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고요> 경매 최고가 갱신
김환기 <고요> 경매 최고가 갱신
한국 추상미술의 대가 김환기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973년, 미국 뉴욕에서 그린 푸른색 대형 전면점화 <고요> 가 K옥션 4월 경매에서 한국 미술품 최초로 경매 가격 65억원을 돌파했다. “#310 3분의 2 끝내다. 마지막 막음은 완전히 말린 다음에 하자. 피카소 옹 떠난 후 이렇게도 적막감이 올까.” 김환기(1913~1974)는 거대한 푸른 추상화 <고요(tranquility) 5-iv-73 #310> (이하 <고요> )를 그리면서 1973년 4월 10일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자신이 존경하던 거장 파블로 피카소가 세상을 떠나고 이틀 뒤였다. 그 ‘적막감’ 때문에 제목이 ‘고요’인 모양이다. 하지만 ‘적막’과 ‘고요’는 미묘하게 다르다. 적막은 만물이 쓸쓸하게 괴어 있는 것이지만 이 그림에서는 모든 것들이 움직인다.
무수한 푸른 점들은 하나하나 부드럽게 번지는 각진 테두리로 둘러싸여 있어서 광채를 내뿜으며 숨 쉬는 듯하다. 그 점들은 거대한 은하처럼 소용돌이를 그리며 순환한다. 사각형 테두리 안의 점들과 바깥의 점들은 서로 다른 축을 두고 회전하며 두 개의 우주처럼 장엄하게 충돌하고 서로에게 섞여든다. 마치 율곡 이이가 “누가 알까, 깊은 고요 속에도/ 땅을 울리는 파도 있음을”이라고 읊은 것처럼, 조용하게 그러나 웅장하게. 이 두 동심원은 각각 피카소와 김환기의 우주처럼도 느껴진다. 피카소가 타계한 이듬해 김환기도 세상을 떠났다. 이 거대한 시공간의 겹쳐짐 속에서 피카소와 김환기는, 김환기가 애송하고 그림으로 나타낸 김광섭의 시구처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지도 모르겠다.
<고요> 는 K옥션 4월 경매에서 65억원을 돌파했다. 한국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다. <고요> 는 가로 205㎝, 세로 261㎝ 크기다. K옥션은 “색채에서 한껏 밝고 환한 푸른빛을 띠고 있는데, 이후 회색 톤의 잿빛 점들로 변모하는 1974년 임종 직전의 작품과 비교해 보면 작가의 맑은 생명력과 서정성이 반영된 마지막 작품 중 하나”라며 “화면 분할에 따른 조형미가 뛰어나고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파란색은 추상화가 김환기를 대표하는 색상이다.
지금까지 경매로 팔린 ‘가장 비싼 한국 미술작품’들은 모두 지난 2년간 거래된 김환기의 그림이다. 그의 그림 중에서도 뉴욕시기(1963~74)에 그린 완전추상화이며, 그 중에서도 1970년부터 그의 타계 사이에 그린, ‘전면점화’라고 일컬어지는, 수많은 점으로 가득 찬 거대한 그림들이다. 지난해 11월 경매에서는 김환기의 1970년 작품 노란색 전면점화 <12-V-70 #172>가 63억3000만원에 낙찰됐다. 그런데 왜 다른 그림도 아니고 뉴욕시대 전면점화일까. 사실 대중이 더 사랑하는 것은 푸른 달과 하얀 달항아리가 어우러진 서정미 가득한 중기 그림들 아닌가.
김환기는 1972년 9월14일 일기에 이렇게 썼다. “아무 생각 없이 그린다. 생각한다면 친구들, 그것도 죽어버린 친구들, 또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친구들 생각뿐이다. 서러운 생각으로 그리지만 결과는 아름다운 명랑한 그림이 되기를 바란다.” 또 1970년 1월 27일 일기에서는 “내가 찍은 점(點),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라고, 같은 해 6월23일 일기에는 “마산에서, 편지의 구절에, 이른 아침부터 뻐꾸기가 울어댄다 했다. 뻐꾸기 노래를 생각하며 종일 푸른 점을 찍었다”라고도 했다. 뻐꾸기 노래의 특징은 규칙적이고, 그윽하게 잘 울려 퍼지고, 소리와 소리 사이 여운이 오래 남는다는 것. 그래서 테두리를 가진 점들의 일정한 반복에 잘 어울린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서 테두리로 둘러싸인 점들은 광채의 여운을 남기는 별인 동시에 울림의 여운을 남기는 소리이자 음악이기도 하며, 또한 그리움의 여운을 남기는 사람들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전면점화는 뉴욕에서의 오랜 고독 속에서, 고독 속의 분투 속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사실 뉴욕은 김환기가 동경했던 도시가 아니었다. 그가 동경한 건 파리였다. 그러나 막상 파리에 갔을 때(1956~59), 김환기는 자신의 화풍을 거의 바꾸지 않았다. 조선백자 달항아리·달·산·나무·매화·새 등의 한국적·동아시아적 모티프를 반구상-반추상의 유화로 표현하던 스타일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런데 1963년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가한 후 그는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던 뉴욕으로 직행했고, 그곳에서 거듭된 실험을 하며 완전추상으로 전환했다. 예전보다 “기운이 없는” 유럽 회화들, 그리고 그와 반대로 힘이 넘치는 미국 추상표현주의 회화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늘 말해온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미술”을 실현할 장으로 뉴욕을 택했다. 하지만 뉴욕에서 처음 당한 것은 혹평이었다. 1964년 개인전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동아시아적 특색이 없고 질감이 지나치게 두텁다”며 신랄한 단평을 했다. 김환기는 발끈해서 서울로 돌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뉴욕에 남았다. 쉰이 넘은 나이에 과거의 명성과 지위를 뒤로하고, 그야말로 ‘계급장 다 떼고’ 현대미술의 전쟁터와도 같은 뉴욕에서 싸웠다. 김환기는 NYT의 혹평에 무너지지도 휘둘리지도 않았지만, 귀를 아주 닫지도 않았다. 서구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동아시아 모티프 대신 세계 보편적인 완전추상으로 전환하는 한편, NYT가 혹평한 두터운 질감을 수묵화 같은 맑고 얇은 질감으로 바꾸는 것으로 동아시아적 전통을 실현했다. 이런 변화의 실험을 거듭한 끝에 탄생한 것이 바로 70년대 전면점화다.
뉴욕시기의 전면점화는 이전보다 훨씬 거대해진 화폭에 무수한 점이 나타난다. ‘고요’ 같은 그림이 불러일으키는 우주적 숭고의 감정은 마크 로스코, 바넷 뉴먼 등 소위 ‘색면파’라 불리는 일군의 뉴욕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이 추구한 숭고의 미학과 연결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동아시아적 철학도 융합시켰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의 점들은 그리움 속 ‘사람들’이며, 지상의 ‘뻐꾸기 노래’이자 천상의 ‘별’이다. 그의 그림에서는 그렇게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가 되어 천지인(天地人) 합일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전면점화를 보며 NYT도 나중에 김환기에 대해 보다 긍정적인 평을 하게 되었고, 그 후 그에 대한 국제적 인지와 평가의 확대는 계속 진행 중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제 미술시장에 적극 반영되고 있는 셈이다. <고요> 는 서구적 숭고의 미학과 천지인 합일 및 인연의 순환을 다룬 동아시아 철학이 모두 담겨 있는 정수 중 하나다.
-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symoon@joongang.co.kr 고요> 고요> 고요> 고요> 고요(tranquility)>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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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푸른 점들은 하나하나 부드럽게 번지는 각진 테두리로 둘러싸여 있어서 광채를 내뿜으며 숨 쉬는 듯하다. 그 점들은 거대한 은하처럼 소용돌이를 그리며 순환한다. 사각형 테두리 안의 점들과 바깥의 점들은 서로 다른 축을 두고 회전하며 두 개의 우주처럼 장엄하게 충돌하고 서로에게 섞여든다. 마치 율곡 이이가 “누가 알까, 깊은 고요 속에도/ 땅을 울리는 파도 있음을”이라고 읊은 것처럼, 조용하게 그러나 웅장하게. 이 두 동심원은 각각 피카소와 김환기의 우주처럼도 느껴진다. 피카소가 타계한 이듬해 김환기도 세상을 떠났다. 이 거대한 시공간의 겹쳐짐 속에서 피카소와 김환기는, 김환기가 애송하고 그림으로 나타낸 김광섭의 시구처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지도 모르겠다.
<고요> 는 K옥션 4월 경매에서 65억원을 돌파했다. 한국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다. <고요> 는 가로 205㎝, 세로 261㎝ 크기다. K옥션은 “색채에서 한껏 밝고 환한 푸른빛을 띠고 있는데, 이후 회색 톤의 잿빛 점들로 변모하는 1974년 임종 직전의 작품과 비교해 보면 작가의 맑은 생명력과 서정성이 반영된 마지막 작품 중 하나”라며 “화면 분할에 따른 조형미가 뛰어나고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파란색은 추상화가 김환기를 대표하는 색상이다.
지금까지 경매로 팔린 ‘가장 비싼 한국 미술작품’들은 모두 지난 2년간 거래된 김환기의 그림이다. 그의 그림 중에서도 뉴욕시기(1963~74)에 그린 완전추상화이며, 그 중에서도 1970년부터 그의 타계 사이에 그린, ‘전면점화’라고 일컬어지는, 수많은 점으로 가득 찬 거대한 그림들이다. 지난해 11월 경매에서는 김환기의 1970년 작품 노란색 전면점화 <12-V-70 #172>가 63억3000만원에 낙찰됐다.
가장 비싼 한국 미술품들은 김환기 작품
김환기는 1972년 9월14일 일기에 이렇게 썼다. “아무 생각 없이 그린다. 생각한다면 친구들, 그것도 죽어버린 친구들, 또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친구들 생각뿐이다. 서러운 생각으로 그리지만 결과는 아름다운 명랑한 그림이 되기를 바란다.” 또 1970년 1월 27일 일기에서는 “내가 찍은 점(點),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라고, 같은 해 6월23일 일기에는 “마산에서, 편지의 구절에, 이른 아침부터 뻐꾸기가 울어댄다 했다. 뻐꾸기 노래를 생각하며 종일 푸른 점을 찍었다”라고도 했다. 뻐꾸기 노래의 특징은 규칙적이고, 그윽하게 잘 울려 퍼지고, 소리와 소리 사이 여운이 오래 남는다는 것. 그래서 테두리를 가진 점들의 일정한 반복에 잘 어울린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서 테두리로 둘러싸인 점들은 광채의 여운을 남기는 별인 동시에 울림의 여운을 남기는 소리이자 음악이기도 하며, 또한 그리움의 여운을 남기는 사람들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전면점화는 뉴욕에서의 오랜 고독 속에서, 고독 속의 분투 속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사실 뉴욕은 김환기가 동경했던 도시가 아니었다. 그가 동경한 건 파리였다. 그러나 막상 파리에 갔을 때(1956~59), 김환기는 자신의 화풍을 거의 바꾸지 않았다. 조선백자 달항아리·달·산·나무·매화·새 등의 한국적·동아시아적 모티프를 반구상-반추상의 유화로 표현하던 스타일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런데 1963년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가한 후 그는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던 뉴욕으로 직행했고, 그곳에서 거듭된 실험을 하며 완전추상으로 전환했다. 예전보다 “기운이 없는” 유럽 회화들, 그리고 그와 반대로 힘이 넘치는 미국 추상표현주의 회화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늘 말해온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미술”을 실현할 장으로 뉴욕을 택했다. 하지만 뉴욕에서 처음 당한 것은 혹평이었다. 1964년 개인전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동아시아적 특색이 없고 질감이 지나치게 두텁다”며 신랄한 단평을 했다. 김환기는 발끈해서 서울로 돌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뉴욕에 남았다. 쉰이 넘은 나이에 과거의 명성과 지위를 뒤로하고, 그야말로 ‘계급장 다 떼고’ 현대미술의 전쟁터와도 같은 뉴욕에서 싸웠다.
추상표현주의·동아시아 철학 융합
뉴욕시기의 전면점화는 이전보다 훨씬 거대해진 화폭에 무수한 점이 나타난다. ‘고요’ 같은 그림이 불러일으키는 우주적 숭고의 감정은 마크 로스코, 바넷 뉴먼 등 소위 ‘색면파’라 불리는 일군의 뉴욕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이 추구한 숭고의 미학과 연결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동아시아적 철학도 융합시켰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의 점들은 그리움 속 ‘사람들’이며, 지상의 ‘뻐꾸기 노래’이자 천상의 ‘별’이다. 그의 그림에서는 그렇게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가 되어 천지인(天地人) 합일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전면점화를 보며 NYT도 나중에 김환기에 대해 보다 긍정적인 평을 하게 되었고, 그 후 그에 대한 국제적 인지와 평가의 확대는 계속 진행 중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제 미술시장에 적극 반영되고 있는 셈이다. <고요> 는 서구적 숭고의 미학과 천지인 합일 및 인연의 순환을 다룬 동아시아 철학이 모두 담겨 있는 정수 중 하나다.
-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symoon@joongang.co.kr 고요> 고요> 고요> 고요> 고요(tranquility)>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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