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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 ‘치료에서 예방으로’

알츠하이머 ‘치료에서 예방으로’

99% 이상의 신약은 임상 단계에서 실패했고 시장에 출시된 극소수 신약들도 일부 증상 개선에 그쳐… 약물로 진전 늦추는 치료법 개발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추수감사절 전날 들려온 소식은 명절에 어울리지 않게 암울했다. 알츠하이머의 진행을 늦춰준다고 알려졌던 시험 단계의 신약이 초기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임상시험 결과 별다른 효과가 없다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마티 레이즈윅은 그 소식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아주 슬펐다”고 그는 말했다. “그 약이 우리의 삶을 바꿔놓을 거라고 기대했다.”

레이즈윅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지 않다. 38세의 부동산 중개인인 그는 건강하다. 그러나 레이즈윅은 대대로 알츠하이머를 앓아온 집안에서 태어났다. 레이즈윅의 삼촌 로이도 알츠하이머로 사망했다. 조부 랄프도 마찬가지였다. 11명의 대고모와 종조부들도, 10여 명의 사촌들도 알츠하이머로 세상을 떠났다. 레이즈윅의 64세 아버지는 알츠하이머로 죽어간다.

레이즈윅의 가족은 알츠하이머를 유발하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소유한 세계 약 500대 가문 가운데 하나다. 이 유전자가 있으면 통상 알츠하이머에 걸리는 80세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도 쉽게 발병한다. 레이즈윅 가문의 경우엔 50세 안팎에 알츠하이머가 닥쳐오기 시작한다. 그보다 더 위험도가 높은 집안에선 30대 중반, 심지어 20대 후반에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레이즈윅은 자신의 유전자를 검사해보지 않기로 했다. 아버지의 돌연변이 유전자를 물려받았을 가능성은 50%지만 레이즈윅은 모른 채로 지내는 쪽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서 운명을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3년 전 레이즈윅은 집안의 유전적 운명을 바꿀 수도 있는 혁신적 신약 시험에 참가했다. 그는 한 달에 한 번 간호사가 집으로 찾아와 팔에 주삿바늘을 꼽고 주머니 속에 가득 찬 액체가 한 방울씩 혈관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알츠하이머를 유발하는 돌연변이 유전자가 있으면 20대 후반에도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약효를 가늠하려는 모든 신약 임상시험이 그렇듯이 레이즈윅도 위약 효과를 얻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레이즈윅이 매달 주입받는 약물 속에 레이즈윅과 그의 가족, 그 밖에 그와 비슷한 운명에 처한 다른 사람들을 알츠하이머로부터 구해낼 성분이 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최소한 그 약물에 행복한 시간을 보다 오래 보낼 수 있도록 병의 진행을 늦춰주는 효과라도 있을지 모른다. 관건은 증상이 뚜렷해지고 뇌 손상이 지나치게 심각해지기 전에 빠르게 치료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게 바로 질병을 막는 방법”이라고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의 유전자·노인질환치료부장 루디 탠지는 말했다. “기다리면 안 된다.”

알츠하이머를 치료하기보다 예방한다는 전략은 지난 수십년 간 가장 흥미로운 진전인 동시에 연구자와 제약업계에는 매우 획기적인 출발점이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제약사들은 기억 상실이나 사고력 저하 등 치매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신약을 시험해왔다. 패배의 연속이었다. 99% 이상의 알츠하이머 신약은 임상 단계에서 실패했고, 시장에 출시된 극소수 신약들도 일부 증상을 개선하는 데 그쳤다. 병세의 진전을 늦추는 약은 단 하나도 없다.

그러나 이 새로운 접근법은 뇌 손상을 늦추는 아주 부분적인 성공만으로도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고 보스턴의 브리검여성병원 알츠하이머치료연구센터의 신경학자 레이사 스펄링은 말했다. 만약 약물 치료로 치매의 맹공격을 5~10년만 미룰 수 있다면 “아주 많은 사람이 요양원 대신 연회장에서 춤추다 사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스펄링은 전망했다.

이 전략은 현재 각각 5억~10억 달러 비용이 들어간 5건의 대규모 임상시험에서 시도되고 있다. 예방 치료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 연구가 해볼 만한 도박이라고 확신한다. “실패가 거듭되다 보니 때로는 의구심도 든다. 그러나 우리는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고 더 나은 시험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큰 진전을 이뤘다”고 F프라임 의생물연구구상의 스테이시 웨닝어 이사는 말했다. 웨닝어 이사는 알츠하이머 예방 치료를 연구하는 연구자 집단인 알츠하이머예방협력단체의 공동 의장이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이 질병을 막을 수 있다는 희망에 차 있다.”

이런 시험이 한두 건 성공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단지 레이즈윅 집안이나 다른 나이든 미국인의 목숨을 살릴 수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미국의 건강보험 제도를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치매는 간병 비용이 매우 많이 드는 질병이다. 향후 수년 내에 질환이 급격히 진전될 수 있는 환자가 수없이 많다.
알츠하이머를 치료하기보다 예방한다는 전략은 지난 수십년 간 가장 흥미로운 진전이다.
지금까지의 치료 시도에 있었던 문제들 중 하나는 알츠하이머 환자가 아닌 사람들에게까지 치료법 시험에 동원됐다는 점이다. 알츠하이머는 뇌를 해부하지 않으면 확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환자가 죽은 뒤 부검해보면 알츠하이머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지만 살아있는 사람에 대해선 의사들은 추측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게다가 추측에 기반을 둔 진단은 종종 틀렸다. 그래서 알츠하이머 치료법 연구 대상 중엔 다른 종류의 치매를 앓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으며, 그런 사람들은 알츠하이머 치료법으로 아무런 성과도 얻을 수 없었다. 돌이켜 보면 그런 연구는 애초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개발된 강력한 진단 도구 덕분에 알츠하이머 치료법은 오직 알츠하이머 환자들에게만 시술될 수 있게 됐다. 양전자방출단층촬영(Positron Emission Tomography, PET)과 요추 천자(spinal tap)가 그 진단 도구들이다. 이 도구들은 뇌 속에 끈적한 플라그를 생성해 알츠하이머를 유발하는 독성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검출해낸다. “이 도구들을 이용하면 알츠하이머 환자에게 아밀로이드 단백질 치료법을 적용할 수 있다”고 알츠하이머협회 글로벌과학연구구상(GCI) 이사인 제임스 헨드릭스는 말했다.

제약업체 일라이 릴리가 지난 추수감사절 시험했다가 실패했던 신약 ‘솔라네주맙’도 이런 치료법을 시도한 것이다. 릴리는 이전에도 두 차례에 걸쳐 각각 1000여 명의 알츠하이머 의심 환자들을 대상으로 솔라네주맙의 대규모 시험을 실시했다. 이 시험은 모두 실패로 끝났지만 일라이 릴리는 PET를 통해 시험 대상자 가운데 3분의 1은 알츠하이머 환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래서 뇌에서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검출된 사람들만을 한정해 세 번째 시험을 실행했지만 이것도 실패였다.

어쩌면 솔라네주맙이 좋은 약이 아니라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시험들에서 솔라네주맙은 의도한 대로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공격했으며, 인지 능력과 신체기능 측면에서 위약효과보다 약간 더 나은 효능을 입증했다. 판매하기엔 충분치 않은 효능이었지만 말이다. 스펄링을 비롯한 연구자들은 기존 시험에서 솔라네주맙의 약효가 미약했던 이유는 알츠하이머가 지나치게 진전돼 뇌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이 발생한 이후 투약됐기 때문일 수 있다고 기대한다. 만약 그 기대가 사실이라면 좀 더 일찍 투약했을 때 더 큰 효과를 보일 것이다.

“아주 초기 단계의 치매에서도 환자는 기억을 담당하는 뇌 속 주요 뉴런의 70% 가까이를 잃은 상태”라고 스펄링은 말했다. “결국 우리는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치료에 나서야 한다.”
제약회사뿐만 아니라 납세자들도 2025년까지 알츠하이머를 예방하겠다는 정부의 계획 하에 임상시험에 수천만 달러를 쏟아붓는다.
이제 연구자들은 아밀로이드가 인지 능력에 문제가 생기기 10년에서 20년 앞서 축적되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 축적 단계를 연구자들은 ‘임상 전 알츠하이머 단계(pro-clinical Alzheimer’s)’라고 부른다. 문제는 이 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펜실베이니아대학 기억센터를 총괄하는 제이슨 칼라위시는 이를 알츠하이머에 대한 우리 이해의 “완전한 개념 전환”이라고 설명한다. “언젠가는 치매 증상이 없어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는 날이 온다”고 그는 말했다.

알츠하이머 초기 단계는 집에 불이 나기 전의 불씨에 비교될 수 있다. 아밀로이드 플라그가 수년에 걸쳐 뇌 속 신경 장작을 연료 삼아 서서히 타오른다. 치매 증상이 나타났을 땐 불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있어 집을 구하기엔 이미 늦은 상태다. 이때 소방관을 부르는 건 시간과 돈 낭비다. 처음 연기가 날 때 119에 전화해야 한다. 이는 항아밀로이드 치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예방치료 시험 5개 가운데 3개는 뇌 속 아밀로이드 수치가 높거나 위험 유전자 APOE4를 물려받은 사람 등 알츠하이머 발병 확률이 높지만 아직은 인지 기능이 정상인 노인들에게 약을 투여했다. 이 시험들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피할 수 없는 결말에 도달했다.

나머지 두 시험은 의사가 유전자 검사를 통해 각 집안에서 누가 몇 살쯤 알츠하이머가 발현될지를 정확히 아는 집단에 대해서 시행됐다. 그중 피닉스의 배너알츠하이머연구소가 주도한 시험은 조기 알츠하이머를 일으키는 유전자가 가장 많이 알려진 컬럼비아에서 진행됐다.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워싱턴대학 유전알츠하이머네트워크시험단체(DIAN-TU)는 레이즈윅 가문을 포함해 50명 정도의 돌연변이 유전자를 보유한 집안을 대상으로 또 다른 시험을 했다.

“우리는 손상을 완화하고 증상을 늦추는 데 기대를 걸었다”고 레이즈윅의 6촌인 브라이언 휘트니는 말했다. 휘트니도 돌연변이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다. 현재 44세인 그는 지금 받고 있는 치료가 효과를 보이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알츠하이머에 걸릴 것이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DIAN-TU에 걸고 있다.

DIAN-TU는 알츠하이머 진전을 막기 위해 두 가지 치료법 시험을 동시에 진행한다. 참가자들은 두 가지 약 중 하나를 받는다. 휘트니는 제약회사 로체의 간테네루맙, 레이즈윅은 일라이 릴리의 솔라네주맙을 받고 있다. 이 두 약은 모두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공격하지만 방식은 조금 다르다. 간테네루맙은 뉴런을 괴사시키는 아밀로이드 플라그를 제거한다. 솔라네주맙은 플라그를 내버려두지만 추가적인 플라그 생성을 막기 위해 아직 고착되지 않은 단백질을 처리한다.

솔라네주맙은 마치 범죄에 취약한 청소년들을 동네 위험 지역에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하는 파견 상담사처럼 작용한다. 만약 아이들이 범죄조직에 가담하지 않으면 그 지역을 더 이상 파괴하지도 못할 것이다. 이 약은 아밀로이드를 제거해 이 단백질들이 서로 뭉쳐서 추가적인 플라그를 만들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몇 번이나 시험에서 실패한 약을 알츠하이머 예방 치료제로 사용해도 되는지 확신이 없다. 일부 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 이 전문가들은 항아밀로이드 약에 대한 연구는 낭비이며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솔라네주맙이 위약효과보다 조금 더 나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그 약에 희망을 건다고 비판한다.

“우리는 효용이 입증되지 않은 약으로 증상이 전혀 없는 사람을 치료하려 한다”고 페인스틴의학연구소 리트윈주커알츠하이머연구센터의 신경과학자 피터 데이비스 이사는 말했다. “그건 그들에게 아스피린을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연방 정부는 이 시험에 의미가 있다고 보는 듯하다. 제약회사나 자선사업가들뿐 아니라 납세자들도 2025년까지 알츠하이머를 예방 또는 치료하겠다는 정부의 계획 하에 이 시험에 수천만 달러를 쏟아붓는다. 실패하면 그 결과는 끔찍할 것이다. 미국인 약 540만 명이 알츠하이머로 고통받는다. 진전을 늦추는 치료법이 곧 개발되지 않으면 환자 수는 2050년까지 3배 가까이 늘어날 전망이다. 이 환자들을 간병하는 데 드는 비용은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더라도 현재의 2360억 달러보다 약 9배 증가한 2조 달러에 달한다.

현재 알츠하이머 환자나 기타 치매 환자들에게 의료보험 비용 5분의 1이 소모된다. 2050년엔 이 수치가 3분의 1로 증가할 것이다. 심지어 이 수치는 환자를 간병하기 위해 직장을 떠나는 가족들로 인한 임금 손실을 포함하지도 않은 것이다. 알츠하이머 환자들은 24시간 간병이 필요해 간병에 나선 가족들은 휴가를 가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치매 환자 간병인 가운데 3분의 1 이상은 우울증에 걸린다.

뉴욕 웨일코넬의과대학 아펠알츠하이머연구소의 그레고리 페츠코 소장은 “거의 모든 가족이 알츠하이머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고 이는 우리의 삶과 사고방식, 우리의 미래 계획까지 모든 것을 바꿔놓는다”고 말했다.
약물 치료로 치매의 맹공격을 5~10년만 미룰 수 있다면 많은 사람이 여생을 고통스럽게 보내지 않을 것이다.
DIAN-TU를 이끄는 랜달 베이트먼은 지난 솔라네주맙 시험이 실패하리란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지난해 추수감사절 가족들과의 저녁식사를 위해 분주히 집안일을 하던 그는 11월 23일 오전 일라이 릴리 경영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아주 실망스러웠다”고 베이트먼은 말했다. “그러나 놀랍지는 않았다.” 그는 늘 치료보다 예방이 성공 확률이 높다고 말해온 사람이다.

또 다른 예방치료 지지자는 서던캘리포니아대학 알츠하이머치료연구소의 신경과학자 폴 아이젠 소장이다. 2014년 아이젠은 스펄링과 함께 1150명을 대상으로 솔라네주맙을 투여하는 ‘무증상 알츠하이머 환자를 위한 항아밀로이드 치료(A4)’를 실시했다. PET를 통해 아밀로이드 축적량을 확인한 뒤 어느 정도 축적량이 있으면서 치매 증상이 없는 노인에게 약을 공급했다. 이 시험은 39개월에 걸쳐 인지 지능, 자기제어능력, 뇌 조직 건강 등 알츠하이머 관련 신체 요소의 변화를 측정한다. “증상을 보이지 않는 환자를 치료할 때 장점과 위험요소가 무엇인지를 알 필요가 있다”고 아이젠 소장은 말했다.

이 시험은 참가자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A4 시험 참가자들은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 달에 한 번 병원에 와서 아직 걸리지도 않은 질병에 대해 효과가 입증되지도 않은 약을 투여받아야 한다. 이 약이 효과가 있는지, 심지어 안전한지조차 검증된 바가 없다. 시험 보수가 특별히 높은 것도 아니다. 일부 참가자들은 모든 지시사항을 잘 따랐을 때 최대 2480달러까지 받을 수 있지만 그러려면 2번의 PET와 MRI 4회, 요추 천자 검사 2회, 그리고 42번에 걸쳐 투약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대다수 참가자들은 병원 주차권을 제외하면 아무 것도 받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리 블래커비(82)는 기꺼이 A4에 자원했다. “내 가족력을 봤을 때 죽기 한참 전에 알츠하이머가 올 것 같다”고 블래커비는 말했다. 그는 은퇴한 기술 전문 저술가다. 그의 어머니와 세 형제자매는 모두 알츠하이머로 사망했다. “만약 내가 알츠하이머를 앓게 된다면 적어도 다른 사람들, 특히 내 후손들만큼은 나와 내 가족이 겪었던 비극을 겪지 않도록 돕는 연구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블래커비는 첫 투약을 받기 위해 오클라호마 남부의 자택에서 댈러스의 텍사스대학 사우스웨스턴의료센터까지 160㎞를 넘게 운전했다. 앞으로 그는 3년 동안 매달 4시간에 걸친 왕복 운전을 해야 한다.

은퇴한 보험설계사 던이 A4에 참가한 것은 그의 연인 프랜 때문이었다. 던은 4년 전 처음으로 프랜이 알츠하이머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때 던은 프랜이 저녁으로 준비한 고기 스튜를 먹기 위해 그녀의 집을 찾았지만 냄비는 텅 비어 있었다. “프랜은 양파를 기억하고 있었다”고 던은 돌이켰다. “그러나 나머지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던은 프랜을 A4에 참가시키고 싶었지만 병세가 너무 많이 진전돼 있었다. 던만이 참가 요건에 부합했다. PET 결과 던은 뇌에 아밀로이드가 일정량 축적돼 있었다. 그는 지난가을부터 브링엄과 보스턴의 여성병원에서 투약을 받기 시작했다.
미국인 약 540만 명이 알츠하이머로 고통받는다. 진전을 늦추는 치료법이 곧 개발되지 않으면 환자 수는 2050년까지 3배 가까이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해 11월의 어느 비오는 날 던은 투약을 위해 오른팔에 관을 삽입했다. 그는 9년 전 보스턴 남부 교외의 빈센트 나이트클럽에서 프랜을 만났던 추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부드러우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활기찬 76세 남성 던은 33년 전 아내를 자동차 사고로 잃은 뒤 아이 여섯을 혼자 힘으로 키운 백발의 할아버지였다. 그는 프랜이 아직도 유머감각이 뛰어나고 테니스도 칠 수 있다고 눈을 반짝이면서 말했지만 자신이 왜 병원에 가는지 네 번이나 설명해야 했다고 말하는 대목에선 목소리가 무거워졌다. “프랜은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는다”고 던은 말했다. “하지만 잊어버린다.”

던과 대화하는 동안 간호사가 투약이 끝난 뒤 관을 청소하기 위해 식염수를 들고 다가왔다. 간호사가 자기소개를 했지만 던은 지난번 방문 때도 만났던 그녀를 알아봤다. “당신 얼굴을 잊을 수가 없어요.” 던은 말했다. “내 사촌하고 똑같이 생겼거든요.”

던의 뇌 속 아밀로이드는 기억을 손상시키지 않았지만 거기 존재한다. 어쩌면 그가 받고 있는 치료가 추가적인 피해를 막아줄지도 모른다. 아니면 프랜과 똑같은 운명에 처할 수도 있다. “내 자신도 아이들도 걱정된다. 하지만 아직은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고 던은 말했다. “지금도 내겐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A4 연구원 아이젠은 솔라네주맙이 효과적인 예방 치료제라고 낙관한다. 지난해 말 학회에서 알츠하이머 환자에 대한 솔라네주맙 치료가 실패했다고 발표하면서 그는 방에 가득한 의사들, 신경과학자들, 제약업체 임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치료 효과가 질병 초기 단계에선 더 크게 나타나리라고 기대한다.” A4 연구 결과는 2020년에 알 수 있다.

그때까지 일라이 릴리는 솔라네주맙을 포함한 예방 치료법을 연구하는 A4와 DIAN-TU를 계속 지원할 것이다. 그러나 릴리는 다른 치료법에 초점을 맞출 계획도 준비한다. 예방 치료를 연구하는 과학자들 상당수도 다른 약물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여전히 예방치료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떤 항아밀로이드 약이 가장 잘 듣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지난해 12월 베이트먼과 그의 동료들은 DIAN-TU 연구에 세 번째 시험 약물을 추가한다고 발표했다. 아밀로이드를 형성하는 베타절단효소를 막는 약이다. 또 아이젠 소장과 스펄링은 최근 EARLY라 불리는 대규모 예방치료 시험을 개시했다. A4처럼 건강하지만 뇌 속 아밀로이드가 일정량 축적된 사람들에게 베타절단효소를 차단하는 약을 투약하는 시험이다.
치매는 간병 비용이 매우 많이 드는 질병이다. 향후 수년 내에 질환이 급격히 진전될 수 있는 환자가 수없이 많다.
베타절단효소 차단제를 제조하는 제약업체 얀센의 알츠하이머신약개발부를 총괄하는 로이 트와이먼은 아이슬랜드의 한 연구 결과를 들어 이 전략이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5년 전 아이슬란드 연구진은 개인을 알츠하이머로부터 보호하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처음으로 발견했다. 북유럽 국가에서 200명 중 1명 꼴로 나타나는 아주 드문 유전자다. 이 유전자를 보유한 사람은 85세까지 치매에 걸리지 않을 확률이 보통 사람의 5배였다.

이 돌연변이 유전자가 하는 역할이 베타절단효소를 저지하는 일이다. “자연은 이미 인간에게 가르침을 줬다”고 트와이먼은 말했다. 얀센은 이 가르침을 자사 제품 판매대까지 가져가려는 것이다.

제약사 노바티스가 개발한 또 다른 베타절단효소 차단제는 배너알츠하이머연구소에서 에릭 레이먼과 그의 동료들이 실시하는 세대간 예방치료 시험에 사용되는 두 가지 약 가운데 하나다. 이 시험은 A4나 EARLY와 마찬가지로 알츠하이머 발현 가능성이 있지만 인지 기능이 정상인 노인을 대상으로 실시된다. 그러나 이 시험은 아밀로이드의 축적량 대신 APOE4 유전자 두 쌍을 물려받았는지 여부로 알츠하이머를 식별한다. 이 유전자 두 쌍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알츠하이머 발병 가능성이 15배나 된다.

전체 인구의 약 2% 정도가 APOE4 두 쌍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를 스스로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금까지는 알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알고자 하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했다. “이제 처음으로 이 검사가 의미를 갖게 됐다”고 피에르 태리엇 배너알츠하이머연구소 이사는 말했다. “시험에 참가할지 여부를 이 검사로 결정할 수 있다.”

알츠하이머 예방에 효과적인 약이 개발되면 새로운 과제가 떠오른다. 약값을 누가 지불할 것인가?

예방치료법 옹호자들은 누구나 특정 연령, 예컨대 50세 정도가 되면 정기적으로 알츠하이머 위험 요인을 판별하는 분자 및 유전자 검사를 받는 미래를 꿈꾼다. 검사 결과가 양성으로 나온 사람은 예방 치료제를 처방받을 수 있다. 마치 오늘날 콜레스테롤이 높은 사람들이 심장병 예방을 위해 매일 콜레스테롤 저하제를 먹듯이 말이다. “결국 우리는 더 폭넓은 인구를 치료하게 될 것”이라고 스펄링은 말했다.

그러나 스타틴의 한 알 당 가격은 매우 저렴하다. 알츠하이머 신약은 매년 막대한 비용이 든다. 보험사들은 겉으로 보기에 건강한 사람들을 위해 그만한 돈을 지불하길 꺼릴 수도 있다. 아밀로이드 축적량이 높거나 APOE4를 보유했다고 해서 항상 치매를 앓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알츠하이머신약개발재단의 하워드 필릿 최고과학책임자(CSO)는 연구자들이 증상이 있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것뿐 아니라 가벼운 인지 기능 저하(MCI)가 발생하는 초기 치매 단계에서 이 질환을 멈추게 하는 방법에도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본다. 기억, 사고, 판단에 관한 문제들은 노년기에 일반적으로 발생하는 건망증보다 훨씬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러나 이 같은 문제를 겪는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이 지속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못한 채 평소처럼 살아간다. “MCI는 검진 비용과 약값, 환자의 삶을 모두 고려했을 때 가장 이상적인 치료 시점”이라고 필릿 CSO는 말했다. “병이 발현되긴 했지만 치매를 막는다는 점에서 이는 예방이라고 할 수 있다.”

배우자가 장을 보러 갔다가 집으로 오는 길을 잃고 헤매거나 부모가 글씨를 쓰지 못하는 사례를 겪은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을 듯하다. 많은 연구자들이 모든 종류의 MCI 예방을 꿈꾸는 이유다. 이를 위해 연구자들은 아밀로이드가 뇌에 손상을 일으키기 전인 질병 초기 단계부터 약을 시험하고자 한다. 예를 들면 아이젠 소장과 스펄링은 가까운 시일 내에 아밀로이드 수치가 낮아 A4나 EARLY에 참가하지 못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시험을 계획하고 있다. DIAN-TU에 참여하는 신경과학자 에릭 맥데이드는 보다 확실하게 진단이 가능한 유전자 형태의 알츠하이머부터 치료를 시작할 계획이다. “가능한 한 빨리 치료를 개시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맥데이드는 말했다.

알츠하이머를 예방하는 신약 개발은 노벨상감이다. 현재 진행 중인 시험이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연구자들은 최근까지 의학계에서 가장 어렵다고 여겨진 문제의 해결책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믿는다. “흥분되는 시기”라고 배너알츠하이머연구소의 레이먼은 말했다.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는 치료법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희망이 있다. 이번 시험을 통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다.”

- 엘리 도긴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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