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조로운 브렉시트 위해 영국과 EU 양측 모두 시행 시점 2년 연기하는 방안 검토한다고 밝혀 지난 2월 26일 런던 영국 의사당 앞의 시위자. 브렉시트 불확실성이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면서 테리사 메이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 사진:AP-NEWSIS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의미하는 ‘브렉시트’가 예정대로 오는 3월 29일 완전히 이뤄질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어쩌면 2021년 초까지 질질 끌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조짐은 일부 언론에서 인용한 EU 관리들의 언급과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발언에서 드러났다.
EU와 브렉시트 합의안 협상을 벌이고 있는 메이 총리는 자신이 EU에 수정 제시한 브렉시트 방안을 두고 2월 26일 실시하기로 했던 하원 표결을 3월 12일로 다시 연기했다. EU 측과의 협상에서 진전이 없자 하원에서 자신의 안이 부결될 것을 우려해서다. 그러면서 EU 고위 관계자들이 브렉시트를 2021년까지 연기하는 방안을 신중히 고려하는 중이라고 영국 신문 가디언이 EU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무엇보다 브렉시트 방안과 EU와의 향후 무역 관계를 설정하는 기본틀과 관련해 영국 정계가 합의하지 못하는 현실이 이런 교착상태를 빚어냈다. 메이 총리가 EU와의 협상안에 대한 하원의 동의를 받아내지 못한 좌절감이 특히 크다. 메이 총리는 3월 29일이라는 마감시한이 정해진 상황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아무런 협정 없이 EU를 떠나는 ‘노딜(no deal)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각료들의 압력을 받고 있다. 흔히 ‘노딜 브렉시트’는 ‘EU와의 합의 없는 이혼’으로 불린다.
그에 따라 EU 측은 영국 내부에서 브렉시트 방안이 확정되고 EU와도 양자 합의를 이루기 위한 충분한 시간을 벌기 위해 마감시한을 최대 2년 연장하기를 원한다. 메이 총리도 처음엔 마감시한 연장에 회의적이었지만 원래의 브렉시트 마감시한인 3월 29일의 17일 전인 12일까지 브렉시트 수정안에 대해 의회 동의를 끌어내지 못하면 EU에 브렉시트 연기를 공식 요청할 수밖에 없다는 쪽으로 기울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EU 지도부도 영국이 EU와 합의 없이 가급적 신속히 탈퇴하는 ‘노딜 브렉시트’를 원치 않기 때문에 EU 탈퇴에 관한 법적 절차를 규정한 리스본 조약 50조 발동을 연장하는 방안을 지지한다. EU의 헌법 격인 리스본 조약 50조에 따르면 탈퇴 협상은 2년간 진행하되, 2년 후에도 협상이 완료되지 않을 경우 유럽이사회가 협상 기간 연장을 결정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그 협상 기한 2년이 오는 3월 29일 마감된다. 따라서 현재로선 연기에 무게가 실리는 상황이다.
레오 바라드카르 아일랜드 총리도 리스본 조약 50조 발동의 ‘장기 연장’을 지지했다. 그는 영국이 EU에 좀 더 오래 남아 정치적 행위에 참여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문제는 ‘노딜 브렉시트’에 따르는 경제적 피해에 비하면 대수롭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노딜’ 시나리오를 막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것을 하고 있지만 만약에 대비해야 한다.” 아일랜드 정부는 얼마 전 ‘노딜브렉시트’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 의료와 복지, 에너지, 교통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한 일괄법안을 발표했다. EU회원국 중에서 영국 영토인 북아일랜드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아일랜드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영국 신문 가디언의 보도에 따르면 협상 기한 연장이 필요하다는 것이 EU의 공식 입장이다. 이 방안이 브뤼셀에서 힘을 얻고 있으며 마르틴 젤마이르 EU 집행위원회 사무총장도 이 방안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디언 신문은 ‘EU 내부에서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처리에 불만이 커지고 있으며, 영국이 협정 없이 탈퇴할 가능성이 50%가 넘는다’고 덧붙였다.
2021년까지 브렉시트 전환기가 연장되면 영국과 EU는 아일랜드 문제를 둘러싼 갈등 없이 미래 관계를 위한 세부 계획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브렉시트 이후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영국 영토인 북아일랜드 간에 ‘하드 보더’(Hard Border·국경 통과 시 통행·통관절차를 엄격히 적용하는 것)를 피하기 위해 별도 합의가 있을 때까지 영국 전체를 EU 단일 관세동맹에 잔류시키기로 하는 ‘안전장치’와 관련된 문제를 말한다.
EU의 한 관리는 “영국 내부의 상황을 고려하면 마감시한 연장은 확정적이지 않다”며 “하지만 EU 지도부는 벼랑끝으로 바로 달려가기보다 남아 있는 문제를 해결하거나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마감시한이 2021년으로 연장될 경우 EU 예산 집행의 효율성 제고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월 25일 도널드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EU·아랍연맹 정상회의가 개최된 이집트 휴양도시 샤름 엘 셰이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브렉시트 마감 시한 연기는 매우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3월 29일로 예정된 브렉시트 시행일이 다가오지만 영국 의회가 탈퇴에 관한 의견 합의에 실패하고 있다. 브렉시트 협상 기간을 연장해 시행일을 늦추는 것도 합리적인 해결책이다.”
그러나 메이 영국 총리는 그때까지 만해도 예정대로 오는 3월 29일 합의 하에 EU를 탈퇴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메이 총리는 샤름 엘 셰이크에서 별도로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여전히 3월 29일 브렉시트를 단행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서 “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으며 협상팀이 내일 벨기에 브뤼셀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브렉시트 시점을 연기하는 것은 결코 문제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브렉시트 연기는 결정을 뒤로 미루는 것일 뿐이다. 연기는 연기일 뿐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영국 하원의원들은 보수당 소속의 올리버 레트윈 의원과 노동당 소속의 이베트 쿠퍼 의원이 공동 상정한 브렉시트 연기안을 지지한다. 3월 중순까지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합의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총리에게 리스본 조약 50조 마감시한을 연장하도록 요구하는 내용이다.
터스크 의장은 메이 총리에게 “영국에서 연장안이 과반수의 지지를 받아야 EU에서 그 문제를 공식적으로 다룰 수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라 메이 총리도 하원에 출석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브렉시트를 연기할 수 있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일부는 브렉시트 마감시한을 2021년으로 연기하는 방안이 브렉시트를 강하게 주장하는 영국 하원의원들을 구슬려 메이 총리의 방안에 찬성하도록 하려는 전술로 본다. 메이 총리는 아일랜드 ‘안전장치’에 법적 구속력을 발휘할 수 있는 브렉시트 합의안을 도출하기 위해 힘쓰겠다고 밝혔다. 아일랜드 ‘안전장치’가 일시적인 방안에 불과하다고 브렉시트 찬성파를 설득하려는 의도다. 메이 총리와 EU는 지난해 11월 별도의 합의가 있을 때까지 영국 전체를 EU 관세동맹에 잔류 시키는 방안을 도출했다. 그러나 영국 의원들은 안전장치의 종료일을 법적으로 명시하지 않을 경우 영국이 EU에 종속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밝힌 상황이다. 따라서 3월 12일 메이 총리 안의 표결 결과가 브렉시트의 앞날을 좀 더 분명히 드러내 보여줄 것이다.
- 칼얀 쿠마르 아이비타임즈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