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재·김원의 스포츠&비즈(1)
정영재·김원의 스포츠&비즈(1)
프로야구는 지난해 KT가 가세하면서 10개 구단 체제가 됐다. 연봉도 크게 늘었다. 출범 첫해 1215만원이던 프로야구 평균 연봉은 2016년 1억2656만원이 됐다. 서른다섯 살이 된 한국 프로야구는 빠른 시간 안에 몸집을 키웠다. 10개 구단 체제가 됐고. 선수단 규모도 커졌다. 지난 3월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발표한 올 시즌 프로야구 자료를 보면 외국인 선수를 제외한 등록선수는 526명으로 35년 전에 비해 400명이 늘어났다. 구단별로 많게는 40명에 이르는 육성선수를 합하면 80~100명의 선수가 구단 유니폼을 입고 1군과 퓨처스리그 경기에 나선다. 연봉도 크게 늘었다. 출범 첫해 1215만원이던 프로야구 평균 연봉은 2016년 1억2656만원이 됐다. 외국인·신인·육성선수를 제외한 금액으로 지난해 매출액 기준 30대 기업 중에서 평균 연봉이 가장 높은 삼성전자(1억200만원)보다 2456만원이 더 많다. 여기에 10개 구단 31명의 외국인 선수 평균 연봉이 83만 달러(약 10억원)이고, 전체 계약 규모가 2564만 달러(약 308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미국이나 일본 프로야구에 비해 경제 규모 대비 선수 몸값은 아직 낮은 편이다.
야구의 본고장 미국에선 1869년 첫 프로야구팀인 신시내티 레드스타킹스가 탄생했다.
레드스타킹스는 구단에서 연봉을 받아 생활하는 전업 야구선수들로 구성됐다. 당시 팀 내 최고 연봉자였던 조지 라이트의 연봉은 2000달러 정도였다. 7년 뒤인 1876년에는 레드스타킹스를 포함해 8개의 프로팀이 모인 프로리그가 출범했다. 메이저리그라는 이름을 쓴 건 1903년부터다.
1904년 최고 연봉자는 5000달러(현재 통화가치 13만7000달러, 약 1억6440만원)를 받은 뉴욕 하이랜더스(현 뉴욕 양키스)의 투수 조 맥기니티였다. 맥기니티가 당시 받은 연봉은 102년이 지난 현재 통화로 환산하면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의 평균 연봉보다 많다.
메이저리그의 선수 몸값은 자유계약선수(FA) 제도가 도입된 1976년을 기점으로 폭등하기 시작했다. 75년 4만4676달러였던 메이저리그의 평균 연봉은 82년 24만5000달러(약 1억7600만원, 당시 환율 720원으로 계산)로 448%나 뛰어올랐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 864명의 평균 연봉은 438만 달러(약 50억3500만원)에 달한다. 2015년 425만 달러(약 50억원)에 비해 4.4%가 올랐고, 75년과 비교하면 9703%나 치솟았다. 미국의 임금 지수(wage index)가 75년 8630달러에서 2014년 4만6481달러로 435%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야구 선수의 연봉은 기하급수적으로 뛰어올랐다.
수퍼 스타들은 연봉 상승의 주역을 담당했다. 일종의 ‘견인 효과’다. 80년 시속 160㎞의 강속구를 자랑하는 투수 놀란 라이언(69)이 휴스턴으로 이적하면서 100만 달러 벽을 처음 허물었다. 1000만 달러를 넘어선 건 앨버트 벨(50)이었다. 89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데뷔한 그는 97년 시즌을 앞두고 FA 자격을 얻어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이적하면서 5년간 5500만 달러(연 평균 1100만 달러)를 받았다.
메이저리그 최고 연봉자는 그 동안 타자가 많았다. 투수에 비해 부상 위험이 적고 비교적 늦은 나이까지 활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격수 알렉스 로드리게스(41·양키스)는 2007년을 제외하고 2001년부터 2013년까지 최고 연봉 자리를 지켰다. 94년 시애틀에서 데뷔한 그는 22시즌을 뛰면서 총 4억110만 달러(약 3215억원)를 벌었다.
그러나 2014년부터는 투수의 시대가 됐다. 로드리게스를 넘어서는 대형 타자가 등장하지 못한 대신 투수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2014·2015년 잭 그레인키(33·애리조나)가 다저스에서 뛸 당시 최고 연봉자에 올랐고, 올해는 LA 다저스의 에이스 클레이턴 커쇼(28)가 3457만1428달러(약 403억원)로 처음 1위에 올랐다. 다저스는 3년 연속 최고 연봉자를 배출한 구단이 됐다.
다저스는 2014년 타임워너로부터 25년간 83억5000만 달러(약 9조7550억원)를 받는 초대형 중계권 계약을 했다. 풍부한 자금력을 무기로 공격적인 선수 영입에 뛰어든 것이다. 대형 중계권 계약을 맺은 다른 구단들도 선수 영입 경쟁에 가세했다.
일본 프로야구 선수회는 1980년부터 평균 연봉(추정치)을 발표하고 있다. 80년 평균 연봉은 602만 엔이었다. 2년 뒤인 82년 지바롯데 소속 선수 53명은 평균 733만 엔(약 2319만원, 100엔당 300원 기준)을 받았다.
올 시즌 10개 구단에 등록된 725명의 평균 연봉은 3712만 엔(약 3억8300만원)이다. 80년에 비해선 5배가량 많은 금액이지만 지난해(3811만 엔)보다 99만 엔(약 1022만원) 줄어들었다. 심지어 2004년 3805만 엔보다 낮은 금액이다. 일본 프로야구의 평균 연봉은 2004년 이후 등락을 거듭하다 2011년 3931만 엔으로 정점을 찍은 뒤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의 스포츠 전문매체 ‘넘버’는 “2004년 이후 선수 연봉 추이는 보합세라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이는 일본의 장기 불황과 연관이 있다. 관중은 꾸준히 늘고 있지만 프로구단의 수익성은 오히려 악화된 것도 연봉 감소의 이유다. 일본에서는 최고 인기 구단인 요미우리와의 경기 시청률을 중계권 협상의 잣대로 삼는다. 2000년만 해도 요미우리의 전 경기가 중계됐고, 시청률은 18.5%를 유지했다. 그러나 2006년 시청률이 9.6%까지 떨어졌고, 이후 중계 경기 수도 감소했다. 구단들의 주 수입원인 중계권료는 큰 폭으로 줄 수밖에 없었다.
올해 일본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지출하는 구단은 지난해 일본시리즈 우승팀 소프트뱅크다. 평균 6960만 엔(약 7억1900만원)으로 선수 연봉을 조사한 80년 이후 처음으로 연봉 1위에 올랐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4년 연속 연봉 1위 구단에 올랐던 요미우리는 평균 5787만 엔(약 6억원)으로 한 계단 내려앉았다. 요미우리의 평균 연봉은 지난해보다 1106만 엔(약 1억1500만원) 줄었다. 82년 일본 프로야구 최고 연봉을 받았던 야마모토 고지(70·당시 히로시마)의 연봉은 6500만 엔(약 1억9500만원, 환율 300원 기준)이었다. 201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감독을 역임했던 야마모토는 일본 프로야구 역대 네 번째로 통산 500홈런을 넘은 강타자다. 세계기록인 868개 홈런을 기록한 오 사다하루(76) 소프트뱅크 명예회장과 동시대에 뛰면서 홈런왕을 4차례나 차지했다. 오사다하루는 80년 마흔 살의 나이에 은퇴했는데 당시 받았던 연봉은 8170만 엔이었다.
일본에서 가장 먼저 1억 엔을 돌파한 선수는 오치아이 히로미쓰(62) 주니치 단장이다. 87년 서른넷의 나이에 처음으로 1억 엔(1억3000만 엔) 벽을 넘어선 그는 91년 2억 엔(2억2000만 엔), 92년 3억 엔을 차례로 돌파했다. 오치아이는 96년 은퇴할 때까지 10년 동안 최고 연봉 자리를 놓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수퍼 스타의 ‘견인 효과’가 미미해지고 있다. 역대 최고 연봉자는 2004년과 2005년 6억5000만 엔을 받았던 마무리 투수 사사키 가즈히로(58)다. 올해 일본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는 구로다 히로키(41·히로시마)로 10년 전보다 적은 6억 엔(약 65억5000만원)이다.
노모 히데오(48)가 95년 다저스에 입단한 이후 FA 자격을 얻은 일본 선수들의 미국행이 러시를 이뤘다. 연봉 10억 엔 돌파도 가능했던 요미우리의 강타자 마쓰이 히데키(42)는 2003년 뉴욕 양키스에 진출했다. 2011년 연봉 5억 엔을 받았던 다르빗슈 유(30·텍사스) 역시 이듬해 미국으로 떠났다. 최근에는 조금이라도 젊은 나이에 미국에 진출하기 위해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경쟁입찰)으로 빅 리그 입성을 노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올해 2억 엔(약 21억5000만원)을 받는 투수 겸 타자 오타니 쇼헤이(22·니혼햄)도 2~3년 내에 미국으로 떠날 가능성이 높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과의 차이도 줄고 있다. 평균 연봉은 여전히 일본이 한국에 비해 3배 더 많다. 그러나 최고 연봉은 82년 8배에서 4배로 좁혀졌다. 특히 외국인 선수 몸값은 비슷한 수준까지 왔다. 지난해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14개국 출신 외국인 선수 91명이 뛰었다. 전체 선수 평균 연봉은 9524만 엔(79만 달러)으로 평균 83만 달러인 한국보다 적었다.
1982년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할 당시 스타 플레이어의 연봉이 큰 화제가 됐다. 미국 마이너리그(밀워키 산하 더블A)에서 뛰다 프로야구 출범에 맞춰 한국으로 돌아온 박철순(60)은 OB(현 두산)에 입단하면서 최고 연봉인 2400만원에 계약 도장을 찍었다. 이용일 KBO 초대 사무총장은 “당시 실업야구 선수들이 프로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은행, 공기업 등 정년이 보장된 직장을 버리고 몇 년 남지 않은 선수생활을 해야 했다. 직장에 다닐 때보다 10배는 더 받아야 프로선수로 격이 맞았다”고 밝혔다. 실제로 박철순이 받았던 2400만원은 서울 강남 은마아파트 30평형대 가격이었다.
실업야구 최고 거포였던 김봉연은 81년 한국화장품에서 급여와 보너스로 480만원을 받았다. 최고 대우를 조건으로 해태(현 KIA) 입단이 예정됐지만, 해태의 삭감 요구로 연봉 1500만원(계약금 1800만원)에 계약했다. 82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개구리 번트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유격수 김재박(62)도 연봉 2400만원을 받았다. 감독 겸 선수로 활약했던 백인천(73)은 감독으로 1200만원, 선수로 2400만원을 받는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처음으로 연봉 1억원을 돌파한 선수가 나온 것은 출범 4년째인 85년이다. 그 해 삼미에 입단한 재일동포 장명부는 1억484만원을 받았다. 86년 김일융(삼성·1억1250만원), 87년 김기태(삼성·1억2000만원)도 1억 원 이상 연봉을 받았지만 모두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약한 재일동포 출신이었다. 이후 억대 연봉자의 맥이 끊겼다가 93년 선동열(52)이 1억3000만원에 해태와 계약하면서 1억원을 다시 넘어섰다. FA 제도가 도입된 2000년 억대 연봉자는 31명으로 늘어났고, 2010년 처음으로 100명을 돌파해 110명을 기록했다. 올해는 148명이 억대 연봉을 받는다. 한화의 김태균(34)은 지난 시즌 후 4년 동안 84억원(계약금 20억원, 연봉 16억원)의 FA 계약을 맺어 연봉 킹에 올랐다. 김태균은 그동안 순수 연봉으로만 92억1500만원을 벌었다. 특히 일본에서 돌아온 2012년 이후 5년 연속 연봉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신인 시절 계약금(1억6000만원)과 지난해 말 체결한 자유계약선수(FA) 계약금(20억원) 등 21억6000만원을 포함하면 누적 총액(연봉+계약금)이 국내 최초로 100억원(113억7500만원)을 넘어선다.
선수 연봉은 꾸준히 올라가고 있지만 프로야구의 수익성은 여전히 열악하다. 올 초 감사보고서를 발표한 프로야구 8개 구단 중 홈 구장을 이전하면서 구단 자산을 매각한 삼성을 제외하고 7개 구단이 지난해 당기 순손실을 기록했다. KBO는 지난해 4년간 560억원(추정치)이 넘는 새로운 중계권 계약을 체결했다. 타이틀 스폰서(타이어뱅크)도 70억원으로 2009년 35억원에 비해 2배 늘어난 금액으로 계약했다. KBO로부터 받아가는 금액이 늘어나면서 구단 평균 매출은 400억원대로 올랐지만, 씀씀이도 그만큼 커졌다.
NC 다이노스의 경우 매출이 2014년 348억원에서 60억원 가까이 증가(409억원)했다. 그러나 선수단 급여가 37억원에서 51억원으로 늘었고, 선수단 운영비 역시 91억원(196억원→287억원) 증가해 32억원의 당기 순손실을 기록했다. 두산(74억원)과 롯데(159억원)은 큰 손실을 봤다. 넥센도 역대 최대인 411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선수단과 프런트 직원의 급여 지출이 60억원으로 늘고, 선수 활동비가 증가하면서 23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정희윤 스포츠산업경제연구소장은 “입장 수입과 방송 중계권 수입이 전체 수입의 60% 이상이 되어야 흑자 운영이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 프로야구는 여전히 모기업의 이미지 개선을 위한 승률 극대화를 추구하고 있다. 승리하기 위해 모기업으로부터 전체 예산의 60~70%에 이르는 지원금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선수들은 자신들의 활약에 걸맞은 연봉을 받아야 하지만 현재 구조에서는 연봉이 크게 오르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 정영재 선임기자·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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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의 본고장 미국에선 1869년 첫 프로야구팀인 신시내티 레드스타킹스가 탄생했다.
레드스타킹스는 구단에서 연봉을 받아 생활하는 전업 야구선수들로 구성됐다. 당시 팀 내 최고 연봉자였던 조지 라이트의 연봉은 2000달러 정도였다. 7년 뒤인 1876년에는 레드스타킹스를 포함해 8개의 프로팀이 모인 프로리그가 출범했다. 메이저리그라는 이름을 쓴 건 1903년부터다.
1904년 최고 연봉자는 5000달러(현재 통화가치 13만7000달러, 약 1억6440만원)를 받은 뉴욕 하이랜더스(현 뉴욕 양키스)의 투수 조 맥기니티였다. 맥기니티가 당시 받은 연봉은 102년이 지난 현재 통화로 환산하면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의 평균 연봉보다 많다.
폭등하는 메이저리그 선수 몸값
수퍼 스타들은 연봉 상승의 주역을 담당했다. 일종의 ‘견인 효과’다. 80년 시속 160㎞의 강속구를 자랑하는 투수 놀란 라이언(69)이 휴스턴으로 이적하면서 100만 달러 벽을 처음 허물었다. 1000만 달러를 넘어선 건 앨버트 벨(50)이었다. 89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데뷔한 그는 97년 시즌을 앞두고 FA 자격을 얻어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이적하면서 5년간 5500만 달러(연 평균 1100만 달러)를 받았다.
메이저리그 최고 연봉자는 그 동안 타자가 많았다. 투수에 비해 부상 위험이 적고 비교적 늦은 나이까지 활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격수 알렉스 로드리게스(41·양키스)는 2007년을 제외하고 2001년부터 2013년까지 최고 연봉 자리를 지켰다. 94년 시애틀에서 데뷔한 그는 22시즌을 뛰면서 총 4억110만 달러(약 3215억원)를 벌었다.
그러나 2014년부터는 투수의 시대가 됐다. 로드리게스를 넘어서는 대형 타자가 등장하지 못한 대신 투수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2014·2015년 잭 그레인키(33·애리조나)가 다저스에서 뛸 당시 최고 연봉자에 올랐고, 올해는 LA 다저스의 에이스 클레이턴 커쇼(28)가 3457만1428달러(약 403억원)로 처음 1위에 올랐다. 다저스는 3년 연속 최고 연봉자를 배출한 구단이 됐다.
다저스는 2014년 타임워너로부터 25년간 83억5000만 달러(약 9조7550억원)를 받는 초대형 중계권 계약을 했다. 풍부한 자금력을 무기로 공격적인 선수 영입에 뛰어든 것이다. 대형 중계권 계약을 맺은 다른 구단들도 선수 영입 경쟁에 가세했다.
일본 프로야구 선수회는 1980년부터 평균 연봉(추정치)을 발표하고 있다. 80년 평균 연봉은 602만 엔이었다. 2년 뒤인 82년 지바롯데 소속 선수 53명은 평균 733만 엔(약 2319만원, 100엔당 300원 기준)을 받았다.
올 시즌 10개 구단에 등록된 725명의 평균 연봉은 3712만 엔(약 3억8300만원)이다. 80년에 비해선 5배가량 많은 금액이지만 지난해(3811만 엔)보다 99만 엔(약 1022만원) 줄어들었다. 심지어 2004년 3805만 엔보다 낮은 금액이다. 일본 프로야구의 평균 연봉은 2004년 이후 등락을 거듭하다 2011년 3931만 엔으로 정점을 찍은 뒤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의 스포츠 전문매체 ‘넘버’는 “2004년 이후 선수 연봉 추이는 보합세라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이는 일본의 장기 불황과 연관이 있다. 관중은 꾸준히 늘고 있지만 프로구단의 수익성은 오히려 악화된 것도 연봉 감소의 이유다. 일본에서는 최고 인기 구단인 요미우리와의 경기 시청률을 중계권 협상의 잣대로 삼는다. 2000년만 해도 요미우리의 전 경기가 중계됐고, 시청률은 18.5%를 유지했다. 그러나 2006년 시청률이 9.6%까지 떨어졌고, 이후 중계 경기 수도 감소했다. 구단들의 주 수입원인 중계권료는 큰 폭으로 줄 수밖에 없었다.
올해 일본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지출하는 구단은 지난해 일본시리즈 우승팀 소프트뱅크다. 평균 6960만 엔(약 7억1900만원)으로 선수 연봉을 조사한 80년 이후 처음으로 연봉 1위에 올랐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4년 연속 연봉 1위 구단에 올랐던 요미우리는 평균 5787만 엔(약 6억원)으로 한 계단 내려앉았다. 요미우리의 평균 연봉은 지난해보다 1106만 엔(약 1억1500만원) 줄었다.
지출 줄이는 일본 프로야구
일본에서 가장 먼저 1억 엔을 돌파한 선수는 오치아이 히로미쓰(62) 주니치 단장이다. 87년 서른넷의 나이에 처음으로 1억 엔(1억3000만 엔) 벽을 넘어선 그는 91년 2억 엔(2억2000만 엔), 92년 3억 엔을 차례로 돌파했다. 오치아이는 96년 은퇴할 때까지 10년 동안 최고 연봉 자리를 놓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수퍼 스타의 ‘견인 효과’가 미미해지고 있다. 역대 최고 연봉자는 2004년과 2005년 6억5000만 엔을 받았던 마무리 투수 사사키 가즈히로(58)다. 올해 일본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는 구로다 히로키(41·히로시마)로 10년 전보다 적은 6억 엔(약 65억5000만원)이다.
노모 히데오(48)가 95년 다저스에 입단한 이후 FA 자격을 얻은 일본 선수들의 미국행이 러시를 이뤘다. 연봉 10억 엔 돌파도 가능했던 요미우리의 강타자 마쓰이 히데키(42)는 2003년 뉴욕 양키스에 진출했다. 2011년 연봉 5억 엔을 받았던 다르빗슈 유(30·텍사스) 역시 이듬해 미국으로 떠났다. 최근에는 조금이라도 젊은 나이에 미국에 진출하기 위해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경쟁입찰)으로 빅 리그 입성을 노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올해 2억 엔(약 21억5000만원)을 받는 투수 겸 타자 오타니 쇼헤이(22·니혼햄)도 2~3년 내에 미국으로 떠날 가능성이 높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과의 차이도 줄고 있다. 평균 연봉은 여전히 일본이 한국에 비해 3배 더 많다. 그러나 최고 연봉은 82년 8배에서 4배로 좁혀졌다. 특히 외국인 선수 몸값은 비슷한 수준까지 왔다. 지난해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14개국 출신 외국인 선수 91명이 뛰었다. 전체 선수 평균 연봉은 9524만 엔(79만 달러)으로 평균 83만 달러인 한국보다 적었다.
1982년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할 당시 스타 플레이어의 연봉이 큰 화제가 됐다. 미국 마이너리그(밀워키 산하 더블A)에서 뛰다 프로야구 출범에 맞춰 한국으로 돌아온 박철순(60)은 OB(현 두산)에 입단하면서 최고 연봉인 2400만원에 계약 도장을 찍었다. 이용일 KBO 초대 사무총장은 “당시 실업야구 선수들이 프로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은행, 공기업 등 정년이 보장된 직장을 버리고 몇 년 남지 않은 선수생활을 해야 했다. 직장에 다닐 때보다 10배는 더 받아야 프로선수로 격이 맞았다”고 밝혔다. 실제로 박철순이 받았던 2400만원은 서울 강남 은마아파트 30평형대 가격이었다.
실업야구 최고 거포였던 김봉연은 81년 한국화장품에서 급여와 보너스로 480만원을 받았다. 최고 대우를 조건으로 해태(현 KIA) 입단이 예정됐지만, 해태의 삭감 요구로 연봉 1500만원(계약금 1800만원)에 계약했다. 82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개구리 번트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유격수 김재박(62)도 연봉 2400만원을 받았다. 감독 겸 선수로 활약했던 백인천(73)은 감독으로 1200만원, 선수로 2400만원을 받는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처음으로 연봉 1억원을 돌파한 선수가 나온 것은 출범 4년째인 85년이다. 그 해 삼미에 입단한 재일동포 장명부는 1억484만원을 받았다. 86년 김일융(삼성·1억1250만원), 87년 김기태(삼성·1억2000만원)도 1억 원 이상 연봉을 받았지만 모두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약한 재일동포 출신이었다. 이후 억대 연봉자의 맥이 끊겼다가 93년 선동열(52)이 1억3000만원에 해태와 계약하면서 1억원을 다시 넘어섰다. FA 제도가 도입된 2000년 억대 연봉자는 31명으로 늘어났고, 2010년 처음으로 100명을 돌파해 110명을 기록했다. 올해는 148명이 억대 연봉을 받는다.
개인 누적 연봉 100억원 돌파한 한국
선수 연봉은 꾸준히 올라가고 있지만 프로야구의 수익성은 여전히 열악하다. 올 초 감사보고서를 발표한 프로야구 8개 구단 중 홈 구장을 이전하면서 구단 자산을 매각한 삼성을 제외하고 7개 구단이 지난해 당기 순손실을 기록했다. KBO는 지난해 4년간 560억원(추정치)이 넘는 새로운 중계권 계약을 체결했다. 타이틀 스폰서(타이어뱅크)도 70억원으로 2009년 35억원에 비해 2배 늘어난 금액으로 계약했다. KBO로부터 받아가는 금액이 늘어나면서 구단 평균 매출은 400억원대로 올랐지만, 씀씀이도 그만큼 커졌다.
NC 다이노스의 경우 매출이 2014년 348억원에서 60억원 가까이 증가(409억원)했다. 그러나 선수단 급여가 37억원에서 51억원으로 늘었고, 선수단 운영비 역시 91억원(196억원→287억원) 증가해 32억원의 당기 순손실을 기록했다. 두산(74억원)과 롯데(159억원)은 큰 손실을 봤다. 넥센도 역대 최대인 411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선수단과 프런트 직원의 급여 지출이 60억원으로 늘고, 선수 활동비가 증가하면서 23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정희윤 스포츠산업경제연구소장은 “입장 수입과 방송 중계권 수입이 전체 수입의 60% 이상이 되어야 흑자 운영이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 프로야구는 여전히 모기업의 이미지 개선을 위한 승률 극대화를 추구하고 있다. 승리하기 위해 모기업으로부터 전체 예산의 60~70%에 이르는 지원금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선수들은 자신들의 활약에 걸맞은 연봉을 받아야 하지만 현재 구조에서는 연봉이 크게 오르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 정영재 선임기자·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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