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 좋은 호황인가
누구에게 좋은 호황인가
미국 주가는 급등하고 실업률은 50년래 최저에 소비심리는 높아졌다는데 왜 보통 사람 지갑은 여전히 얄팍할까 폴 그릴리는 당시의 붕괴장면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미국 오하이오주 영스타운 토박이인 그는 1982년 4월 28일 U.S. 스틸의 오하이오 공장 건너편에 서 있었다. 도시에 마지막 남은 대형 공장 중 하나였다. 철강 노동자였던 그의 아버지는 실업자가 됐다. 공장 문을 닫은 몇 년 뒤 4개 용광로를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해 붕괴되는 모습을 가족이 모두 지켜봤다.
한 시대의 종말을 고하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미국의 거대 기업이 일본의 도전을 받아 무참히 짓밟혔다. 철강·알루미늄·자동차 산업이 죽어가는 듯했다. “아버지·삼촌·할아버지 모두 일자리를 잃었다. 그들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그릴리는 돌이켰다.
오늘날 영스타운은 완전히 새롭게 태어났다. 규모가 축소되고 공업적 특성은 퇴색됐지만 탈산업화하지는 않았다. 그릴리는 요즘 중서부 각지의 기업 고객들에게 알루미늄 잉곳(주형에 넣어 굳힌 제품)을 공급한다. 친구 중에도 영스타운 툴&다이(YT&D)라는 성장 기업 근로자가 많다. 미국 경제가 호황을 구가하고 제조업이 외국의 도전을 받지 않던 먼 옛날 잘나갔던 U.S. 스틸 같은 유형의 러스트 벨트(미국 중서부 지역의 사양화된 철강업 지대) 기업이다.그러나 금속을 변형해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장비를 알루미늄 제조업체들에 공급하는 YT&D는 기동성도 뛰어났다. 오늘날까지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전반적인 경제 호황 속에서 승승장구한다. 올여름 1300만 달러를 들여 공장을 신설하고 57명의 직원을 새로 뽑아 인력을 20% 증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확장안은 “높은 수준의 호경기”, 트럼프 정부가 통과시킨 법인세 인하조치의 혜택, 그리고 “안정적인” 규제 환경 덕분이라고 데이브 므라드제노빅 본부장은 말했다. 그들은 이제 국내 판매지역을 확대하고 캐나다·멕시코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YT&D는 ‘트럼포노믹스’(트럼프 경제정책)의 총아다. 수정헌법 25조를 동원해 트럼프 대통령을 몰아내는 방안이 논의됐다는 주장, 러시아와의 내통 의혹에 관해 뮬러 특검이 진행 중인 수사, 확대되는 대중(對中) 무역전쟁, 끊임없이 쏟아지는 트윗, 충동적인 의사결정 등 트럼프 정부 들어 온갖 비정상적인 일들이 벌어지는 가운데 정부 당국자들은 경제만큼은 확실히 장악했다고 믿는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 캠페인 중 “나는 하느님이 일찍이 내린 가장 위대한 ‘일자리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대통령들은 원래부터 자신의 경제정책 능력을 과장하고 호황을 맞을 때는 자신의 업적을 과대 포장해 떠벌리게 마련이다. 통화정책, 글로벌 경제 성장률, 지정학적 쇼크 등 다른 강력한 변수들이 미국 재정의 기초 체력을 형성한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들은 여러 모로 볼 때 대통령이 공약을 실천한다고 말한다.실업률은 1969년 이후 가장 낮은 3.7% 선, 소비심리는 18년래 최고 수준이다. 중소기업 창업열기는 역대 어느 때보다 뜨겁다. 주식시장은 상승국면에 있다. 경제는 2분기 4.2% 성장을 기록했으며 올해 3%를 돌파할 수 있다.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은 “장기침체의 시대(The days of secular stagnation, 미국의 저성장을 가리키는 오바마 정부의 표현)는 끝났다”며 “현 상태는 지속 가능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호경기가 다가오는 중간 선거를 판가름하는 이슈, 민주당의 물결을 저지할 만한 방패막이 돼야 한다고 믿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월 트위터에 ‘경제가 대단히 좋아 아마 미국 역사상 최고일 듯’이라고 올렸다. 그러나 그에 관한 유권자의 평가가 엇갈리면서 오는 11월 중간 선거에서 공화당 진영에 기이한(그리고 불길한) 역학을 조성한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현재 절반가량의 미국인이 미국 경제를 “매우 좋다 또는 좋다”고 평가해 근 20년래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트럼프 시대의 거의 모든 것이 그렇듯 당파성에 따라 견해가 뚜렷하게 갈린다. 공화당원과 공화당 성향 무소속 그룹의 73%는 경제를 좋게 보는 반면 민주당원과 민주당 성향 무소속 그룹에선 그 비율이 35%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양 진영의 안정적인 과반수가 자신의 경제적 앞날을 변함없이 낙관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공로를 인정하는 데는 인색하다. 경제 호황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지율은 40% 선을 맴돈다.
대통령의 인화성 강한 발언과 논란을 유발하는 성향에 경제 뉴스가 묻혀버려 공화당이 경제에 편승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거의 불가능하게 되지 않을까 공화당 일각에서는 우려한다. 이민문제, 러시아 그리고 대법원을 둘러싼 투쟁이 캠페인을 지배하면서 여론조사에선 민주당이 하원을 탈환하기에 유리한 위치에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정부의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냈던 오스탄 굴스비는 “이번 선거에선 정치적 측면이 대단히 강하다”며 “지금처럼 그렇게 오랫동안 경제가 잘 굴러가는데도 정부가 그 공로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민주당 진영은 ‘트럼포노믹스’가 미국 중산층에 준 혜택이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임금인상은 트럼프 정부의 핵심 공약이었지만 최근 들어서야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트럼프 임기 거의 내내 근로자 임금은 대체로 제자리걸음했다. 그리고 구직 포기자 수는 지금까지 수 년째 감소세지만 트럼프 경제 고문들의 예상만큼 줄어드는 속도가 빠르지는 않다(이들 ‘구직 포기자’는 공식 실업률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다). 지난 8월 퀴니피악대학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유권자의 58%는 정부의 중산층 지원책이 충분하지 않다고 여겼다.
따라서 중간선거가 트럼프 대통령에 관한 중간평가라면 그의 정책은 경제에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1980년대 초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정책이 1980년대 초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을 20년 간의 호황으로 바꿔 놓았듯이 트럼프의 정책이 실제로 오바마의 완만하지만 꾸준한 성장에 엔진을 달아줬을까? 아니면 미국 경제가 당분도취(sugar high, 적자를 키우는 감세를 통한 대대적인 경기부양 효과) 상태에 있으며 곧바로 약발이 떨어져 오바마 시대 수준으로 다시 돌아갈까? 논쟁 중 궁지에 몰린 바버라 콤스탁 공화당 의원이 최근 말한 대로 그 수치들이 “반박할 게 아니라 반겨야 할 결과”일까, 아니면 소수 부유층을 위해 만들어진 경제를 호도하는 위장재일까?
트럼프 정부의 논리는 간단명료하다. 법인세 감축법안에 폭넓은 규제완화 정책이 맞물려 경제에 고속엔진을 달아주고 기업행태에 변화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이 과거라면 하지 않았을 투자를 촉진하고 잘 될 경우 고용을 늘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실은 더 복잡하다. 올해 초 새로 얻은 수입 중 일부로 직원들에게 특별 보너스를 지급한다고 발표하는 기업이 나올 때마다 거의 항상 대통령이 환호하는 모습에 측근 중 일부가 민망해 하던 까닭이다. 예컨대 트럼프 대통령이 감세 법안에 서명한 뒤 AT&T는 20만 명의 직원에게 1000달러씩 보너스를 지급했다. 물론 그런 보너스를 지급하면 근로자 개개인의 소득이 증가하지만 일회성이라서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그런 지출은 기업의 투자 기회가 비교적 드물다는 신호일 수 있다고 일부 경제학자는 주장한다. 그런 게 아니라면 그 돈으로 투자를 했으리라는 의미다. 정치적인 관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YT&D 같은 소기업을 거론하는 편이 현명할 것이다. 므라드제노빅 본부장은 1300만 달러 규모의 사업 확장 계획을 수립할 수 있었던 데는 감세 법안이 일정 부분 작용했다고 말했다. “세제 개혁이 분명 우리 계산에 반영됐다.”
트럼프 감세안이 현명한 정책이었는지 아닌지는 대기업·중소기업을 막론하고 그런 투자로 판가름날 것이다. 고용을 늘리고 생산성을 높이고 임금을 끌어올리는 데는 대체로 투자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기업 생산성이 향상되면 가격을 올리거나 수익을 줄이지 않고 더 많은 임금을 지불할 수 있다. 지난 10여 년 간 미국에서 사라졌던 지속적인 경제성장의 기본원칙이다.
거기에 일어나는 변화를 말해주는 초반 조짐이 보인다. 올해 자본투자가 전년비 5%에 달하는 높은 증가율을 보이며 지난 2분기 사이 가속도가 붙었다. 그러나 트럼프 보좌관들이 법인세 삭감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호경기는 아직 아니다. 2분기 시급의 2.9% 증가(2009년 이후 분기 기준 최대폭)가 비슷한 수준의 생산성 향상을 수반했다는 사실이 더 고무적이다. 그런 추세가 장기간에 걸쳐 계속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변화가 그들이 홍보한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경제에 박차를 가해 더 빠르고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해질 것이다.그러나 한 분기 데이터로 트렌드를 말할 수 없다. 트렌드의 핵심 문구는 ‘장기간’이다. 아직까지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 달리 그의 정책으로 신규고용이 급격히 늘지 않았다. 트럼프 임기 2년의 월별 고용 통계는 오바마 정부 마지막 2년 간의 통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워싱턴 포스트는 ‘팩트 체크’에서 율리시즈 S. 그랜트,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린든 B. 존슨, 빌 클린턴 정부 시절보다 경제실적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놀라운 점은 2009년 끝난 대불황 이후 근 10년 전에 시작된 경기확장에서 이렇게 오래도록 고용이 강세를 보인다는 사실이다. 또한 적어도 현재로선 성장에 가속이 붙는 듯하다는 사실도 특이한 점이다.
트럼프 경제정책을 낙관하는 보좌관들은 경제학자 스티브 무어의 말마따나 “이것이 뉴노멀”(시대변화에 따른 새로운 표준)이라고 믿는 듯하다. 커들로 위원장은 성장의 가속화가 “(미국 의회예산국에 따르면 10년간에 걸쳐 적자를 1조5000억 달러 키우는) 감세효과의 시작”을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뿐 아니라 광범위한 경제 분야의 규제완화 약속도 경제성장을 견인한다고 트럼프 정부는 말한다. 커들로 위원장은 “미국 경제가 이제 호황기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경제 전반에 걸쳐 정부 개입의 축소(특히 금융업·제조업 그리고 에너지 생산 분야에서)가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데는 주류 경제학자들 사이에선 이론이 없다. 규제완화가 경기를 부양한다는 정부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몇몇 사례도 있다. 네브래스카주 링컨 교외에서 제재소를 운영하는 존 시먼스는 석탄 화력 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쇄하려던 오바마 시대의 청정발전계획을 트럼프 대통령이 개정해준 덕분에 전력요금 지출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그의 입장에선 그에 따라 투자와 인건비 지급에 쓸 돈이 더 많아진다.
YT&D 입장에선 보건·안전 규제 업무의 서류작업이 줄어 그만큼 시간과 돈이 절약된다. 그리고 경제 전반의 대다수 기업에 그런 효과가 되풀이된다면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 그러나 광범위한 효과를 뒷받침할 만한 데이터가 거의 없다. 일부 경제학자 그리고 이 기사를 위해 인터뷰한 많은 기업인이 규제철폐의 약속만으로도 존 메이너드 케인즈가 말한 그 유명한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이 깨어났다고 믿는다. 규제완화가 경기낙관론을 키우고 그에 따라 차례로 투자·고용 그리고 성장이 확대되는 선순환이 촉발된다는 믿음이다. 물론 야성적 충동을 측정할 방법은 없다. 다만 경제전문가들은 중소기업 경기신뢰 호전 같은 지표를 경기 낙관론의 증거로 거론한다.
지난 늦여름 트럼프 정부의 정책으로 규제비용이 얼마나 절약됐느냐고 묻자 정보·규제관리실 네오미 라오 실장은 “지금까지 약 80억 달러”라고 답했다. 상당한 금액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4조 달러에 달하는 미국 경제규모에 비하면 미미한 지금까지의 절감액은 중요한 현실을 말해준다. 규제 감축에는 오랜 시일이 걸린다는 점이다. 행정부가 무엇을 바꾸는 데는 대부분 검토기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상당수의 규제가 법으로 정해지는, 다시 말해 입법활동이 요구된다. 새 법안을 통해서만 철폐될 수 있다는 의미다.
바로 그런 까닭에 규제철폐를 그렇게 외쳐댄다 해도 한 가지 드러나지 않는 추한 비밀은 트럼프 정부가 새로운 법의 시행을 늦췄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예컨대 트럼프 대통령이 제조업 분야에서 발효한 새로운 주요 규제(1년간 경제에 1억 달러 이상 영향을 미치는 규칙)는 34건인 데 비해 오바마 정부에선 79건, 조지 W.부시 정부에선 54건이었다. 기업의 관점에선 발전으로 간주될 만하다. 그러나 인디애나대학 제조업정책이니 셔티브 키스 벨튼 소장의 설명에 따르면 연방규제의 순비용은 여전히 증가 중이며 “다만 증가 속도가 현 정부들어 이전 정부들보다 훨씬 느려졌다.”일부 경제전문가는 미국이 ‘트럼프 호황’을 맞고 있다는 주장을 일소에 부친다. 실업률은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낮았던 오바마 정부 때부터 떨어지고 있었다고 그들은 반박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흑인과 라틴계 그룹의 실업률도 급락했다고 곧잘 자랑하지만 그 추세도 전 정부 시절 시작됐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지난 9월 일리노이대학 연설에서 “지금 경제가 얼마나 잘 돌아가는지를 누군가 거론할 때는 이번 경기회복세가 언제 시작됐는지만 기억하면 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선거운동 중 21세기 경제에서 아마도 둘도 없는 최대의 경제적 난제인 임금정체를 해결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는 2016년 플로리다주 집회에서 “여러분의 연봉과 임금을 높이 높이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그의 정부는 그 공약에 한 술 더 떠 공화당 감세법안으로 임금을 4000달러 인상해 9000달러로 올려놓겠다고 다짐했다. 그 약속은 실현되지 않았다. 노동부의 최신 추산에 따르면 평균 시급은 해마다 아주 조금씩 올라 인플레 증가와 겨우 보조를 맞춘다. 다만 최신 고용 보고서에선 주급이 무려 3.4% 상승했다.
시먼스 사장 같은 기업인은 일차적으로 업계 내 경쟁이 너무 치열해 근년 들어 임금을 약간씩만 인상해왔다고 말한다. 그는 “여전히 원가를 철저히 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블룸버그 뉴스에 따르면 공화당전국위원회
(NAC)가 지난 9월 의뢰한 내부 설문조사에서 현재 감세 법안이 “중산층 가정보다 대기업과 부유층”에 혜택을 준다고 보는 유권자가 60%를 웃돌았다.
굴스비 전 경제자문위원장은 “사람들이 상당히 현명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감세정책에 관해 그 혜택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지켜보고는 ‘잠깐, 나는 아무 것도 못 받았는데’라고 말한다. 이번 조치가 기업에는 유리하지만 근로자에게는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하는 일반인의 관측이 틀리지 않았다.”
또 다른 걱정거리는 호황임에도 백악관 정책입안자들이 기대한 만큼 구직 포기자의 노동시장 복귀가 빠르지 않다는 점이다(오바마 정부 시절 대불황의 여파로 구직 포기자 수가 증가할 동안 공화당 진영에서는 모든 구직자가 노동시장을 이탈할 것이기 때문에 공식 실업률이 제로로 떨어질 것이라는 조크가 널리 유행했다). 지난 9월까지의 최신 데이터에선 구직 포기자 수가 전년 대비 감소하지 않았다. 경기가 아직은 더 많은 사람을 노동력으로 끌어들일 만큼 호조가 아닐지 모른다는 의미다. 이는 구직 포기자뿐 아니라 풀타임 근로를 원하는 시간제 근로자(이른바 ‘불완전취업자’)가 임금상승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다.
문제는 더 많은 시간의 근로를 원하는 “시간제 근로자가 아직도 많다”는 점이라고 다트머스대학 경제학자 데이비드 블랜치플라워는 말한다. 이들은 돈을 적게 받더라도 시간제 근로를 원한다. 구직 포기자와 불완전취업자의 과잉은 노동시장에 구인난이 있더라도 3.7%의 실업률이 의미하는 만큼 일손 구하기가 어렵지 않다는 의미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케빈 해셋 위원장은 이를 두고 “시간이 해결해준다”고 말했다.
1992년 빌 클린턴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의 전략가 제임스 카빌은 캠페인 종사자들의 좌우명이 될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란 말을 만들어냈다. 물론 클린턴에게 패한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의 재선 도전 실패에는 경기침체도 일정 부분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 뒤로 그 모토는 공화당과 민주당 양 진영의 정치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올해는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고용통계를 앞세우지만 공화당 캠페인에서 경제 문제는 거의 실종됐다. 미국 전역의 정치광고를 분석하는 웨슬리언 미디어 프로젝트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공화당 스폿 광고(프로그램 사이의 막간 광고) 중 고용이 언급된 비율은 10%에 그친 반면 민주당 광고는 13%에 달했다. 같은 조사 결과 공화당 당내 경선에서 ‘고용’은 세금·이민·헬스케어에 이어 4위에 랭크됐다. 공화당 진영은 상원까지는 아니더라도 하원을 빼앗긴다고 보는 전망 속에서 지지기반의 투표 참여를 독려하려 안간힘을 쓴다. “낮은 실업률의 강조는 공화당원들의 분노 또는 불안을 유발해 투표하게 만들 만한 이슈가 아닌 듯하다”고 프로젝트의 아미크 프란츠 공동 기획자는 말했다.
결정적인 이점이 됐을 재료의 가치를 대통령이 떨어뜨렸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박빙의 하원 레이스에서 한 공화당 현직 의원의 수석 보좌관은 익명으로 “대통령이 계속 그 문제를 건드리지 않았다면 훨씬 더 느긋하게 선거에 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같은 호경기에 대통령이 평범한 인물이었다면 우리가 하원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상태로는 장담 못 한다.”
경제실적을 자랑할 때 트럼프 대통령이 보여주는 절제력 결핍은 그가 신뢰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여론을 더욱 악화시킨다. 지난 9월 그는 트윗에서 ‘100년 만’에 처음으로 GDP 성장률이 실업률보다 높아졌다는 거짓 주장을 했다. 해셋 위원장이 나서 누군가 그 뉴스를 전달할 때 필시 제로를 하나 덧붙인 모양이라고 해명해야 했다. GDP가 실업률을 능가한 것은 10년 만이었다.
중간선거에서 경제를 테마로 잡는다면 공화당의 말 발이 설 것이다. 경제가 성장했고 제롬 파월 연방준비 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지난 10월 초 보스턴의 한 대담에서 표현한 대로 경제가 “믿기지 않을 만큼 경이적인 수준은 아니다”. 또 감세를 통한 재정부양은 “올해 그리고 향후 2년 동안 실질적인 지원을 제공한다”며 2020년까지 4% 이하의 실업률을 점쳤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의 고문들이 즐겨 거론하는 ‘공급 중시 효과(supply-side effects)’가 부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감세가 순익 증가와 자본지출 확대를 낳고 결과적으로 임금인상과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져 저인플레의 장기 호황을 불러온다는 이론이다.
잘못될 수 있는 것은? 사업 투자의 빠른 증가세가 계속되지 않는다면 성장이 둔화되면서 임금이 정체되고 미국의 적자가 훨씬 불어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다음 경기침체의 충격을 완화하는 정부의 능력에 제약이 따른다.
저실업률 통계는 또한 경제가 현재 ‘과열’ 상태라는 우려도 불러일으킨다. 이례적으로 낮은 실업률이 인플레 급등을 촉발해 금융시장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는 환경이다. 10월 첫 주 채권시장에선 최신 고용 통계 발표에 반응해 벤치마크 금리인 10년물 국채 금리가 2011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급등했다. 은행을 비롯한 기타 대출기관들은 국채 수익률을 기준으로 금리를 정한다. 그리고 주택처럼 금리에 민감한 주요 경제 분야는 둔화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파월 의장은 최근 기준 금리를 올해 말 한 번 더 인상하고 어쩌면 내년 몇 차례 더 올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금리인상이 경기확장의 숨통을 조일지 모른다는 투자자의 우려가 커져간다.일리노이주 투자회사 ‘퍼스트 트러스트 포트폴리오’의 브라이언 웨스베러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비롯한 기타 금융 전문가는 성장을 지속하려면 지출을 일부 제한하는 길밖에 없다고 말한다. 1994년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한 뒤 클린턴 대통령과 뉴트 깅리치 하원의장이 합의했던 방법이다. 지출감축까지는 필요하지 않지만 지출증가율을 낮추는 식이다. 호경기로 늘어나는 세수 유입보다 지출 증가가 적다면 적자가 줄어들기 시작하리라는 논리다.
문제는 워싱턴에 지출억제 지지기반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1차적으로 재정 책임을 모토로 내세우던 공화당의 지도자가 트럼프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지출을 억제하지 않을 경우 경제가 2년 만에 둔화돼 오바마 정부시절의 이른바 ‘밭 가는 소’의 속도로 돌아갈 것이라고 웨스베리 이코노미스트는 말한다.
끝으로 또 다른 중대한 리스크 한 가지는 바로 무역전쟁이다. 통상 파트너를 겨냥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는 지금까지 미국의 경제 호황에 거의 타격을 입히지 않았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해체됐다면 투자심리가 위축되면서 주요 산업의 공급망이 붕괴됐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인 중국과의 훨씬 더 큰 대결이 다가온다.
사상 최고 수준에 육박한 미국 주식시장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결국에는 중국과 협상을 하리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미국 경제가 중국보다 강대해 자신이 ‘이기고 있다’고 믿는다. 중국의 대미 수출이 미국의 대중 수출보다 훨씬 많아 중국이 잃을 게 더 많다는 논리다.
중국의 기업 경영자들과 워싱턴의 정책 분석가들에 따르면 그런 논리에 근거할 경우 베이징 정부를 근본적으로 오판할 수 있다. 그들이 무릎을 꿇고 국내에서 체면을 구기는 모습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대중 수출액은 1304억 달러에 불과하지만(지난해 대중 수입액은 5050억 달러) 미국 기반 기업들이 중국 내에서 상당히 많은 사업을 하기 때문에 중국 정부가 경제적 보복을 모색할 때 대단히 취약해진다. 워싱턴 D.C.의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센터의 중국연구소 스콧 케네디 부소장은 “앞길이 훨씬 더 깜깜해진 뒤에야 다시 밝아지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올해 큰 폭의 경제 성장은 근로자의 지갑에 상당한 돈이 흘러들기 전에 좌초될 수 있다. 정부 지출증가의 삭감을 고려할 생각이 전혀 없는 듯한 의회 그리고 무역 덕분이다. 그것이 트럼프 대통령이 많이 신경 쓰는 2020년 대선까지 이어지면 미국에는 엄청난 재정 적자와 무역전쟁이 남아 경제적으로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될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선 오바마 시절 ‘소가 밭 가는 속도’의 경제가 더 없이 좋아 보일 것이다.
- 빌 파월, 니나 벌리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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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의 종말을 고하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미국의 거대 기업이 일본의 도전을 받아 무참히 짓밟혔다. 철강·알루미늄·자동차 산업이 죽어가는 듯했다. “아버지·삼촌·할아버지 모두 일자리를 잃었다. 그들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그릴리는 돌이켰다.
오늘날 영스타운은 완전히 새롭게 태어났다. 규모가 축소되고 공업적 특성은 퇴색됐지만 탈산업화하지는 않았다. 그릴리는 요즘 중서부 각지의 기업 고객들에게 알루미늄 잉곳(주형에 넣어 굳힌 제품)을 공급한다. 친구 중에도 영스타운 툴&다이(YT&D)라는 성장 기업 근로자가 많다. 미국 경제가 호황을 구가하고 제조업이 외국의 도전을 받지 않던 먼 옛날 잘나갔던 U.S. 스틸 같은 유형의 러스트 벨트(미국 중서부 지역의 사양화된 철강업 지대) 기업이다.그러나 금속을 변형해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장비를 알루미늄 제조업체들에 공급하는 YT&D는 기동성도 뛰어났다. 오늘날까지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전반적인 경제 호황 속에서 승승장구한다. 올여름 1300만 달러를 들여 공장을 신설하고 57명의 직원을 새로 뽑아 인력을 20% 증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확장안은 “높은 수준의 호경기”, 트럼프 정부가 통과시킨 법인세 인하조치의 혜택, 그리고 “안정적인” 규제 환경 덕분이라고 데이브 므라드제노빅 본부장은 말했다. 그들은 이제 국내 판매지역을 확대하고 캐나다·멕시코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YT&D는 ‘트럼포노믹스’(트럼프 경제정책)의 총아다. 수정헌법 25조를 동원해 트럼프 대통령을 몰아내는 방안이 논의됐다는 주장, 러시아와의 내통 의혹에 관해 뮬러 특검이 진행 중인 수사, 확대되는 대중(對中) 무역전쟁, 끊임없이 쏟아지는 트윗, 충동적인 의사결정 등 트럼프 정부 들어 온갖 비정상적인 일들이 벌어지는 가운데 정부 당국자들은 경제만큼은 확실히 장악했다고 믿는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 캠페인 중 “나는 하느님이 일찍이 내린 가장 위대한 ‘일자리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대통령들은 원래부터 자신의 경제정책 능력을 과장하고 호황을 맞을 때는 자신의 업적을 과대 포장해 떠벌리게 마련이다. 통화정책, 글로벌 경제 성장률, 지정학적 쇼크 등 다른 강력한 변수들이 미국 재정의 기초 체력을 형성한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들은 여러 모로 볼 때 대통령이 공약을 실천한다고 말한다.실업률은 1969년 이후 가장 낮은 3.7% 선, 소비심리는 18년래 최고 수준이다. 중소기업 창업열기는 역대 어느 때보다 뜨겁다. 주식시장은 상승국면에 있다. 경제는 2분기 4.2% 성장을 기록했으며 올해 3%를 돌파할 수 있다.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은 “장기침체의 시대(The days of secular stagnation, 미국의 저성장을 가리키는 오바마 정부의 표현)는 끝났다”며 “현 상태는 지속 가능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호경기가 다가오는 중간 선거를 판가름하는 이슈, 민주당의 물결을 저지할 만한 방패막이 돼야 한다고 믿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월 트위터에 ‘경제가 대단히 좋아 아마 미국 역사상 최고일 듯’이라고 올렸다. 그러나 그에 관한 유권자의 평가가 엇갈리면서 오는 11월 중간 선거에서 공화당 진영에 기이한(그리고 불길한) 역학을 조성한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현재 절반가량의 미국인이 미국 경제를 “매우 좋다 또는 좋다”고 평가해 근 20년래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트럼프 시대의 거의 모든 것이 그렇듯 당파성에 따라 견해가 뚜렷하게 갈린다. 공화당원과 공화당 성향 무소속 그룹의 73%는 경제를 좋게 보는 반면 민주당원과 민주당 성향 무소속 그룹에선 그 비율이 35%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양 진영의 안정적인 과반수가 자신의 경제적 앞날을 변함없이 낙관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공로를 인정하는 데는 인색하다. 경제 호황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지율은 40% 선을 맴돈다.
대통령의 인화성 강한 발언과 논란을 유발하는 성향에 경제 뉴스가 묻혀버려 공화당이 경제에 편승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거의 불가능하게 되지 않을까 공화당 일각에서는 우려한다. 이민문제, 러시아 그리고 대법원을 둘러싼 투쟁이 캠페인을 지배하면서 여론조사에선 민주당이 하원을 탈환하기에 유리한 위치에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정부의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냈던 오스탄 굴스비는 “이번 선거에선 정치적 측면이 대단히 강하다”며 “지금처럼 그렇게 오랫동안 경제가 잘 굴러가는데도 정부가 그 공로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민주당 진영은 ‘트럼포노믹스’가 미국 중산층에 준 혜택이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임금인상은 트럼프 정부의 핵심 공약이었지만 최근 들어서야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트럼프 임기 거의 내내 근로자 임금은 대체로 제자리걸음했다. 그리고 구직 포기자 수는 지금까지 수 년째 감소세지만 트럼프 경제 고문들의 예상만큼 줄어드는 속도가 빠르지는 않다(이들 ‘구직 포기자’는 공식 실업률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다). 지난 8월 퀴니피악대학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유권자의 58%는 정부의 중산층 지원책이 충분하지 않다고 여겼다.
따라서 중간선거가 트럼프 대통령에 관한 중간평가라면 그의 정책은 경제에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1980년대 초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정책이 1980년대 초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을 20년 간의 호황으로 바꿔 놓았듯이 트럼프의 정책이 실제로 오바마의 완만하지만 꾸준한 성장에 엔진을 달아줬을까? 아니면 미국 경제가 당분도취(sugar high, 적자를 키우는 감세를 통한 대대적인 경기부양 효과) 상태에 있으며 곧바로 약발이 떨어져 오바마 시대 수준으로 다시 돌아갈까? 논쟁 중 궁지에 몰린 바버라 콤스탁 공화당 의원이 최근 말한 대로 그 수치들이 “반박할 게 아니라 반겨야 할 결과”일까, 아니면 소수 부유층을 위해 만들어진 경제를 호도하는 위장재일까?
트럼프 정부의 논리는 간단명료하다. 법인세 감축법안에 폭넓은 규제완화 정책이 맞물려 경제에 고속엔진을 달아주고 기업행태에 변화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이 과거라면 하지 않았을 투자를 촉진하고 잘 될 경우 고용을 늘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실은 더 복잡하다. 올해 초 새로 얻은 수입 중 일부로 직원들에게 특별 보너스를 지급한다고 발표하는 기업이 나올 때마다 거의 항상 대통령이 환호하는 모습에 측근 중 일부가 민망해 하던 까닭이다. 예컨대 트럼프 대통령이 감세 법안에 서명한 뒤 AT&T는 20만 명의 직원에게 1000달러씩 보너스를 지급했다. 물론 그런 보너스를 지급하면 근로자 개개인의 소득이 증가하지만 일회성이라서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그런 지출은 기업의 투자 기회가 비교적 드물다는 신호일 수 있다고 일부 경제학자는 주장한다. 그런 게 아니라면 그 돈으로 투자를 했으리라는 의미다.
신규고용이 급격히 늘지는 않아
트럼프 감세안이 현명한 정책이었는지 아닌지는 대기업·중소기업을 막론하고 그런 투자로 판가름날 것이다. 고용을 늘리고 생산성을 높이고 임금을 끌어올리는 데는 대체로 투자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기업 생산성이 향상되면 가격을 올리거나 수익을 줄이지 않고 더 많은 임금을 지불할 수 있다. 지난 10여 년 간 미국에서 사라졌던 지속적인 경제성장의 기본원칙이다.
거기에 일어나는 변화를 말해주는 초반 조짐이 보인다. 올해 자본투자가 전년비 5%에 달하는 높은 증가율을 보이며 지난 2분기 사이 가속도가 붙었다. 그러나 트럼프 보좌관들이 법인세 삭감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호경기는 아직 아니다. 2분기 시급의 2.9% 증가(2009년 이후 분기 기준 최대폭)가 비슷한 수준의 생산성 향상을 수반했다는 사실이 더 고무적이다. 그런 추세가 장기간에 걸쳐 계속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변화가 그들이 홍보한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경제에 박차를 가해 더 빠르고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해질 것이다.그러나 한 분기 데이터로 트렌드를 말할 수 없다. 트렌드의 핵심 문구는 ‘장기간’이다. 아직까지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 달리 그의 정책으로 신규고용이 급격히 늘지 않았다. 트럼프 임기 2년의 월별 고용 통계는 오바마 정부 마지막 2년 간의 통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워싱턴 포스트는 ‘팩트 체크’에서 율리시즈 S. 그랜트,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린든 B. 존슨, 빌 클린턴 정부 시절보다 경제실적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놀라운 점은 2009년 끝난 대불황 이후 근 10년 전에 시작된 경기확장에서 이렇게 오래도록 고용이 강세를 보인다는 사실이다. 또한 적어도 현재로선 성장에 가속이 붙는 듯하다는 사실도 특이한 점이다.
트럼프 경제정책을 낙관하는 보좌관들은 경제학자 스티브 무어의 말마따나 “이것이 뉴노멀”(시대변화에 따른 새로운 표준)이라고 믿는 듯하다. 커들로 위원장은 성장의 가속화가 “(미국 의회예산국에 따르면 10년간에 걸쳐 적자를 1조5000억 달러 키우는) 감세효과의 시작”을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뿐 아니라 광범위한 경제 분야의 규제완화 약속도 경제성장을 견인한다고 트럼프 정부는 말한다. 커들로 위원장은 “미국 경제가 이제 호황기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규제철폐 국가
YT&D 입장에선 보건·안전 규제 업무의 서류작업이 줄어 그만큼 시간과 돈이 절약된다. 그리고 경제 전반의 대다수 기업에 그런 효과가 되풀이된다면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 그러나 광범위한 효과를 뒷받침할 만한 데이터가 거의 없다. 일부 경제학자 그리고 이 기사를 위해 인터뷰한 많은 기업인이 규제철폐의 약속만으로도 존 메이너드 케인즈가 말한 그 유명한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이 깨어났다고 믿는다. 규제완화가 경기낙관론을 키우고 그에 따라 차례로 투자·고용 그리고 성장이 확대되는 선순환이 촉발된다는 믿음이다. 물론 야성적 충동을 측정할 방법은 없다. 다만 경제전문가들은 중소기업 경기신뢰 호전 같은 지표를 경기 낙관론의 증거로 거론한다.
지난 늦여름 트럼프 정부의 정책으로 규제비용이 얼마나 절약됐느냐고 묻자 정보·규제관리실 네오미 라오 실장은 “지금까지 약 80억 달러”라고 답했다. 상당한 금액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4조 달러에 달하는 미국 경제규모에 비하면 미미한 지금까지의 절감액은 중요한 현실을 말해준다. 규제 감축에는 오랜 시일이 걸린다는 점이다. 행정부가 무엇을 바꾸는 데는 대부분 검토기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상당수의 규제가 법으로 정해지는, 다시 말해 입법활동이 요구된다. 새 법안을 통해서만 철폐될 수 있다는 의미다.
바로 그런 까닭에 규제철폐를 그렇게 외쳐댄다 해도 한 가지 드러나지 않는 추한 비밀은 트럼프 정부가 새로운 법의 시행을 늦췄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예컨대 트럼프 대통령이 제조업 분야에서 발효한 새로운 주요 규제(1년간 경제에 1억 달러 이상 영향을 미치는 규칙)는 34건인 데 비해 오바마 정부에선 79건, 조지 W.부시 정부에선 54건이었다. 기업의 관점에선 발전으로 간주될 만하다. 그러나 인디애나대학 제조업정책이니 셔티브 키스 벨튼 소장의 설명에 따르면 연방규제의 순비용은 여전히 증가 중이며 “다만 증가 속도가 현 정부들어 이전 정부들보다 훨씬 느려졌다.”일부 경제전문가는 미국이 ‘트럼프 호황’을 맞고 있다는 주장을 일소에 부친다. 실업률은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낮았던 오바마 정부 때부터 떨어지고 있었다고 그들은 반박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흑인과 라틴계 그룹의 실업률도 급락했다고 곧잘 자랑하지만 그 추세도 전 정부 시절 시작됐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지난 9월 일리노이대학 연설에서 “지금 경제가 얼마나 잘 돌아가는지를 누군가 거론할 때는 이번 경기회복세가 언제 시작됐는지만 기억하면 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선거운동 중 21세기 경제에서 아마도 둘도 없는 최대의 경제적 난제인 임금정체를 해결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는 2016년 플로리다주 집회에서 “여러분의 연봉과 임금을 높이 높이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그의 정부는 그 공약에 한 술 더 떠 공화당 감세법안으로 임금을 4000달러 인상해 9000달러로 올려놓겠다고 다짐했다. 그 약속은 실현되지 않았다. 노동부의 최신 추산에 따르면 평균 시급은 해마다 아주 조금씩 올라 인플레 증가와 겨우 보조를 맞춘다. 다만 최신 고용 보고서에선 주급이 무려 3.4% 상승했다.
시먼스 사장 같은 기업인은 일차적으로 업계 내 경쟁이 너무 치열해 근년 들어 임금을 약간씩만 인상해왔다고 말한다. 그는 “여전히 원가를 철저히 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블룸버그 뉴스에 따르면 공화당전국위원회
(NAC)가 지난 9월 의뢰한 내부 설문조사에서 현재 감세 법안이 “중산층 가정보다 대기업과 부유층”에 혜택을 준다고 보는 유권자가 60%를 웃돌았다.
굴스비 전 경제자문위원장은 “사람들이 상당히 현명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감세정책에 관해 그 혜택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지켜보고는 ‘잠깐, 나는 아무 것도 못 받았는데’라고 말한다. 이번 조치가 기업에는 유리하지만 근로자에게는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하는 일반인의 관측이 틀리지 않았다.”
또 다른 걱정거리는 호황임에도 백악관 정책입안자들이 기대한 만큼 구직 포기자의 노동시장 복귀가 빠르지 않다는 점이다(오바마 정부 시절 대불황의 여파로 구직 포기자 수가 증가할 동안 공화당 진영에서는 모든 구직자가 노동시장을 이탈할 것이기 때문에 공식 실업률이 제로로 떨어질 것이라는 조크가 널리 유행했다). 지난 9월까지의 최신 데이터에선 구직 포기자 수가 전년 대비 감소하지 않았다. 경기가 아직은 더 많은 사람을 노동력으로 끌어들일 만큼 호조가 아닐지 모른다는 의미다. 이는 구직 포기자뿐 아니라 풀타임 근로를 원하는 시간제 근로자(이른바 ‘불완전취업자’)가 임금상승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다.
문제는 더 많은 시간의 근로를 원하는 “시간제 근로자가 아직도 많다”는 점이라고 다트머스대학 경제학자 데이비드 블랜치플라워는 말한다. 이들은 돈을 적게 받더라도 시간제 근로를 원한다. 구직 포기자와 불완전취업자의 과잉은 노동시장에 구인난이 있더라도 3.7%의 실업률이 의미하는 만큼 일손 구하기가 어렵지 않다는 의미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케빈 해셋 위원장은 이를 두고 “시간이 해결해준다”고 말했다.
1992년 빌 클린턴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의 전략가 제임스 카빌은 캠페인 종사자들의 좌우명이 될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란 말을 만들어냈다. 물론 클린턴에게 패한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의 재선 도전 실패에는 경기침체도 일정 부분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 뒤로 그 모토는 공화당과 민주당 양 진영의 정치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올해는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고용통계를 앞세우지만 공화당 캠페인에서 경제 문제는 거의 실종됐다.
문제는 경제가 아냐, 바보야
결정적인 이점이 됐을 재료의 가치를 대통령이 떨어뜨렸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박빙의 하원 레이스에서 한 공화당 현직 의원의 수석 보좌관은 익명으로 “대통령이 계속 그 문제를 건드리지 않았다면 훨씬 더 느긋하게 선거에 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같은 호경기에 대통령이 평범한 인물이었다면 우리가 하원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상태로는 장담 못 한다.”
경제실적을 자랑할 때 트럼프 대통령이 보여주는 절제력 결핍은 그가 신뢰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여론을 더욱 악화시킨다. 지난 9월 그는 트윗에서 ‘100년 만’에 처음으로 GDP 성장률이 실업률보다 높아졌다는 거짓 주장을 했다. 해셋 위원장이 나서 누군가 그 뉴스를 전달할 때 필시 제로를 하나 덧붙인 모양이라고 해명해야 했다. GDP가 실업률을 능가한 것은 10년 만이었다.
중간선거에서 경제를 테마로 잡는다면 공화당의 말 발이 설 것이다. 경제가 성장했고 제롬 파월 연방준비 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지난 10월 초 보스턴의 한 대담에서 표현한 대로 경제가 “믿기지 않을 만큼 경이적인 수준은 아니다”. 또 감세를 통한 재정부양은 “올해 그리고 향후 2년 동안 실질적인 지원을 제공한다”며 2020년까지 4% 이하의 실업률을 점쳤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의 고문들이 즐겨 거론하는 ‘공급 중시 효과(supply-side effects)’가 부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감세가 순익 증가와 자본지출 확대를 낳고 결과적으로 임금인상과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져 저인플레의 장기 호황을 불러온다는 이론이다.
잘못될 수 있는 것은? 사업 투자의 빠른 증가세가 계속되지 않는다면 성장이 둔화되면서 임금이 정체되고 미국의 적자가 훨씬 불어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다음 경기침체의 충격을 완화하는 정부의 능력에 제약이 따른다.
저실업률 통계는 또한 경제가 현재 ‘과열’ 상태라는 우려도 불러일으킨다. 이례적으로 낮은 실업률이 인플레 급등을 촉발해 금융시장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는 환경이다. 10월 첫 주 채권시장에선 최신 고용 통계 발표에 반응해 벤치마크 금리인 10년물 국채 금리가 2011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급등했다. 은행을 비롯한 기타 대출기관들은 국채 수익률을 기준으로 금리를 정한다. 그리고 주택처럼 금리에 민감한 주요 경제 분야는 둔화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파월 의장은 최근 기준 금리를 올해 말 한 번 더 인상하고 어쩌면 내년 몇 차례 더 올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금리인상이 경기확장의 숨통을 조일지 모른다는 투자자의 우려가 커져간다.일리노이주 투자회사 ‘퍼스트 트러스트 포트폴리오’의 브라이언 웨스베러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비롯한 기타 금융 전문가는 성장을 지속하려면 지출을 일부 제한하는 길밖에 없다고 말한다. 1994년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한 뒤 클린턴 대통령과 뉴트 깅리치 하원의장이 합의했던 방법이다. 지출감축까지는 필요하지 않지만 지출증가율을 낮추는 식이다. 호경기로 늘어나는 세수 유입보다 지출 증가가 적다면 적자가 줄어들기 시작하리라는 논리다.
문제는 워싱턴에 지출억제 지지기반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1차적으로 재정 책임을 모토로 내세우던 공화당의 지도자가 트럼프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지출을 억제하지 않을 경우 경제가 2년 만에 둔화돼 오바마 정부시절의 이른바 ‘밭 가는 소’의 속도로 돌아갈 것이라고 웨스베리 이코노미스트는 말한다.
끝으로 또 다른 중대한 리스크 한 가지는 바로 무역전쟁이다. 통상 파트너를 겨냥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는 지금까지 미국의 경제 호황에 거의 타격을 입히지 않았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해체됐다면 투자심리가 위축되면서 주요 산업의 공급망이 붕괴됐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인 중국과의 훨씬 더 큰 대결이 다가온다.
사상 최고 수준에 육박한 미국 주식시장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결국에는 중국과 협상을 하리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미국 경제가 중국보다 강대해 자신이 ‘이기고 있다’고 믿는다. 중국의 대미 수출이 미국의 대중 수출보다 훨씬 많아 중국이 잃을 게 더 많다는 논리다.
중국의 기업 경영자들과 워싱턴의 정책 분석가들에 따르면 그런 논리에 근거할 경우 베이징 정부를 근본적으로 오판할 수 있다. 그들이 무릎을 꿇고 국내에서 체면을 구기는 모습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대중 수출액은 1304억 달러에 불과하지만(지난해 대중 수입액은 5050억 달러) 미국 기반 기업들이 중국 내에서 상당히 많은 사업을 하기 때문에 중국 정부가 경제적 보복을 모색할 때 대단히 취약해진다. 워싱턴 D.C.의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센터의 중국연구소 스콧 케네디 부소장은 “앞길이 훨씬 더 깜깜해진 뒤에야 다시 밝아지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올해 큰 폭의 경제 성장은 근로자의 지갑에 상당한 돈이 흘러들기 전에 좌초될 수 있다. 정부 지출증가의 삭감을 고려할 생각이 전혀 없는 듯한 의회 그리고 무역 덕분이다. 그것이 트럼프 대통령이 많이 신경 쓰는 2020년 대선까지 이어지면 미국에는 엄청난 재정 적자와 무역전쟁이 남아 경제적으로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될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선 오바마 시절 ‘소가 밭 가는 속도’의 경제가 더 없이 좋아 보일 것이다.
- 빌 파월, 니나 벌리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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