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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파워 피플 (110)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신임 총리] 개방·다양성 중시하는 통합의 아이콘

[글로벌 파워 피플 (110)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신임 총리] 개방·다양성 중시하는 통합의 아이콘

지난 11월4일 캐나다 23대 총리에 오른 쥐스탱 트뤼도(43)는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는다. 새 지도자는 정책과 인물에서 변화를 주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낡은 틀을 깨고 자신의 의지대로, 자신의 방식대로 정부를 이끌 수 있다. 그건 유권자들이 원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트뤼도의 캐나다가 앞으로 시도할 수많은 변화에 세계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특히 젊은 지도자는 기득권이 없기에 더욱 과감한 변화를 시도하게 마련이다.
 친미 일변도 외교정책에서 벗어날 듯
43세라는 나이에 한 나라의 최고 정치지도자가 됐다는 것 자체가 주목거리다. 캐나다의 이웃나라인 미국의 버락 오바마(54) 대통령도 2009년 48세에 권좌에 올랐다. 이에 따라 북미의 두 나라가 나란히 젊은 지도자를 두게 된 것도 세계의 관심을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국제정치에서 두 사람의 입장은 사뭇 다르다. 자유당 소속의 트뤼도는 지난 10월 19일 총선에서 승리하며 10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뤄낸 다음 날부터 미국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는 10월20일 기자회견에서 중동 극단주의 세력인 이슬람국가(IS) 공습을 위해 시리아와 이라크에 투입된 자국 전투기 CF-18(미국 F-18의 캐나다 버전) 6대를 철수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총선 패배로 물러난 보수당의 스티븐 하퍼 전 총리(56, 2006년 2월~2015년 11월)가 외교정책에서 친밀한 대미 관계를 최우선으로 삼았지만 트뤼도의 자유당은 미국과 다른 독자적인 길을 걷겠다고 천명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전투기 철수 조치는 시작일뿐 트뤼도의 캐나다는 앞으로 외교정책에서 친미 일변도에서 벗어나 더 많은 변화를 보일 것으로 전망한다. 같은 민주주의·시장경제 국가지만 세계평화를 위한 방법론에선 미국과는 다른 길을 추구하는 트뤼도의 캐나다를 지켜봐야 할 이유다.

트뤼도가 이전 10년간의 캐나다와 다른 모습을 보인 것은 외교정책뿐만이 아니다. 난민문제에서도 보수당과 완전히 다른 정책을 펼칠 예정이다. 보수당의 캐나다는 시리아 난민 수용을 거부했지만 트뤼도는 아예 총선 공약으로 올해 안에 2만5000명을 받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따라 지난 9월2일 터키에서 그리스로 가는 보트에서 떨어져 숨져 전 세계에 인도주의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알란 쿠르디(3)의 아버지 압둘라 쿠르디(40)를 비롯한 시리아 난민이 캐나다에 도착하고 있다. 트뤼도는 “더 많은 희생자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는 것이 캐나다인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며 “인정 많은 캐나다가 돌아왔다”고 말했다. 캐나다를 따뜻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선언이다.

트뤼도는 역대 캐나다 총리의 후손 중 총리 자리에 오른 첫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아버지 피에르 트뤼도(1919~2000)는 15년 이상 총리를 지냈다. 1968년 4월부터 1979년 6월까지 15대 총리를 지냈으며 1980년 3월 다시 총리에 올라 1984년 6월까지 재임했다. 단순히 장기 재임한 인물이 아니다. 피에르 트뤼도는 캐나다를 현대적인 국가로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게다가 재임 중 젊은이들의 우상이었을 정도로 매력적인 정치인이었다.

피에르 트뤼도가 총리에 취임한 1968년 캐나다에는 ‘트뤼도 매니어’라는 신조어가 유행했다. 그 해 피에르 트뤼도가 자유당 대표 경선에 나섰을 때부터 젊고 열정적이며 진보적인 정책을 거침없이 추진하는 그에게 젊은 유권자들이 열광한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당시 서구를 휩쓸었던 반(反)문화, 즉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의 기수로서 젊은 정치인 트뤼도를 열렬하게 지지한 것이다. 외모도 출중한데다 젊어서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아 진보적인 정책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법무장관 시절부터 동성애를 합법화하고 이혼을 쉽게 하는 등 젊은층이 환호할 만한 진보적인 정책을 두루 펼쳐 인기를 끌었다.

정치인으로서 당당함도 인기의 비결이었다. 1968년 선거 운동 중 퀘벡주 몬트리얼의 한 집회장에서 퀘벡 독립주의자들이 난동을 부려 물병과 돌멩이가 날아다니는 현장에서 보여줬던 용기도 널리 기억된다. 당시 보좌관들이 피하라고 권유했지만 그는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자리를 지키면서 현장을 지켜봤다. 이런 용기 있는 모습에 반한 유권자들이 몰표를 던져 그는 다음 날 선거에서 대승하고 총리에 올랐다.

그런 피에르의 아들인 쥐스탱 트뤼도는 캐나다 사상 둘째로 젊은 나이에 총리에 오른 인물이다. 묘하게도 그보다 더 젊은 나이에 총리에 오른 조 클라크(76)는 1979년 6월 트뤼도의 부친인 피에르 트뤼도를 누르고 총리에 올랐다가 1980년 3월 그에게 패배해 총리직을 넘겨줬다. 보수연합인 진보보수당 당수였던 클라크는 캐나다 사상 최연소인 40세에 총리에 올랐지만 9개월 단명 총리라는 기록도 함께 세웠다.

그런 피에르 트뤼도의 아들인 쥐스탱 트뤼도 신임총리도 트뤼도매니어 현상을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개각부터 파격적이었다. 야당 시절 그림자 내각에서 젊은이, 이민, 다문화 등의 정책을 주로 맡아온 경력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소수 종교 신자, 원주민, 커밍아웃을 한 동성애자 정치인, 장애인 등 캐나다 국민의 다양성을 반영하는 인물들로 첫 내각을 구성했다. 성, 종교, 인종, 사회 계층의 구분을 뛰어넘는 총천연색 사회통합 내각이다. 사회통합을 통해 캐나다를 매력적인 나라로 만들고 더 나아가 국민이 살 만한 나라, 외국 인재가 이민 가서 살고 싶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선언이다.
 아버지처럼 ‘트뤼도매니어’ 불러모을까?
우선 캐나다 사상 최초로 남녀 15명씩 동수 내각을 구성했다. 이유를 묻는 질문에 “지금은 2015년이니까”라고 대답해 화제가 됐다. 앞으로 캐나다의 21세기형 개혁을 이끌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거기에 무슬림과 시크교도를 처음으로 장관에 앉혔다. 소수자를 단순히 고명으로 앉힌 게 아니었다. 여성이자 원주민인 검사 출신의 조디 윌슨-레이보울드(44)를 법무장관에 앉혔다. 캐나다의 첫 원주민 출신 법무장관이다. 상대적으로 소외받던 에스키모 등 원주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인사다. 헌터 투투 어업장관도 북극권 원주민인 이누이트족 출신이다. 그는 취임식 때 부족을 상징하는 물개가죽 타이를 하고 나왔다.

서구 국가로는 드물게 종교적 다양성도 조각에 반영했다. 기독교가 주류인 캐나다에서 첫 시크교도 장관이 두 사람이나 동시에 탄생한 데 이어 첫 무슬림 장관도 나왔다. 트뤼도는 인도 펀잡주 태생으로 5세 때 이민온 시크교도인 하지크 싱 사잔(45)을 국방장관에 임용했다. 캐나다 육군에서 유엔평화유지군으로 아프가니스탄에 참전했으며 전역 뒤 밴쿠버에서 경찰 생활을 했다. 혁신과학경제개발장관으로 역시 토론토 출신의 이민 2세 시크교도인 나브디트 싱 바인스(38)를 임명했다. 아프가니스탄 난민 출신으로 11살에 캐나다에 정착한 뒤 아프간 여성 인권 문제를 전 세계에 알려왔던 메리엄 몬세프(30)를 민주제도 장관에 앉혔다. 트뤼도 내각 최연소일 뿐 아니라 캐나다 역사상 첫 무슬림 장관이다. 스캇 브라이슨(48) 재무위원장은 2002년 커밍아웃을 한 게이다.

트뤼도 신임 총리는 이 같은 개각과 정책을 통해 ‘매력적인 캐나다’를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떠한 종교, 사상, 배경을 지닌 사람도 쉽게 이민 와서 함께 적응하며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개방적인 캐나다를 만들려는 의도다. 트뤼도의 측근인 윌슨-레이보울드 신임 법무장관은 트뤼도 내각의 다양성에 대해 “실질적 토론과 대화에 새로운 목소리와 다른 시각을 가져오고, 궁극적으로 해결을 찾기 위한 방향으로 이끌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뤼도의 이 같은 생각은 17~18세기 해상제국을 만든 네덜란드에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관용과 개방으로 매력적인 통합 국가를 만들고 이를 통해 얻은 정치적 안정과 사회적 역동성을 바탕으로 전 세계의 인재와 자본을 이끌어 번영을 이루겠다는 전략이다. 네덜란드는 당시 종교적·사회적 관용과 개방 분위기로 유럽의 인재와 자본을 모았다. 당시 네덜란드에선 개혁교회가 국교 노릇을 하면서도 다른 종교에 관용정책을 폈다. 이에 따라 종교박해를 당하던 유럽의 인재들이 네덜란드로 피신했다. 1685년 프랑스가 낭트칙령을 폐지하고 종교관용을 포기하자 박해를 우려한 신교도 위그노들은 대거 네덜란드로 이주했다. 네덜란드는 유능한 기술자와 상인을 확보했다. 포르투갈에서 종교 문제로 추방당한 유대인들은 종교적 관용의 나라 네덜란드로 대거 이주했다. 유대인의 자본과 보석세공산업이 이때 네덜란드와 벨기에 지역으로 옮겨졌다. 종교뿐 아니라 과학적 관용도 한몫했다. 종교적 도그마나 제한이 없었던 네덜란드에선 17세기부터 공개 해부학 강의가 유행했다. 이는 렘브란트 그림에서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네덜란드는 당시 유럽 의학의 중심지가 됐다.

네덜란드는 인재와 자본이 몰리면서 해상제국으로 발돋움했다. 1602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를 세우고 세계 무역에 나섰다. 세계 최초의 다국적 기업이다. 프랑스 등 지중해 포도주를 북유럽에 팔고, 중유럽의 곡물을 사서 남유럽에 팔아 이익을 내던 네덜란드는 이를 계기로 세계 경영에 나서게 된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17세기 최대의 국제교역 회사로 발전했다. 네덜란드는 최초의 주식거래소를 세워 여러 나라의 자본을 확보했다. 1609년에는 교역에 필요한 자금을 제공하기 위해 암스테르담 은행을 설립했다. 이 은행은 중앙은행 및 투자은행의 선구자다. 이런 개방화와 국제화를 통해 네덜란드는 향신료 교역으로 시작해 북미와 남아프리카 서인도 인도네시아에서 식민지까지 경영하며 크게 발전했다. 1640년 일본 나가사키 데지마에 무역관을 세우고 일본과의 교역 독점권을 얻어 큰 이익을 얻었다. 선발주자인 포르투갈·스페인은 기독교 전파에 집중하다 일본에서 쫓겨났다. 실용주의와 종교적 관용이 경제적 번영의 기회로 이어진 것이다.
 매력적인 새로운 캐나다 건설 목표
트뤼도 신임 총리는 바로 이러한 개방과 관용으로 캐나다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그의 이런 정신은 자신의 몸에 새긴 문신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외모가 잘 생겼을 뿐 아니라 왼쪽 어깨에 커다란 문신까지 있어 사람 눈에 쉽게 띤다. 까마귀 문양 안에 지구가 그려진 모양인데 이는 캐나다 에스키모 부족인 하이다족의 문양이다. 23살 때 지구 문신을 그렸고, 40번째 생일 때 까마귀 모양을 추가했다고 한다. 그는 1976년 가족들과 함께 캐나다 서부의 브리티시컬럼비아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명예 하이다족이 된 인연이 있다. 이 문신은 그가 자선 복싱 경기에 출전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이런 배경을 가진 문신처럼 트뤼도도 어떠한 도그마에 빠지지 않고 당당하게 새로운 캐나다를 건설해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이 자리 잡은 북미 대륙에 진보적인 유럽식 개방국가가 자리 잡은 것은 세계 정세에도 어떻게든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고분고분하지도, 만만하지도 않은 트뤼도의 캐나다는 미국에 ‘입속의 검은 잎’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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