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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로 흥행불패 신화 쓴 최동훈 감독

영화 <암살>로 흥행불패 신화 쓴 최동훈 감독

이쯤 되면 ‘국민감독’이라 불러도 되겠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세대들의 이야기였던 ‘대한독립만세’ 소리가 21세기 한복판에 전국의 극장가를 점령하게 했으니 말이다. 광복 70주년에 장안의 화제가 된 영화 <암살> 을 만든 최동훈 감독 이야기다.
타고난 이야기꾼인 최동훈 감독.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를 두 개나 만들어 내며 스타감독을 넘어 국민감독으로 우뚝 섰다.
영화 <암살> 개봉 직후인 7월 23일, 최동훈 감독을 서울 혜화동 케이퍼필름 사무실에서 만났다. 2004년 <범죄의 재구성(2004)> 부터 <타짜(2006)> <전우치(2009)> <도둑들(2012)> <암살(2015)> 에 이르기까지 최동훈(44) 감독 작품은 줄줄이 흥행 대박이다. 그는 영화계의 미다스 손이다.

최동훈 영화의 힘은 무엇일까? 여러 의견을 종합하면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최동훈 자신이 타고난 이야기 꾼이다. 게다가 지독한 노력형이다. 그는 직접 시나리오를 쓰면서 만족할 때까지 고치고 또 고친다. 이번 <암살> 시나리오도 1년 동안 쓴 시나리오를 폐기처분하고 다시 썼다. 보통 사람이라면 머리에 쥐가 나는 일을 그는 담배만 있으면, 좋아하는 청국장만 먹으면 무서운 인내력으로 써낸다. 두 번째, 출연진이 화려하다. 이정재와 전지현, 하정우와 조승우를 한 영화에 모을 수 있는 영화 감독은 흔치 않다. 세 번째, 그는 인생의 동반자를 잘 만났다. 그의 아내인 안수현 케이퍼필름 대표는 충무로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다재다능한 영화 제작자(PD)다. 최동훈 감독이 대작을 완성하고 나면 흥행 보증수표인 아내가 팔을 걷어부치고 실력 발휘를 해내니 천만 관객 영화를 두 개씩이나 만들어내는 것이다. 당분간 두 커플을 능가할만한 한국 영화계의 탁월한 조합은 나오기 어렵다는 것이 영화계의 중론이다.

각설하고, 영화 <암살> 은 1933년 상하이와 경성(서울)을 배경으로 한 시대 영화다. 친일파 암살작전을 둘러싼 독립군들과 임시정부대원, 그들을 쫓는 청부살인업자들의 엇갈린 선택과 예측할 수 없는 운명을 그렸다. 감독은 강제병탄의 치욕에 빠졌던 영화 속 역사를 광복 70주년을 맞고, 한일 간 냉랭한 기류가 흐르는 2015년 오늘에 오롯이 되살려냈다. 작품을 연출한 감독의 육성을 들어보자.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모였는데, 첫 촬영은 어땠을 지 궁금하다.


이정재 씨가 현장에 딱 오는데, 딱 느꼈어요. ‘아, 염석진이다.’ 이 사람은 (영화에) 몰입해서 왔구나. 그런 느낌을 <타짜> 때 김윤석 선배한테 처음 받았었는데. 털털한 사람이 점퍼랑 청바지만 입고 딱 앉아 있는데 스태프들이 무서워서 말을 못 거는 거에요. 진짜 ‘아귀’가 내 옆에 앉아 있구나 싶었거든요. 전지현은 (안옥윤의 등장 첫 장면에서) 수갑을 차고 걸어와서 ‘내 총!’ 하고 말하는데, 딱 이거다 싶더라고요. 하정우 씨도 첫 촬영이 미라보에서 안옥윤과 우연히 만나 커피 마시는 장면이었는데, 이 영화는 이런 영화겠구나 딱 느낌이 왔어요. 배우가 그 영화의 운명이거든요. 다른 배우가 했다면, 다른 온도와 다른 향기를 냈겠죠. (감독은) 그런 걸 볼 때가 행복한 거죠.



처음 시나리오 구상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을 텐데.


제가 국문과(서강대)라서 30년대 소설을 많이 읽었어요. 그런데 당시 소설 속에는 레지스탕스에 대한 게 없더라고요. 그게 호기심의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레지스탕스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일제 경찰이 가장 잡고 싶어 하던 의열단장 김원봉에게 내건 상금이 100만원이었대요. 만주철도회사에서 조선호텔을 지었는데 120만원이 들었던 시대거든요. 인터넷에서는 우스갯소리로 ‘오사마 빈 라덴 이후 세계적인 액수’라고 하더라고요. 이후 광복군을 창설할 때, 지청천 장군이 사령관을 하고, 김원봉 장군이 부사령관이었는데, 정말 대단해 보이더라고요. 뭔가를 시작한다는 게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서 ‘해야지’하고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 관심이 차곡차곡 쌓였던 것 같아요.



혹시 올해가 광복 70주년인데다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이다. 영화 기획할 때 그걸 염두에 두었나?


아니요. 제가 그렇게 치밀하게 생각하진 않습니다.(웃음) 원래 <타짜> 끝나고 하려고 했던 영화였어요. 이 영화가 <타짜> 랑 약간 비슷한 게 있어요. 승부사인데 되게 외로운 사람 이야기를 다루는 쓸쓸한 정서가 있거든요. 그래서 영화 끝내고 이 시나리오 작업을 하려는데 잘 안 써지더라고요. 여러 책도 보고 그랬지만 이야기가 방대하고 한 손에 탁 들어오진 않더라고요. 그래서 ‘놔두자, 놔두면 묵혀두면 언젠가는 뭐가 와서 내 목덜미를 잡겠지 뭐’라고 두었어요. 그러다 <도둑들> 을 찍고 나니까 ‘더 늦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최 감독이 독립군의 이야기를 가슴 속에 품게 된 건 우당 이회영 선생의 책을 읽으면서부터였다고 한다. 이회영은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구한 말 독립운동가다. “우당 이회영 선생이 이항복의 후손인데, 서울에서 굉장히 큰 부자였대요. 나라가 없어지자마자 모든 재산을 팔고, 지금으로 치면 대략 600억 정도 되는 금액이거든요. 식솔들을 모두 이끌고 간도로 가서 만든 게 신흥무관학교에요. 그것도 전 재산을 다 쏟아서요. 평범한 인간에 불과한 저와 비교되는 순간이죠.” 최 감독이 독립운동가들에게 ‘꽂힌’ 이유에 대한 솔직한 토로다.
 우울한 시대, 힘든 삶을 위로해주는 서사
최동훈 감독이 연출한 영화 <암살>은 이번에도 손익분기점을 가뿐히 넘기고 1천만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 최동훈 감독의 성공 신화는 현재진행형이다.


영화에서 염석진이 독립운동가였다가 변절자가 되는 부분이 좀 오묘하더라. 한 인간의 모습을 선과 악으로 구분하지 않고 경계를 좀 흐려놓았다는 느낌이 있는데…


염석진은 아주 많은 사람들이 투영된 하나의 상징 같은 존재에요. 그는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지요. 영화에서 감독이 미리 가치 판단을 해 버리면 관객이 끼어들 틈이 없잖아요. 그런 사람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을 했죠. 현실에서도 실제로 법도 처단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많아요. 일종의 괴물 같은 사람들이죠.



그래도 관객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선이 승리하고 악이 패배하는 일정한 플롯을 많이 쓰는데!


관객의 만족도는 정말 중요하죠. 그런데 역사는 그렇지 않아요. 절대 우리 생각대로 되지 않고 꼭 트라우마가 있어요. 이야기는 힘든 삶을 재미있게 해주거나 보듬어 안아주는 것이에요. 역사는 그렇게 (비극적으로) 됐지만 서사로 약간 위로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만일 라스트신이 없었다면 이 영화를 안 했을 거에요. 활극에 그쳤을 수도 있기 때문에요. 제가 가장 듣기에 좋았던 이야기는 라스트 신이 훌륭하다는 거였어요. 그럼 됐지, 뭐(웃음)

최동훈 감독의 영화가 ‘흥행보증수표’라는 수식어를 거머쥘 수 있던 요소 중 하나는 그의 영화라면 냉큼 달려와주는 배우들이 있기 때문이다. “저 배우들이 다 한자리에 있을 수 있구나”라는 관객의 기대감도 그의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볼거리다. 최 감독의 장점은 자존심 강한 이 스타들을 움직이는데 능할 뿐더러 기라성같은 배우들이 어떤 것에 희열을 느끼는지를 안다는 것이다. 배우들이 신이 들릴 정도로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하는데 관객이 몰리지 않는 게 이상하다.



이번 영화에서 시나리오를 쓰고 캐스팅을 할때 염두에 두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음~ 이 영화에는 반드시 여자가 나와야 된다. 여자가 총을 들고 만주에서 경성으로 넘어오는 거다. 그래서 안옥윤이 등장하게 되죠. 독립운동이라는 레지스탕스 활동이 굉장히 험하고 터프하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잖아요. 통념상 남성의 세계고요. 그런 세계로 한 여성이 들어와서 아주 힘겹게, 천천히, 절실하게 일을 해내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도둑들> 의 ‘예니콜’처럼 다이아를 멋지게 훔쳐오는 게 아니라 신념에 찬 여린 여성이 무거운 총을 들고 바닥에서 구르고 넘어지면서 힘에 부친 듯 절박하게 싸우는 것. 저는 그런 모습을 원했어요. 만약 남자들만 나왔다면 너무 흔한 액션이 될 것 같았거든요.



전지현 씨가 사실 기존의 익숙한 캐릭터가 있지 않나! 그래서 <암살> 에서 잘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전지현 씨에 대해 아주 밝고 명랑한 모습들을 많이 봐 왔죠. 하지만 그녀에게는 뭔가 있다는 게 제 생각이었어요. 배우에 대해 호기심을 계속 가지는 게 감독한테는 중요한 일이니까요. 안옥윤은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여자에요.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죠. 그 역할을 (전지현은) 100% 소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신 할 배우? 상상이 잘 안 돼요. 애초부터 그랬어요. 한참 촬영하다 전지현 씨 손에 파란게 묻어있길래 ‘왜 그래’ 물었더니 ‘멍이에요’ 그러는 거에요. 그래서 ‘멍들면 어떻게 해’ 그랬더니 ‘뭐 평생 가나요’ 그러더라고요. 전지현은 그런 배우에요.
 배우 이정재의 법정 장면은 압권
_<암살>은 친일파 암살작전을 둘러싼 독립군들과 임시정부대원, 그들을 쫓는 청부살인업자들의 엇갈린 선택과 예측할 수 없는 운명을 그렸다.


배우 이정재의 마지막 법정 장면 연기가 인상적이었다는 관객들이 많더라


(법정 장면에서) 엑스트라 100명을 두고 찍는데, ‘오케이’ 하는 순간 엑스트라들이 모두 박수를 쳤어요. (이정재는) 나이 40에 20대와 60대를 표현한 배우에요. 몸무게를 68kg까지 감량했잖아요. 그 장면 하나를 위해서. 내가 배우를 너무 괴롭힌 것 같아요.(웃음)



최 감독이 꼽는 명대사가 있다면?


하와이 피스톨(하정우)이 안옥윤에게 ‘두렵지 않나?’라고 묻죠. 안옥윤이 대답해요. ‘두려워.’ 그 시선이 영화를 규정하는 정체성이라고 생각해요. 몇 초간 하와이 피스톨을 빤히 쳐다보다가 ‘두려워’라고 한 마디를 던지는 전지현 씨 표정을 보는데, 전율이 돋는 거에요. 둘만의 텔레파시가 통하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요? 멜로라기보다는 Sympathy 같은 느낌!

인터뷰가 끝나고 한 달이 다됐는데도 영화 <암살> 은 상영 중이다. 순제작비 180억원, P&A(광고홍보)비까지 합하면 200억이 넘는 큰 돈이 투입된 대작 <암살> 은 이번에도 손익분기점을 가뿐히 넘기고 1천만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 그의 성공 신화는 현재진행형이다.

- 글 박지현 월간중앙 기자 / 사진 이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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