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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술탄’을 저지하라!”

“‘21세기 술탄’을 저지하라!”

터키 친쿠르드 정당 HDP 지도자 데미르타시, 에르도안 대통령 모욕 혐의로 구속됐지만 이번 달 대선에 옥중 출마 선언해
셀라하틴 데미르타시는 소외계층을 위한 투쟁 의지가 강한 젊은 정치인으로서 ‘쿠르드족의 오바마’로 불린다. / 사진:AP-NEWSIS
3년 전 셀라하틴 데미르타시는 정치혁명의 성공을 자축했다. 터키 쿠르드족인 그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독재가 갈수록 심해진다고 판단하고 좌익 성향의 친쿠르드족 민족주의·사회주의 정당인 인민민주당(HDP)을 창당한 뒤 역사적 선거에서 당을 승리로 이끌었다(HDP는 단숨에 터키 의회의 제3당이 됐다). 그로써 터키에서 오랫동안 억압 받아온 소수민족 쿠르드족이 처음으로 의회에 진출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의개발당(AKP)이 다수당의 지위를 잃자 대통령 권한을 확대하려는 그의 계획에도 제동이 걸렸다. 2015년 6월 선거가 끝난 직후 데미르타시는 “이제 우리 나라에서 대통령과 독재를 둘러싼 논쟁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터키는 독재의 수렁에 빠지는 재난을 가까스로 피했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선거 결과에 불복하고 5개월 뒤 조기 총선을 실시해 곧바로 AKP의 의회 다수당 지위를 되찾았다. 그러자 터키 전역에서 폭력사태가 빈발했다. 쿠르드족 민병대와 터키 정부군 사이의 오랜 전쟁이 다시 불붙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2016년 군부의 쿠데타 기도를 막아낸 뒤 야권 단체와 인사들의 대대적인 숙청을 지시했다. 데미르타시를 포함한 HDP 지도부 인사 10명은 ‘쿠르드족 분리주의 무장단체와 연계된 테러리스트’로 낙인 찍혀 구속됐다. 데미르타시는 ‘대통령 모욕’을 비롯해 수십 가지 혐의로 기소됐다(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다).

데미르타시는 앙카라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뒤 2007년 34세로 정계에 입문할 때까지 인권 변호사로 활동했다. 올해 45세인 데미르타시는 이제 에디르네 교도소의 2인용 감방에서 재기의 시동을 걸고 오는 6월 24일 실시되는 터키 대통령 선거에 옥중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자신의 투옥을 내세워 선거운동을 펼칠 생각이다. “대통령을 비난하는 발언을 했다고 정치인을 14개월 동안 가둬둔 것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일당 독재국가로 전락시켰다는 증거”라는 것이 그의 핵심 메시지다. 실제로 지난 한 해 동안 검찰은 그에게 수십 가지의 혐의를 추가했다. 전부 다 유죄로 확정되면 최대 142년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데미르타시는 그의 변호인단을 통해 전달된 뉴스위크의 서면 질문에 “내가 지금 겪는 이 과정을 재판이라고 부르는 건 엄밀히 말해 정확하지 않다”고 답변했다. “난 현 정부의 정치 인질로 잡혀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뉴스위크의 논평 요청에 회신하지 않았다.)

물론 데미르타시가 이번 선거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을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의 지지 기반인 쿠르드족은 터키 인구의 25%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데미르타시가 명목만의 후보는 결코 아니다. 2015년 6월 HDP는 여성과 소수계의 권리를 옹호함으로써 쿠르드족 중심지를 벗어난 지역에서도 상당한 득표율을 올려 AKP의 다수당 지위를 무너뜨렸다. 에드로안 대통령과 그를 따르는 터키의 국수주의자들은 이번 선거도 그와 비슷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데미르타시가 선전할 경우 에르도안 대통령이 승리에 필요한 50% 득표율을 얻지 못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시나리오에 따르면 결선 투표에서 야당이 연대해 단일 후보를 내세워 에르도안 대통령에 맞설 수 있다.
지난 5월 터키 이스탄불에서 인민민주당(HDP) 지지자들이 데미르타시의 옥중 출마를 선언하며 유세를 펼쳤다. / 사진:AP-NEWSIS
터키의 국수주의 정치인들은 데미르타시가 고(故) 넬슨 만델라(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인종차별 철폐와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다 27년간 수감 생활을 했다)에 견줘지는 것을 우려했다. 그들은 데미르타시의 인기를 떨어뜨리기 위해 역설적이게도 그의 석방을 촉구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시장조사기관인 IHS 마킷의 조사분석가에게 세킨은 “다른 야당 지도자들과 달리 그는 언변과 기지가 뛰어나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맞서 싸울 능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으로선 이번 선거가 매우 중요하다. 지난해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개헌안이 근소한 격차로 가결됐다. 그에 따라 터키가 정치권력 구조를 의원 내각제에서 대통령 중심제로 변경하면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해진다. 총리가 없어지고 대신 대통령의 권한이 강화되며 부통령이 신설된다. 대통령에게는 내각 임명권과 해산권이 주어지며 대통령의 정당 참여도 허용되고, 법률에 준하는 효력을 갖는 행정명령을 발표할 수 있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다. 또 대통령이 판·검사 인사에 막강한 영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면서 사법부 장악력도 커졌다. 개헌안은 이번 대선 직후부터 발효되는데, 5년 중임을 허용했다는 것이 특히 요점이다. 새 헌법에 따라 연임이 가능해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번 재선에 성공하면 2028년까지 집권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설계한 그 자리를 떠맡으려면 먼저 재선에 성공해야 한다.

에르도안은 터키 수도 이스탄불 시장에서 시작해 2003년부터 10여 년간 총리를 맡아 국정을 이끌었고, 2014년에는 터키 역사상 최초로 치러진 직선제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터키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은 비결은 친서민 정책과 비약적인 경제 성과였다. 총리 재임 시절 마이너스였던 경제성장률을 10%까지 끌어올렸고, 건강보험 개혁 등 사회보장 체제도 강화했다. 그러나 서서히 그의 독재가 시작되면서 반발을 사기 시작했다.

지금도 에르도안 대통령은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터키인 사이에서 상당한 지지를 받지만 그의 전반적인 인기는 줄어드는 듯하다. 그의 지시에 따라 2년 전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돼 지금도 발효 중이다(에르도안 정부는 2016년 7월 군부 쿠테타 기도 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뒤 지금까지 7차례 연장했다). 그동안 군인을 비롯해 언론인과 교사, 공무원 등 공직자 수만 명이 해직되고 구속됐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그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며 그들이 미국에 체류하는 이슬람 성직자 페툴라 굴렌(에르도안 대통령은 그를 2016년 군부 쿠데타 기도의 배후로 지목했다)이나 쿠르드노동자당(PKK, 수십 년 동안 분리 독립을 위한 투쟁을 벌여온 쿠르드족 민병대로 미국도 테러단체로 분류했다)과 연계됐다고 주장한다.
옥중에서 편지를 쓰는 데미르타시. HDP는 6월 24일 실시되는 터키 대선에 에르도안 대통령에 맞서 그를 후보로 내세우기로 결정했다. / 사진:AP-NEWSIS
정치적 격변 속에서 터키 화폐 리라의 가파른 가치 하락도 경제 추락의 두려움을 촉발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처음으로 지지도가 50% 아래로 떨어지자 선거를 예정보다 1년 반이나 앞당겨 실시하기로 했다(시리아 내전 상황 관리 등 국정 안정을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최근 터키 경제가 휘청거리면서 재선 가도에 빨간불이 들어오자, 지지율 하락이 부담돼 조기 대선으로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그는 조기 선거를 발표하며 “대통령과 정부가 긴밀히 협력하고 있어 심각한 문제는 일어나지 않지만 앞으로 구시대 시스템의 병폐가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을 수 있다”며 “터키가 미래에 관해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 실행하기 위해선 새로운 정부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데미르타시는 겉으론 선거를 낙관하는 모습이다(그는 “당연히 내가 승리하리라 예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가 옥중에 있다는 사실이 선거에서 유리하게 작용할지 모른다. 정부에 맞선 투쟁에 동조하는 쿠르드족 사이에선 그런 명분을 위해 옥살이하는 것이 명예의 훈장이다. 특히 정치인이 대통령을 모욕하는 발언 때문에 구속됐고, 그가 유머 감각까지 있다면 더욱 인기가 좋다(2015년 데미르타시는 한 행사장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사진을 찍으려고 애가 타서 “이 복도에서 저 복도로 허겁지겁 뛰어다녔다”고 농담했다).

그러나 냉정한 정치적 계산에 따르면 데미르타시의 승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도, HDP도, 터키의 최대 야당 공화인민당(CHP)이 주도하는 반(反)에르도안 연합에 초대받지 못했다(야권은 CHP를 중심으로 4당이 모여 선거 연대를 결성했다). 게다가 쿠르드족이 뿌리라는 한계도 있다. HDP는 독실한 이슬람 신자인 쿠르드계(그들은 세속적인 쿠르드인 정치를 PKK의 무장투쟁과 연관시킨다)를 비롯한 다수에게 외면당한다. 그런 관계는 데미르타시에게 특히 문제가 된다. 그의 형 누레틴 데미르타시는 PKK 대원으로 현재 이라크에 망명 중이다. 데미르타시는 형을 옹호하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으로선 그들의 관계만큼 정치 선전에 이용하기에 안성맞춤은 없다. 그는 HDP를 비롯한 쿠르드계 정당을 전부 PKK의 위장단체라고 몰아붙인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대통령선거를 예정보다 1년 반이나 앞당겨 실시하기로 했다. / 사진:AP-NEWSIS
그러나 데미르타시는 2015년 터키 정부군과 PKK 사이의 휴전 합의가 깨진 이래 에르도안 대통령이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당시 터키 정부군은 이라크 북부의 PKK 장악 지역에서 대대적인 군사작전을 감행했다. PKK는 지난 수십 년동안 터키 남동부를 중심으로 분리독립을 위한 테러 공격을 지속하다가 2013년 터키 정부와 휴전을 위한 협상을 시작했지만 터키 정부군의 공격으로 휴전 합의가 파기됐다고 데미르타시는 지적했다. 당시 그는 휴전을 다시 성사시키려고 중재에 나서려 했지만 터키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제 그는 자신이 대통령에 선출되면 6개월 안에 HDP가 나서서 PKK와 터키 정부 사이의 분쟁을 종식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터키에서 쿠르드족 문제는 비폭력적인 수단으로 해결해야 한다. 평화 협상을 이끌어낼 수 있는 대화를 통해, 또 정치적인 수단을 통해 분쟁이 종식돼야 한다. 결국 PKK가 무장해제를 받아들일 것이다. 우리가 정권을 잡으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데미르타시는 지금으로선 옥중에서 조용히 선거운동을 한다. 그의 유세 연설을 듣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감방 동료인 HDP 소속 의원 압둘라 제이단이다. 제이단은 지난 5월 테러 죄목으로 8년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그들은 다른 죄수들과 격리돼 있다. 데미르타시는 매주 1시간씩 아내와 두 딸을 만날 수 있고, 일주일에 4시간씩 허용되는 운동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건강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그는 또 편지를 받고, 여러 나라의 신문을 읽으며, TV도 본다. 따라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관한 소식도 잘 안다(그는 성추문에 휩싸인 트럼프 대통령을 두고 “당신이 아내의 가슴을 너무 아프게 한 것 같다”며 “아내와 화해하라”고 조언했다).

선거가 다가오는 상황에서 데미르타시는 간수들이 법에 따라 자신을 공정하게 대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어렵지만 우린 강인하고 사기도 드높다. 투쟁의 결의를 조금도 잃지 않았다. 정의가 반드시 실현되리라 믿는다.”

- 올랜도 크로크로프트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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