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재·김원의 스포츠 & 비즈(12)
정영재·김원의 스포츠 & 비즈(12)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은 스포츠 분야에도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스포츠에도 엘도라도(황금의 땅)가 열렸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최첨단 기술과의 이종교배로 스포츠의 본질이 흐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언더아머를 디지털 회사로 만들겠다. 우리의 경쟁 상대는 삼성과 애플이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언더아머의 CEO 케빈 플랭크가 지난 1월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소비자 가전전시회 ‘CES 2017’의 마지막 기조 연설자로 나섰다. 1996년 창업한 언더아머는 20년 동안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며 나이키·아디다스에 이어 세계 3위 스포츠 브랜드로 올라섰다. 26분기 연속 20%가 넘는 성장률을 기록 중인 언더아머는 지난해 50억 달러(약 5조8000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린 것으로 조사됐다. 포브스가 지난해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순위에서 언더아머는 6위에 올랐다. 스포츠 브랜드 중 유일한 톱10이었다. 언더아머는 기존 기업들과는 다른 상상력으로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언더아머는 최근 ‘마이피트니스팔’ 등 3개 건강관리 어플리케이션(앱) 업체를 인수했다. 이를 통해 2억6000만 개 운동 행태와 9억6000만 개 음식 정보를 수집했다. 여기에 올림픽에서 금메달 23개를 딴 수영 스타 마이클 펠프스(32·미국) 등 언더아머의 후원 선수들로부터 의견과 정보를 모아 ‘언더아머레코드’라는 앱을 개발했다. 이 앱은 사용자의 활동을 24시간 분석해 올바른 습관을 갖도록 제안해 준다. 펠프스는 CES에서 언더아머 신제품을 소개하는 동안 깜짝 게스트로 모습을 드러냈다. 스마트 운동화를 신고 무대에 오른 펠프스는 여섯 차례 껑충껑충 뛰는 장면을 연출했다. 그러자 무대에 설치된 대형 화면에는 스마트 운동화가 측정한 펠프스의 몸 상태 정보가 표시됐다. 스마트 운동화는 사용자의 컨디션을 분석해 적절한 운동 강도를 제안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운동화 교체 주기도 알려주고, 새 운동화에 사용자의 데이터도 그대로 옮겨 준다.
언더아머가 선보인 스마트 잠옷 역시 이번 CES의 화제였다. 스마트 잠옷은 내부의 특수 섬유가 수면 중에 나는 땀을 흡수하고 원적외선을 생성해 숙면과 피로 해소를 도와준다. 플랭크 CEO는 “언더아머를 디지털과 융합한 스포츠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그리고 꾸준히 준비해 왔다”고 설명했다.
IT 신기술이 주로 소개되던 CES에 올해는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언더아머같은 비(非) IT 기업의 참여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이다. 이들 기업은 스포츠·패션·헬스 등 생활과 밀접한 제품을 IT 기술과 결합해 새로운 유형의 제품으로 재탄생시켰다. 이종교배와 융·복합 현상은 50돌을 맞이한 CES의 핵심 트렌드였다. 모든 사물과 기계, 산업이 연결되고 융합하는 ‘메가 컨버전스’ 시대를 알렸다. 언더아머의 플랭크 CEO가 스포츠 브랜드로는 최초로 CES의 대표 연설자로 나선 것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왔고 일하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기술 혁명의 직전에 와 있다. 이 변화의 규모와 범위, 복잡성 등은 이전과 전혀 다를 것이다. 변화는 쓰나미처럼 밀려와 모든 시스템을 바꿀 것이다.”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WEF) 회장이 지난해 1월 열린 다보스 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을 설명한 말이다. 지난해 다보스 포럼의 핵심 주제는 ‘4차 산업혁명의 이해’였다. 슈밥 회장은 사물인터넷(IoT)·가상현실·인공지능(AI)·빅데이터 등의 기술이 기존 산업과 융합해 실현하는 정보혁명을 4차 산업혁명이라고 정의했다.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은 스포츠 분야에도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스포츠는 다른 기술과 결합해 새로운 형태의 제품과 서비스, 비즈니스를 만들어 내는 중요 분야로 부상하고 있다. 유성건 상명대 스포츠정보기술융합학과 교수는 “스포츠에는 큰 기회가 왔다. 엘도라도(황금의 땅)가 열린 것이다. 스포츠 융합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스포츠 관련 기업과 스타들이 참여한 이번 CES에서 드러났듯이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스포츠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커졌다”고 설명했다.
미국 메이저리그(MLB) LA 에인절스의 강타자 마이크 트라웃(26)은 배트 끝 노브에 센서가 달린 스마트 배트를 들고 타격 훈련을 한다. 스포츠용품 회사인 제프(ZEPP)가 만든 스마트 배트는 타구 속도와 궤적·각도 등을 손쉽게 분석할 수 있는 장비다. 수집된 정보는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 트라웃은 “스마트 배트를 통해 스윙 동작과 성과를 체크할 수 있었다. 타격 자세의 문제점을 손쉽게 파악해 교정할 수 있다”며 흡족해 했다.
2011년 MLB에 데뷔한 트라웃은 지난해 159경기에 출장해 타율 0.315, 29홈런·100타점을 기록하며 아메리칸리그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데뷔 6년 만에 그는 두 차례나 리그 MVP를 차지했다. 트라웃은 첨단 기술을 적극 받아들여 큰 효과를 봤다. 제프는 스마트 배트 외에도 같은 기술을 적용한 골프·소프트볼 제품을 판매한다. 골퍼 미셸 위(28)도 이 업체의 고객이다. 미셸 위는 센서가 달린 스마트 골프클럽을 들고 훈련한다. 스마트 배트에는 사물과 사물을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사물인터넷 기술이 적용됐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사물인터넷 시장은 375조원 규모다. 사물인터넷은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핵심 분야다. 스포츠에 활용되는 사물인터넷 기술은 대부분 저성능 기기로 소량 데이터 전송에 특화한 ‘소물(小物) 인터넷‘이다. 장치의 가격이 비싸지 않고, 스마트폰을 활용하면 별도의 단말장치가 필요 없어 시장이 더 커질 전망이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우승팀 독일은 비즈니스 솔루션 업체 SAP의 ‘매치 인사이트’의 도움을 받았다. 이 솔루션은 감독과 코치들이 태블릿으로 현재 뛰고 있는 선수의 기록과 영상을 실시간 점검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아디다스는 킥 강도와 공의 속도·거리·회전 등을 확인할 수 있는 ’마이코치 스마트볼‘을 개발했다. 바볼랏은 서브와 스트로크·스매시 정보를 체크할 수 있는 테니스 라켓을 판매하고 있다.
미국프로농구(NBA) 2014~15시즌 우승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는 카타풀트가 개발한 훈련용 유니폼을 도입했다. 옷에 부착된 센서를 통해 선수가 뛴 거리와 속도는 물론 가속과 감속, 점프와 착지 시 충격 등을 분석할 수 있다. 신체 밸런스를 확인해 부상을 예방하는 기능도 있다. 골든스테이트는 이 기술로 주전 가드 스테판 커리(29)의 피로도를 파악한다. 피로가 쌓인 것을 확인하면 미리 휴식을 줘 부상을 막았다. NBA 20여개팀이 이 유니폼을 도입했다.
지난해 1월 노르웨이 릴레함메르에서 열린 2016 겨울 유스올림픽 개회식.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삼성전자는 180도 각도로 촬영이 가능한 카메라 두 대를 개막식장에 설치해 현장을 중계했다. 이른바 가상현실 중계가 올림픽에 첫 선을 보인 것이다. 가상현실 기기를 착용하면 180도까지 몸을 돌리면서 주변 영상을 그대로 볼 수 있다. 미국 NBC는 지난해 8월 리우 올림픽 개·폐막식을 비롯, 약 85시간 분량의 가상현실 콘텐트를 제작해 내놓았다. 가상현실은 사용자가 3D, 4D 등의 영상을 통해 실제 현실처럼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3인칭 관람 환경을 1인칭 시점으로 바꿔준다. 스키 고글처럼 눈에 밀착하는 전용기기는 이미 상용화됐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에서도 가상현실 생중계가 이뤄질 전망이다. 평창 올림픽 주관 통신사인 KT는 현재 LTE의 최대 속도(300Mbps)보다 33배 이상 빠른 5G 서비스와 함께 가상현실 중계를 평창 올림픽에 적용할 계획이다.
가상현실은 최근 주목받는 기술이다. 애플·구글·삼성전자 등 글로벌 기업들이 뛰어들면서 시장이 커지고 있다. 사실 이 기술은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1960년대부터 관련 연구가 시작됐다. 비디오 게임도 넓은 범주에서 가상현실 기술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컴퓨팅 기술의 발전으로 데이터 처리 속도와 메모리 성능이 좋아지고 초고화질 디지털 그래픽스의 구현이 가능해지면서 적용 범위가 늘고 있다. 스카이 다이빙, 스킨스쿠버, 모터스포츠 등 일반인들이 실제 접하기 어려운 익스트림 스포츠와 스키·골프 등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스포츠를 중심으로 가상현실 기술이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 이미 스크린 골프·승마·야구 등 가상현실 스포츠 체험은 수천억대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통신·방송사들은 미국프로풋볼(NFL) 수퍼보울, MLB 월드시리즈 등의 중계에 이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컨설팅회사 골드만삭스는 가상현실 생중계 시장이 2025년에 41억 달러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일부 스포츠 팀은 훈련에까지 가상현실 기기를 활용하고 있다. 선수들이 실제와 다름없는 가상의 환경에서 훈련을 하고, 새로운 각도에서 나온 플레이 장면을 보면서 전술에도 활용한다. NFL 댈러스 카우보이스,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등은 지난해 가상현실 기기를 훈련에 도입했다. 정광모 전자부품연구원 수석연구원은 “가상현실을 뛰어넘어 사람의 의식을 통제하는 대체현실 기술까지 나온 상태다. 실제라고 착각하게 할 정도로 기술이 발달하면서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기술이 인간의 능력을 완벽히 대체할 수는 없다. 정 연구원은 “미식축구에서 쿼터백이 헬멧에 가상현실 기기를 착용하고 컴퓨터가 지시하는 전술대로 터치다운을 기록할 날이 올 지도 모른다. 이처럼 스포츠계에서 끊임없이 기술을 수용하지만 언젠가는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토피아가 있다면 디스토피아도 존재한다. 최첨단 기술과의 이종교배로 스포츠의 본질이 흐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은 지난해 ’앞으로 10년 안에 로봇이 대체할 직업군‘을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스포츠 심판은 로봇으로 대체될 확률이 90~100%에 이르는 것으로 전망됐다. 이미 심판 역할의 일부를 기계가 대신하고 있다. 야구·축구·배구·테니스 등에서는 라인 판정에 비디오 분석이 동원된다.
로봇 심판을 뒤이어 로봇 선수가 등장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지난해 2월 미국프로골프협회(PGA) 투어 피닉스 오픈에서는 골프 로봇 ‘엘드릭(LDRIC)’이 등장했다. 엘드릭은 16번 홀(파3)에서 홀인원을 기록하며 화제가 됐다. 주말골퍼는 평생 한 번 하기도 힘든 홀인원을 로봇이 고작 5차례 샷 만에 해낸 것이다.
골프 연구기관인 골프 래버러토리스와 다인즈 언리미티드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엘드릭은 최고 시속 210km의 헤드 스피드를 낼 수 있다. 엘드릭은 골프 스타 타이거 우즈의 본명인 ‘엘드릭 톤트 우즈’에서 따온 이름이다. 배드민턴·탁구·야구·펜싱 등 팔을 쓰는 구기 종목에는 로봇 팔이 훈련 파트너 역할을 하고 있다. 인간과 실력을 겨루는 로봇 선수도 조만간 탄생할 것으로 보인다. 단순 동작을 반복하던 로봇이 인공지능과 만나 스스로 판단하고, 상황을 예측하는 수준까지 발전했기 때문이다.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의 등장은 스포츠 패러다임에 중대한 변화를 불러왔다. 기계도 스포츠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인간과 기계의 대결, 더 나아가 기계와 기계의 대결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미 로봇 축구, 로봇 격투기 대회가 열리고 있다. 유성건 교수는 “스포츠 종목간 융합과 진화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스포츠가 탄생할 수 있다. 바둑·체스 등이 (두뇌) 스포츠로 공인받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드론 레이싱, 퀴디치(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빗자루 폴로 게임) 등도 스포츠로 인정받을 수 있다. 관점에 따라 스포츠가 재정의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체육철학자 김정효 박사(서울대 강사)는 “스포츠의 본질은 인간 신체의 탁월성(기량)을 경쟁하는 것이다. 스포츠가 지나치게 상업화되면서 탁월성이 배제된 채 말초적인 승리와 재미만을 추구하고 있다.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스포츠가 주는 감동은 사라지고 승리의 쾌감만 남게 될 것이다. 인간이 사라진 스포츠는 놀이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 정영재 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언더아머는 최근 ‘마이피트니스팔’ 등 3개 건강관리 어플리케이션(앱) 업체를 인수했다. 이를 통해 2억6000만 개 운동 행태와 9억6000만 개 음식 정보를 수집했다. 여기에 올림픽에서 금메달 23개를 딴 수영 스타 마이클 펠프스(32·미국) 등 언더아머의 후원 선수들로부터 의견과 정보를 모아 ‘언더아머레코드’라는 앱을 개발했다. 이 앱은 사용자의 활동을 24시간 분석해 올바른 습관을 갖도록 제안해 준다.
언더아머, 스마트운동화와 잠옷 선보여
언더아머가 선보인 스마트 잠옷 역시 이번 CES의 화제였다. 스마트 잠옷은 내부의 특수 섬유가 수면 중에 나는 땀을 흡수하고 원적외선을 생성해 숙면과 피로 해소를 도와준다. 플랭크 CEO는 “언더아머를 디지털과 융합한 스포츠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그리고 꾸준히 준비해 왔다”고 설명했다.
IT 신기술이 주로 소개되던 CES에 올해는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언더아머같은 비(非) IT 기업의 참여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이다. 이들 기업은 스포츠·패션·헬스 등 생활과 밀접한 제품을 IT 기술과 결합해 새로운 유형의 제품으로 재탄생시켰다. 이종교배와 융·복합 현상은 50돌을 맞이한 CES의 핵심 트렌드였다. 모든 사물과 기계, 산업이 연결되고 융합하는 ‘메가 컨버전스’ 시대를 알렸다. 언더아머의 플랭크 CEO가 스포츠 브랜드로는 최초로 CES의 대표 연설자로 나선 것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왔고 일하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기술 혁명의 직전에 와 있다. 이 변화의 규모와 범위, 복잡성 등은 이전과 전혀 다를 것이다. 변화는 쓰나미처럼 밀려와 모든 시스템을 바꿀 것이다.”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WEF) 회장이 지난해 1월 열린 다보스 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을 설명한 말이다. 지난해 다보스 포럼의 핵심 주제는 ‘4차 산업혁명의 이해’였다. 슈밥 회장은 사물인터넷(IoT)·가상현실·인공지능(AI)·빅데이터 등의 기술이 기존 산업과 융합해 실현하는 정보혁명을 4차 산업혁명이라고 정의했다.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은 스포츠 분야에도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스포츠는 다른 기술과 결합해 새로운 형태의 제품과 서비스, 비즈니스를 만들어 내는 중요 분야로 부상하고 있다. 유성건 상명대 스포츠정보기술융합학과 교수는 “스포츠에는 큰 기회가 왔다. 엘도라도(황금의 땅)가 열린 것이다. 스포츠 융합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스포츠 관련 기업과 스타들이 참여한 이번 CES에서 드러났듯이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스포츠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커졌다”고 설명했다.
미국 메이저리그(MLB) LA 에인절스의 강타자 마이크 트라웃(26)은 배트 끝 노브에 센서가 달린 스마트 배트를 들고 타격 훈련을 한다. 스포츠용품 회사인 제프(ZEPP)가 만든 스마트 배트는 타구 속도와 궤적·각도 등을 손쉽게 분석할 수 있는 장비다. 수집된 정보는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 트라웃은 “스마트 배트를 통해 스윙 동작과 성과를 체크할 수 있었다. 타격 자세의 문제점을 손쉽게 파악해 교정할 수 있다”며 흡족해 했다.
2011년 MLB에 데뷔한 트라웃은 지난해 159경기에 출장해 타율 0.315, 29홈런·100타점을 기록하며 아메리칸리그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데뷔 6년 만에 그는 두 차례나 리그 MVP를 차지했다. 트라웃은 첨단 기술을 적극 받아들여 큰 효과를 봤다. 제프는 스마트 배트 외에도 같은 기술을 적용한 골프·소프트볼 제품을 판매한다. 골퍼 미셸 위(28)도 이 업체의 고객이다. 미셸 위는 센서가 달린 스마트 골프클럽을 들고 훈련한다.
가상현실이 바꿀 스포츠 중계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우승팀 독일은 비즈니스 솔루션 업체 SAP의 ‘매치 인사이트’의 도움을 받았다. 이 솔루션은 감독과 코치들이 태블릿으로 현재 뛰고 있는 선수의 기록과 영상을 실시간 점검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아디다스는 킥 강도와 공의 속도·거리·회전 등을 확인할 수 있는 ’마이코치 스마트볼‘을 개발했다. 바볼랏은 서브와 스트로크·스매시 정보를 체크할 수 있는 테니스 라켓을 판매하고 있다.
미국프로농구(NBA) 2014~15시즌 우승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는 카타풀트가 개발한 훈련용 유니폼을 도입했다. 옷에 부착된 센서를 통해 선수가 뛴 거리와 속도는 물론 가속과 감속, 점프와 착지 시 충격 등을 분석할 수 있다. 신체 밸런스를 확인해 부상을 예방하는 기능도 있다. 골든스테이트는 이 기술로 주전 가드 스테판 커리(29)의 피로도를 파악한다. 피로가 쌓인 것을 확인하면 미리 휴식을 줘 부상을 막았다. NBA 20여개팀이 이 유니폼을 도입했다.
지난해 1월 노르웨이 릴레함메르에서 열린 2016 겨울 유스올림픽 개회식.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삼성전자는 180도 각도로 촬영이 가능한 카메라 두 대를 개막식장에 설치해 현장을 중계했다. 이른바 가상현실 중계가 올림픽에 첫 선을 보인 것이다. 가상현실 기기를 착용하면 180도까지 몸을 돌리면서 주변 영상을 그대로 볼 수 있다. 미국 NBC는 지난해 8월 리우 올림픽 개·폐막식을 비롯, 약 85시간 분량의 가상현실 콘텐트를 제작해 내놓았다. 가상현실은 사용자가 3D, 4D 등의 영상을 통해 실제 현실처럼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3인칭 관람 환경을 1인칭 시점으로 바꿔준다. 스키 고글처럼 눈에 밀착하는 전용기기는 이미 상용화됐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에서도 가상현실 생중계가 이뤄질 전망이다. 평창 올림픽 주관 통신사인 KT는 현재 LTE의 최대 속도(300Mbps)보다 33배 이상 빠른 5G 서비스와 함께 가상현실 중계를 평창 올림픽에 적용할 계획이다.
가상현실은 최근 주목받는 기술이다. 애플·구글·삼성전자 등 글로벌 기업들이 뛰어들면서 시장이 커지고 있다. 사실 이 기술은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1960년대부터 관련 연구가 시작됐다. 비디오 게임도 넓은 범주에서 가상현실 기술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컴퓨팅 기술의 발전으로 데이터 처리 속도와 메모리 성능이 좋아지고 초고화질 디지털 그래픽스의 구현이 가능해지면서 적용 범위가 늘고 있다. 스카이 다이빙, 스킨스쿠버, 모터스포츠 등 일반인들이 실제 접하기 어려운 익스트림 스포츠와 스키·골프 등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스포츠를 중심으로 가상현실 기술이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 이미 스크린 골프·승마·야구 등 가상현실 스포츠 체험은 수천억대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통신·방송사들은 미국프로풋볼(NFL) 수퍼보울, MLB 월드시리즈 등의 중계에 이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컨설팅회사 골드만삭스는 가상현실 생중계 시장이 2025년에 41억 달러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일부 스포츠 팀은 훈련에까지 가상현실 기기를 활용하고 있다. 선수들이 실제와 다름없는 가상의 환경에서 훈련을 하고, 새로운 각도에서 나온 플레이 장면을 보면서 전술에도 활용한다. NFL 댈러스 카우보이스,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등은 지난해 가상현실 기기를 훈련에 도입했다. 정광모 전자부품연구원 수석연구원은 “가상현실을 뛰어넘어 사람의 의식을 통제하는 대체현실 기술까지 나온 상태다. 실제라고 착각하게 할 정도로 기술이 발달하면서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기술이 인간의 능력을 완벽히 대체할 수는 없다. 정 연구원은 “미식축구에서 쿼터백이 헬멧에 가상현실 기기를 착용하고 컴퓨터가 지시하는 전술대로 터치다운을 기록할 날이 올 지도 모른다. 이처럼 스포츠계에서 끊임없이 기술을 수용하지만 언젠가는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디스토피아, 인간이 사라진 스포츠
로봇 심판을 뒤이어 로봇 선수가 등장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지난해 2월 미국프로골프협회(PGA) 투어 피닉스 오픈에서는 골프 로봇 ‘엘드릭(LDRIC)’이 등장했다. 엘드릭은 16번 홀(파3)에서 홀인원을 기록하며 화제가 됐다. 주말골퍼는 평생 한 번 하기도 힘든 홀인원을 로봇이 고작 5차례 샷 만에 해낸 것이다.
골프 연구기관인 골프 래버러토리스와 다인즈 언리미티드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엘드릭은 최고 시속 210km의 헤드 스피드를 낼 수 있다. 엘드릭은 골프 스타 타이거 우즈의 본명인 ‘엘드릭 톤트 우즈’에서 따온 이름이다. 배드민턴·탁구·야구·펜싱 등 팔을 쓰는 구기 종목에는 로봇 팔이 훈련 파트너 역할을 하고 있다. 인간과 실력을 겨루는 로봇 선수도 조만간 탄생할 것으로 보인다. 단순 동작을 반복하던 로봇이 인공지능과 만나 스스로 판단하고, 상황을 예측하는 수준까지 발전했기 때문이다.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의 등장은 스포츠 패러다임에 중대한 변화를 불러왔다. 기계도 스포츠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인간과 기계의 대결, 더 나아가 기계와 기계의 대결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미 로봇 축구, 로봇 격투기 대회가 열리고 있다. 유성건 교수는 “스포츠 종목간 융합과 진화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스포츠가 탄생할 수 있다. 바둑·체스 등이 (두뇌) 스포츠로 공인받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드론 레이싱, 퀴디치(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빗자루 폴로 게임) 등도 스포츠로 인정받을 수 있다. 관점에 따라 스포츠가 재정의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체육철학자 김정효 박사(서울대 강사)는 “스포츠의 본질은 인간 신체의 탁월성(기량)을 경쟁하는 것이다. 스포츠가 지나치게 상업화되면서 탁월성이 배제된 채 말초적인 승리와 재미만을 추구하고 있다.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스포츠가 주는 감동은 사라지고 승리의 쾌감만 남게 될 것이다. 인간이 사라진 스포츠는 놀이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 정영재 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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