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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문재인케어’] 병원비 부담 줄고 건보료 부담 늘고?

[닻 올린 ‘문재인케어’] 병원비 부담 줄고 건보료 부담 늘고?

노인·어린이·여성 의료서비스 확대...재원 조달 놓고 논란 거세



“국민이 의료비 걱정에서 자유로운 나라를 만들겠다.” 문재인 대통령은 8월 9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을 발표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른바 ‘문재인케어’로 불리는 이 대책은 말 그대로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높여 환자와 환자 가족의 부담을 확 낮추는 게 골자다. 가령 지금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치료비가 비쌌던 중증치매 등이 건강보험 적용을 받게 된다. 그만큼 막대한 재원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내년부턴 저소득층의 보험료를 낮춰주는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으로 건보료 수입마저 줄어든다. 이런 상황에서 보장성을 확대하면 건강보험 재정에 빨간불이 들어올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 이른바 ‘문재인케어’가 시행되면 지금까지 환자가 전액 부담해야 했던 3800여 개 비급여 치료가 모두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게 된다. 미용과 성형목적 치료를 제외하면 사실상 모든 치료가 건강보험의 틀 안에 들어온다. 1989년 전 국민 건강보험제도가 도입 된 이후 30여 년 만의 대수술인 셈이다. 정부는 문재인케어가 시행되면 비급여 항목이 지금보다 3분의 1 줄고, 국민 비급여 의료비 부담은 2015년 13조5000억원에서 2022년 4조8000억원으로 64% 감소할 것으로 기대한다. 건강보험 보장률은 63.4%(2015년)에서 70% 수준으로 오를 것으로 내다본다. 김강립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비중이 커서 국민이 직접 부담하는 의료비가 선진국보다 많았다”며 “이번 대책은 비급여를 원천적으로 해소하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하겠다는 점에서 기존 보장 강화 정책과 뚜렷이 구별된다”고 강조했다.

3800여 개의 비급여 항목은 올해부터 점진적으로 급여화한다. 효과는 있지만 가격이 높아 비급여로 분류됐던 자기공명영상(MRI)·초음파 등은 2020년까지 우선 급여화한다. 일정 경력 이상의 의사에게 진료를 받을 때 부담하던 선택진료제는 내년부터 폐지되고, 4인실까지만 건강보험이 적용돼 부담이 컸던 2~3인실 병실 입원료는 내년부터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문재인케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노인·아동·여성 등 경제적·사회적 취약계층의 의료비 부담 감면 노력이다. 대표적인 게 중증치매다.
 중증치매 환자 본인 부담률 10%로 줄어
중증치매 환자는 오는 10월부터 산정특례를 적용해 본인부담률이 20~60%에서 10%로 대폭 인하된다. 산정특례는 진료비 본인부담이 큰 중증질환자와 희귀난치성질환자의 본인부담률을 경감해주는 제도다. 중증치매 환자는 현재 약 24만 명에 달하는데, 이들의 가족은 건강보험을 적용하더라도 지금까지 진료비의 20~60%를 부담해야 했다. 이 때문에 가족 중에 치매 환자가 발생하면 가정 경제가 흔들리는 예가 많았다. 그러나 오는 10월부터 중증치매에 산정특례가 적용되면 진료비가 확 줄게 된다.

예컨대 치매와 뇌경색증 등 합병증을 동반한 A씨가 162일간 입원 치료를 받았다고 가정해보자. A씨의 총 진료비는 2925만원 정도다. 이 중 A씨가 내야 하는 본인부담금은 1559만원이나 된다. 하지만 산정특례를 적용하면 150만원 정도만 내면 된다. 치매 진단에 필요한 고가 검사도 건강보험이 적용돼 부담이 작아진다. 잦은 건망증을 경험한 B씨가 치매 진단을 받으려면 현재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MRI(약 60만원)와 신경인지검사(40만원) 등으로 약 100만원을 부담해야 했다. 그러나 10월 이후에 검사를 받는다면 B씨는 MRI·신경인지검사 모두 건강보험을 적용받아 약 40만원만 부담하면 된다.

15세 이하 아동이 입원해 치료를 받을 때 지금은 진료비의 10~20%를 본인이 부담해야 하지만 10월부터는 5%만 내면된다. 18세 이하 아동에 대한 충치예방 효과가 뛰어난 치아 홈 메우기 본인부담은 30~60%에서 10%로 완화된다. 광중합형 복합레진 충전치료재료에 대해서도 12세 이하는 2018년 중 건강보험을 적용키로 했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충치가 발생한 1개 치아에 광중합형 복합레진 충전치료를 하면 현재는 비급여 항목으로 분류돼 10만원을 전액 본인이 부담해야 하지만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3만원만 본인이 부담하면 된다.
 건보 인상률 3%면 큰 부담 안돼
문재인 대통령이 8월 9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직접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건강보험 적용이 가능한 부인과 초음파 대상도 대폭 확대한다. 현재 부인과 초음파는 임산부와 4대 중증질환자에 한정해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모든 여성을 대상으로 자궁근종·자궁암·자궁내막증 등 부인과 초음파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한다. 배가 아파 병원을 찾았다가 자궁초음파를 받게 되면 현재는 검사비용 7만 5200원을 전액 본인이 부담해야 했지만 앞으로는 건강보험이 적용돼 3만원만 내면 된다. 내년에 선택진료 폐지와 함께 상급병실 건강보험 적용까지 확대 적용되면 병원비는 더 줄어든다.

만 44세 이하 여성에게 정부 예산으로 소득 수준에 따라 지원하던 난임 시술(인공수정·체외수정)도 오는 10월부터는 건강보험을 적용키로 했다. 비용 효과성이 완전히 입증되지 않은 비급여 항목도 건강보험 영역으로 편입돼 본인부담이 줄어든다. 로봇수술 같은 경우다. 전립선암 환자 C씨가 다빈치 로봇수술 후 30일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면 지금은 총 의료비 1612만원 중 1202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앞으로 다빈치 로봇수술에 예비급여 50%가 적용되고 보조 치료재료에도 예비급여 70%가 적용돼 개인부담금은 628만원으로 48% 줄어든다.

점진적이긴 하지만 당장 병원비를 줄일 수 있게 돼 국민은 문재인케어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8월 11일 전국의 19세 이상 성인 506명을 대상으로 전화 조사한 결과 문재인케어에 ‘공감한다’는 응답이 76.6%로, ‘비공감한다’는 응답 17.5%보다 4배 이상으로 높았다. 지역별로는 광주·전라지역이 80.3%로 가장 높았고, 경기·인천 79.3%, 부산·경남·울산 79.1%, 대전·충청·세종 77.2%, 서울 76.4%, 대구·경북 67.5% 순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 40대(87.2%)와 30대(80.2%)의 공감비율이 80%를 넘었고, 20대(75.5%)와 50대(70.8%), 60대 이상(70.4%)은 70%대로 집계됐다.

하지만 문재인케어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 늘리는 것이므로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정부는 2022년까지 총 30조6000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돈은 그동안 쌓인 건강보험 누적흑자 21조원과 국가 재정 등을 통해 충당할 계획이다. 그러면서 건보료 인상 등 국민에게 부담이 되는 조치는 가급적 자제하겠다고 했다. 실제로 정부는 건보료율을 지난 10년 간 평균 인상률(3.2%) 수준에 맞춰 조정하겠다고 천명했다.

건보료의 급격한 인상 즉, 일각에서 주장하는 ‘건보료 폭탄’은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정부 공언 대로 건보료율을 최소한으로 조정해 나간다면 평범한 직장인이 내야 할 건보료는 지금보다 그다지 많이 올라가진 않는다. 올해 보험료율은 보수월 액의 6.12%. 직장가입자의 보험료는 사업장과 직장인이 절반씩 부담한다. 여기에서 3%가량을 인상하면 내년 보험료율은 6.3% 수준이 된다. 월 보수가 329만원(2015년 통계청의 임금 근로자 월 평균소득)인 직장인이라면 보험료율 3% 인상 때 보험료 부담(사업자 부담 제외)은 현재 월 10만674원(329만원×3.06%)에서 월 10만3635원(329만원×3.15%)으로 월 2961원 오른다. 월 3000원이 안 되는 금액이다.

문재인케어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동참했던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허윤정 교수는 “이번에 (문재인케어를) 발표하면서 건보료율은 연 2.1% 내지 3.2% 선에서 조정하겠다고 했는데 이 약속은 반드시 지켜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재정 전문가들은 현 정부 5년 간은 버틸 수 있겠지만 그 이후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기획재정부가 3월 내놓은 ‘2016~2025년 8대 사회보험 중기 재정추계 결과’에 따르면 건강보험 적립금은 2023년께 바닥나고, 2025년에는 20조1000억원 적자로 돌아선다고 관측됐다. 고령화 등으로 노인 의료비가 폭증하기 때문이다.
 미래 세대에게 건보료 폭탄 부담 지울 수도
2022년까지 기재부가 해당 연도 보험료 예상수입액의 14%를 매년 건보 재정에 지원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가 재정이 추가로 들어갈 것이라고 전망된다. 여기에다 기존 비급여 항목을 전환해 건강보험 급여를 늘리면 뒷감당이 안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재정 전문가는 “문재인케어의 전반적인 방향 자체는 충분히 공감하고 옳다”며 “그러나 재원 마련 부분은 납득할 수 없고, 지금의 계획으로는 미래 세대에게 또 다른 부담만 지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178조원으로 추계된 금액에 대해서도 재원 마련 (대책을) 못 내놓는 정부가 온갖 장밋빛 환상을 심어주는 듯하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제시한 소요 재원 30조6000억원이 터무니없이 적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한의원협회(이하 대의협)는 비급여 진료비 규모를 과소 추계했다고 지적했다. 대의협에 따르면 정부는 비급여 의료비 부담액이 연간 13조5000억원에 이른다고 했지만 지난해 6월 발표된 ‘2014년 국민보건계정’에 따르면 2014년도 총 국민의료비(경상의료비) 105조원 중 비급여 본인부담금은 24조9000억원에 이른다. 대의협 측은 “비급여 규모의 과소 추계는 재정 소요액의 과소 추계로 이어져 결국 건보 재정 파탄의 단초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문재인케어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 국민들도 재정 문제를 두고는 반으로 나뉘는 분위기다. 리얼미터 조사에서도 ‘대책에 공감하고, 재원 조달도 가능할 것이다’라는 응답은 40.4%, ‘대책에 공감하지만, 재원 조달이 어려울 것이다’는 응답은 36.2%로 오차범위 내에서 4.2%포인트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자신을 30대 직장인이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몇 년은 건보료가 급등하진 않겠지만 재정 전문가들의 주장처럼 2023년 이후부터는 건보료 폭탄이 터질 수 있다”며 “결국 젊은 사람들에게만 부담을 지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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