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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속도로 작동하는 ‘퀀텀’이 일상으로

빛의 속도로 작동하는 ‘퀀텀’이 일상으로

IBM, 최초의 상용 클라우드 양자 컴퓨팅 시스템 ‘IBM Q’ 발표… 신약개발, 주식투자 방식에 혁신 일으킬 잠재력 지녀
IBM Q 양자 시스템과 서비스는 IBM의 클라우드 플랫폼을 통해 제공된다. IBM 양자 컴퓨팅 과학자 백한희(왼쪽)와 새러 셀던.
다음은 현대 인류가 안고 있는 3가지 난제다. 비료 생산에만 매년 전 세계 에너지의 1%가 쓰인다. 태양광 패널로는 대다수 주택의 전력을 공급하기에 부족하다. 주식투자는 종종 러시안 룰렛 게임 같은 느낌을 준다.

일부 과학자에 따르면 이 같은 이질적인 문제들을 모두 양자 컴퓨팅 하나로 해결할 수 있다. 초전도 입자를 이용해 과업을 수행하는 양자 컴퓨터는 오래 전부터 보통 사람들과는 동떨어진, 최고 수준의 학자들이나 이용하는 고급품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젠 상황이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상업적 가능성을 타진해 오던 IBM이 지난해 퀀텀 익스피리언스(Quantum Experience)를 발표했다. 과학자들이 양자 시스템을 구입하지 않고도 실험할 수 있는 클라우드 기반의 양자 컴퓨팅 서비스다. 지난 3월 초 IBM은 그 프로그램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켜 최초의 상용 클라우드 양자 컴퓨팅 시스템 IBM Q를 발표했다. 기업들이 미국 뉴욕 주에 있는 IBM의 양자 컴퓨터들을 일정 시간 임대할 수 있다. IBM은 서비스 개시일이나 가격은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처음에는 중소기업엔 그림의 떡으로 비칠 만큼 비쌀 것으로 예상된다.

양자 컴퓨팅의 상용화는 앞으로 수십 년 뒤에나 가능하다고 예상됐었다. 바로 그런 점에서 이번 발표가 눈길을 끈다고 로런스 버클리 국립연구소의 컴퓨터공학 연구원 재러드 매클린은 말했다. 지난해 일부 전문가가 상용화 실험은 5~40년 뒤에나 가능하다는 예상을 내놓은 상황에서 IBM의 발표가 나왔다. 그 시스템은 제약업체의 신약개발, 물류업체의 열차 일정수립, 헤지펀드 매니저의 주식투자 방식에 일대 혁신을 일으킬 잠재력을 지닌다. 매클린 연구원은 “이제 사람들이 양자에 주목하면서 응용 분야가 더 많이 개발되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전통 컴퓨팅과 양자 컴퓨팅의 차이는 주판과 맥북에 비교된다. IBM 시스템스의 양자 컴퓨팅·기술전략·변혁 담당 부사장 겸 최고기술책임자(CTO)인 스콧 크라우더는 "전통 컴퓨팅은 1940년대 발명됐다”고 말했다 “양자 컴퓨팅도 그와 비슷하지만 그것을 뛰어넘는다. 기존에 갖고 있던 컴퓨터 작동방식에 관한 우리의 모든 지식을 버려야 한다.”

양자 컴퓨터는 양자 비트로도 알려진 큐비트(qubits)라는 소자로 이뤄진다. 양자역학의 특이한 물리적 특성을 토대로 전통 컴퓨터 칩보다 빨리 작동한다(비행기와 레이스카를 정확히 비교할 수 없듯이 전통 컴퓨터가 양자 컴퓨터보다 더 뛰어난 분야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기능이 서로 다를 뿐이다).

큐비트의 원리를 설명하려면 양자역학의 세계로 뛰어들어야 한다. 양자역학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물리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양자얽힘(quantum entanglement)과 양자중첩(quantum superposition)이 특히 중요하다. 이들은 상식을 거부하지만 극히 미세한 환경에서만 발생한다.

양자중첩은 큐비트가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엄밀히 말해 큐비트가 동시에 두 가지 상태가 될 수 있다. 전통 컴퓨터는 비트를 0과 1로 구성해 연산처리를 하는 반면 큐비트는 동시에 0도 되고 1도 될 수 있다. 또 다른 양자 특성인 양자 얽힘은 그 가능성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른 두 큐비트의 특성들을 엮어 더 많은 계산을 할 수 있게 한다. 전통 컴퓨터로는 인간의 수명보다 더 오래 걸릴 만한 계산이 몇 일 또는 몇 시간 만에 끝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양자 컴퓨팅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 그리고 그 뒤에는 그동안 제작된 컴퓨터를 모두 합친 것의 성능을 능가할 수 있다. 아직 그런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50큐비트가 되면 범용 양자 컴퓨팅이 그런 분기점에 도달해 기존 컴퓨터는 처리할 수 없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게 된다고 IBM의 실험 양자 컴퓨팅부 소속의 제리 초우는 말한다. IBM은 “앞으로 수년 내에” 50큐비트 시스템을 개발해 공급할 계획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구글은 올해 말까지 49큐비트 시스템의 완성이 목표다.

IBM의 상업용 시장 진출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전문가들도 있다. 스탠퍼드대학 물리학과 야마모토 요시히사 교수는 “IBM 양자 컴퓨터가 우리의 일상생활에 변화를 가져올 만큼 상용화하려면 앞으로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공대 컴퓨팅·수학과의 토마스 비딕 조교수는 IBM의 양자 컴퓨팅 상용화는 “다소 시기상조”이며 상업적 응용이 자리 잡기까지 앞으로 10~20년은 더 걸린다고 예상한다. 그는 “양자 하드웨어가 아직 성숙 단계에 이르지 목했다”고 설명한다. “양자 컴퓨터는 대형 장치이며 통제가 어렵다. 우리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그 장치가 해결할 수 있는 형태, 즉 그 구조에 적합한 문제로 변환하는 과정에 큰 오버헤드(overhead, 특정 작업에 간접적으로 요구되는 시간과 메모리 등의 자원)가 요구된다.”

그런 회의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많은 과학자가 들떠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 워털루대학 양자 컴퓨팅 연구소 공동설립자 미셸 모스카는 “일반 컴퓨터로 불가능한 컴퓨터 작업이 양자 시스템으로 해결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소프트웨어 기반을 미리 마련해두면 실용적인 대형 시스템이 공급될 때 곧바로 활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더 대형의 양자 컴퓨터가 개발돼 중요한 설계와 최적화가 해결되면 일상생활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할 것이다.”

D-웨이브 시스템스라는 회사가 이미 2000 큐비트 시스템을 판매하지만 IBM과 기타 형태의 범용 양자 컴퓨터와는 다른 장치다. 따라서 그들의 기술이 양자 컴퓨팅의 결승선에 도달했다고 간주하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D-웨이브 시스템스의 컴퓨터는 양자 어닐러(quantum annealer)라는 유형의 양자 컴퓨터다. 최적화 문제에만 사용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양자 어닐러가 궁극적으로 전통 슈퍼컴퓨터를 뛰어넘을 수 있는지를 두고 과학계에서 뜨거운 논쟁이 벌어진다. 그러나 그와 관계없이 이런 유형의 양자 컴퓨터는 틈새 문제의 해결에 매우 뛰어나지만 당장 그 이상은 기대하기 어렵다.

도대체 어떤 문제가 양자 컴퓨터를 필요로 할 만큼 복잡할까? 매클린 연구원은 비료 생산을 예로 든다. 비료의 대량 생산에는 전력이 많이 소모돼 해마다 세계 에너지 소비량의 1~2%를 차지한다. 그러나 실내온도에서 효소를 이용해 질소고정(nitrogen fixation, 대기 중의 질소를 생물체가 이용할 수 있는 질소화합물로 바꾸는 일) 기능을 하는 남세균이 있다. 공업적인 방식보다 에너지 효율이 훨씬 더 뛰어나다는 의미다. 매클린 연구원은 “지금껏 전통 시스템으로선 너무 난해한 문제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양자 컴퓨터가 필시 효소의 비밀을 밝혀내 과학자들이 합성을 통해 그 과정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내다본다. “자연이 어떻게 이런 특정한 촉매작용을 할 수 있느냐의 관점에서 대단히 흥미롭다.”

제약업계도 혜택을 볼 수 있다. 싸고 좋은 약의 개발을 가로막는 제약요인 중 하나는 전자구조와 관련해 발생하는 문제들이라고 매클린 연구원은 말한다. 수소 기반 분자처럼 가장 간단한 구조를 제외하곤 원자와 아원자의 움직임을 이해하려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돌려야 한다. 그러나 더 복잡한 분자에는 그마저도 통하지 않는다. “틀린 답이 나올 게 뻔해 전통 컴퓨터에는 그런 질문을 하지도 않는다”고 크라우더 CTO는 말한다.

분자들이 다른 약품에 어떻게 반응하고 특정 촉매제가 신약개발에 얼마나 효과적인지 예측할 수 있으면 신약개발 기간을 크게 단축하고 이상적으론 가격까지 낮출 수 있다고 매클린 연구원은 설명했다.

금융도 여러 개의 가변 요소를 가진 복잡한 문제들로 어려움을 겪는다고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 컴퓨터 연구부의 마르코스 로페스 드 프라도 연구원은 말한다. 인공지능으로 시장에 적응할 수 있는 역동적 투자 포트폴리오를 개발하거나 다수의 변수를 가진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방법이 이상적이지만 현재의 컴퓨터는 이런 방식을 구현할 만큼 발달되지 않았다. 로페스 드 프라도 연구원은 “오늘 최적의 포트폴리오가 내일엔 최적이 아닐 수 있다”며 “양자 간의 균형 회복에 너무 큰 비용이 들어 그런 시도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양자 컴퓨팅으로 날마다(또는 분 단위로) 포트폴리오의 균형을 회복하는 최적의 방법을 알아낼 수 있다. “디지털 컴퓨터의 현재 잠재력을 뛰어넘는 컴퓨팅 성능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로페스 드 프라도 연구원이 말했다. “월스트리트 관련 전문가의 조언을 듣거나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대신 어림짐작하지 않고 마침내 과학적으로 판단하는 데 필요한 도구를 확보할 수 있다.”

양자 컴퓨팅의 비즈니스 응용은 대체로 희망 섞인 이론들이지만 적어도 최적화 문제에선 양자 컴퓨팅이 큰 가치를 지닐 수 있다고 전문가들도 입을 모은다. 양자 컴퓨팅을 이용해 업무활동을 더 빠르고 스마트하고 싸게 만드는 방법을 ‘생각’해내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수많은 산업에 혁신을 일으킬 수 있다고 로페스 드 프라도 연구원은 말한다.

예컨대 성탄절을 앞두고 배달이 밀릴 때 양자 컴퓨터로 배달차량 노선을 최적화해 선물이 더 빨리 도착하도록 할 수 있다. 자율주행차 수천 대의 노선을 조정해 모든 차량이 가장 빠른 길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게 만드는 일도 가능하다. 자동 번역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국제 거래에서 이메일 번역으로 인한 시간지연을 피할 수도 있다. “최적화는 이런 갖가지 못에 사용할 수 있는 범용 망치”라고 매클린 연구원은 말한다.

언젠가는 미국 경제의 최적화나 전국 전력망 정비 같은 전국적인 문제에도 양자 컴퓨팅을 응용할 수 있게 될지 모른다. 컴퓨터가 처음 시장에 나왔을 때 그것을 들여놓을 수 있는 기업들이 큰 혜택을 봤듯이, 이번에는 양자 컴퓨팅을 이용할 수 있는 기업이 전술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예컨대 극소수 투자자들만 양자 컴퓨팅을 이용해 포트폴리오의 균형을 잡게 되면 나머지 투자자는 필시 손실을 입는다. “하지만 양자 컴퓨팅이 주류로 자리 잡는다면 어떻게 될까?”라고 로페스 드 프라도 연구원은 묻는다. “그런 전술적 이점은 사라진다. 대신 모두가 옳은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이 스토리가 아니라 과학에 근거해 결정을 내릴 수 있다.”

- 메리디스 러틀랜드 바우어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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