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프로의 환율 돋보기 | 미국으로 몰려드는 글로벌 자본] 그래도 달러 밖에 믿을 구석 없어
[백프로의 환율 돋보기 | 미국으로 몰려드는 글로벌 자본] 그래도 달러 밖에 믿을 구석 없어
기준금리 인하에도 달러화 매력적… 미·중 무역전쟁 불씨는 여전해 드물기는 하지만 뉴욕에는 뉴암스테르담이라는 이름을 붙인 극장, 바, 도서관 등이 더러 있다. 뉴암스테르담이 한때 뉴욕의 지명(地名)이었기 때문이다. 대항해 시대였던 1600년대 초에 현재의 뉴욕 맨해튼섬에 이주한 네덜란드인들이 인디언으로부터 땅을 매입했고, 이 지역을 중심으로 식민지 무역을 했다. 네덜란드가 북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소유했던 땅이었다. 당시 대항해 시대가 열린 원동력은 막대한 부를 보장했던 후추나 육두구 등 향신료 무역을 독점하려는 야욕이었다. 육두구는 지금이야 카레에 소량 들어가는 정도로만 알려져 있고 그나마도 생소하게 느끼는 사람이 많지만, 당시 대단히 중요하게 여겨 열강이 쟁탈전을 벌이던 향신료였다. 육두구는 향신료로서도 가치가 있었지만,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염병이라 불리며 유럽을 공포에 떨게 했던 흑사병을 예방한다고 알려졌기 때문에 서구 열강이 특히 탐을 냈다.
1600년대 후반 식민지 확보와 무역의 이익을 위해 서로를 견제하던 네덜란드와 영국은 전쟁을 피해갈 수 없었다. 신흥 강자였던 영국이 지배 세력이었던 네덜란드에 도전하는 형세였고, 17세기 후반에 세 차례에 걸친 영란 전쟁이 발발했다. 육두구를 두고도 양국의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육두구의 원산지는 인도네시아의 반다(Banda) 제도로, 대항해 시대에 전성기를 누린 네덜란드는 이를 독점하기 위해 혈안이 됐다. 하지만 네덜란드가 반다 제도의 육두구 무역을 무력으로 독점하는 데 마지막 걸림돌이 있었다. 반다 제도의 한쪽 끝에 있는 런(Run) 섬을 차지한 영국인들이었다.
1664년에 영국이 뉴암스테르담을 점령하고 지명을 현재의 뉴욕으로 바꾼 사이, 지구 반대편에서는 네덜란드가 영국을 밀어내고 런 섬을 점령했다. 결국 영국과 네덜란드는 다시 3년에 걸친 전쟁을 벌였고, 그 결과 1667년 브레다(Breda) 조약을 맺는다. 이 조약을 통해 네덜란드는 뉴암스테르담을 영국에 내주고 런 섬을 차지해 짧게나마 육두구 무역을 독점했다. 물론 당시 상황만 본다면 런 섬을 얻은 네덜란드에 성공적인 조약이었다.
현 시대에 향신료의 가치를 과거의 전성기에 비견하기에는 너무 초라해졌다. 하지만 1600년대 이래 뉴욕을 차지한 나라가 세계의 패권을 쥐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뉴욕의 주인은 인디언에서 네덜란드로,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 영국에서 미국으로 바뀌었다. 뉴욕은 미국을 넘어 세계의 금융 중심지로 일찌감치 자리 잡았다. 세계 국채시장과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에서 미국은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중심지는 뉴욕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했다면 우리 시대의 돈과 금융은 뉴욕으로 통한다.
분산 투자가 미덕으로 여겨지는 주식시장에는 뉴욕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것만으로 세계에 분산 투자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있다. 세계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내로라하는 다국적 기업이 뉴욕 증시에 상장돼 있고, 미국에 본사를 두지 않은 웬만한 글로벌 기업의 주식도 뉴욕에 상장돼 거래되기 때문이다. 세계 채권시장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국채 중 미국 국채는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대접 받으며 글로벌 금리의 흐름을 주도한다.
뉴욕 금융시장의 움직임은 세계로 파급되는데,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 개장 가격은 뉴욕에서 최종 거래된 호가에 영향을 받아 비슷한 수준에서 출발한다. 외환 거래량 자체는 런던이 뉴욕을 능가한다. 그러나 외환시장을 지배하는 달러화와 미 연준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뉴욕이다. 하지만 이렇게 자본이 뉴욕에 집중되는 현상은 미국 자산의 고평가 현상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미국 주가, 미국 채권 가격의 고평가와 함께, 달러화도 2011년을 기점으로 장기간의 상승세를 구가하고 있다.
전 세계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전 세계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다국적 기업을 보유한 미국이니, 미국의 대외적인 투자 포지션도 엄청나게 쌓여 있을까. 순액 기준으로 그렇지 않다. 미국으로 들어가는 전 세계의 자본과 미국에서 전 세계를 향해 나오는 미국의 자본을 비교하면, 전 세계가 미국에 투자한 금액이 훨씬 많다. 역전폭도 사상 최대의 마이너스인 상황이다. 미국은 자본 수출국이 아니라, 자본 수입국이다. 미국이 전 세계에 공급한 달러화는 미국의 주식·채권시장에 재투자된다. 그렇다면 미국에 투자된 전 세계의 막대한 자본이 곧 빠져 나온다고 봐야 할까. 그렇게 단정하기는 어렵다.
선진국 내에서는 미국 대신 성장을 견인할 만한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미국 이외 국가에서 성장 모멘텀이 보여야 더 높은 수익을 좇아 자본이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 올해 세 차례나 기준금리를 인하해 고수익 자산으로서 달러화 자산의 매력이 떨어졌으나, 자본이 미국을 버리고 떠나기에는 갈 곳이 마땅치 않은 데다 미국의 금리는 선진국 레벨에서 여전히 경쟁력이 높다. 미국과 중국이 10월 이후 무역전쟁에서 ‘1단계 합의’를 가시화한 이후 원·달러 환율이 장중 1154원까지 하락했고 1200원 재등정에 대한 우려는 상당히 감소했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이 잠정 합의한 1단계 합의조차 공식화하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하고 예상보다 지연되는 것을 보면 2단계나 3단계 합의 가능성을 낙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미·중이 상호 공세를 자제하는 것만으로도 금융시장이 안도하고 투자심리가 개선되었지만, 갈등의 씨앗은 다시 자랄 것으로 보인다. 단지, 뒤로 미뤄진 것일 수 있다.
※ 필자는 신한은행에서 환율 전문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있다. 공인회계사로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한 경력을 살려 단순한 외환시장 분석과 전망에 그치지 않고 회계적 지식과 기업 사례를 바탕으로 환위험 관리 컨설팅도 다수 수행했다. 파생금융상품 거래 기업의 헤지 회계 적용에 대해서도 조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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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 이익 노린 영란 전쟁
1600년대 후반 식민지 확보와 무역의 이익을 위해 서로를 견제하던 네덜란드와 영국은 전쟁을 피해갈 수 없었다. 신흥 강자였던 영국이 지배 세력이었던 네덜란드에 도전하는 형세였고, 17세기 후반에 세 차례에 걸친 영란 전쟁이 발발했다. 육두구를 두고도 양국의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육두구의 원산지는 인도네시아의 반다(Banda) 제도로, 대항해 시대에 전성기를 누린 네덜란드는 이를 독점하기 위해 혈안이 됐다. 하지만 네덜란드가 반다 제도의 육두구 무역을 무력으로 독점하는 데 마지막 걸림돌이 있었다. 반다 제도의 한쪽 끝에 있는 런(Run) 섬을 차지한 영국인들이었다.
1664년에 영국이 뉴암스테르담을 점령하고 지명을 현재의 뉴욕으로 바꾼 사이, 지구 반대편에서는 네덜란드가 영국을 밀어내고 런 섬을 점령했다. 결국 영국과 네덜란드는 다시 3년에 걸친 전쟁을 벌였고, 그 결과 1667년 브레다(Breda) 조약을 맺는다. 이 조약을 통해 네덜란드는 뉴암스테르담을 영국에 내주고 런 섬을 차지해 짧게나마 육두구 무역을 독점했다. 물론 당시 상황만 본다면 런 섬을 얻은 네덜란드에 성공적인 조약이었다.
현 시대에 향신료의 가치를 과거의 전성기에 비견하기에는 너무 초라해졌다. 하지만 1600년대 이래 뉴욕을 차지한 나라가 세계의 패권을 쥐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뉴욕의 주인은 인디언에서 네덜란드로,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 영국에서 미국으로 바뀌었다. 뉴욕은 미국을 넘어 세계의 금융 중심지로 일찌감치 자리 잡았다. 세계 국채시장과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에서 미국은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중심지는 뉴욕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했다면 우리 시대의 돈과 금융은 뉴욕으로 통한다.
분산 투자가 미덕으로 여겨지는 주식시장에는 뉴욕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것만으로 세계에 분산 투자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있다. 세계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내로라하는 다국적 기업이 뉴욕 증시에 상장돼 있고, 미국에 본사를 두지 않은 웬만한 글로벌 기업의 주식도 뉴욕에 상장돼 거래되기 때문이다. 세계 채권시장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국채 중 미국 국채는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대접 받으며 글로벌 금리의 흐름을 주도한다.
뉴욕 금융시장의 움직임은 세계로 파급되는데,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 개장 가격은 뉴욕에서 최종 거래된 호가에 영향을 받아 비슷한 수준에서 출발한다. 외환 거래량 자체는 런던이 뉴욕을 능가한다. 그러나 외환시장을 지배하는 달러화와 미 연준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뉴욕이다. 하지만 이렇게 자본이 뉴욕에 집중되는 현상은 미국 자산의 고평가 현상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미국 주가, 미국 채권 가격의 고평가와 함께, 달러화도 2011년을 기점으로 장기간의 상승세를 구가하고 있다.
전 세계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전 세계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다국적 기업을 보유한 미국이니, 미국의 대외적인 투자 포지션도 엄청나게 쌓여 있을까. 순액 기준으로 그렇지 않다. 미국으로 들어가는 전 세계의 자본과 미국에서 전 세계를 향해 나오는 미국의 자본을 비교하면, 전 세계가 미국에 투자한 금액이 훨씬 많다. 역전폭도 사상 최대의 마이너스인 상황이다. 미국은 자본 수출국이 아니라, 자본 수입국이다. 미국이 전 세계에 공급한 달러화는 미국의 주식·채권시장에 재투자된다. 그렇다면 미국에 투자된 전 세계의 막대한 자본이 곧 빠져 나온다고 봐야 할까. 그렇게 단정하기는 어렵다.
선진국 내에서는 미국 대신 성장을 견인할 만한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미국 이외 국가에서 성장 모멘텀이 보여야 더 높은 수익을 좇아 자본이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 올해 세 차례나 기준금리를 인하해 고수익 자산으로서 달러화 자산의 매력이 떨어졌으나, 자본이 미국을 버리고 떠나기에는 갈 곳이 마땅치 않은 데다 미국의 금리는 선진국 레벨에서 여전히 경쟁력이 높다.
미국은 자본 수입국
※ 필자는 신한은행에서 환율 전문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있다. 공인회계사로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한 경력을 살려 단순한 외환시장 분석과 전망에 그치지 않고 회계적 지식과 기업 사례를 바탕으로 환위험 관리 컨설팅도 다수 수행했다. 파생금융상품 거래 기업의 헤지 회계 적용에 대해서도 조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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