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수의 투자 오딧세이(5) 상승장서 수익 찔끔 손실 왕창, 왜?
서명수의 투자 오딧세이(5) 상승장서 수익 찔끔 손실 왕창, 왜?
인간은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다. ‘쩐의 전쟁’이 벌어지는 증시에서의 행태가 더욱 그렇다. 대표적인 것이 ‘물 좋은’ 상승장에서 수익을 빨리 현실화하려는 ‘처분효과’다. 개인들 사이에서 일반화한 성향으로 돈 벌 수 있는 기회를 발로 차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주가를 자주 확인 하지 않는 것이다. 주가를 자주 들여다보면 처분효과의 포로가 돼 단타매매에 빠진다. 투자성과가 좋을 리 없다. 주식시장에 장밋빛 전망이 가득하다. 그간 급하게 올랐으니 상승 열기를 식히는 조정이 나타날지 모르지만 지금의 상승장은 더 간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일부 성급한 전문가는 대세상승론을 솔솔 지핀다. 근거는 충분하다. 무엇보다 경제 전 부분에 걸쳐 회복세가 완연하다. 경기는 이미 바닥을 찍었다는 분석도 있다. 또 최근 수년간 지루한 박스권 장세에서 매물소화 과정을 거치며 상승 에너지를 축적했다. 시장은 잔치를 벌일 준비에 들어간 듯하다. 그러나 정작 시장 참여자인 개인들은 우울하다. 자기가 가진 주식이 안 올랐거나 이미 처분해 잔치를 즐길 처지가 아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개인들의 사정이 대개 이렇다. 왜 그럴까.
투자경력 10년 가까운 50대 중반의 김모씨. 그는 2년여 전 증권주를 1000만원어치 매입했다. 주가가 오르긴 올랐어도 더 오를 것이란 기대에서였다. 그러나 상투였다. 증권주는 그가 사자마자 일제히 하락세로 기울었다. 중간에 몇 차례 반등하기 했지만 매입가에 미치지 못했고, 마침내 반토막이 나자 아예 파는 것을 포기했다. 그러던 주가가 올 2월부터 슬금슬금 오르더니 어느 듯 매입가를 웃돌게 됐다. 김 씨는 이 때다 싶어 주식을 처분했으나 그 뒤로도 줄곧 오름세다. 김씨는 금전상 손해는 없지만 매도를 서두른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요즘처럼 ‘물 좋은’ 장에서 김 씨와 같은 심정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다. 주가가 떨어져 본의 아니게 주식을 오래 보유하다가 원본이 회복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매도에 나서는 것이 개인들의 매매 행태다. 만약 주가가 매도 후에도 오른다 하더라도 섣불리 재매입을 하지 못한다. 여러 종목을 보유하는 포트폴리오 투자의 경우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음과 상황을 가정해보자. A회사 주식과 B회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두 주식 모두 100만원에 샀다. 현재 A 회사는 50만원이고 B 회사는 150만원이다. 이번 달 아파트 관리비 50만원을 내야 하는데 현금이 없다. 그래서 둘 중 하나를 팔아야 한다. 개인들은 이 상황에서 십중팔구 이익을 보고 있는 B 주식을 팔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이익을 내고 있는 주식을 팔고 손실을 내고 있는 주식을 보유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A 회사 주식을 파는 순간 손실이 확정되기 때문에 그것을 피하고 싶은 때문은 아닐까.
투자자들이 오른 주식은 팔고 내린 주식은 계속 보유하려는 경향을 ‘처분효과(disposition effect)’라고 한다. 처분효과는 개인들 사이에 일반화한 고질병으로 손실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특히 요즘처럼 시장이 좋을 때 돈 벌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린다. 처분효과는 손실을 실현할 때의 고통을 피하려는 심리 때문인데, 상승장에서는 이익을 줄이고 하락장에서는 손실을 더 키우는 결과를 낳는다. 인간은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다.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고 이상한 판단을 내린다. 100만원에 산 주식의 가격이 20% 올랐다고 하자. 많은 사람이 주식을 팔아 수익을 거두고 싶어할 것이다. 하지만 20% 떨어지게 되면 더 지켜보자는 결정을 하게 된다. 수익은 재빨리 현실화하고 싶고 손실은 최대한 뒤로 미루려는 것이 사람 심리다. 이는 행동경제학자들이 ‘전망이론(Prospect Theory)’을 통해 실증 분석한 내용이다.
투자의 세계에선 누구나 위험을 싫어한다. 위험회피 개념을 최초로 설명한 인물이 18세기 스위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야콥 베르누이다. 베르누이는 유체의 속도가 빨라지면 압력이 낮아진다는 베르누이 정리로도 유명하다. 그는 사람의 행복은 돈이 많아질수록 증가하지만 그 증가율은 감소한다고 가정했다. 부의 한계효용이 체감하기 때문이다. 부가 늘어나면서 추가된 부의 증가분의 영향력은 떨어지는 것이다. 예컨대 가난한 사람에게 1억원은 횡재지만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에겐 큰 의미가 없다. 돈이 많을수록 돈을 벌려고 모험을 감행하지 않는다. 이 말은 돈이 어느 정도 있으면 확실히 얻을 수 있는 100만원과 50%의 확률로 얻을 수 있는 200만 원 중 선택을 할 경우 확실한 쪽인 전자를 택하는 사람이 많은 것과 같은 의미다. 내기에 이겼을 때 받게 되는 두 번째 100만원의 가치는 첫 번째 100만원의 가치보다 낮기 때문에 200만원을 얻기 위해 첫 번째 100만원을 날려버릴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의사결정은 효용의 절대적 가치보다는 상대적 가치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다. 예를 들어 연봉이 3800만원인 사람과 3000만원인 사람 중 누가 더 행복할지 물으면, 당연히 연봉이 3800만원인 사람이 더 행복하다고 대답한다. 그렇지만 전년 연봉이 각각 4000만원과 2800만원이었다는 전제가 붙는다면 연봉 3800만원 보다 3000만원인 사람이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말하자면 부는 절대액수가 아니라 변화 측면을 따지는 것이 현실적인 효용 측정 방식이란 이야기다.
이스라엘 출신 심리학자로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은 이런 관점에서 위험에 대한 선택의 문제를 다뤘다. ‘전망이론’라는 것인데 현대경제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전망이론의 가장 중요한 발견은 인간이 손실을 끔찍하게 싫어한다는 것이다. 이를 ‘손실회피’ 성향이라고 한다. 손실회피는 한마디로 이익이 가져다 주는 기쁨보다 손실이 가져다 주는 고통이 더 큰 현상을 말한다. 부의 효용곡선을 이익구간과 손실구간으로 나눠 그래프를 그려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는다. 효용곡선은 전체적으로 S자 형태를 취하는데, 그래프처럼 이익구간보다 손실구간에서 훨씬 더 가파르게 하강한다. 이익구간에서 효용곡선이 완만하게 오르는 것은 위험회피적 성향 때문이다. 즉 사람들은 이익이 증가할수록 부의 효용이 줄어 ‘이 정도면 배부르다’며 위험을 피하려는 심리가 발동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왜 상승장에서 수익이 난 주식을 재빨리 매도해 수익을 더 키울 기회를 발로 차버리는지 그 이유가 여기서 밝혀졌다. 그러나 이익구간에서 굳이 위험을 안으려 하지 않는 성향이 손실구간으로 넘어오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려는 성향으로 바뀐다. 손실을 끔찍하게 싫어하기 하기 때문에 위험 앞에서 용감해진다는 말이다. 즉 사람들은 이익 구간에선 ‘위험회피적’이지만 손실구간에선 ‘위험선호적’이 된다는 것이다. 단 위험선호 성향은 본전을 만회할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을 때 강하게 나타난다. 본전 만회 가능성이 적을 때엔 손실상황은 그다지 위험선호 성향을 자극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주식투자에서 보유주식이 손실이 날 경우 주식을 추가 매수해 매입단가를 낮추는 ‘물타기’는 손실구간에서 위험선호 성향을 잘 보여준다. 물타기는 자칫 손실 폭을 더 키워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해야 한다. 가망이 없는 주식이라면 물타기가 아니라 손절매를 하는 것이 슬기로운 투자태도라고 할 수 있다. 또 투자지식이 짧은 개인은 주식보다는 위험이 덜한 펀드로 간접투자를 하는 게 원금이 깨졌을 경우 위험선호 성향의 발현 가능성을 낮추는 방법이다.
당분간 국내 주식시장은 상승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일부에서는 4차 대세 상승기가 시작됐다는 진단도 내놓는다. 그러나 과거 주가 사이클을 살펴보면 하락 기간이 상승 기간보다 훨씬 길었다. 주가란 오를 때 한꺼번에 오르는 특성 때문이다. 따라서 상승장에서 넉넉하게 챙겨놓지 않으면 오랜 세월 마음 고생할 수 있다.
요즘 아파트 값이 많이 오르고 있어 인기 재테크 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주식 수익률에 비하면 저리 가라다. 한번 따져보자. 아파트 수익률은 월세로 평가한다. 서울 서초동의 전용면적 84㎡형 고급 아파트는 12억 원에 시세가 형성돼 있다. 이 아파트의 월세는 보증금 2억원에 180만원이다. 아파트 주인의 연간 수입은 2160만원(180만 원x12)과 2억원에 대한 은행이자 340만원(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 1.7% 기준)을 합한 금액인 2500만원(세전)이다. 12억원의 아파트에서 연 2500만원의 임대수입이 생기니까 수익률은 2.1%가 채 안 된다. 겨우 은행금리를 보전하는 수준이다.
주식의 수익률은 주가수익비율(PER)로 환산할 수 있다. PER는 주당 순이익을 주가로 나눈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의 PER가 14라면 현재 주식가격이 1주당 순이익의 14배라는 얘기다. 증권시장에 상장된 어느 기업의 주당 수익 창출력이 1이라면 이 기업의 주식은 시장에서 그 14배 값으로 거래되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이 기업 투자자는 14를 투자해 1년에 1의 이익을 얻는다는 말이 된다. 약 7%(1/14)의 이익이다. 그러니까 PER의 역수가 투자수익률이 된다. 올 3월 한국거래소가 발표한 국내 증시의 PER은 9.84배다. 주식의 수익률이 10.1%다. 수익률로만 따지면 주식은 다른 어떤 자산보다 매력적이다. 장기적인 자산운용에서 포트폴리오에 주식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하는 건 그래서다.. 그럼 왜 이렇게 주식은 수익률이 높은 걸까. 주식은 위험한 투자수단이기 때문에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은 당연히 더 큰 수익을 기대한다. 위험성이 큰데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이 낮다면 아무도 주식에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주식은 장기적으로 이자상품보다 높은 수익을 내야 한다. 이처럼 주식에 더 큰 수익을 기대하는 것을 ‘주식프리미엄’이라고 한다. 경제학자들이 보기에 주식프리미엄은 1.5%포인트가 적정 수준. 주식프리미엄이 장소·기간 다르다는 것을 감안해도 높아 보았자 2~4%포인트라고 한다. 무위험 프리미엄인 10년 만기 국고채 수익률이 2.1%라도 할 때 주식 수익률은 4~6%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주식 수익률은 국고채 수익률보다 8%포인트 이상 높으니 과열이란 말이 나올 법도 하다.
주식프리미엄이 높게 형성되는 퍼즐을 푸는 열쇠는 역시 손실회피 심리다. 주식은 채권보다 훨씬 변동성이 심하다. 수익의 기쁨보다 손실의 아픔이 훨씬 강하기 때문에 투자자는 손실에 무게를 두고 평균보다 훨씬 높은 프리미엄을 요구하게 된다. 손실회피 심리를 극복하는 방법은 주가와 가급적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투자성과를 시도 때도 없이 확인하는 투자자는 보유 종목의 주가가 떨어져 있는 것을 그만큼 자주 보게 된다. 손실회피 심리의 공격을 받기 쉬운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단타매매에 빠져 수익을 별로 올리지 못하고 증권사의 수수료 수입만 올려주는 결과가 된다. 또 주식은 최소 채권보다는 수익률이 높다는 통계를 믿고 오래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장기 투자는 변덕이 심한 증시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다. 주식을 잘 모르는 한 지인의 이야기다. 얼마 전 정년 퇴직한 그는 노후가 별로 걱정 안 된다고 했다. 그동안 꾸준히 사모은 주식 덕분이라고 했다. 그는 입사하면서부터 회사에서 종업원 사기 진작을 위해 급여와는 별개로 매달 넣어주는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으기 시작했다. 명절 떡값이나 실적 보너스도 그렇게 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쌓이면 없는 셈치고 주식을 샀다. 당시 인기가 있다면 앞뒤 안 가리고 무작정 샀다. 예를 들면 1990년대 증권주, 2000년대 초반엔 IT주 이런 식이었다. 한번 사놓은 주식은 팔지 않고 끝까지 보유했다. 자주 주가를 확인하는 일도 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하기를 28년. 보유 종목마다 부침을 심하게 겪었다. 어떤 종목은 부도를 맞아 휴지조각이 됐는가 하면 어떤 주식은 수백 배의 수익을 남겼다. 퇴직하면서 따져보니 전체적으로 투입원금의 10배 가까운 수익을 남겼다. 그는 “오래 묻어둘 주식을 여러 개 골라 산 다음 퇴직할 때 결산해 보는 것도 직장생활을 의미 있게 보내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서명수 - 중앙일보 심의실 전문위원 겸 재산리모델링센터 자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관록있는 자산관리 칼럼니스트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투자경력 10년 가까운 50대 중반의 김모씨. 그는 2년여 전 증권주를 1000만원어치 매입했다. 주가가 오르긴 올랐어도 더 오를 것이란 기대에서였다. 그러나 상투였다. 증권주는 그가 사자마자 일제히 하락세로 기울었다. 중간에 몇 차례 반등하기 했지만 매입가에 미치지 못했고, 마침내 반토막이 나자 아예 파는 것을 포기했다. 그러던 주가가 올 2월부터 슬금슬금 오르더니 어느 듯 매입가를 웃돌게 됐다. 김 씨는 이 때다 싶어 주식을 처분했으나 그 뒤로도 줄곧 오름세다. 김씨는 금전상 손해는 없지만 매도를 서두른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요즘처럼 ‘물 좋은’ 장에서 김 씨와 같은 심정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다. 주가가 떨어져 본의 아니게 주식을 오래 보유하다가 원본이 회복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매도에 나서는 것이 개인들의 매매 행태다. 만약 주가가 매도 후에도 오른다 하더라도 섣불리 재매입을 하지 못한다. 여러 종목을 보유하는 포트폴리오 투자의 경우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음과 상황을 가정해보자. A회사 주식과 B회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두 주식 모두 100만원에 샀다. 현재 A 회사는 50만원이고 B 회사는 150만원이다. 이번 달 아파트 관리비 50만원을 내야 하는데 현금이 없다. 그래서 둘 중 하나를 팔아야 한다. 개인들은 이 상황에서 십중팔구 이익을 보고 있는 B 주식을 팔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이익을 내고 있는 주식을 팔고 손실을 내고 있는 주식을 보유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A 회사 주식을 파는 순간 손실이 확정되기 때문에 그것을 피하고 싶은 때문은 아닐까.
투자자들이 오른 주식은 팔고 내린 주식은 계속 보유하려는 경향을 ‘처분효과(disposition effect)’라고 한다. 처분효과는 개인들 사이에 일반화한 고질병으로 손실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특히 요즘처럼 시장이 좋을 때 돈 벌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린다. 처분효과는 손실을 실현할 때의 고통을 피하려는 심리 때문인데, 상승장에서는 이익을 줄이고 하락장에서는 손실을 더 키우는 결과를 낳는다.
오른 주식은 팔고 내린 주식은 보유
투자의 세계에선 누구나 위험을 싫어한다. 위험회피 개념을 최초로 설명한 인물이 18세기 스위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야콥 베르누이다. 베르누이는 유체의 속도가 빨라지면 압력이 낮아진다는 베르누이 정리로도 유명하다. 그는 사람의 행복은 돈이 많아질수록 증가하지만 그 증가율은 감소한다고 가정했다. 부의 한계효용이 체감하기 때문이다. 부가 늘어나면서 추가된 부의 증가분의 영향력은 떨어지는 것이다. 예컨대 가난한 사람에게 1억원은 횡재지만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에겐 큰 의미가 없다. 돈이 많을수록 돈을 벌려고 모험을 감행하지 않는다. 이 말은 돈이 어느 정도 있으면 확실히 얻을 수 있는 100만원과 50%의 확률로 얻을 수 있는 200만 원 중 선택을 할 경우 확실한 쪽인 전자를 택하는 사람이 많은 것과 같은 의미다. 내기에 이겼을 때 받게 되는 두 번째 100만원의 가치는 첫 번째 100만원의 가치보다 낮기 때문에 200만원을 얻기 위해 첫 번째 100만원을 날려버릴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의사결정은 효용의 절대적 가치보다는 상대적 가치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다. 예를 들어 연봉이 3800만원인 사람과 3000만원인 사람 중 누가 더 행복할지 물으면, 당연히 연봉이 3800만원인 사람이 더 행복하다고 대답한다. 그렇지만 전년 연봉이 각각 4000만원과 2800만원이었다는 전제가 붙는다면 연봉 3800만원 보다 3000만원인 사람이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말하자면 부는 절대액수가 아니라 변화 측면을 따지는 것이 현실적인 효용 측정 방식이란 이야기다.
이스라엘 출신 심리학자로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은 이런 관점에서 위험에 대한 선택의 문제를 다뤘다. ‘전망이론’라는 것인데 현대경제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전망이론의 가장 중요한 발견은 인간이 손실을 끔찍하게 싫어한다는 것이다. 이를 ‘손실회피’ 성향이라고 한다. 손실회피는 한마디로 이익이 가져다 주는 기쁨보다 손실이 가져다 주는 고통이 더 큰 현상을 말한다. 부의 효용곡선을 이익구간과 손실구간으로 나눠 그래프를 그려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는다. 효용곡선은 전체적으로 S자 형태를 취하는데, 그래프처럼 이익구간보다 손실구간에서 훨씬 더 가파르게 하강한다. 이익구간에서 효용곡선이 완만하게 오르는 것은 위험회피적 성향 때문이다. 즉 사람들은 이익이 증가할수록 부의 효용이 줄어 ‘이 정도면 배부르다’며 위험을 피하려는 심리가 발동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왜 상승장에서 수익이 난 주식을 재빨리 매도해 수익을 더 키울 기회를 발로 차버리는지 그 이유가 여기서 밝혀졌다.
손절매 대신 물타기 나서는 용감한(?) 투자자들
당분간 국내 주식시장은 상승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일부에서는 4차 대세 상승기가 시작됐다는 진단도 내놓는다. 그러나 과거 주가 사이클을 살펴보면 하락 기간이 상승 기간보다 훨씬 길었다. 주가란 오를 때 한꺼번에 오르는 특성 때문이다. 따라서 상승장에서 넉넉하게 챙겨놓지 않으면 오랜 세월 마음 고생할 수 있다.
요즘 아파트 값이 많이 오르고 있어 인기 재테크 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주식 수익률에 비하면 저리 가라다. 한번 따져보자. 아파트 수익률은 월세로 평가한다. 서울 서초동의 전용면적 84㎡형 고급 아파트는 12억 원에 시세가 형성돼 있다. 이 아파트의 월세는 보증금 2억원에 180만원이다. 아파트 주인의 연간 수입은 2160만원(180만 원x12)과 2억원에 대한 은행이자 340만원(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 1.7% 기준)을 합한 금액인 2500만원(세전)이다. 12억원의 아파트에서 연 2500만원의 임대수입이 생기니까 수익률은 2.1%가 채 안 된다. 겨우 은행금리를 보전하는 수준이다.
주식의 수익률은 주가수익비율(PER)로 환산할 수 있다. PER는 주당 순이익을 주가로 나눈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의 PER가 14라면 현재 주식가격이 1주당 순이익의 14배라는 얘기다. 증권시장에 상장된 어느 기업의 주당 수익 창출력이 1이라면 이 기업의 주식은 시장에서 그 14배 값으로 거래되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이 기업 투자자는 14를 투자해 1년에 1의 이익을 얻는다는 말이 된다. 약 7%(1/14)의 이익이다. 그러니까 PER의 역수가 투자수익률이 된다. 올 3월 한국거래소가 발표한 국내 증시의 PER은 9.84배다. 주식의 수익률이 10.1%다. 수익률로만 따지면 주식은 다른 어떤 자산보다 매력적이다. 장기적인 자산운용에서 포트폴리오에 주식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하는 건 그래서다..
오늘 주가 몇 번 확인했나요?
주식프리미엄이 높게 형성되는 퍼즐을 푸는 열쇠는 역시 손실회피 심리다. 주식은 채권보다 훨씬 변동성이 심하다. 수익의 기쁨보다 손실의 아픔이 훨씬 강하기 때문에 투자자는 손실에 무게를 두고 평균보다 훨씬 높은 프리미엄을 요구하게 된다. 손실회피 심리를 극복하는 방법은 주가와 가급적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투자성과를 시도 때도 없이 확인하는 투자자는 보유 종목의 주가가 떨어져 있는 것을 그만큼 자주 보게 된다. 손실회피 심리의 공격을 받기 쉬운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단타매매에 빠져 수익을 별로 올리지 못하고 증권사의 수수료 수입만 올려주는 결과가 된다. 또 주식은 최소 채권보다는 수익률이 높다는 통계를 믿고 오래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장기 투자는 변덕이 심한 증시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다. 주식을 잘 모르는 한 지인의 이야기다. 얼마 전 정년 퇴직한 그는 노후가 별로 걱정 안 된다고 했다. 그동안 꾸준히 사모은 주식 덕분이라고 했다. 그는 입사하면서부터 회사에서 종업원 사기 진작을 위해 급여와는 별개로 매달 넣어주는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으기 시작했다. 명절 떡값이나 실적 보너스도 그렇게 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쌓이면 없는 셈치고 주식을 샀다. 당시 인기가 있다면 앞뒤 안 가리고 무작정 샀다. 예를 들면 1990년대 증권주, 2000년대 초반엔 IT주 이런 식이었다. 한번 사놓은 주식은 팔지 않고 끝까지 보유했다. 자주 주가를 확인하는 일도 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하기를 28년. 보유 종목마다 부침을 심하게 겪었다. 어떤 종목은 부도를 맞아 휴지조각이 됐는가 하면 어떤 주식은 수백 배의 수익을 남겼다. 퇴직하면서 따져보니 전체적으로 투입원금의 10배 가까운 수익을 남겼다. 그는 “오래 묻어둘 주식을 여러 개 골라 산 다음 퇴직할 때 결산해 보는 것도 직장생활을 의미 있게 보내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서명수 - 중앙일보 심의실 전문위원 겸 재산리모델링센터 자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관록있는 자산관리 칼럼니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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