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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가 ‘경제검찰’로 거듭나려면…

공정위가 ‘경제검찰’로 거듭나려면…

높은 경쟁률을 뚫은 행정고시 재경직 합격자들이 가장 근무하고 싶어 하는 부처는 어디일까? 흔히 기획재정부를 떠올릴 게다. 장관이 부총리로 높은 데다 국가예산과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곳이라 거기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힘이 세고 일하는 보람도 있을 테니. 실제로 과거에는 그랬다. 부동의 지원 부처 1위는 기획재정부였다.

이게 몇 년 전부터 달라졌다. 지망 1순위로 공정거래위원회가 급부상했다. 그 다음 2위는 국세청, 나머지 경제부처는 그만그만한 것으로 전해진다. 기획재정부가 일은 여전히 많은 데 비해 힘이 빠진 반면 새로 부상한 부처들은 시쳇말로 일은 그리 빡세지 않은데 힘이 있고 퇴직 이후까지 보장돼서라고 한다.

행시 재경직 근무 희망 부처 순위는 묘하게도 국내 대형 법무법인(로펌) 고문들의 출신 부처와 같다. 김앤장·광장·태평양·세종·화우·율촌 등 6대 로펌에서 일하는 고문들(126명) 가운데 공정거래위 출신(19명)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이 국세청 출신(18명)으로 보도됐다. 기획재정부나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다른 경제부처 출신도 있지만, 공정위와 국세청 출신이 압도적이다. ‘경제 권력기관’으로 통하는 두 곳 출신이 6대 로펌 고문의 30%에 육박한다. 로펌에선 이들 고문이 변호사 자격은 없지만 행정부처에서 오래 종사해 전문성을 인정받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한다. 법률적 지식만으로 의뢰인 요구에 부응할 수 없어 전문성을 갖춘 인물들을 영입했다지만, 이들의 활동이 공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만큼 로비스트라는 따가운 시선이 뒤따른다.

이들 대부분은 로펌 내 ‘공정거래팀’에서 일한다. 불공정행위가 적발돼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부과 등 처벌을 받을 처지에 놓인 기업의 의뢰를 받아 공정위의 불공정행위 심판에 대응하는 게 일이다. 여기에 소속된 고문·전문위원 등 공정위 관료 출신이 로펌에 따라 공정거래팀 구성원의 20~30%에 이른다. 로펌들이 공정위 출신을 경쟁적으로 영입한 이유가 과연 이들의 전문성만을 높이 평가해서일까? 아니다. 공정위 출신 인사들의 ‘전관 영향력’을 십분 고려해서다.

이는 로펌에 소속된 공정위 출신들이 대부분 기업들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심판 업무를 총괄하는 ‘심판관리실’에서 근무했거나 심판 수위를 결정하는 공정위 전원회의에서 ‘판사’ 역할을 하는 ‘상임위원’ 경력의 소유자란 점으로 입증된다. 실제로 로펌에서 일하는 공정위 출신은 심판관리실 출신 서기관부터 부이사관, 사무처장, 상임위원, 공정위 부위원장, 공정위원장 출신에 이르기까지 망라되어 있다.

공정위 퇴직 관료들의 로펌행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문제는 이들이 로펌으로 가면서 해당 로펌의 과징금 심판청구에 대한 인용률이 눈에 띄게 높아지는 등 공정위 출신 인사에 대한 전관예우가 의심되는 상황이 빈번해진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선 어느 로펌의 희한한 과징금 인용 사례가 논란이 됐다. 공정위 핵심 과장 출신 인사가 영입되기 전 과징금 이의신청이 단 한 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이 로펌에서 공정위 인사 영입 직후 5건의 이의신청이 인용되면서 과징금 76억여원이 경감되는 실적을 올렸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처리하는 경제사건은 증거 확보가 핵심인 일반 형사사건과 달리 경제상황 분석을 통해 경쟁 제한성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입증하느냐가 관건이다. 대형 로펌으로 자리를 옮기는 서기관·부이사관급 공정위 실무자들이 늘어나면 그만큼 공정위의 전문성이 약화되거나 업무 기밀이 유출돼 공정위의 소송 대응력이 떨어질 수 있다.

‘재벌 저격수’로 불리며 대기업 및 공정위와 부닥치는 일이 많았던 신임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공정위의 이런 그릇된 관행을 꿰뚫고 있었으리라. 취임 일성으로 직원들에게 “업무시간 외에는 공정위 OB(퇴직자)나 로펌 변호사 등 이해관계자들과 접촉하는 일을 자제하라”고 경고했다.

경고에 그칠 일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경제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정부기구로 공정위를 중시할수록 공정위로부터의 제재를 방어하기 위한 대기업과 로펌의 공정위 전관 영입과 공정위를 향한 로비 공세는 가열될 것이다. 공정한 시장 경제질서 확립이 핵심 업무인 공정위 스스로 다른 부처보다 엄격한 취업제한 규정과 윤리강령을 마련해 실천함으로써 ‘공정위 찍고 로펌 가는 행위’를 억제해야 마땅하다. 서기관급 이상 공무원이 퇴직할 때 3년 간 관련 부서 업무(국장급 이상은 관련 조직 업무)에서 일하지 못하도록 한 현행 공직자 취업제한 규정만으론 부족해 보인다.

지금 사법검찰 개혁만 시급한 게 아니다. 경제검찰인 공정위도 그에 못지않은 개혁이 요구된다. 공정위 직원들이 차고 있는 ‘경제검찰 완장’이 힘을 과시하는 데 머물고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고유 업무에는 소홀해서다. 더구나 경제검찰 완장은 공정위 근무 시절은 물론 퇴직 이후 공정거래 전문 변호사 내지 로비스트 면허증처럼 통하는 게 현실이다.

‘치즈 통행세’ ‘보복 출점’ 등 가맹점에 대한 갑질 행위를 일삼은 미스터피자 사태 등에 따른 오너 리스크로 소비자 불매운동이 벌어져 엉뚱하게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이 피해를 보는데도 공정위는 보이지 않았다. 지난 3년 동안 가맹본부의 갑질 횡포에 대한 공정위 고발은 한 건도 없었다. 지난해에도 공정위가 처리한 가맹사업법 위반행위는 407건에 이르렀으나 고발은 전무했다. 기껏해야 과징금 부과나 경고, 시정명령에 그친 것이다. 미스터피자의 경우에도 검찰 요청에 따라 공정위가 뒤늦게 고발했다. ‘정치검찰’ 지적을 받으며 국민 신뢰를 잃은 검찰의 기소권을 분산해야 한다는 요구가 일 듯 ‘경제검찰’ 공정위가 갖고 있는 공정위 소관 법률 위반에 대해 공정위만 검찰에 고발할 수 있는 전속고발권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거센 이유다.

판매직원들의 인건비를 납품 업체에 전가하거나 중소기업 제품을 정당한 사유 없이 반품하는 등 대형 유통 업체의 갑질 횡포에 대해서도 공정위는 느슨했다. 자진신고했다는 이유로 현장조사 대신 서면조사로 대체했고, 과징금 부과도 시늉에 그쳤다. 공정위가 경제적 약자인 을의 눈물을 닦아주기는커녕 갑을 비호하고 나선 것이다.

공직비리의 대명사로 서울시가 지목되던 때가 있었다. 오죽하면 ‘복마전’으로 불렸을까. 이런 서울시를 확 바꾼 게 고건 시장 시절의 민원처리 온라인 공개 시스템이다. 시청 홈페이지를 통해 위생·건축·도시계획 등 54개 민원 업무에 대한 결재일 등을 실시간으로 공개하자 급행료 등 뇌물수수 행위가 현저하게 줄었다. 여러 국제기구와 나라에서 이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부패방지 모범사례로 기록된다.

김상조의 공정위도 확실하게 거듭나 경제검찰로서의 신뢰를 회복하길 기대한다. 직원들에게 오비나 로펌 변호사 접촉을 자제하라고 권고하는 것으론 부족하다. 공정위에 신고되는 각종 불공정행위가 어떤 절차에 따라 어떻게 진행되는지 을의 위치에 있는 경제적 약자들이 확인할 수 있는 투명한 제도적 장치가 절실하다. 공정위 스스로 개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외부의 힘에 의해 적폐 청산 대상에 오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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