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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제 편입이냐 고립이냐 선택하라”

“글로벌 경제 편입이냐 고립이냐 선택하라”

트럼프 대통령, 이란 제재 복원 행정명령 서명 … 달러화 거래 제한하고 11월부터는 석유거래 금지
미국의 제재가 재개되면서 심각한 이란의 경제난이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사진은 테헤란에 그려진 ‘자유의 여신상’ 풍자 그림. / 사진:AP-NEWSIS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8월 6일 이란 제재를 복원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2015년 미국을 포함한 주요 6개국(유엔 안보리 상임이사 5개국+독일)은 이란 정부와 비핵화 단계별로 경제제재를 완화하는 내용의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 ‘이란 핵합의’라고 부른다)’에 합의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그 합의가 이란 핵문제를 완전히 해결한 게 아니라고 비판했고 지난 5월 8일 JCPOA 탈퇴를 선언하면서 이달 6일까지를 ‘90일 유예기간’으로 통보했다. 이제 그 기간이 끝나고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이란 제재가 다시 시작된다. 2016년 1월 핵합의를 이행하면서 제재를 완화하거나 중단한 지 2년 7개월 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핵합의는 끔찍하고 일방적인 거래였다”며 “이란의 핵폭탄으로 이어지는 모든 길목을 막는다는 목적 달성에 실패했다”고 밝혔다. “오히려 독재자에게 현금을 제공하는 생명줄이 됐다. 이란의 공격성은 더 강해졌고, 오늘날까지 미국과 우리의 동맹국들을 위협한다. 이란 정권은 위협적이고 불안정한 행동에서 벗어나 글로벌 경제에 다시 편입되든지, 아니면 경제고립의 길을 이어가든지 선택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이란과의 경제활동을 줄이지 않는 개인이나 단체는 심각한 결과를 맞게 될 것”이라며 다른 국가들의 제재 동참도 압박했다. 제재는 이란 정권의 자금줄을 차단하면서 글로벌 달러 체제에서 ‘퇴출’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고, 궁극적으로 이란 정권의 ‘생명줄’인 원유 수출까지 막는다는 내용이다.

이란 제재는 두 단계 걸쳐 이뤄진다. 8월 7일부터 발효되는 1단계 제재는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이 적용된다. 미국 업체만이 아니라 이란과 거래한 제3국의 기업·개인도 제재를 받는다. 백악관은 이란 정부의 달러화 구매, 이란 리알화 관련 거래, 이란 국채 발행 관련 활동, 이란의 금·귀금속 거래, 흑연·알루미늄·철·석탄·소프트웨어·자동차 거래 등을 제재 대상으로 명시했다. 글로벌 기축통화인 달러화 거래를 막아 이란 정권의 돈줄을 죄고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고립시키겠다는 취지다. 카펫·피스타치오·캐비어 등 이란 특산품의 수출길도 막히게 된다.

90일 이후인 11월 5일부터 부과되는 2단계 제재는 한층 강도가 높다. 백악관은 이란의 석유제품 거래, 이란의 항만 운영·에너지·선박·조선 거래, 이란중앙은행과의 거래 등이 제재받게 된다고 발표했다. 산유국인 이란의 에너지 거래를 원천 봉쇄하려는 것이다. 백악관은 “기존의 제재명단에 포함된 수백 건(개인·기업·선박·항공기)도 다시 제재 대상에 오르게 된다”고 밝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90일 전 미국 대통령은 실패한 이란 핵합의를 철회했다. 오늘(워싱턴 시각으로 7일 0시) 이란 정권의 악행에 맞선 제재가 재개됐다. 이란 정권은 이란의 자원을 테러를 지원하고 최고지도자의 축재를 위해 쓰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도 트위터를 통해 이렇게 반박했다. “미국의 군사주의는 사라지지 않았고 인류의 삶을 전혀 살피지도 않는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이 이란 국민을 걱정한다고 국제사회가 믿기 바란다. 그러나 그들이 재개한 첫 제재로 어처구니없게도 200대 이상의 여객기 판매 허가가 취소돼 평범한 이란 국민을 위험에 처하도록 했다. 미국의 위선은 끝을 모른다.”

한편 이란 핵합의를 시종일관 비판했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환영했다. 그는 공식 성명을 통해 “지금은 이스라엘과 미국, 중동 지역, 전 세계에 매우 중요한 순간”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조치는 이란의 공격 가능성을 저지하겠다는 결의를 상징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유럽 지도자들을 향해 이란에 맞서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동참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의 조치가 국제적으로 얼마나 호응을 얻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심각한 결과’를 거론하며 경고하기는 했지만, 트럼프 정부의 일방적인 조치를 비판하는 시각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과 이란 핵합의 서명국인 프랑스·독일·영국 3국은 미국의 이란 제재에 깊은 유감을 표명하고 이란과 합법적인 거래를 하는 EU 기업을 보호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안보 고위대표와 장이브스 르드리앙(프랑스)·하이코 마스(독일)· 제러미 헌트(영국) 외교부 장관은 공동성명을 통해 “이란과 합법적인 사업을 하는 EU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업데이트된 ‘제재 무력화법’을 8월 7일부터 발효한다”고 밝혔다.

나머지 JCPOA 서명국인 러시아와 중국도 이란 핵합의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는 이란계 미국인 글로벌 안보개발 컨설턴트 비어트리스 마네시는 뉴스위크에 이란이 세계에서 12번째로 큰 자동차 제조국이라고 말했다. 그는 르노·푸조·폴크스바겐이 이란에 공장을 갖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외국인 투자가 많은 부문일뿐 아니라 이란 최대의 부문을 표적으로 타격을 가한다”고 설명했다. “나머지 서명국들이 어떤 시도를 하든 이란 핵합의는 폐기됐다는 사실을 확실히 하는 것이 미국 정부의 목표다.”

마네시는 또 “이란 경제가 미국에 의존하지도 않고 깊이 연결됐지도 않기 때문에 미국 기업들이 이란 회사들이나 이란과 더는 함께 일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가 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유럽 기업이나 유럽 정부가 최대의 무역 파트너인 미국을 상대로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미국의 친이란 단체인 전미이란계미국인위원회(NIAC)의 자말 압디 위원장은 공식 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이 “해외에서 미국의 리더십에 심대한 해를 끼치며 군사적인 수단이 아니라 외교적 수단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손상시킨다”고 말했다. “이란 제재의 재부과는 8000만 명 이란 인구에 대한 집단 징벌이다. 이란을 경제적 곤경으로 계속 밀어넣고 이란인들은 생명을 구하는 의약품과 안전한 여객기 같은 기본 필수품에도 접근을 거부당하게 된다.”

지금도 이란은 리알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다. 미국의 제재가 다시 시작되면 상황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이미 수도 테헤란과 주요 도시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도 갈수록 심한 정치적 반발에 부닥친다. 의원들은 그에게 핵합의가 경제난 해소에 아무런 효과가 없는 이유를 의회에 나와서 설명하라고 촉구했다

- 제이슨 레몬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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