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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 직전 몰린 한국 해운업] 우물쭈물하다 한진해운 ‘테이블 데스(Table Death : 수술대 위에서 사망)’

[침몰 직전 몰린 한국 해운업] 우물쭈물하다 한진해운 ‘테이블 데스(Table Death : 수술대 위에서 사망)’

세계 6위 해운강국에서 변방으로 몰락 … 해운업계, “정부가 바다를 버렸다”
사진:중앙포토
“바다를 버리는 것, 그것은 조선을 버리는 것입니다.”

1957년 칠천량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왜군에 대패한 뒤, 삼도 수군통제사로 복귀한 이순신 장군에게 선조는 “수군을 폐하고 육군으로 통합하라”고 명한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아직 12척의 배가 남았다”며 명량해전을 준비한다. 바다를 내어주면 조선이 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 주도 해운 구조조정 실패
해운업계 관계자들은 올해 한국 정부가 “바다를 버렸다”고 자조한다. 연초부터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하던 조선·해운 구조조정 결과 양대 해운사 중 하나인 한진해운이 사실상 침몰했다. 또 다른 양대 해운사인 현대상선은 2M과 ‘전략적 협력(strategic cooperation)’을 체결했다. 하지만 해운 전문가들은 “사실상 해운동맹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2M 회원사인 머스크에 본지가 “현대상선과의 ‘전략적 협력’이 해운동맹 가입인지” 문의하자, 머스크 측은 “엄밀히 말하면 현대상선은 2M의 멤버가 되는 데 실패했다”고 공식 답변했다. 결국 국내 해운사 중 단 한 곳도 해운동맹에 가입하지 못한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한 것이다.

반면 한진해운 법정관리 이후 다른 나라는 해운업 경쟁력 강화에 한창이다. 머스크는 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M&A)에 합의했다. 머스크가 독일 함부르크쥐드를 먹어치우면 세계 컨테이너시장 점유율이 18.6%로 수직상승한다. 일본 3대 해운사(NYK(니폰유센)·K라인(가와사키기센)·MOL(미쓰이OSK))도 컨테이너 부문 합병을 결정했다. 자국 양대 선사(에버그린·양밍) 합병을 검토하던 대만 정부는 저금리 대출 등 금융 지원 패키지를 마련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이처럼 글로벌 해운사와 한국의 명암이 엇갈리는 데에는 금융 당국의 이른바 ‘원칙론’이 영향을 미쳤다는 게 해운업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정부는 한진그룹이 경영 정상화를 위한 의지가 미약했다고 보고 추가로 유동성을 지원할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한진해운은 자산을 팔고 사업을 매각해 2013년 제시했던 자구계획안(2조4683억원)의 109%를 달성했다. 하지만 채권단은 충분하지 않았다고 봤다. 그런데 자구계획 이행률이 28%(1조5000억원)였던 대우조선해양을 위해서는 추가 지원을 약속했다. 대우조선해양 채권단인 KDB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은 지난달 대우조선해양에 추가로 2조8000억원의 자본을 확충하기로 결정했다.

금융 당국은 또 해운업 지원 과정에서 단기 금융 지원에 치중했다. 정부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에 총 2조6868억원을 지원했다. 하지만 세부 항목을 뜯어보면 시장안정증권 발행(현대상선 1조432억원, 한진해운 8387억원), 운영자금 대출마감 기한 연장(현대상선 5192억원, 한진해운 2857억원)으로 구분할 수 있다. 모두 단기 유동성 지원이라는 뜻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단기 유동성 지원은 금융지원을 비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경향이 있다. 즉, 단기 유동성 지원책은 기업의 체질을 바꾸거나 근본적으로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 구조조정을 오히려 늦추는 효과가 있다는 뜻이다. 해운업 구조조정 실효성이 떨어진 배경이다.

이에 비해 조선업 지원은 달랐다. 정부는 대우조선해양에는 ‘폭포수(4조2000억원)’를 쏟아 부었다. 특히 KDB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은 대우조선해양에 단기 유동성 지원과 더불어 장기적인 지원 방안도 병행했다. 4조2000억원 중 2조 원은 유상증자나 출자전환으로 투입됐다. 김태일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해운정책연구실장은 “한진해운에 빌려준 돈은 나중에 이자를 붙여 갚으라는 단기 유동성 지원 방식이었다”며 “반면 (대우조선해양에 지원한) 유상증자·출자전환은 산업은행 자본을 투입해 기업의 부채를 탕감해주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그토록 엄격했던 금융 당국이 이와 같은 지원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대우조선해양의 자구계획안(5조2934억원) 이행률은 11월 기준 28%(1조5168억원)였다.

한진해운은 어땠을까. 금융감독원이 김기식 전 더불어민주당(현 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했던 ‘한진해운 상황보고’에 따르면, 한진해운은 자산을 팔고 사업을 매각해 자구계획 목표(2조 4683억원)의 109%를 자체 달성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경영 정상화 의지가 미약했다’고 평가했다.
 호미로 막을 일 가래로 막은 정부
금융 당국이 조선업과 해운업을 대하는 태도는 왜 이렇게 달랐을까.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은 지배구조의 차이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김태일 해운정책연구실장의 주장을 들어보자. “지난해 연말 기준 대우조선해양의 최대 주주는 KDB산업은행(49.7%)과 금융위원회(8.5%)입니다. 대우조선해양이 실질적으로 국영 기업이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대우조선해양이 정상화에 실패하면 국책 은행이 손해를 봅니다. 구조적으로 대우조선해양에 자금을 투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에 비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등 양대 해운사는 순수 민간기업이다. 구조조정이 한창이던 지난해 연말 기준 한진해운 최대주주는 대한항공(33.23%)이었고, 현대상선은 현대엘리베이터(17.96%)였다. 김태일 실장은 “국책은행이 민간 기업을 지원한다는 본연의 기능을 충분히 수행했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결과적으로 정부는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고 있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해운산업에 총 6조5000억원 규모의 금융 지원을 한다. 법정관리 직전 삼일회계법인 실사 결과 채권단이 파악한 2017년까지의 한진해운의 유동성 부족분은 최대 1조2000억원 수준이었다.

상황이 이런 데도 구조조정 책임자들은 책임 회피에 급급하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한진해운 처리문제는 해운업 구조조정 원칙에 따른 것”이라고 했고, 유일호 부총리는 “한진해운이 자구 노력부터 어긋나고 용선료 협상도 제대로 되지 않아 원칙에 따라 처리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나아가 구조조정 책임론을 제기하는 이들에게 재갈을 물리고 있다. 12일 현대상선의 해운동맹 가입에 대해 묻자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정부로부터 ‘입단속 하라’는 경고를 받았다”며 “실명 인터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사이 그나마 남은 해운업 경쟁력은 더 훼손되고 있다. 현대상선이 해운동맹 2M과 체결한 ‘전략적 협력’이 대표적이다. 2M과 현대상선은 다른 선사 참여가 불가능한 배타적 계약을 맺었다. 세계 1·2위 선사인 2M은 이미 충분한 규모의 선박을 보유하고 있어 굳이 타 선사와 협력할 필요가 없지만, 조만간 글로벌 원양선사 중 꼴찌가 되는 현대상선은 배타적 계약이라도 맺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해운업 전문가들은 “정부가 지원 조건의 원칙으로 내세운 ‘해운동맹 가입’이라는 구색을 맞추려고 무리하게 배타적 계약이라는 조항까지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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