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매치메이커
평화의 매치메이커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장 간 가교 역할을 했다. 그 결과는 전쟁 종식의 토대일까 또 다른 전쟁의 시작일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역사적인 정상회담 소식을 세상에 처음 전한 건 대통령의 트윗도 국영매체도 아니었다. 그 뉴스는 3월의 어느 서늘한 저녁 백악관의 어둑한 진입로에 선 안경 쓴 한국 관료 입에서 흘러나왔다.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은 즉석 기자회견에서 방금 트럼프 대통령을 접견하고 나온 참이라고 모인 기자단에 말했다. 그 주에 정 안보실장은 평양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직접 전해달라는 김 위원장의 요청을 받고 미국 워싱턴으로 날아갔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핵 프로그램의 종식 문제를 논의하자고 초대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그에 응했다고 정 안보실장은 기자들에게 전했다.
기자들은 크게 놀랐다. 당시 많은 사람이 전쟁 걱정을 하던 참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화염과 분노”를 퍼붓겠다고 엄포를 놓았으며 김 위원장은 장거리 핵미사일로 워싱턴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위협으로 응수했다. 그런 상황에서 현직 미국 대통령과 북한 지도자 간 사상 최초의 회담 계획을 정 안보실장이 발표한 것이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평화적인 해결 가능성을 시험하는 외교적인 절차가 앞으로 계속되리라 낙관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왜 정상회담 발표를 정 안보실장에게 맡겼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한국 관료가 그 발표를 맡는다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 외교 드라마에서 그 역사적인 회담의 최대 공로자는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분석가들은 입을 모은다. 문 대통령과 고위 측근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의 중재자 역할을 맡아 비핵화 회담을 가능케 하는 조건을 수용하도록 두 지도자를 격려하고 회유하며 몇 달 동안 공을 들였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은 문 대통령에게는 외교적·정치적 승리였다. 공동성명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북한의 의지를 재확인하고 북한에는 미국의 안전보장을 안겨줬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또한 고위급 협상을 시작해 이견을 좁혀가기로 했다. 북-미 정상회담 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해 5월 대선 승리 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곧 문 대통령과 한국에 상당한 충격을 줄 수 있는 깜짝 발표 두 가지를 내놓았다. 무엇보다도 한국과의 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하면서 주한미군 2만8500명을 모두 철수해 워싱턴의 국방비를 절감하고 싶다는 입장을 재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조치는 평양 정부를 향한 호혜적인 선의의 제스처로 의도됐지만 일각에선 문 대통령의 입장을 난처하게 하고 남측의 안보를 약화시킨다고 지적한다.
한편 최근 북한이 핵폭탄 연료 생산을 계속한다는 뉴스가 전해지면서 미국의 일부 당국자는 김 위원장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제기했다. 미국과 한국의 회의론자들은 이제 문 대통령이 럭비공 같은 미국 대통령의 손에 한국의 운명을 넘겨주는 외교절차의 멍석을 깔아주지 않았는지 불안해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을 철수하기로 타협해 한국을 북한과 중국의 공격에 노출시킬 수 있다는 우려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한국 분석가 출신으로 워싱턴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 연구소 소속인 수미 테리는 “문 대통령이 대화의 방향을 전쟁에서 평화로 전환하는 촉매제 역할을 할 당시엔 그가 시대의 중심인물이었다”며 “지금 그는 운전자가 아니다”고 말했다.
미국과 북한이 비핵화 협상을 이어가기 위한 준비 과정에 어느 때보다 문 대통령의 정치 운명이 좌우될 수 있다. 북한이 비핵화되면 수십 년 간의 교착상태를 타개하면서 남북한에 평화의 신시대를 개척한 막후실세로서의 유산을 강화하게 된다. 그러나 실패할 경우 대통령 자리를 잃으면서 남측의 수도권과 2500만 주민을 위험에 빠뜨릴 게 거의 확실한 전쟁 위협이 다시 고개 들게 된다.
1976년 8월 당시 특전사 소속이던 문재인은 남북한 긴장이 얼마나 고조될 수 있는지 그리고 고요하던 상황이 얼마나 빨리 위기로 치달을 수 있는지 직접 목격했다. 어느 날 아침 남북한 사이에 가로놓인 비무장지대(DMZ)에서 가지치기 작업을 감독하던 미군 장교 2명이 북한군 병사들에게 도끼로 잔인하게 살해됐다. 북한군 측은 유엔 관측초소의 시야를 가린 그 나무가 북한 지도자 김일성이 직접 심은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 사건이 세계 언론에 대서특필되면서 순식간에 23년간 유지돼온 북-미 간 휴전이 깨질 위기에 처했다. 제럴드 포드 미국 대통령은 곧바로 제2 작업반에 그 나무를 완전히 제거하라고 지시했다. 문재인은 작업반을 수행한 800여 명의 한-미군 병력에 속해 있었다. 미군과 한국군 병사들은 전기톱을 이용해 밑동만 남겨두고 나무를 잘라냈다. 문재인의 뇌리에선 그날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대선 승리 직전 한 인터뷰에서 “나의 국가관·안보관뿐 아니라 애국심은 그때 형성됐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북한에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서로 모욕과 핵공격 위협을 주고받으면서 문 대통령의 접근법은 곧 벽에 부닥쳤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의 거듭된 대화 요청을 묵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을 통해 문 대통령의 대북 “유화론”에 대해 “그들은 한 가지밖에 모른다”고 힐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1월 평창 동계올림픽이 가까워지자 김 위원장이 돌연 문 대통령의 제안에 응하면서 한 연설을 통해 남측에 대화를 시작하자고 제의했다. 남북한 당국자들이 북한의 동계 올림픽 참가를 논의하기 위해 DMZ를 넘어 오갔다. 2월의 개막식에선 양측 선수들이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함께 스타디움에 입장했다. 또 다른 긍정적인 신호는 관람석에 나타난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의 모습이었다.
경기 후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말 폭탄을 주고받는 가운데서도 남북한 관계자들의 교차 방문은 계속됐다. 김정은-트럼프 정상회담은 곧 구체화됐다. 양 측은 문 대통령의 최측근인 정 안보실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초청장을 전달하기로 뜻을 모았다.
북-미 당국자들이 정상회담 장소를 논의하는 사이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도 DMZ의 이른바 공동경비구역에서 남북한 정상회담을 가졌다. 1945년 국토 분단 이후 남북한 지도자 간의 세 번째 만남이었다. 그 후 문 대통령은 워싱턴으로 날아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에게 안전보장과 경제 인센티브를 제공해 핵무기가 없어도 그의 정권이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도록 촉구했다고 한-미 관계자들이 밝혔다. 그 뒤의 논의에선 점진적인 비핵화 과정을 허용하도록 트럼프 대통령에게 요청했다고 앞 서의 관계자들은 전했다. 그리고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같은 정부 내 강경파의 말을 듣지 말라고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했다. 볼턴 보좌관은 모든 핵무기와 핵폭탄 제조 인프라를 먼저 포기하기로 합의하지 않을 경우 북한 정권을 교체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비위를 맞추며 관심을 유도했다. 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이 이뤄지면 노벨 평화상을 받을 만한 업적이 충분히 된다고 설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돌연 정상회담을 취소했을 때도 문대통령이 해결사로 나섰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볼턴 보좌관의 정권교체 위협론을 되풀이하자 북한의 한 고위 관료가 그를 “정치적 얼뜨기”로 비난한 뒤였다. 문 대통령은 부랴부랴 워싱턴으로 날아가 예정대로 회담을 추진하도록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했다.
한편 김 위원장은 외부에 알려진 유일한 핵실험부지를 폐쇄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함으로써 문 대통령의 외교에 힘을 실어줬다. 그 뒤 일각에선 이전의 여섯 차례 핵실험으로 그 지하 시험장이 거의 못 쓰게 됐다고 비판하며 그런 제스처에 무슨 가치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이들은 또한 북한 당국자들이 폭발물을 터뜨려 시험장 입구를 폐쇄하기 전에 민감한 장비를 모두 빼돌렸다고 지적했다. 비핵화 회담이 결렬될 경우에 대비해 북한이 보험을 들려는 의도라는 시사였다. 북한이 핵연료를 계속 생산한다는 보도에 따라 일부 미국 당국자는 김 위원장이 미국을 속인다고 묘사하지만 회담을 앞두고 주도권을 잡으려는 속셈일 수도 있었다. 핵연료가 많을수록 경제원조와 교환할 카드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워싱턴의 회의론자들은 싱가포르 정상회담 결과를 두고 트럼프대통령을 혹평했다. 워싱턴 소재 브루킹스 연구소의 동아시아 전문가 조너선 폴락은 “공동성명은 대체로 일반론과 상투적인 문구투성이로 명백히 기대에 못 미치는 내용이었지만 트럼프는 과대 포장하려 애썼다”고 말했다.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하기로 한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은 더 심각한 문제라고 일부 분석가는 주장한다. 미국 입장에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북한 측과 비핵화 협상을 시작할 때 중요한 지렛대를 잃은 셈이다. 한국 입장에선 평양에 대한 남측의 연합 군사력을 강력하게 상기시켜 주는 카드 하나가 사라진 셈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측근들은 그런 견해를 반박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하는 이른바 “도발적인” 군사훈련의 중단은 북한의 적대감 유발을 피하기 위해 미국에 감축을 촉구해온 문 대통령의 과거 입장과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보수 진영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연합훈련을 중단하기로 한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을 지지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북-미간에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진지한 논의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대화를 더욱 발전시키는 다양한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미군 태평양 사령부의 고위급 한국 전문가 출신인 윌리엄 매키니는 훈련의 ‘대단히 도발적인’ 성격 때문에 ‘트럼프의 갑작스러운 훈련 중단 약속은 현실적으로 전략상 가장 중대한 신뢰구축 조치’라고 북한 전문 웹사이트 38노스에 실린 논평에서 말했다. 정상회담 이후 문 대통령의 개입정책은 두 가지 핵심 목표를 달성한 듯하다. 북-미간의 직접 대화, 그리고 두 적대국간의 군사긴장 완화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취임 1년 후 민선 대통령 중 가장 높은 79%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런 환호가 오래 가지 못할 수도 있다. 지속적인 평화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좌우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중 일 순위는 앞으로 예정된 비핵화 협상이다. 미국과 북한 협상대표단이 65개로 추정되는 북한 핵무기의 해체 일정표와 그 대가로 미국이 제공할 경제적 지원으로 싱가포르 공동 성명을 구체화할 것이다. 미국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미국이 곧 평양에 “구체적인 일정표” 아래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의 대북 협상을 참고한다면 결렬을 초래할 수 있는 오해는 부지기수다. 2005년 비핵화 협정 체결 며칠 뒤 조지 W. 부시 정부가 새로 경제제재를 가하자 북한은 미국을 신뢰할 수 없다며 협정을 철회했다. 2012년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을 제한하는 협약은 북한이 위성발사용 장거리 미사일은 예외라고 고집하면서 결렬됐다.
주한미군의 미래를 둘러싸고 문 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앞으로 분명 떠오를 것이다. 지난 4월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정상회담에서 두 지도자는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종결 짓는 평화조약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그 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평화조약이 체결될 경우 미군이 남한에서 철수해야 할지 모른다고 시사했다.
주한미군 철수로 큰돈을 절약할 수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싱가포르 발언은 워싱턴 정가에 파문을 일으켰다. 이제 일부 분석가는 미군 철수의 최대 승자는 중국이 될 것이며 한국·일본 등 미국의 동아시아 지역 우방은 한미·한일 동맹의 핵심요소인 미국의 안전보장 보호막을 잃어 타격을 입게 된다고 경고한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동아시아 전문가 라이언 하스는 “중국은 동북아 지역 주둔 미군의 감축 그리고 미국과 그 동맹·파트너 간의 간극 확대를 원할 것”이라며 “그들은 이제 비용을 거의 들이지 않고 그런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중국이 지배하는 지역에서 한국의 안보를 경시하는 핵협정, 또는 협정의 부재, 그리고 또 다른 말폭탄, 나아가 핵탄두 미사일을 앞세우는 대결은 문 대통령과 한국에 모두 심각한 위험이다. 북한이 핵연료를 생산한다는 보도를 근거로 일부 미국 당국자는 김 위원장을 신뢰할 수 없는 인물로 평가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국내 보수파 진영에서든 워싱턴에서든 어디서 그런 주장이 나오든 속단이라고 말한다. 북한 비핵화가 이제 막 첫걸음을 뗀 시점에서 그가 시동을 건 평화절차가 주한 미군을 철수해도 안전한 시점에 도달하려면 여러 해가 걸릴 수 있다. 따라서 문 대통령은 그 절차를 계속 진전 시키는 작은 조치들에 초점을 맞춘다.
지난 6월 22일 미국 국방부는 한국 고위 관료들과 상의해 한반도에서 미군의 대규모 군사훈련을 “무기한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며칠 뒤 북한은 6월 25일 최대 규모이자 가장 정치성 강한 행사로 꼽히는 연례 “반미 제국주의 군중집회”를 취소했다. 또한 1950~1953년 한국전쟁 종식 후 실종된 미군 병사 200여 명의 유해를 곧 반환할 것이라고 최근 백악관에 통보했다. 미군은 유해를 넘겨받기 위해 관을 DMZ로 이동했다. 한편 남북한도 양자간의 긴장 완화를 위해 힘쓴다. 일 순위는 DMZ에서의 무기 철수다. 40여 년 전 가지 많은 나무를 둘러싼 시비가 어떻게 남북한을 전쟁의 벼랑 끝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지 문 대통령이 직접 목격했던 곳이다.
- 조너선 브로더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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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은 즉석 기자회견에서 방금 트럼프 대통령을 접견하고 나온 참이라고 모인 기자단에 말했다. 그 주에 정 안보실장은 평양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직접 전해달라는 김 위원장의 요청을 받고 미국 워싱턴으로 날아갔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핵 프로그램의 종식 문제를 논의하자고 초대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그에 응했다고 정 안보실장은 기자들에게 전했다.
기자들은 크게 놀랐다. 당시 많은 사람이 전쟁 걱정을 하던 참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화염과 분노”를 퍼붓겠다고 엄포를 놓았으며 김 위원장은 장거리 핵미사일로 워싱턴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위협으로 응수했다. 그런 상황에서 현직 미국 대통령과 북한 지도자 간 사상 최초의 회담 계획을 정 안보실장이 발표한 것이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평화적인 해결 가능성을 시험하는 외교적인 절차가 앞으로 계속되리라 낙관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왜 정상회담 발표를 정 안보실장에게 맡겼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한국 관료가 그 발표를 맡는다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 외교 드라마에서 그 역사적인 회담의 최대 공로자는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분석가들은 입을 모은다. 문 대통령과 고위 측근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의 중재자 역할을 맡아 비핵화 회담을 가능케 하는 조건을 수용하도록 두 지도자를 격려하고 회유하며 몇 달 동안 공을 들였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은 문 대통령에게는 외교적·정치적 승리였다. 공동성명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북한의 의지를 재확인하고 북한에는 미국의 안전보장을 안겨줬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또한 고위급 협상을 시작해 이견을 좁혀가기로 했다. 북-미 정상회담 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해 5월 대선 승리 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곧 문 대통령과 한국에 상당한 충격을 줄 수 있는 깜짝 발표 두 가지를 내놓았다. 무엇보다도 한국과의 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하면서 주한미군 2만8500명을 모두 철수해 워싱턴의 국방비를 절감하고 싶다는 입장을 재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조치는 평양 정부를 향한 호혜적인 선의의 제스처로 의도됐지만 일각에선 문 대통령의 입장을 난처하게 하고 남측의 안보를 약화시킨다고 지적한다.
한편 최근 북한이 핵폭탄 연료 생산을 계속한다는 뉴스가 전해지면서 미국의 일부 당국자는 김 위원장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제기했다. 미국과 한국의 회의론자들은 이제 문 대통령이 럭비공 같은 미국 대통령의 손에 한국의 운명을 넘겨주는 외교절차의 멍석을 깔아주지 않았는지 불안해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을 철수하기로 타협해 한국을 북한과 중국의 공격에 노출시킬 수 있다는 우려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한국 분석가 출신으로 워싱턴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 연구소 소속인 수미 테리는 “문 대통령이 대화의 방향을 전쟁에서 평화로 전환하는 촉매제 역할을 할 당시엔 그가 시대의 중심인물이었다”며 “지금 그는 운전자가 아니다”고 말했다.
미국과 북한이 비핵화 협상을 이어가기 위한 준비 과정에 어느 때보다 문 대통령의 정치 운명이 좌우될 수 있다. 북한이 비핵화되면 수십 년 간의 교착상태를 타개하면서 남북한에 평화의 신시대를 개척한 막후실세로서의 유산을 강화하게 된다. 그러나 실패할 경우 대통령 자리를 잃으면서 남측의 수도권과 2500만 주민을 위험에 빠뜨릴 게 거의 확실한 전쟁 위협이 다시 고개 들게 된다.
1976년 8월 당시 특전사 소속이던 문재인은 남북한 긴장이 얼마나 고조될 수 있는지 그리고 고요하던 상황이 얼마나 빨리 위기로 치달을 수 있는지 직접 목격했다. 어느 날 아침 남북한 사이에 가로놓인 비무장지대(DMZ)에서 가지치기 작업을 감독하던 미군 장교 2명이 북한군 병사들에게 도끼로 잔인하게 살해됐다. 북한군 측은 유엔 관측초소의 시야를 가린 그 나무가 북한 지도자 김일성이 직접 심은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 사건이 세계 언론에 대서특필되면서 순식간에 23년간 유지돼온 북-미 간 휴전이 깨질 위기에 처했다. 제럴드 포드 미국 대통령은 곧바로 제2 작업반에 그 나무를 완전히 제거하라고 지시했다. 문재인은 작업반을 수행한 800여 명의 한-미군 병력에 속해 있었다. 미군과 한국군 병사들은 전기톱을 이용해 밑동만 남겨두고 나무를 잘라냈다. 문재인의 뇌리에선 그날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대선 승리 직전 한 인터뷰에서 “나의 국가관·안보관뿐 아니라 애국심은 그때 형성됐다”고 말했다.
매치메이커
그러나 지난 1월 평창 동계올림픽이 가까워지자 김 위원장이 돌연 문 대통령의 제안에 응하면서 한 연설을 통해 남측에 대화를 시작하자고 제의했다. 남북한 당국자들이 북한의 동계 올림픽 참가를 논의하기 위해 DMZ를 넘어 오갔다. 2월의 개막식에선 양측 선수들이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함께 스타디움에 입장했다. 또 다른 긍정적인 신호는 관람석에 나타난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의 모습이었다.
경기 후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말 폭탄을 주고받는 가운데서도 남북한 관계자들의 교차 방문은 계속됐다. 김정은-트럼프 정상회담은 곧 구체화됐다. 양 측은 문 대통령의 최측근인 정 안보실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초청장을 전달하기로 뜻을 모았다.
북-미 당국자들이 정상회담 장소를 논의하는 사이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도 DMZ의 이른바 공동경비구역에서 남북한 정상회담을 가졌다. 1945년 국토 분단 이후 남북한 지도자 간의 세 번째 만남이었다. 그 후 문 대통령은 워싱턴으로 날아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에게 안전보장과 경제 인센티브를 제공해 핵무기가 없어도 그의 정권이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도록 촉구했다고 한-미 관계자들이 밝혔다. 그 뒤의 논의에선 점진적인 비핵화 과정을 허용하도록 트럼프 대통령에게 요청했다고 앞 서의 관계자들은 전했다. 그리고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같은 정부 내 강경파의 말을 듣지 말라고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했다. 볼턴 보좌관은 모든 핵무기와 핵폭탄 제조 인프라를 먼저 포기하기로 합의하지 않을 경우 북한 정권을 교체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비위를 맞추며 관심을 유도했다. 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이 이뤄지면 노벨 평화상을 받을 만한 업적이 충분히 된다고 설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돌연 정상회담을 취소했을 때도 문대통령이 해결사로 나섰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볼턴 보좌관의 정권교체 위협론을 되풀이하자 북한의 한 고위 관료가 그를 “정치적 얼뜨기”로 비난한 뒤였다. 문 대통령은 부랴부랴 워싱턴으로 날아가 예정대로 회담을 추진하도록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했다.
한편 김 위원장은 외부에 알려진 유일한 핵실험부지를 폐쇄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함으로써 문 대통령의 외교에 힘을 실어줬다. 그 뒤 일각에선 이전의 여섯 차례 핵실험으로 그 지하 시험장이 거의 못 쓰게 됐다고 비판하며 그런 제스처에 무슨 가치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이들은 또한 북한 당국자들이 폭발물을 터뜨려 시험장 입구를 폐쇄하기 전에 민감한 장비를 모두 빼돌렸다고 지적했다. 비핵화 회담이 결렬될 경우에 대비해 북한이 보험을 들려는 의도라는 시사였다. 북한이 핵연료를 계속 생산한다는 보도에 따라 일부 미국 당국자는 김 위원장이 미국을 속인다고 묘사하지만 회담을 앞두고 주도권을 잡으려는 속셈일 수도 있었다. 핵연료가 많을수록 경제원조와 교환할 카드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전쟁 연습’의 종식
그러나 문 대통령의 측근들은 그런 견해를 반박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하는 이른바 “도발적인” 군사훈련의 중단은 북한의 적대감 유발을 피하기 위해 미국에 감축을 촉구해온 문 대통령의 과거 입장과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보수 진영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연합훈련을 중단하기로 한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을 지지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북-미간에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진지한 논의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대화를 더욱 발전시키는 다양한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미군 태평양 사령부의 고위급 한국 전문가 출신인 윌리엄 매키니는 훈련의 ‘대단히 도발적인’ 성격 때문에 ‘트럼프의 갑작스러운 훈련 중단 약속은 현실적으로 전략상 가장 중대한 신뢰구축 조치’라고 북한 전문 웹사이트 38노스에 실린 논평에서 말했다. 정상회담 이후 문 대통령의 개입정책은 두 가지 핵심 목표를 달성한 듯하다. 북-미간의 직접 대화, 그리고 두 적대국간의 군사긴장 완화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취임 1년 후 민선 대통령 중 가장 높은 79%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런 환호가 오래 가지 못할 수도 있다. 지속적인 평화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좌우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중 일 순위는 앞으로 예정된 비핵화 협상이다. 미국과 북한 협상대표단이 65개로 추정되는 북한 핵무기의 해체 일정표와 그 대가로 미국이 제공할 경제적 지원으로 싱가포르 공동 성명을 구체화할 것이다. 미국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미국이 곧 평양에 “구체적인 일정표” 아래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의 대북 협상을 참고한다면 결렬을 초래할 수 있는 오해는 부지기수다. 2005년 비핵화 협정 체결 며칠 뒤 조지 W. 부시 정부가 새로 경제제재를 가하자 북한은 미국을 신뢰할 수 없다며 협정을 철회했다. 2012년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을 제한하는 협약은 북한이 위성발사용 장거리 미사일은 예외라고 고집하면서 결렬됐다.
주한미군의 미래를 둘러싸고 문 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앞으로 분명 떠오를 것이다. 지난 4월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정상회담에서 두 지도자는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종결 짓는 평화조약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그 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평화조약이 체결될 경우 미군이 남한에서 철수해야 할지 모른다고 시사했다.
주한미군 철수로 큰돈을 절약할 수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싱가포르 발언은 워싱턴 정가에 파문을 일으켰다. 이제 일부 분석가는 미군 철수의 최대 승자는 중국이 될 것이며 한국·일본 등 미국의 동아시아 지역 우방은 한미·한일 동맹의 핵심요소인 미국의 안전보장 보호막을 잃어 타격을 입게 된다고 경고한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동아시아 전문가 라이언 하스는 “중국은 동북아 지역 주둔 미군의 감축 그리고 미국과 그 동맹·파트너 간의 간극 확대를 원할 것”이라며 “그들은 이제 비용을 거의 들이지 않고 그런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중국이 지배하는 지역에서 한국의 안보를 경시하는 핵협정, 또는 협정의 부재, 그리고 또 다른 말폭탄, 나아가 핵탄두 미사일을 앞세우는 대결은 문 대통령과 한국에 모두 심각한 위험이다. 북한이 핵연료를 생산한다는 보도를 근거로 일부 미국 당국자는 김 위원장을 신뢰할 수 없는 인물로 평가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국내 보수파 진영에서든 워싱턴에서든 어디서 그런 주장이 나오든 속단이라고 말한다. 북한 비핵화가 이제 막 첫걸음을 뗀 시점에서 그가 시동을 건 평화절차가 주한 미군을 철수해도 안전한 시점에 도달하려면 여러 해가 걸릴 수 있다. 따라서 문 대통령은 그 절차를 계속 진전 시키는 작은 조치들에 초점을 맞춘다.
지난 6월 22일 미국 국방부는 한국 고위 관료들과 상의해 한반도에서 미군의 대규모 군사훈련을 “무기한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며칠 뒤 북한은 6월 25일 최대 규모이자 가장 정치성 강한 행사로 꼽히는 연례 “반미 제국주의 군중집회”를 취소했다. 또한 1950~1953년 한국전쟁 종식 후 실종된 미군 병사 200여 명의 유해를 곧 반환할 것이라고 최근 백악관에 통보했다. 미군은 유해를 넘겨받기 위해 관을 DMZ로 이동했다. 한편 남북한도 양자간의 긴장 완화를 위해 힘쓴다. 일 순위는 DMZ에서의 무기 철수다. 40여 년 전 가지 많은 나무를 둘러싼 시비가 어떻게 남북한을 전쟁의 벼랑 끝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지 문 대통령이 직접 목격했던 곳이다.
- 조너선 브로더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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