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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 CEO(2) 김언식 DSD삼호 회장

스포츠 & CEO(2) 김언식 DSD삼호 회장

리더십과 경영의 원리를 스포츠에서 찾는 CEO들이 많다. 김언식 DSD삼호 회장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아파트를 공급한 디벨로퍼다. 15년째 한국프로볼링협회(KPBA) 회장을 맡고 있는 김 회장은 사업가로서 성공을 거둔 배경에 대해 ‘볼링을 통해 체득한 페어플레이와 스포츠 정신’이라고 말했다.
김언식 회장 - 2002년부터 15년째 한국프로볼링협회(KPBA) 회장을 맡고 있는 김언식 회장. 1995년 프로 자격증을 딴 그는 1996년 필라컵 대회에서 프로볼링 사상 첫 퍼펙트 게임(300점 만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 김성룡
1988년 <일간스포츠> 주최로 열린 전국 직장인 볼링대회 마지막 날. 3인조 단체전 결승에 삼호건설과 삼영출판사가 올랐다. 마지막 게임 마지막 프레임에 삼호건설 김언식 선수가 섰다. 스트라이크를 치면 삼호건설이 역전승으로 우승하고 김언식 선수는 개인전 챔피언이 되는 상황이었다. 김 선수의 왼손을 떠난 볼링공은 핀 10개를 모두 쓰러뜨렸다. “스트라이크! 우승이다!” 환호성이 터지는 순간, 김 선수가 잠깐 멈칫 하더니 주심에게 다가갔다. “제가 파울라인을 밟은 것 같습니다. 경기 장면 화면을 확인해 주십시요.”

판독 결과 파울라인을 살짝 밟은 게 드러났다. 마지막 프레임이 0점 처리돼 김언식 선수는 단체전과 개인전 우승을 모두 내줬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스포츠맨십과 페어플레이 정신은 <일간스포츠> 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국내 최대 건설 시행사인 DSD삼호 경영
지난해 ‘한류 스타’ 김수현의 프로볼러 테스트 도전은 큰 화제를 불러왔다. / 프로볼링협회 제공
그 김언식 선수는 지금 국내 최대 건설 시행사인 DSD삼호 회장이다. 김 회장은 1980년 ‘삼호주택’이란 이름으로 건설 회사를 시작해 DSD삼호·신삼호·삼호건설·소리자비·호담 등 5개의 자회사를 거느린 그룹으로 성장시켰다. 그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아파트를 공급한 디벨로퍼다. 땅을 매입해 부동산 개발사업을 하는 사람이다. 땅 매입부터 기획, 인·허가, 설계, 금융, 마케팅, 건설, 관리까지 총괄한다. 김 회장은 용인 수지 LG빌리지, 용인 구성 래미안, 부산 해운대 대우트럼프월드 마린, 고양 일산 위시티 자이 등 해당 지역의 랜드마크로 꼽히는 아파트들을 지었다.

김 회장은 사업가로서 큰 성공을 거둔 배경을 ‘볼링을 통해 체득한 페어플레이와 스포츠 정신’이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는 1988년 ‘파울라인’ 사건을 되짚으면서 “당시 내가 파울을 인정하는 건 당연한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나와 함께 고생하며 결승까지 올라온 동료들에게는 정말 미안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내가 세상을 살아오면서 제일 어려운 것 중 하나가 남이 아닌 나를 속이는 일입니다. 많은 손해를 보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진정한 마음과 솔직한 태도의 스포츠맨십이 오늘의 작은 성취를 이룬 바탕이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김언식 회장은 2002년부터 15년째 한국프로볼링협회(KPBA) 회장도 맡고 있다. 1995년 3000명이 응모해 45명이 통과한 제1회 프로볼러 테스트에서 프로 자격증을 땄다. 1996년 필라컵 대회에서 프로볼링 사상 첫 퍼펙트 게임(300점 만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한동안 침체에 빠져 있던 볼링은 최근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한류 스타’ 김수현 등 연예인들이 잇따라 프로볼러에 도전하면서 볼링의 인기는 치솟고 있다. 경기도 수원시 인계동 DSD삼호 본사에서 김 회장을 만나 그의 ‘볼링 경영학’을 들었다.



일산 식사지구(경기도 고양시) 미분양 쇼크에서는 완전히 벗어났나요.


솔직히 고전한 건 사실입니다. 그냥 고전한 정도가 아니라 회사가 흔들릴 정도로요. 2007년부터 7~8년간 어려웠는데 지금은 다 정리됐습니다. 내가 잘못 판단한 걸 깨끗이 인정하고 가구당 25%씩 손해를 보면서 팔았습니다. ‘일산 식사자이’는 내가 정말 공을 들여 잘 지은 아파트지만 시대의 흐름이 큰 평수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거죠. 다른 시행사 중에는 ‘언젠가는 가격이 회복될 것이다’ 생각하고 미분양 아파트에 미련을 못 버리는 곳도 있더라고요. 제 경우는 운동을 한 것이 빠른 판단과 결단에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일산 식사자이는 IMF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12월 분양됐다. 4683가구의 매머드급 단지에 사업비가 3조4000억원에 달했다.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대대적인 할인분양을 해야 했고 8000억원 가량을 손해봤다. 김 회장은 빌딩 3개를 팔아 겨우 버텼다.)



볼링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데요.


예전에는 볼링장 운영을 돈벌이로만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마이카 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이 야외 스포츠로 빠져나가고, 볼링장은 노후화되고, 시설이나 분위기가 마음에 안 드니 사람들이 안 오고…. 이런 악순환 속에서 명맥을 유지한 사람들은 생계형 프로볼러들이었죠. 볼링이 좋아서, 생업의 터전과 연습장으로 운영하는 그 분들이 고객들에게 레슨도 하고, 서비스도 개선하고 이러면서 자생력과 경쟁력이 생긴 거죠.
 “김수현 씨 볼링 실력과 열정에 감동해”
김언식 회장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아파트를 공급한 디벨로퍼다. 그는 “볼링에서 얻은 교훈은 사업을 하는데도 변하지 않는 원칙이 되면서 지금의 DSD삼호를 일구는 데 큰 힘이 됐다”라고 말했다. / DSD삼호 제공


요즘은 젊은이들이 볼링장을 많이 찾습니다.


언젠가부터 볼링장을 운영하는 경기인끼리 내부 경쟁을 하게 됐습니다. 저기는 커피를 준다는데, 우리는 더 좋은 거 뭐 없나, 이런 식으로 고객의 니즈를 찾아 서비스 질을 높인 겁니다. 깨끗하고 시설 좋아지니까 사람들이 다시 찾게 됐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야간에 락 볼링을 즐깁니다. 신나는 음악과 뮤직비디오를 틀어 놓고 게임 중간중간에 맥주 한 잔씩 하면서 운동과 친교를 동시에 즐기는 거죠. 볼링장에서 주류 판매 허가를 받는 게 까다로웠는데 볼링인들이 힘과 지혜를 모아 풀어냈습니다.



연예인들의 볼링 사랑도 인기에 큰 몫을 했죠.


연예인들은 일의 특성이나 사생활 노출을 꺼리는 점 때문에 심야 시간에 모여 볼링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분들이 꽤 있었어요. 프로볼링협회 주도로 그분들과 인연을 맺고 지원을 해 왔습니다. 오지호·김성수 씨 같은 분들이 연예인 볼러 1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뒤에 신수지·채연 씨 등 프로볼러에 도전하는 분들이 늘어났죠. 특히 지난해 ‘한류 스타’ 김수현 씨가 프로볼러 테스트에 도전한 게 큰 화제를 불러왔습니다.



김수현 씨는 실력이 대단하다면서요


작년 프로 테스트 전에 연습하는 장면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김수현 씨는 일단 체격이 볼링에 최적화 돼 있어요. 키가 크고 호리호리하면서도 손발이 큽니다. 집중력과 하체 근력도 뛰어나고요. 박경신 프로에게서 조련을 받았는데 수준급 프로볼러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본인도 중국 공연 때 사회자가 ‘취미가 뭡니까’ 물어보자 ‘볼링입니다. 어제도 근처 볼링장에서 다섯 게임 쳤어요’라고 대답하는 걸 봤어요. 본인의 열정이 볼링 인구 늘리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김수현은 지난해 10월 프로볼러 1차 테스트에서 평균 221점을 쳤다. 프로볼링협회에서는 190점 이상을 친 응시자 중에서 볼링 발전에 기여한 사람을 특별 회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며 김수현에게 이를 제안했다. 그러나 김수현은 “실력으로 평가받고 싶다”며 사양했고, 결국 2차 테스트에서 아깝게 탈락했다.)



가족 스포츠로서 볼링의 위상도 높아지고 있죠.


맞습니다. 아무 장비 없이도 볼링장에만 가면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실수하면 함께 웃고 격려하고, 스트라이크를 치면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가족 간의 정도 깊어지죠. 운동량도 많아 다섯 게임을 하면 속보로 2시간을 걷는 유산소운동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명절이나 생일에 가족끼리 모여 볼링 한 게임 즐기는 문화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경남 창녕에서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김 회장은 어릴 적 아버지를 잃고 여섯 살 때 서울로 올라왔다. 어려운 형편 때문에 원하던 미대에 가지 못했고, 군 전역 뒤 형을 도와 건설업을 시작했다. 그때 볼링을 알게 됐고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는 일이 끝난 뒤 밤 11시부터 오전 1시까지 매일 볼링 연습을 했다. 심야 할인을 받을 수 있었고 조용히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지금도 술·담배를 하지 않는 김 회장은 “볼링을 한 덕분에 한창 젊을 때 방탕에 빠지지 않고 절제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었어요. 또 수많은 대회에 출전해 고수들과 겨루면서 트릭과 잔재주는 오래 가지 않고, 결국 땀 흘려 가다듬은 실력만이 통한다는 사실도 절감했어요. 볼링에서 얻은 교훈은 사업을 하는 데도 변하지 않는 원칙이 되면서 지금의 DSD삼호를 일구는데 큰 힘이 됐죠” 라고 말했다.

볼링과 경영의 닮은 점은 뭘까. 김 회장은 “볼링은 마무리가 중요합니다. 스트라이크가 통쾌하고 보기 좋지만 첫 투구 후 남은 핀을 쓰러뜨리는 스페어 처리가 점수를 좌우하죠. 주택사업 역시 끝마무리를 잘 해야 성공할 수 있는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무조건 세게 친다고 해서 핀이 다 쓰러지는 건 아닙니다. 가장 적절한 힘으로 적절한 위치에 볼을 일관되게 보낼 수 있을 때, 핀끼리의 액션이 가장 조화로울 때 비로소 스트라이크를 기록할 수 있죠. 또 볼링은 평정심을 유지할 때 가장 좋은 결과를 얻고, 흥분하거나 욕심이 앞서면 게임을 망치게 됩니다. 사회생활에서도 욕심을 버리고 상대를 대할 때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죠.”
 함께 운동하는 동료처럼 ‘어깨동무 경영’
너무 강력한 스트라이크 액션이 핀을 플라잉시켜 남지 않아야 할 스페어를 남기듯이 인간관계에서도 자기의 주장이 옳고 정당할지라도 너무 공격적인 태도로는 좋은 결과를 얻어내기 어렵다는 게 김 회장의 지론이다.

그래서 김 회장이 강조하는 게 ‘어깨동무 경영’이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도와주거나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상생의 동반자’로서 손을 맞잡는 것을 말한다. 그는 “사업의 파트너를 같은 종목 운동을 하는 동료라고 생각하면 훨씬 친근감이 느껴집니다. 상대에게 그 마음이 전이되면 그분도 ‘이 사람이 나를 비즈니스 대상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동료라고 생각하는구나’ 라고 느끼면서 마음을 여는 걸 많이 봤습니다”라고 경험담을 전했다.

김 회장은 부동산 개발사업을 하면서 한번 맺은 시공사와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시행사는 파트너가 일류 회사라서 품질에 신뢰를 갖고 맡길 수 있어 좋고, 시공사로서는 경쟁을 거치지 않고 일감을 따낼 수 있는 윈-윈 관계가 지속되는 것이다. 오랫동안 신뢰를 쌓다 보니 상대방이 뭘 원하는지 눈빛만 봐도 알 수 있고, 상대방을 재거나 의심하지 않고 방향만 결정되면 바로 공사에 들어갈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한다.

DSD삼호에는 독특한 수당 제도가 있다. 자녀수에 따라 가족수당을 차등 지급하는 것이다. 자녀 세 명이 있는 직원은 두 자녀 직원보다 가족수당을 월 60만원 더 받는다. 김 회장은 2009년 4월 이 제도를 시작한 뒤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지금까지 이를 지켜왔다. 그는 “저출산은 국가의 존립이 달린 중차대한 문제이지만 국가 주도로 끌고 가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국가가 아무리 방향을 잘 잡아도 기업이 먼저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해결이 어렵다고 생각해 오다 실행에 나서게 됐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사실 우리 회사는 임직원이 많지 않아 부담이 크지 않아요. 대기업들이 동참을 해야 효과가 있을 겁니다”라며 “국가를 대신해 출산 장려 차원에서 가족수당을 주는 회사에도 세금을 부과하고, 아이를 많이 낳아 가족수당을 더 받는 직원에게도 소득세를 더 걷는 건 불합리합니다. 가족수당에 대해 세금 혜택을 주셨으면 합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 회장은 공공택지 주택사업보다는 도시개발 사업에 관심이 많다. 넓은 지역에 대규모 단지를 계획적으로 조성하는 사업이다. 그는 “수도권 요지에 개발 안 된 공원과 그 일대를 이색 먹거리와 공연·전시를 즐길 수 있는 문화예술 공간으로 개발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귀띔했다. 각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건축물을 짓고 그 안에서 해당 국가의 음식·미술·공예·음악 등을 체험할 수 있는 명소로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예를 들어 일본 오사카성과 닮은 건물을 지어 일식과 일본 공예품을, 프랑스풍 건물을 지어 프랑스 음식과 분위기를 파는 것이다. 김 회장은 “역삼각형으로 모여 있는 10개의 볼링 핀을 어떻게 공략할까 고민하는 것처럼, 우리 국토의 땅들을 활용해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 늘 고민한다”고 했다.

- 정영재 중앙일보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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