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머리’가 없다면
조직의 ‘머리’가 없다면
에피소드 1. 잘 알려진 대로 한명회는 세조의 총신으로서 단종을 몰아내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몇 년 전 개봉된 영화 [관상]에는 그가 관상쟁이로부터 ‘목이 잘릴 팔자’라는 말을 듣고 말년에는 두려움 속에서 편한 잠을 못 이루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는 픽션이니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실제로 그는 사후 17년 후 연산군에 의해 시신의 목이 잘리는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한다.
에피소드 2. 프랑스의 ‘기요틴’은 사형을 집행하는 기구로 수많은 사람의 목을 잘라 저 세상으로 보냈다. 원래 이 기구를 설계한 사람은 앙토안 루이라는 외과의사였으나 이런 기구를 사용하자고 주장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명명했다고 한다. 1789년 10월의 어느 날, 당시 국회의원이던 조세프-이그나스 기요탱이라는 내과의사는 의회에서 인도적 차원에서 모든 사형은 ‘눈 깜짝할 동안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단번에 목을 자르는 것’으로 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형을 반대하는 소신을 가지고 있었으나, 숨이 끊어질 때까지 뼈를 부수거나 도끼 등으로 여러 번 목을 내리쳐서 고통을 주는 기존의 사형집행 방식을 바꾸자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년 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고,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이 기구에 의해 처형됐다. 국내에서 잘못 알려진 바와는 달리 기요탱은 이 기구에 의해 처형되지 않고 75세까지 천수를 누렸지만 자기 이름이 이 끔찍한 기구에 붙은 것을 일생 동안 괴로워했다고 한다. 이 기구는 나치 독일도 사용해 레지스탕스 등 수만 명을 처형했으며 프랑스 내에서도 1977년까지 사형집행에 동원했다. 1981년 프랑스가 사형제도를 없애자 이 기구도 역사 속으로 퇴장하게 된다.
에피소드 3.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일본 해군의 연합함대 총사령관으로서 진주만 기습을 총지휘했다.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 4월 18일 아침에 야마모토와 그의 부관들은 솔로몬 군도의 한 섬인 부겐빌 섬의 일본군을 시찰하기 위해 라바울에서 두 기의 폭격기를 타고 이륙했다. 6기의 제로센 전투기의 호위를 받아 목적지로 향했다. 그런데 이 스케줄은 사전에 미군 측이 일본군의 암호를 해독하여 미리 꿰뚫고 있었다. 미군의 수뇌부는 ‘진주만 기습에 대한 복수’를 위해, 그를 공중에서 제거하기로 결정하고 실행에 옮겼다. 작전의 이름도 ‘복수 작전’으로 지었다. 더 중요하게는 ‘일본군의 사기’를 꺾을 목적도 있었다. 문제는 미군이 주둔한 과달카날 섬에서 부겐빌 섬까지 작전을 벌이고 귀환하기에는 1600km의 장거리 비행이 필요했다는 점이다. 미군은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쌍발 엔진의 P-38 전투기에 2개의 대형 보조 연료탱크를 달아 이 문제를 해결했다. 그날 오전 7시 25분에 존 미첼 소령이 이끄는 18기의 P38 전투기들이 호위기를 차단할 편대와 야마모토가 탄 폭격기를 공격할 편대로 나누어 이륙했다. 오전 9시 34분 이 ‘암살 편대’는 착륙을 10여분 앞두고 있던 야마모토의 비행대를 발견했다. 차단조가 일본군 호위기들과 엉켜 싸우는 사이에 공격조가 야마모토가 탄 폭격기를 격추했다. 야마모토는 이 공격으로 살아남지 못했다. 일본군 수뇌부가 이 사실을 한 달가량이나 숨기고 나서야 발표할 정도로 일본군 전체에 엄청난 충격이었다. 미군의 의도대로 야마모토 사망 이후 일본군의 패색은 더욱 빠르게 짙어져 같다.
위의 에피소드들은 모두 ‘머리를 자르는’ 끔직한 일에 관한 것이다. 이는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큰 충격과 경고를 준다. 조선시대 말기에 천주교를 박해하는 과정에서 목을 베는 형벌로 수많은 사람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하겠다. 지금도 ‘절두산(切頭山)’이라는 지명이 한강 변의 야산에 남아있다. 야마모토의 암살처럼 전술로서 전쟁에서 적의 ‘우두머리를 없애면’ 적의 사기가 급격히 떨어지고 심지어는 적이 자멸하는 경우까지도 생기게 된다. 실제로 이순신 장군이 13척의 배로 130척 이상이 왜선을 무찔렀던 명량해전에서도 초기에 조선 수군의 포 사격에 왜의 한 장수가 죽어 떠다니는 것을 건져내어 효수하자 왜적의 사기가 크게 떨어져서 조선수군이 승기를 잡는 큰 요인이 됐다.
요즘에도 그렇다. 미군의 특수부대가 오사마 빈 라덴을 추적해 사살한 후에 그의 테러 조직 ‘알 카에다’의 활동이 현저히 둔화됐다. 지난 봄 이슬람국가(IS)의 우두머리인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가 러시아 공군의 폭격으로 죽었다는 보도와 이후 이 조직이 급속한 퇴조를 보이는 상황이 서로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래서인지 얼마 전 우리 국방부 장관이 올해 안에 ‘참수 부대’를 창설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곧바로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이 이를 “아주 잘못된 것이며 상당히 부적절한 표현을 썼다”고 평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 장관이 국회에서 발끈하는 발언을 해서 한때 정부 내의 ‘집안 싸움’이 났다고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조직이 ‘우두머리’를 잃으면 혼란에 빠지거나 급기야는 망해버리는 현상은 기업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한때 튼실했던 한 중견기업의 소유주가 미국 기업에 납품을 했다가 미국 검찰이 잘못 기소해 미국으로 잡혀 간 후, 재판이 길어지는 바람에 발이 묶이게 되자 해당 기업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는 안타까운 이야기가 TV에 방영됐다. 이 외에도 몇 년 전 ‘만두소’ 사건으로 억울한 누명을 쓴 기업주가 자살하자 그 기업이 망하는 등 필자의 기억 속에도 우두머리의 부재가 가져온 파산 사례는 꽤 많다.
요즘 국내 굴지의 대기업 총수 몇 명은 영어의 몸으로 재판을 받고 있거나, 불구속이지만 재판에서 10년 이상의 장기형이 구형되는 경우도 있다. 모 회장은 아직은 아니지만 경찰 조사 후 기소를 당할 위기에 처해있다. 대기업은 중견·중소기업에 비해 그 크기나 업력 때문에 내성이 강해 ‘우두머리’의 부재가 가져올 악영향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필자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기업 총수의 부재시에는 적어도 성장이 멈추고 심지어는 뒷걸음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2000년대 들어 ‘경제 민주화’와 ‘온라인 직접 민주주의’로 대변되는 시대가 도래한 이후 예전에 비해 대기업 총수가 감옥에 가는 사례가 훨씬 많아진 게 사실이다. 이는 일견 ‘사법의 정의’를 세운다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보이기는 하나, 이런 사례가 갈수록 늘어난다면 아무래도 국가 경제 전체에 심각한 악영향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예전에 기업 총수가 감옥에 가는 경우가 드물었던 이유는 당시의 사법부가 부패하거나 무능해서가 아니라 이런 상황을 더 고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정치 지형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경영상의 의사결정이 모호한 ‘배임죄’로 규정돼 기소된 경우에는 더욱 그랬다. 요즘 여러 ‘기업 총수의 부재’ 현상에 대해 ‘사법의 정의’를 실현하면서도, 국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줄이는 묘수를 사업부나 정치권에 기대하는 것은 정말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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