비유를 마다하지 않는다.
“로스코는 내 화풍과 가장 가깝다고 생각되는 화가”라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로스코는 우울하고 절망적이다. 난 추상미술에 인간성을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번도 외부 세계에 문을 연 적이 없는 추상미술에서 가능성을 봤다. 추상미술에 마티스나 피카소의 기운을 불어넣어 사람들이 그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난 1995년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한 전시회에서 스컬리의 작품을 처음 보고 금세 매료됐다. 따뜻함과 엄격함, 격한 감정과 손에 잡힐 듯한 현실성이 강력하고 설득력 있는 구조 안에 녹아 들어 있었다. 스컬리는 로스코뿐 아니라 격자무늬와 정사각형 구도를 자주 사용한 몬드리안에게서도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초월적인 세계를 꿈꾸던 몬드리안과 그는 사뭇 다르다. “몬드리안은 순수하지만 난 지저분하다! 난 섹스를 좋아한다”고 스컬리는 말했다.
산타 체칠리아 교회에 전시된 스컬리의 작품은 로스코의 침울한 명상이나 몬드리안의 차갑고 수학적인 구도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감성적·영적 영역을 넘나든다. 로스코의 분위기와 가장 흡사한 작품은 세 폭짜리 대형 회화 ‘도릭 닉스(Doric Nyx)’다. 깊은 슬픔과 영적 박탈감을 나타내는 그림이지만 색상이 밝고 분위기가 즐거우며 장난스런 느낌까지 준다. 황토색과 붉은색이 주류를 이루는 ‘랜드라인 체칠리아(Landline Cecilia)’는 음악에 대한 명상의 일부로 지적이고 엄격한 분위기다. 그 맞은편에 걸린 ‘바르셀로나의 연분홍색 벽(Barcelona Wall of Light Pink)’은 푸른색 위에 분홍빛이 도는 회색, 그 위에 다시 푸른색과 붉은색, 그리고 또 다시 푸른색으로 차곡차곡 쌓인 띠들이 지중해의 빛과 풍경, 하늘과 바다의 관능적인 분위기를 불러일으킨다.
스컬리가 이곳을 자신의 영적 고향으로 삼고 전시관을 만든 건 우연이 아니다. 그는 1994년 한 친구가 바르셀로나에 마련해준 스튜디오에 살면서 작품을 제작했다. 그 후로 그는 카탈루냐 주와 그 활기찬 수도 바르셀로나에 대해 깊은 애정과 지식을 갖게 됐다. 그는 바르셀로나가 독립을 꿈꾸는 카탈루냐의 ‘자유’를 상징한다고 말한다. 또 이런 상황이 조국 아일랜드의 독립 투쟁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
전시관 개관식에서 스컬리는 감동적인 연설을 했다. “내가 이 수도원에서 일하면서 경험한 너그러움과 배려는 다른 어느 곳과도 비교가 안 된다. 내가 원하는 건 뭐든할 수 있었다. 설사 내가 이곳에 코끼리 그림을 그렸더라도 수도원 측에서는 ‘좋아요’라고 말했을 것이다.”
지난 7월 2일 개관한 ‘션 스컬리-산타 체칠리아 데 몬세라트 아트 센터’와 ‘션 스컬리 미술과 영성 연구소’는 스컬리 평생 최고의 성취일 뿐 아니라 몬세라트 수도원의 열린 마음과 문화적 이해력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곳의 수도사 50명 중 40명은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요셉 솔레르 수도원장이 말했다. 그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이 수도원의 지적 개방성과 야망에 대해 이야기했다. “1498년엔 독일에서 인쇄기를 들여왔다.”
스컬리는 특정 종교를 믿진 않지만 가톨릭식 교육을 잘 받아들인 듯 보인다. “종교만 있다면 난 누구와도 잠자리를 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짓궂은 말 속에 숨겨진 진지한 영적 의도를 느낄 수 있다. 그가 갑자기 아일랜드 시인 셰이머스 히니의 시구를 떠올렸다. ‘공기로 가득 찬 놀라운 관(an astounding crate full of air)’. 스컬리의 작품 설명으로 써도 괜찮을 듯한 표현이다.
- HARRY EYRES NEWSWEEK 기자 / 번역 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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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컬리는 총 22점의 작품을 기증했다. 추상화 6점과 벽화 3점, ‘홀리-스테이션(Holly-Stationes)’ 연작,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제단 1개, 십자가 2개가 포함됐다. 이 작품들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산타 체칠리아 교회에 상설 전시된다. 이 교회는 얼마 전 바르셀로나 지방의회의 자금 지원을 받아 이 지역 출신의 건축가 자비에 기타르트가 복원 공사를 마쳤다.
아방가르드 미술과 영성의 만남이라는 측면에서 이에 견줄 만한 사례는 프랑스 생 폴 드 방스의 마티스 채플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로스코 채플뿐이다. 추상표현주의의 전통을 따르는 진지한 화가로서 국제적 명성을 얻은 스컬리는 그런 비유를 마다하지 않는다.
“로스코는 내 화풍과 가장 가깝다고 생각되는 화가”라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로스코는 우울하고 절망적이다. 난 추상미술에 인간성을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번도 외부 세계에 문을 연 적이 없는 추상미술에서 가능성을 봤다. 추상미술에 마티스나 피카소의 기운을 불어넣어 사람들이 그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난 1995년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한 전시회에서 스컬리의 작품을 처음 보고 금세 매료됐다. 따뜻함과 엄격함, 격한 감정과 손에 잡힐 듯한 현실성이 강력하고 설득력 있는 구조 안에 녹아 들어 있었다. 스컬리는 로스코뿐 아니라 격자무늬와 정사각형 구도를 자주 사용한 몬드리안에게서도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초월적인 세계를 꿈꾸던 몬드리안과 그는 사뭇 다르다. “몬드리안은 순수하지만 난 지저분하다! 난 섹스를 좋아한다”고 스컬리는 말했다.
산타 체칠리아 교회에 전시된 스컬리의 작품은 로스코의 침울한 명상이나 몬드리안의 차갑고 수학적인 구도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감성적·영적 영역을 넘나든다. 로스코의 분위기와 가장 흡사한 작품은 세 폭짜리 대형 회화 ‘도릭 닉스(Doric Nyx)’다. 깊은 슬픔과 영적 박탈감을 나타내는 그림이지만 색상이 밝고 분위기가 즐거우며 장난스런 느낌까지 준다. 황토색과 붉은색이 주류를 이루는 ‘랜드라인 체칠리아(Landline Cecilia)’는 음악에 대한 명상의 일부로 지적이고 엄격한 분위기다. 그 맞은편에 걸린 ‘바르셀로나의 연분홍색 벽(Barcelona Wall of Light Pink)’은 푸른색 위에 분홍빛이 도는 회색, 그 위에 다시 푸른색과 붉은색, 그리고 또 다시 푸른색으로 차곡차곡 쌓인 띠들이 지중해의 빛과 풍경, 하늘과 바다의 관능적인 분위기를 불러일으킨다.
스컬리가 이곳을 자신의 영적 고향으로 삼고 전시관을 만든 건 우연이 아니다. 그는 1994년 한 친구가 바르셀로나에 마련해준 스튜디오에 살면서 작품을 제작했다. 그 후로 그는 카탈루냐 주와 그 활기찬 수도 바르셀로나에 대해 깊은 애정과 지식을 갖게 됐다. 그는 바르셀로나가 독립을 꿈꾸는 카탈루냐의 ‘자유’를 상징한다고 말한다. 또 이런 상황이 조국 아일랜드의 독립 투쟁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
전시관 개관식에서 스컬리는 감동적인 연설을 했다. “내가 이 수도원에서 일하면서 경험한 너그러움과 배려는 다른 어느 곳과도 비교가 안 된다. 내가 원하는 건 뭐든할 수 있었다. 설사 내가 이곳에 코끼리 그림을 그렸더라도 수도원 측에서는 ‘좋아요’라고 말했을 것이다.”
지난 7월 2일 개관한 ‘션 스컬리-산타 체칠리아 데 몬세라트 아트 센터’와 ‘션 스컬리 미술과 영성 연구소’는 스컬리 평생 최고의 성취일 뿐 아니라 몬세라트 수도원의 열린 마음과 문화적 이해력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곳의 수도사 50명 중 40명은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요셉 솔레르 수도원장이 말했다. 그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이 수도원의 지적 개방성과 야망에 대해 이야기했다. “1498년엔 독일에서 인쇄기를 들여왔다.”
스컬리는 특정 종교를 믿진 않지만 가톨릭식 교육을 잘 받아들인 듯 보인다. “종교만 있다면 난 누구와도 잠자리를 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짓궂은 말 속에 숨겨진 진지한 영적 의도를 느낄 수 있다. 그가 갑자기 아일랜드 시인 셰이머스 히니의 시구를 떠올렸다. ‘공기로 가득 찬 놀라운 관(an astounding crate full of air)’. 스컬리의 작품 설명으로 써도 괜찮을 듯한 표현이다.
- HARRY EYRES NEWSWEEK 기자 / 번역 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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