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전성시대] ‘조단위’ 대형 거래까지 사모펀드 독무대
[사모펀드 전성시대] ‘조단위’ 대형 거래까지 사모펀드 독무대
자금력·인력 풍부해 M&A 시장에 절대적 영향력… 산업 구조조정, 기업 지배구조 재편에 도움
사모펀드 전성시대다. ‘조단위’ 대형 거래까지 사모펀드의 독무대다. 이들은 매물이 시장에 나올 때마다 유력한 인수 후보로 거론되거나 실제 인수자가 되고 있다. 국내 사모펀드의 출자약정 총액은 지난해 말 기준 66조1061억원을 기록했다. 자금 유치, 투자 대상 선정, 투자 회수 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재도 사모펀드에 몰린다. 사모펀드는 단기 차익을 추구한다는 비판도 받지만 국내 산업 구조조정, 기업 지배구조 재편 과정에서 자금줄로 나름의 역할을 해오기도 했다. 1세대 창업자들이 서서히 뒤로 물러나면서 세대 교체도 이뤄지고 있는 사모펀드 시장을 살펴봤다. #1. 5월 31일 마감된 넥슨의 지주회사 NXC 매각 본입찰에 카카오·넷마블과 MBK파트너스·KKR·베인컴퍼니 등이 참여했다. 전략적 투자자보다 사모펀드 수가 더 많았다. 특히 넥슨의 몸값이 15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카카오나 넷마블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더라도 사모펀드와 손을 잡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2. MBK파트너스와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5월 31일 치러진 두산공작기계 예비입찰을 바탕으로 칼라일·베어링PEA·브룩필드애셋매니지먼트 등을 적격인수후보로 추렸다. MBK파트너스가 2016년 두산그룹으로부터 인수한 두산공작기계는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1조7780억원, 영업이익 2380억원을 기록한 알짜 매물이다.
국내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사모펀드의 영향력이 갈수록 세지고 있다. 이들은 매물이 시장에 나올 때마다 유력한 인수 후보로 거론되거나 실제 인수자가 되고 있다. 5월에 마무리된 롯데카드 매각에서는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가 우리은행과 컨소시엄을 이뤄 새 주인이 됐다. 롯데카드 매각가는 1조3800억원가량으로 알려졌다. 토종 사모펀드인 IMM PE는 지난 4월 1조3000억원에 산업용 가스제조 업체 린데코리아를 인수했다. 블랙스톤은 1조1000억원을 들여 국내 최대 의약품 유통업체 지오영 지분 46%를 지난 4월에 사들였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사례처럼 사모펀드의 접근이 제한된 경우가 아니려면 올해 진행된 조단위 기업 인수전은 사실상 사모펀드의 독무대였다. 사모(私募)펀드는 공모(公募)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소수의 투자자에게 자금을 모집해 일정 기간 투자한 후 수익과 투자금을 돌려주는 형식의 펀드를 말한다. 국내 자본시장법에서는 사모펀드를 경영참여형 사모펀드와 전문투자형 사모펀드로 구분하고 있다. 인수합병 거래에 등장하는 사모펀드는 경영참여형 사모펀드다.
국내에서 사모펀드의 존재가 본격 부각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다. 국내에 들어온 외국계 사모펀드들은 자금난을 겪는 국내 기업을 헐값에 인수한 후 가치를 높인 후 매각해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이후 국내 자본 육성의 필요성을 절감한 정부는 2004년 12월 사모펀드 설립과 관련한 법률적 근거를 마련했다. 그 무렵 국내 사모펀드 출자약정 총액은 4조7000억원에 불과했다. 출자약정 총액은 사모펀드가 설립할 펀드에 투자자들이 출자하기로 약속한 금액을 뜻한다. 이것으로 사모펀드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국내 사모펀드의 출자약정 총액은 이후 꾸준히 늘어 지난해 말에는 66조1061억원을 기록했다. 15년 만에 15배 이상으로 커진 것이다.
사모펀드별 출자약정액 규모 면에서 국내 최대 사모펀드는 MBK파트너스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MBK파트너스의 지난해 말 기준 출자약정 총액은 11조원이 넘는다. 같은 시점에서 두 번째로 출자약정액이 많은 곳은 한앤컴퍼니다. 한앤컴퍼니는 6조8000억원 수준이다. 공공기관인 산업은행이 이와 비슷한 수준이다. 공공기관을 제외하면 3위는 국내 토종 사모펀드인 IMM PE다. 출자약정 총액은 2조7000억원 규모다. IMM PE는 올해 들어 1조원 규모의 네번째 블라인드펀드(투자 대상을 정하지 않고 자금을 모은 후 투자) ‘IMM로즈골드4호’의 출자를 성사시켰다. IMM PE에 이어 스틱인베스트먼트와 VIG파트너스,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등이 뒤를 잇고 있다. 이들 사모펀드들은 각각 1조9000억원, 1조6000억원, 9800억원의 출자약정 규모를 자랑한다. 출자약정 금액과 함께 사모펀드가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빠르게 확대됐다. 국내 최대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의 포트폴리오에 포함된 기업만 33곳으로 여느 대규모기업집단에 뒤지지 않는 규모다. 이들 기업의 매출액을 합치면 40조원 규모이며 고용하고 있는 근로자 수는 35만 명에 이른다. 한앤컴퍼니의 포트폴리오에는 17개 기업이 담겨 있다. 국내 토종 사모펀드도 규모 면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한국 경제에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IMM PE는 현대삼호중공업을 포함한 19개 기업에 투자했다.
사모펀드가 이처럼 빨리 덩치를 키운 것은 한국 재계가 외환위기·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 산업 구조조정과 기업 지배구조 개편 등의 필요성이 컸기 때문이다. 기업을 사고팔아 수익을 내야하는 사모펀드 입장에서는 인수합병 시장에 다양한 매물이 나오는 환경은 매력적이다. 덕분에 한국 시장은 지난 10년간 아시아는 물론 세계에서 주목받는 시장이 됐다. 이런 과정에서 웅진코웨이·하이마트·만도·동양생명 등 굵직한 M&A 거래가 줄을 이었다.
사모펀드는 산업 구조조정이나 기업 지배구조 재편 과정에서 매물을 소화하는 모험 자본 역할을 하는 동시에 인수 기업의 가치를 높여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조력자로도 기여했다. 이들은 인수 기업을 대상으로 채무를 재조정해 이자 부담을 줄이고 선진 경영기법을 도입해 체질을 개선했다. 또 불필요한 인력과 자산을 줄여 효율을 높였다. 가장 교과서적인 사례는 2009년 오비맥주다. KKR과 어피너티 등 사모펀드는 오비맥주를 인수한 후 당시 영업본부장이었던 장인수 전무를 최고경영자로 승진시키고 공격적인 경영활동에 나섰다. 그 결과 오비맥주는 국내 맥주시장 1위에 올랐고 KKR과 어피너티는 OB맥주를 AB인베브에 58억 달러(약 6조8000억원)에 매각했다. 오비맥주를 인수하는 데 18억달러(약 2조1000억원)가 들어갔다는 점을 감안하면 5년 만에 거둔 차익은 40억 달러(약 4조7000억원)에 달한다. 다만 이제는 전통적인 방법만으로는 쉽게 수익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에는 특정 산업의 주요 기업을 여럿 인수해 산업과 사업을 재조정하는 ‘볼트온 전략’이 눈길을 끈다. 예컨대 한앤컴퍼니는 2012년 대한시멘트를, 2015년에는 쌍용양회를 인수했다. 이어 2017년 쌍용양회는 대한시멘트를 자회사로 통합해 시멘트 업계 1위를 공고히 하고 있다. 한앤컴퍼니는 웅진식품·동부팜가야·대영식품도 한꺼번에 사들여 붙이는 방식으로 기업 가치를 끌어올렸다. 이 외에도 해운업에서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벌크선사업부를 인수해 에이치라인해운을 설립했다. 여기에 지난해에는 SK해운을 인수해 해운업 포트폴리오에 추가했다. 과거에는 기업을 대상으로 사모펀드의 능력을 발휘했다면, 이제는 산업 전반을 재편하는 것으로 영향력이 커졌다. 사모펀드 업계 관계자는 “볼트온 전략은 다수의 기업을 동시에 인수할 만큼 풍부한 자금력과 인력을 갖춰야 시도할 수 있다”며 “국내 M&A 시장에서 사모펀드의 위상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지난해 8월 기업 구조조정 시장 활성화를 위해 5290억원의 기업구조혁신펀드를 조성해 2년간 사모펀드에 출자한다는 계획을 정한 것도 사모펀드의 이런 긍정적 측면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국내 사모펀드 중에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의 가치 제고에 노력하는 곳도 여럿 있다”고 말했다.
기업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을 좌우하고 있는 사모펀드들의 핵심 자산은 사람이다. 투자금을 받아와서 투자할 기업을 선정하고, 적절한 시점에 매각하는 작업의 성과는 상당 부분 개인적 역량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모펀드 업계의 주요 인물의 면면을 살펴보면 ‘현대판 귀족’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게 이해가 된다. 국내 최대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의 김병주 회장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을 졸업하고 글로벌 사모펀드인 칼라일그룹에서 부회장까지 오른 바 있다. 그는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의 사위로도 유명하다. 한앤컴퍼니의 한상원 대표 역시 학력이나 경력, 인맥 등 모든 측면에서 뒤지지 않는다. 한 대표는 예일대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했고 모건스탠리 PE의 대표를 역임했다. 한 대표는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사위이기도 하다. 이 밖에 국내 사모펀드의 파트너급 인물 대다수가 글로벌 투자은행(IB)이나 회계사와 변호사, 공직자 등의 경력을 갖고 있다.
일각에선 사모펀드가 국내 M&A 시장의 중심에 서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사모펀드가 운용하는 자금은 결국 투자자가에 돌려줘야 하기 때문에 단기 실적에 매달리기 쉽다. 기업 인수 후 대략 5~7년이 지나면 되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MBK파트너스는 2014년 1조8400억원에 오렌지라이프를 사들인 이후 고용 유지 약속을 어기고 임직원의 21%를 줄였다. 그런 후 오렌지라이프를 신한금융그룹에 매각해 2조원이 넘는 차익을 남겼다. 사모펀드 규모가 빠르게 성장했다는 점도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 인수합병 시장에서 사모펀드가 눈부신 실적을 거두면서 글로벌 자금은 한국 시장에 주목했다. 금융감독원에서 집계한 사모펀드 출자약정 총액 66조1061억원은 국내에 등록한 펀드만 합산한 금액이다. 따라서 한국 인수합병 시장에서도 영향력이 큰 KKR이나 칼라일, 어피너티 등 외국계 사모펀드들은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 이들을 감안하면 한국 인수합병 시장에 들어올 수 있는 자금은 100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인수합병 시장에 투자자금이 몰리면서 수년 전부터 사모펀드 업계에서는 투자하지 못한 미소진 자금(드라이파우더)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드라이파우더 문제는 국내 사모펀드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적으로 수년간 저금리 환경이 이어지면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이 쌓이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베인앤드컴퍼니에 따르면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사모펀드가 보유한 드라이파우더는 지난해 말 기준 3170억 달러(약 373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쌓인 자금은 투자 기회를 포착하면 언제든 국내 시장에 투입될 수 있다.
시장 내 경쟁이 심해질수록 사모펀드들은 수익을 내기 어려워진다. 투자의 기본 원칙은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인데, 충분한 자금을 쌓아둔 사모펀드 간의 인수 경쟁이 붙으면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비싸게 산 만큼 수익을 내고 투자금을 회수할 기회도 줄어든다. 사모펀드가 겪을 수 있는 가장 어려운 문제는 투자 회수다. 여기에 경기나 업황이 여의치 않으면 사모펀드도 기업 가치 제고에 애를 먹는다.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는 2017년 국내 1위 밀폐용기 업체 락앤락을 인수했다. 재고 정리 등 체질 개선 작업 중이어서 평가를 내리긴 이르지만 매출과 영업이익은 인수 당시보다 모두 줄었다.
MBK파트너스가 7조2000억원을 들여 인수한 홈플러스나 딜라이브(구 C&M) 역시 고전 중인 사례다. 다만 MBK파트너스는 투자 회수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실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손실을 최소화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MBK파트너스는 맥쿼리코리아오퍼튜니티펀드(MKOF) 등과 함께 2007년 딜라이브 지분 93.8%를 인수했다. 기업 인수 때 차입금을 최대한 활용하는 사모펀드 특성상 MBK파트너스도 총 2조1000억원가량을 차입했다. 그러던 중 지난 2016년 7월 차입금 만기가 돌아왔지만 MBK파트너스는 딜라이브를 매각하지 못했다. MBK파트너스는 일단 올해 7월까지 만기를 연장했다. 이 과정에서 투자 실패를 인정하고 채권단과 협의를 통해 차입금 가운데 8000억원을 출자전환하는 데 합의했다. 이제 딜라이브 매각 작업의 주도권은 채권단으로 넘어갔지만, MBK파트너스 입장에서 최악의 상황은 피한 셈이다.
MBK파트너스가 지난 2015년 7조2000억원을 들여 인수한 홈플러스 역시 퇴로를 찾지 못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MBK파트너스는 홈플러스 인수 이후 연간 이자비용으로 연간 영업이익보다 많은 2000억원을 쓰고 있다. 그러나 유통 업계의 대세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홈플러스의 새 주인 찾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매각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 MBK파트너스는 홈플러스가 보유한 부동산만 따로 떼어내 부동산투자회사(홈플러스 리츠)를 설립하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렇게 설립한 리츠를 상장시켜 투자금 일부를 회수한다는 계산이었다. 이 계획은 홈플러스리츠가 상장에 실패하면서 성공하지 못했다. 이후 홈플러스의 임차 보증금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유동화증권(ABS) 발행에 나섰다. 쉽게 말해 보증금을 담보로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융통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해법을 찾는 시도가 이어지면서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MBK파트너스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국내 최고라고 평가하고 있다.
사모펀드들을 대상으로 출자 사업을 담당했던 한 국내 금융기관 관계자는 “사모펀드 업계에서는 해외 명문대 출신에 전문 자격증을 보유한 사람이 넘쳐나기 때문에 변별력을 갖지 못한다”며 “다른 조건이 비슷하다면 가장 집중해서 확인하는 것은 얼마나 독하게 수익을 낼 수 있는지, 손실이 나더라도 신뢰를 줄 수 있는지와 같은 인간적인 부분”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성공적인 시기를 보낸 사모펀드 업계는 이제 다음 세대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15년가량이 지나는 동안 다양한 산업에서 사모펀드로 새로운 피가 수혈됐지만 파트너급 이상 상위 인력에서는 여전히 창업자들이 건재한 상황이다. 비슷한 시기 창업한 이들은 대부분 60년대생으로 60세를 바라보고 있다. 물리적으로 세대 교체를 위한 준비를 피할 수만은 없다. 다만 창업 멤버에게 제한된 지분 구조가 확고하다는 점은 신규 인력 유입에 부정적 요인이다. 국내 4대 회계법인에서 근무 중인 한 회계사는 “최근 사모펀드 가운데 한 곳으로부터 이직 제의를 받았지만 고심 끝에 거절했다”며 “회계법인도 급여 테이블을 높이면서 연차가 어린 회계사들 입장에서는 기본 연봉에 큰 차이가 없는데 사모펀드의 꽃인 성과 공유가 불분명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모펀드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일부 사모펀드 사이에서는 약속했던 이익분배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며 “창업 1세대들에게 성과의 과실이 집중된 사모펀드로는 이직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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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 전성시대다. ‘조단위’ 대형 거래까지 사모펀드의 독무대다. 이들은 매물이 시장에 나올 때마다 유력한 인수 후보로 거론되거나 실제 인수자가 되고 있다. 국내 사모펀드의 출자약정 총액은 지난해 말 기준 66조1061억원을 기록했다. 자금 유치, 투자 대상 선정, 투자 회수 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재도 사모펀드에 몰린다. 사모펀드는 단기 차익을 추구한다는 비판도 받지만 국내 산업 구조조정, 기업 지배구조 재편 과정에서 자금줄로 나름의 역할을 해오기도 했다. 1세대 창업자들이 서서히 뒤로 물러나면서 세대 교체도 이뤄지고 있는 사모펀드 시장을 살펴봤다. #1. 5월 31일 마감된 넥슨의 지주회사 NXC 매각 본입찰에 카카오·넷마블과 MBK파트너스·KKR·베인컴퍼니 등이 참여했다. 전략적 투자자보다 사모펀드 수가 더 많았다. 특히 넥슨의 몸값이 15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카카오나 넷마블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더라도 사모펀드와 손을 잡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2. MBK파트너스와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5월 31일 치러진 두산공작기계 예비입찰을 바탕으로 칼라일·베어링PEA·브룩필드애셋매니지먼트 등을 적격인수후보로 추렸다. MBK파트너스가 2016년 두산그룹으로부터 인수한 두산공작기계는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1조7780억원, 영업이익 2380억원을 기록한 알짜 매물이다.
국내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사모펀드의 영향력이 갈수록 세지고 있다. 이들은 매물이 시장에 나올 때마다 유력한 인수 후보로 거론되거나 실제 인수자가 되고 있다. 5월에 마무리된 롯데카드 매각에서는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가 우리은행과 컨소시엄을 이뤄 새 주인이 됐다. 롯데카드 매각가는 1조3800억원가량으로 알려졌다. 토종 사모펀드인 IMM PE는 지난 4월 1조3000억원에 산업용 가스제조 업체 린데코리아를 인수했다. 블랙스톤은 1조1000억원을 들여 국내 최대 의약품 유통업체 지오영 지분 46%를 지난 4월에 사들였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사례처럼 사모펀드의 접근이 제한된 경우가 아니려면 올해 진행된 조단위 기업 인수전은 사실상 사모펀드의 독무대였다.
사모펀드가 M&A 시장의 매물 싹쓸이
국내에서 사모펀드의 존재가 본격 부각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다. 국내에 들어온 외국계 사모펀드들은 자금난을 겪는 국내 기업을 헐값에 인수한 후 가치를 높인 후 매각해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이후 국내 자본 육성의 필요성을 절감한 정부는 2004년 12월 사모펀드 설립과 관련한 법률적 근거를 마련했다. 그 무렵 국내 사모펀드 출자약정 총액은 4조7000억원에 불과했다. 출자약정 총액은 사모펀드가 설립할 펀드에 투자자들이 출자하기로 약속한 금액을 뜻한다. 이것으로 사모펀드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국내 사모펀드의 출자약정 총액은 이후 꾸준히 늘어 지난해 말에는 66조1061억원을 기록했다. 15년 만에 15배 이상으로 커진 것이다.
사모펀드별 출자약정액 규모 면에서 국내 최대 사모펀드는 MBK파트너스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MBK파트너스의 지난해 말 기준 출자약정 총액은 11조원이 넘는다. 같은 시점에서 두 번째로 출자약정액이 많은 곳은 한앤컴퍼니다. 한앤컴퍼니는 6조8000억원 수준이다. 공공기관인 산업은행이 이와 비슷한 수준이다. 공공기관을 제외하면 3위는 국내 토종 사모펀드인 IMM PE다. 출자약정 총액은 2조7000억원 규모다. IMM PE는 올해 들어 1조원 규모의 네번째 블라인드펀드(투자 대상을 정하지 않고 자금을 모은 후 투자) ‘IMM로즈골드4호’의 출자를 성사시켰다. IMM PE에 이어 스틱인베스트먼트와 VIG파트너스,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등이 뒤를 잇고 있다. 이들 사모펀드들은 각각 1조9000억원, 1조6000억원, 9800억원의 출자약정 규모를 자랑한다.
2004년 사모펀드 설립 근거 마련 후 15배로 성장
사모펀드가 이처럼 빨리 덩치를 키운 것은 한국 재계가 외환위기·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 산업 구조조정과 기업 지배구조 개편 등의 필요성이 컸기 때문이다. 기업을 사고팔아 수익을 내야하는 사모펀드 입장에서는 인수합병 시장에 다양한 매물이 나오는 환경은 매력적이다. 덕분에 한국 시장은 지난 10년간 아시아는 물론 세계에서 주목받는 시장이 됐다. 이런 과정에서 웅진코웨이·하이마트·만도·동양생명 등 굵직한 M&A 거래가 줄을 이었다.
사모펀드는 산업 구조조정이나 기업 지배구조 재편 과정에서 매물을 소화하는 모험 자본 역할을 하는 동시에 인수 기업의 가치를 높여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조력자로도 기여했다. 이들은 인수 기업을 대상으로 채무를 재조정해 이자 부담을 줄이고 선진 경영기법을 도입해 체질을 개선했다. 또 불필요한 인력과 자산을 줄여 효율을 높였다. 가장 교과서적인 사례는 2009년 오비맥주다. KKR과 어피너티 등 사모펀드는 오비맥주를 인수한 후 당시 영업본부장이었던 장인수 전무를 최고경영자로 승진시키고 공격적인 경영활동에 나섰다. 그 결과 오비맥주는 국내 맥주시장 1위에 올랐고 KKR과 어피너티는 OB맥주를 AB인베브에 58억 달러(약 6조8000억원)에 매각했다. 오비맥주를 인수하는 데 18억달러(약 2조1000억원)가 들어갔다는 점을 감안하면 5년 만에 거둔 차익은 40억 달러(약 4조7000억원)에 달한다. 다만 이제는 전통적인 방법만으로는 쉽게 수익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에는 특정 산업의 주요 기업을 여럿 인수해 산업과 사업을 재조정하는 ‘볼트온 전략’이 눈길을 끈다. 예컨대 한앤컴퍼니는 2012년 대한시멘트를, 2015년에는 쌍용양회를 인수했다. 이어 2017년 쌍용양회는 대한시멘트를 자회사로 통합해 시멘트 업계 1위를 공고히 하고 있다. 한앤컴퍼니는 웅진식품·동부팜가야·대영식품도 한꺼번에 사들여 붙이는 방식으로 기업 가치를 끌어올렸다. 이 외에도 해운업에서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벌크선사업부를 인수해 에이치라인해운을 설립했다. 여기에 지난해에는 SK해운을 인수해 해운업 포트폴리오에 추가했다. 과거에는 기업을 대상으로 사모펀드의 능력을 발휘했다면, 이제는 산업 전반을 재편하는 것으로 영향력이 커졌다. 사모펀드 업계 관계자는 “볼트온 전략은 다수의 기업을 동시에 인수할 만큼 풍부한 자금력과 인력을 갖춰야 시도할 수 있다”며 “국내 M&A 시장에서 사모펀드의 위상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지난해 8월 기업 구조조정 시장 활성화를 위해 5290억원의 기업구조혁신펀드를 조성해 2년간 사모펀드에 출자한다는 계획을 정한 것도 사모펀드의 이런 긍정적 측면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국내 사모펀드 중에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의 가치 제고에 노력하는 곳도 여럿 있다”고 말했다.
기업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을 좌우하고 있는 사모펀드들의 핵심 자산은 사람이다. 투자금을 받아와서 투자할 기업을 선정하고, 적절한 시점에 매각하는 작업의 성과는 상당 부분 개인적 역량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모펀드 업계의 주요 인물의 면면을 살펴보면 ‘현대판 귀족’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게 이해가 된다. 국내 최대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의 김병주 회장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을 졸업하고 글로벌 사모펀드인 칼라일그룹에서 부회장까지 오른 바 있다. 그는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의 사위로도 유명하다. 한앤컴퍼니의 한상원 대표 역시 학력이나 경력, 인맥 등 모든 측면에서 뒤지지 않는다. 한 대표는 예일대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했고 모건스탠리 PE의 대표를 역임했다. 한 대표는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사위이기도 하다. 이 밖에 국내 사모펀드의 파트너급 인물 대다수가 글로벌 투자은행(IB)이나 회계사와 변호사, 공직자 등의 경력을 갖고 있다.
일각에선 사모펀드가 국내 M&A 시장의 중심에 서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사모펀드가 운용하는 자금은 결국 투자자가에 돌려줘야 하기 때문에 단기 실적에 매달리기 쉽다. 기업 인수 후 대략 5~7년이 지나면 되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MBK파트너스는 2014년 1조8400억원에 오렌지라이프를 사들인 이후 고용 유지 약속을 어기고 임직원의 21%를 줄였다. 그런 후 오렌지라이프를 신한금융그룹에 매각해 2조원이 넘는 차익을 남겼다.
사모펀드 영향력 확대에 우려의 목소리도
인수합병 시장에 투자자금이 몰리면서 수년 전부터 사모펀드 업계에서는 투자하지 못한 미소진 자금(드라이파우더)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드라이파우더 문제는 국내 사모펀드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적으로 수년간 저금리 환경이 이어지면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이 쌓이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베인앤드컴퍼니에 따르면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사모펀드가 보유한 드라이파우더는 지난해 말 기준 3170억 달러(약 373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쌓인 자금은 투자 기회를 포착하면 언제든 국내 시장에 투입될 수 있다.
시장 내 경쟁이 심해질수록 사모펀드들은 수익을 내기 어려워진다. 투자의 기본 원칙은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인데, 충분한 자금을 쌓아둔 사모펀드 간의 인수 경쟁이 붙으면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비싸게 산 만큼 수익을 내고 투자금을 회수할 기회도 줄어든다. 사모펀드가 겪을 수 있는 가장 어려운 문제는 투자 회수다. 여기에 경기나 업황이 여의치 않으면 사모펀드도 기업 가치 제고에 애를 먹는다.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는 2017년 국내 1위 밀폐용기 업체 락앤락을 인수했다. 재고 정리 등 체질 개선 작업 중이어서 평가를 내리긴 이르지만 매출과 영업이익은 인수 당시보다 모두 줄었다.
MBK파트너스가 7조2000억원을 들여 인수한 홈플러스나 딜라이브(구 C&M) 역시 고전 중인 사례다. 다만 MBK파트너스는 투자 회수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실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손실을 최소화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MBK파트너스는 맥쿼리코리아오퍼튜니티펀드(MKOF) 등과 함께 2007년 딜라이브 지분 93.8%를 인수했다. 기업 인수 때 차입금을 최대한 활용하는 사모펀드 특성상 MBK파트너스도 총 2조1000억원가량을 차입했다. 그러던 중 지난 2016년 7월 차입금 만기가 돌아왔지만 MBK파트너스는 딜라이브를 매각하지 못했다. MBK파트너스는 일단 올해 7월까지 만기를 연장했다. 이 과정에서 투자 실패를 인정하고 채권단과 협의를 통해 차입금 가운데 8000억원을 출자전환하는 데 합의했다. 이제 딜라이브 매각 작업의 주도권은 채권단으로 넘어갔지만, MBK파트너스 입장에서 최악의 상황은 피한 셈이다.
MBK파트너스가 지난 2015년 7조2000억원을 들여 인수한 홈플러스 역시 퇴로를 찾지 못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MBK파트너스는 홈플러스 인수 이후 연간 이자비용으로 연간 영업이익보다 많은 2000억원을 쓰고 있다. 그러나 유통 업계의 대세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홈플러스의 새 주인 찾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매각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 MBK파트너스는 홈플러스가 보유한 부동산만 따로 떼어내 부동산투자회사(홈플러스 리츠)를 설립하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렇게 설립한 리츠를 상장시켜 투자금 일부를 회수한다는 계산이었다. 이 계획은 홈플러스리츠가 상장에 실패하면서 성공하지 못했다. 이후 홈플러스의 임차 보증금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유동화증권(ABS) 발행에 나섰다. 쉽게 말해 보증금을 담보로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융통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해법을 찾는 시도가 이어지면서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MBK파트너스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국내 최고라고 평가하고 있다.
사모펀드들을 대상으로 출자 사업을 담당했던 한 국내 금융기관 관계자는 “사모펀드 업계에서는 해외 명문대 출신에 전문 자격증을 보유한 사람이 넘쳐나기 때문에 변별력을 갖지 못한다”며 “다른 조건이 비슷하다면 가장 집중해서 확인하는 것은 얼마나 독하게 수익을 낼 수 있는지, 손실이 나더라도 신뢰를 줄 수 있는지와 같은 인간적인 부분”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성공적인 시기를 보낸 사모펀드 업계는 이제 다음 세대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15년가량이 지나는 동안 다양한 산업에서 사모펀드로 새로운 피가 수혈됐지만 파트너급 이상 상위 인력에서는 여전히 창업자들이 건재한 상황이다. 비슷한 시기 창업한 이들은 대부분 60년대생으로 60세를 바라보고 있다. 물리적으로 세대 교체를 위한 준비를 피할 수만은 없다. 다만 창업 멤버에게 제한된 지분 구조가 확고하다는 점은 신규 인력 유입에 부정적 요인이다. 국내 4대 회계법인에서 근무 중인 한 회계사는 “최근 사모펀드 가운데 한 곳으로부터 이직 제의를 받았지만 고심 끝에 거절했다”며 “회계법인도 급여 테이블을 높이면서 연차가 어린 회계사들 입장에서는 기본 연봉에 큰 차이가 없는데 사모펀드의 꽃인 성과 공유가 불분명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모펀드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일부 사모펀드 사이에서는 약속했던 이익분배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며 “창업 1세대들에게 성과의 과실이 집중된 사모펀드로는 이직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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