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한 중남미로 떠나볼까] 인종차별 없고 일한 만큼 보상 받아
[느긋한 중남미로 떠나볼까] 인종차별 없고 일한 만큼 보상 받아

영주권 10년에 한 번씩 갱신해야

1992년 이전까지는 브라질에 이민을 가려면 이민비자가 필요했다. 그러나 1992년 8월 11일부터는 여권이 있는 사람은 90일간 무비자로 체류할 수 있는 관광비자가 생기면서 이민을 계획한 사람이 브라질에 쉽게 갈 수 있게 됐다. 대개 이민자들은 관광비자로 브라질에 가서 취업한 후 취업비자를 받아 정착하는 사례가 많다. 취업비자를 받으면 1년씩 연장하면 된다. 그러나 브라질에서 취업비자를 받기란 쉽지 않다. 나성주씨는 “브라질은 자국어인 포르투갈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민 오기 전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면 브라질 현지 기업에 들어가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영주권 신청도 10년에 한 번씩 신청 기간이 돌아올 정도로 이민자에 대해 관대하진 않다. 주 브라질 대한민국 대사관에 따르면 영주권을 받으려면 영주권을 가지고 있는 가족의 초청, 5만 달러 이상 투자한 투자이민, 브라질 내에서 자녀 출산 등의 조건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브라질에 가서 취업비자를 받고 일을 하면서 영주권 취득 요건을 갖춰야 한다. 영주권을 받아도 10년에 한번씩 갱신해야 한다. 단, 60세 이상의 영주권자는 갱신할 필요가 없다. 브라질은 2020년에 영주권 신청 기간이 돌아온다.
한국인은 대개 언어가 능통하지 않은 상태에서 브라질로 이민을 떠나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 교민이 운영하는 업체에 취업한다. 브라질에 이민간 사람들은 80% 이상 의류업에 종사하고 있다. 1970년대 브라질로 넘어간 한국인들은 어느 민족보다 손 기술이 뛰어난 장점을 살려 유대인에게 의류패션(봉제) 기술을 배웠다. 기술을 습득하고 돈을 모은 이민자들은 의류 도매업 사업을 시작했다. 한국인들의 의류 시장이 커지면서 1990년대 후반 포르투갈어로 ‘좋은 안식처’라는 뜻의 봉헤찌로(Bomretiro)로 옮기면서 한인타운이 만들어졌다.
한국 업체에 취업하면 돈도 벌 수 있지만 생활 정보를 얻고 인맥을 쌓는 데도 도움이 된다. 처음 취업하면 보통 월 1500~2000달러를 받는다. 4인 가족이라면 외벌이로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부부가 모두 일해야 한다. 브라질에선 집값은 물론이고 학비, 전기세와 같은 공공요금도 비싸다. 4인 가족 기준으로 보통 25~30평 아파트에 사는 데 한 달 월세가 2000~2500달러다. 매매가는 4억~5억원 정도로 비싸다. 영주권을 받기 전까지는 은행에서 대출 받을 수 없다.
교육제도는 유치원, 초·중학교(1~8학년), 고등학교(9~12학년), 대학교로 나뉜다. 브라질에는 공립과 사립, 외국인 학교가 있다. 현지 공립학교의 경우 학비는 들지 않지만 교육 수준이 사립학교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편이며 교육 시설 역시 낙후돼 있다. 사립학교는 유치원·초등학교 과정만 있는 학교도 있고, 유치원 과정부터 대학 과정까지 다 갖춘 학교도 있다. 학비는 1년에 총 12번을 지불해야 한다. 매달 등록금 1회+학비 11회로 나눠 지불하는 방식이다. 사립학교 학비는 평균 월 1000달러다. 외국인 학교는 월 평균 2500~3000달러에 달한다.
4인 기준 식대 등의 생활비는 월 평균 1500달러다. 브라질의 땅은 851만4880㎢로 우리나라의 80배가 넘는다. 땅도 넓고 대중교통 등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아 자동차가 필수품이다. 국내 현대차 쏘나타급 구입 가격은 월 평균 4000달러, 자동차세는 1년에 평균 1000달러 정도다. 나성주씨는 “이민 초기에는 비용이 적잖게 들어간다”며 “일을 하지 않고 정착하려면 한국보다 더 힘든 생활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30년째 아르헨티나에 거주하고 있는 정연철(56)씨도 브라질 생활과 큰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정씨는 “이민온 후 아이들은 학교에서, 부모들은 학원에서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보통 성인의 경우 1년 정도 다닌다. 그는 안정된 이민생활을 위해 초기 정착금으로 보통 2억~3억원 정도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르헨티나도 한국 이민자들의 85% 정도가 브라질처럼 의류 판매와 의류 생산에 종사한다. 물가는 브라질과 비슷하다. 집 월세·식비·교육비 등을 포함하면 한 달에 평균 3500달러 정도가 든다.
초기 정착금 2억~3억원 필요

임시·영구 영주권을 받으면 아르헨티나 자국민과 같은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연금 혜택도 마찬가지다. 영주권을 받지 않으면 의료보장을 받지 못한다. 단, 국·공립 학교는 무료이며 국립병원에서 응급실 등을 이용하면 무료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민간 병원은 의료비가 비싸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세금 부담도 큰 편이다. 개인 사업자는 복리후생비와 가게세, 한국의 국민연금과 같은 노후연금을 낸다. 30년간 내면 70세 이후에 받을 수 있다.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이민자들은 대부분 개인 자영업자다. 나성주씨는 “이민을 오면 한국인들은 대부분 한인 가게에 취직해 일을 배워 나중에 가게를 낸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의류 도매업에서 최근에는 의류 관련한 서비스업이나 디자인 관련업으로 넓혀지고 있다”고 말했다. 자영업자들이 가게를 열려면 대개 3억~5억원의 비용이 든다.
에콰도르의 생활비 저렴한 편
다만, 2000년 에콰도르 화폐가 달러로 바뀌면서 물가가 많이 올랐다. 1800년대부터 수크레(Sucre)라는 화폐를 사용해 왔지만 1999년 금융위기를 겪고 나서 2000년부터 미국 달러 공용화 제도를 채택했다. 또 정부가 2008년부터 의류 등 완제품에 대한 특별 관세를 매기면서 의류 종사자인 이민자들이 에콰도르를 많이 떠났다. 장두진 회장은 “특별 관세를 매기면서 세금이 늘어났고 생활이 힘들어지자 이민자들이 갈수록 줄고 있다”고 설명했다.
에콰도르처럼 최근 몇 년새 중남미로 오는 이민자 수는 다소 줄고 있다. 브라질 상파울루의 현재 재외동포수는 2011년보다 2.8%가 줄었다. 멕시코도 2003년 1만7200만명에서 6000명이 줄었다. 중남미 이민자들은 “영어권이 아니고 물가도 비싸고 거리도 멀다 보니 느긋한 삶을 즐기려는 사람이 아니라면 부담을 느끼는 듯하다”고 말했다. 언어도 장애물이다. 중남미는 영어도 필요하지만 브라질·아르헨티나 등에선 현지어를 배워야 한다. 글로벌 기업은 영어를 쓰긴 하지만 현지인들은 영어를 잘 쓰지 않는다. 나성주씨는 “브라질 현지 기업에 채용되려면 포르투갈어와 영어를 모두 사용할 줄 알아야 유리하다”며 “이민을 오기 전에 포르투갈어를 배우는 게 좋다”고 말했다.
중남미는 정치 부패도 여전히 심한 편이다. 브라질의 경우 정치 부패·비리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독일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도 지수에서 브라질은 늘 고위험국으로 분류된다. 정치적 불안이 고조되면서 최근 브라질 헤알화 가치는 12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8월 11일 기준으로 달러당 340.09헤알이다.
그러나 성장 잠재력이 크다는 장점도 있다. 정영철씨는 “언어 장벽이 높고 물가도 비싼 나라지만 중남미는 성장성 있는 나라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그는 2억명의 인구와 넓은 땅, 풍부한 자원이 버팀목이라고 말했다. 브라질 북부 쪽에는 농사를 짓는 한국 이민자도 슬슬 늘고 있다. 농업에 관심 있는 10여 가구가 함께 땅을 사서 농사를 짓고 있다. 정연철씨는 “땀을 흘린 만큼 보상받을 수 있는 나라”라며 “자기가 일하고 싶은 분야를 정해 철저히 준비한다면 한국보다 더 많은 기회를 갖고 여유를 누리며 살 수 있다”고 말했다.
- 김성희 기자 kim.sunghee@joins.com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박정희 모가지 따러' 김신조, 역사 뒤안길로…향년 83세
2허윤홍 GS건설 대표 “AI는 피할 수 없는 물결, 생존의 문제와 직결”
3337조원 썼지만 부족하다…한국 복지지출, OECD 평균의 69%
4현대면세점, 동대문점 폐점 이어 희망퇴직 실시
5코스피 2300선 붕괴…환율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
6“4월이 분수령”…3월 가계대출 4000억원 증가에 그쳐
7뷰노, 김택수 최고전략책임자 영입…삼성종기원 출신
8SK에코플랜트, 반도체 기술 가진 스타트업 찾는다
9EV·픽업·자율주행…기아, 다각화 전략으로 미래차 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