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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발생 후 24시간’ 한국 vs 일본] 아베 총리, 확진 2시간 후 대응 지침

[‘AI 발생 후 24시간’ 한국 vs 일본] 아베 총리, 확진 2시간 후 대응 지침

골든타임 놓친 한국 철새 탓만... 10월 말 대학 연구팀에서 AI 바이러스 검출
#1. 11월 28일 오전 8시35분쯤 일본 아오모리현의 가축위생보건소에 신고가 들어왔다. ‘아침에 오리 10마리가 죽어 있는 걸 발견했다.’ 1만6500여 마리 식용 오리를 키우는 농장 관리인의 긴박한 연락이었다. 방역당국 직원이 현장을 찾아 폐사한 오리를 대상으로 조류인플루엔자(AI) 간이검사를 했다. 결과는 ‘양성’. 같은 날 니가타현에서도 AI 의심 신고가 접수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그날 저녁 방역 당국은 고병원성 AI 바이러스란 확진 결과를 발표했다. 올 겨울 일본 내 첫 AI 발생이었다. 일본 정부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날 밤 11시 아베 신조 총리 관저 위기관리센터에 AI 정보연락실이 설치됐다. 아베 총리는 “철저히 방역하라”고 관계부처에 지시를 내렸다. 총리가 관련 부처에 전달한 메시지는 분명했다. 먼저 감염 경로와 방역과 관련해 ▶현장 정보를 면밀하게 수집하고 ▶농림수산성 등 관계부처가 긴밀하게 연계해 방역 조치를 최대한 빠르게 진행하며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하라는 내용이었다. 별도로 방역 경계 단계를 올리는 조처는 없었다. 이미 AI 위기경보 단계가 최고 등급인 ‘3등급’으로 올라간 상태였다. 일주일 전인 11월 21일 돗토리현 야생조류 분변에서 고병원성 H5N6형 AI 바이러스가 검출됐을 때 정부가 위기경보 단계를 상향해뒀다.

다음 날 AI 대응도 범정부적으로 이뤄졌다. 11월 29일 새벽 4시 아오모리현 직원과 함께 자위대가 농가 현장에 출동해 방역작업을 같이했다. 그날 오전 9시 주무부처인 농림수산성은 물론 환경성·후생노동성 등 관계부처 장관 전부가 참여하는 관계장관회의가 열렸다. 의회도 같이 움직였다. 자민당은 아오모리현과 니가타현 현지에 당 차원의 대책본부를 설치하고 농림수산성 장관을 지낸 경험이 있는 모리야마 히로시 중의원을 대책본부장으로 임명했다.

#2. 일본보다 앞선 11월 16일 오전. 한국 방역당국에 4만 마리 산란계(알 생산 용도의 닭)를 기르는 전남 해남군의 한 농장으로부터 AI 의심 신고가 접수됐다. 농림축산검역본부는 바로 정밀 검사에 들어갔다. 이날 오후 농식품부는 중앙역학조사반을 투입해 감염 경로 추적을 시작했다. 전남도는 이동 통제, 매몰 처리 등 초동 방역에 나섰다. 같은 날 그리고 다음 날인 17일 검역본부는 AI 확진 판정을 내렸다. 그날 오후 농식품부는 AI 발생 농가 주변에 방역대를 설정하고 가금류 이동 제한, 소독 같은 차단 방역을 시작했다. 16일 AI 최초 의심 신고(야생 조류 제외, 가축농장 기준) 24시간 동안 범정부 차원의 대응은 없었다. 정부부처 수장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건 최초 신고 이후 이틀이 지나서부터다. 11월 18일 김재수 농식품부장관 주재로 가축방역심의회, 시·도 부시장·부지사 회의가 열렸다. 전면 방역을 위한 가금류 차량·인력 ‘일시 이동 중지(스탠드 스틸)’ 명령은 11월 19일, AI 위기경보를 ‘주의’에서 ‘경계’ 단계로 상향 조정하는 조처는 11월 23일에야 이뤄졌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박근혜 대통령 묵묵부답
박근혜 대통령은 AI 사태에 대해 한마디도 내놓지 않았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사실상 국정을 지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을 대신해 움직여야 할 황교안 국무총리의 대응도 늦긴 마찬가지였다. 황 총리는 11월 17일 ‘총리-부총리 협의회’에서 다른 안건과 함께 AI를 다루며 “선제적이고 광범위하게 방역 대책을 수립해 시행해야 한다”고 지시했을 뿐이다. 황 총리는 11월 25일에야 경기도 의정부시 ‘AI 방역대책 상황실’을 직접 방문하며 상황 점검에 나섰다.

‘AI 발생 후 24시간’. 한국과 일본은 이렇게 달랐다. 인체 전염병과 마찬가지로 가축 감염병 방역에 가장 중요한 건 대응 속도다. 이번에 한·일 양국을 덮친 AI 바이러스는 중국과 홍콩을 휩쓴 H5N6형이다. 공기를 통한 감염 속도가 매우 빠르고 폐사율도 높다. 그래서 고병원성이라고 부른다. 중국에서 ‘조류→인체’ 감염과 함께 사망자 사례까지 낸 유형이다. 일본에선 확진 발표 후 2시간여 만에 아베 총리가 대응 지침을 내렸다. 총리실 직속 위기관리센터에서 직접 지휘에 나섰다. 한국은 모든 것이 느렸다. 확진 발표부터 대통령을 대신한 총리의 지휘까지 정부 대응은 더디기만 했다.
 인체 감염 등 최악의 상황 가정해야
그 사이 구멍 난 국내 방역 체계를 뚫고 AI는 빠르게 확산했다. 11월 30일 현재 경기도와 충남·충북·전남·전북·세종까지 6개 시·도로 번졌다. AI에 뚫리지 않은 지역은 제주도와 경남·경북 지역뿐이다. 최초 농가 AI 발생 이후 2주 만에 전국 13개 시·군 47개 가금류 농가에서 고병원성 AI 확진 판정을 받았다. 지금까지 살처분된 오리·닭 수는 212만2000마리에 이른다. 농림축산검역본부는 11월 29일 ‘역학조사위원회 AI 분과위원회’을 열어 이번 AI 최초 감염원을 철새라고 발표했다. 역학조사위원회 측은 “이번 고병원성 AI H5N6형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생한 것”이라며 “중국 등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는 바이러스가 철새를 통해 유입됐다”며 “지역별 최초 발생농장은 대부분 주변에 철새 서식지와 농경지가 있어 야생 조류 분변에 오염된 차량 또는 사람에 의해 유입되거나 쥐·텃새 등 야생 조수류의 축사 침입에 의해 유입된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철새 탓만 하기엔 상황은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다. 닭·오리 농장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농장과 농장 간 감염 가능성도 한층 커졌다. 11월 29일 농림축산검역본부 역학조사위원회는 “이번에 발생한 고병원성 AI는 폐사 등 임상 증상이 뚜렷이 나타나고 발생이 지속되고 있다”며 “초기 강력한 방역대책 추진과 가금 농가의 자율 방역 강화와 신속한 신고 등을 당부한다”고 발표했다. ‘강력한 초동 대응’이 중요하다지만 벌써 농가 AI 최초 발생 이후 2주 넘게 지났다. 전문가들은 ‘골든타임’은 이미 지나갔다고 지적한다. 서상희 충남대 수의학과 교수는 “이번과 같은 고병원성 AI는 한 번 번지면 걷잡을 수 없기 때문에 발생 전 예방 방역이 무엇보다 중요한 데 타이밍을 놓쳤다”며 “지금과 같은 ‘바이러스 따라가기식 대책’으로는 추가 피해 방지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10월 28일 충남 천안시 철새 분변에서 고병원성 AI가 대학 연구팀에 의해 검출된 적이 있다. 류영수 건국대 수의학과 교수는 “10월 철새에서 AI 바이러스가 처음 검출됐을 때 정부에서 비상 방역 체계를 갖추고 차단 방역을 했다면 지금과 같은 대규모 피해는 예방할 수도 있었다”며 아쉬워했다. 백순영 카톨릭대 의대 미생물학 교수는 “이번 AI 바이러스는 국내에서 최초로 발생한 유형으로 방역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인체 감염 같은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해 두고 지금이라도 철저한 차단 방역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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