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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질 바꾸는 현대차의 과제] 모빌리티 신사업으로 재질주 모색

[체질 바꾸는 현대차의 과제] 모빌리티 신사업으로 재질주 모색

지배구조 개편 재도전... 고급차 제네시스 브랜드 안착 서둘러야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자동차 사옥 / 사진:뉴스1
자동차 시장의 패러다임이 변하면서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내연기관 위주에서 전기 동력 위주로 급격하게 변하고 있으며 공유경제와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은 ‘자동차’가 아니라 ‘모빌리티 서비스’를 중심으로 진행 중이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패스트팔로워’로 성장해온 현대자동차그룹에게 있어선 절체절명의 위기다. 다만 앞으로의 짧은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퍼스트무버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의 새 리더인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불안정한 시기에 경영 일선에 나섰다. 수석부회장에 취임하기 이전부터 변화에 대한 의지를 천명했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해 가시적인 성과도 내고 있지만 여전히 시계는 선명치 않다. 정의선호가 가진 가장 시급하고 어려운 과제는 지배구조 개편이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은 ‘순환출자고리 해소’를 기치로 2018년 한차례 추진됐지만 미뤄진 바 있다. 지배구조 개편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 다시 한 번 알게 된 것이다.
 무르익는 지배구조 개편 분위기
물론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당시 지배구조 개편은 급박했다. 정부의 순환출자고리 해소에 대한 압박이 컸기 때문이다.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의 핵심순환출자를 비롯해 4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를 분할해 분할회사를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방식으로 이를 풀어내려 했지만 엘리엇 등 일부 주주들의 반대에 부딪혔고, 결국 이 안을 폐지했다.

그럼에도 현대차그룹의 시도는 의미가 있었다.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적극적인 시도를 했고 주주들의 의견을 반영했다’는 명분이 생긴 것이다.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 해소를 주창했던 김상조 당시 공정위원장은 “지배구조 개편방안은 그룹과 시장에서 결정하는 사안”이라며 선을 그었고, 더 이상 데드라인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지배구조 개편을 외부적 요인으로 급박하게 추진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지배구조 개편은 여전히 필요한 일이다. 정 수석부회장이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지배구조를 바꿔야 하며, 전통 자동차 산업에 맞춰 수직계열화된 계열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엮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의 상황은 지배구조 개편을 검토하기에 적절하게 흘러가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현대차에겐 가시였던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보유하던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기아차의 주식을 전량 매각했다. 지난해 12월 26일자로 폐쇄된 각 사 주주명부에서 이름이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엘리엇이 다시 지분을 매입해 지배구조 개편에 몽니를 부릴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지만 재계에선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쉽지 않다고 판단해 ‘백기 철수’한 것으로 본다. 마침 정몽구 회장의 현대차 사내이사 임기도 3월이면 끝난다.

현대차그룹이 앞으로 진행할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시장의 반감을 사지 않는 것이다. 앞서 개편안을 철회하며 정 수석부회장은 “주주와 투자자 및 시장의 다양한 견해와 고언을 충분히 반영하겠다”고 밝혔는데, 다시 내놓은 개편안이 또 시장의 기대에 어긋나면 추진 동력을 얻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임은영 삼성증권 수석 연구위원은 “2018년의 개편안을 보면 현대모비스의 분할 과정에서 돈이 되는 사업부를 현대글로비스와 합병시키는데, 합병비율이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발목을 잡았다”며 “‘어떤 기업의 주주가 손해를 본다’는 분석이 나오지 못하도록 철저한 근거로 기업가치 등을 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미래 모빌리티 산업구조에 걸맞은 방향성을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주주를 설득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결국 미래 모빌리티 시장에서 어떤 사업을 전개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내놓아야 주주를 설득할 수 있다. 새로운 사업기회를 찾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정의선호 현대차그룹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도 여기서 나타난다. 지난해 앱티브와 합작법인 설립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 그랩(동남아시아 모빌리티 서비스), 리막(크로아티아 고성능 전기차 업체) 등 다양한 해외 협업 및 투자에 나서고 있다. 올해 CES에서는 UAM(도심항공모빌리티) 분야에서 우버 엘리베이트와 파트너십을 맺기도 했다.

신사업 분야에서 남은 과제는 분명해졌다. 결국은 미래모빌리티 시대에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을 만들어내야 한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래 모빌리티 전략을 CASE, 즉 C(커넥티드)·A(자율주행)·S(공유)·E(전기차)로 요약하는데, 현대차 뿐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기업이 다른 분야보다 공유 분야에서 취약하다”며 “결국 캐시카우는 공유 분야가 될 것이라는게 글로벌 모빌리티 업계의 전망”이라고 말했다.

전통 자동차산업에서 역량을 강화하는 것도 현대차그룹이 가진 과제다. 자동차의 공유개념이 커지면서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은 줄고 있다. 경쟁은 더욱 치열해져서 이미 가성비 경쟁력으로는 중국 업체를 이길 수 없다. 가성비를 뛰어넘는 가치를 제공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정의선호 현대차그룹은 제품 혁신으로 파고를 넘고 있지만 결국 브랜드 이미지를 높일 수 있는 특단의 전략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고급차 시장에서 제네시스 브랜드의 성패가 전통 자동차 시장에서 현대차그룹의 성패를 가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제네시스 브랜드는 수년 내 유럽과 중국 시장에 진출을 도모하고 있지만 이미 진출한 미국 시장에서 이렇다할 입지를 쌓지 못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교수(자동차과)는 “프리미엄 브랜드로 입지를 다지는 것은 장기적인 철학과 투자가 필요한 일”이라며 “제네시스가 고급차 브랜드로서 인식을 높이려면 일단 미국시장에서 딜러망 분리부터 성사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첫 삽 임박한 GBC, 착공 후가 더 중요
현대차그룹의 숙원사업인 신사옥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준공 역시 주요한 과제 중 하나다. 부지대금에만 그룹 계열사가 10조4400억원을 투입한 프로젝트인데,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했다. 착공은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에 따르면 GBC는 한국시설안전공단의 안전관리계획 심의가 진행 중이다. 심의 결과는 2~3월 중 나올 것으로 보인다. 심의를 통과하면 서울시에 착공계를 제출한 뒤 언제든 공사를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착공이 끝은 아니다.

국방부와 협의는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방부와 서울시·현대차는 일단 착공을 시작한 뒤 구조물 높이가 260m에 이르기 전에 문제를 해결하기로 합의했다. 현대차그룹은 또 GBC를 공동개발할 방침이다. 투자를 유치해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하고, 의견을 조율해 공동 개발에 나서는 과정이 간단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배구조 개편 | 김걸 기획조정실장 사장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의 키를 쥔 인물은 김걸(55) 현대차 기획조정실장(사장)이다. 앞서 2018년 5월 지배구조개편안을 추진했던 인물이다. 지배구조 개편 추진 당시 기획조정1실장이었던 김 사장은 지배구조 개편 실패 이후 두 달이 지난 2018년 8월 사장으로 승진했다. 현대차는 이를 홍보채널 등을 통해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사장 인사로선 이례적인 일이었다. 김 사장은 2019년에는 총괄 기획조정실장으로 임명되었는데, 김 사장에 대한 정 수석부회장의 신뢰가 상당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물론 능력은 입증됐다. 김 사장은 1988년 입사해 20여 년 간 수출기획 및 해외영업 업무를 맡아 현대·기아자동차의 판매 확대를 주도했다. 특히 2004년 1월 기아자동차 스페인법인과 스웨덴법인을 시작으로 프랑스, 슬로바키아, 러시아, 네덜란드법인 설립을 앞장서 이끌면서 기아자동차 수출 확대를 위한 기반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9년 글로벌전략실장으로 옮겨온 뒤, 이후 기획조정실장을 맡으며 그룹의 전략업무를 담당했다. 2010년 2월 기아차 미국공장, 2010년 현대차 러시아공장, 2012년 현대차 브라질공장 준공과 지난해 10월 기아차 멕시코공장 착공을 비롯해 중국 신공장까지 건설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새로운 자동차 시장을 개척하는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2015년 동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김 사장과 함께 지배구조 개편에 핵심적인 인물로는 배형근 현대모비스 부사장이 꼽힌다.
 신사업 발굴·투자 결실 | 지영조 전략기술본부장(사장)
현대차그룹의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일은 지영조(61) 현대차 전략기술본부장(사장)의 손에 달렸다. 지 사장은 미국 브라운대 석·박사 출신으로 맥킨지, 액센추어 등 컨설팅 회사를 거쳤고, 2007년 삼성전자에 들어가 10년 가까이 일한 뒤 2017년 현대차로 옮겼다. 지 사장 영입과 동시에 만들어진 전략기술본부는 정 수석부회장이 모든 과정을 기획하고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설립단계부터 지 사장을 염두에 두고 조직을 설계했다는 얘기다. 초기 인력들은 연구개발본부에서 분리돼 나왔는데, 정 수석부회장 직속 부서로 편재됐다. 지사장은 2017년 부사장으로 영입 후 불과 2년도 되지 않은 지난 2018년 말 사장으로 승진했다.

“IT기업보다 더 IT기업 같은 회사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정 수석부회장의 열정을 채우는 곳이 바로 전략기술본부다. 글로벌 모빌리티 시장에서 별다른 입지를 갖지 못했던 현대차그룹은 지 사장의 영입 이후 공격적인 투자로 점차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가장 큰 업적은 지난해 발표한 앱티브와의 합작회사 설립이다. 전략기술본부는 이밖에도 동남아시아 그랩, 인도 올라 등 해외 차량공유기업에 대한 투자에도 주요 역할을 맡았다. 현대차가 미국과 중국, 독일, 이스라엘에 설립한 오픈이노베이션 거점 ‘크래들’ 역시 지 사장의 주도로 설립됐다.

현재 전략기술본부 산하에는 다양한 사업부가에서 외부영입 인재들이 지 사장과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다. 최근 UAM사업부장으로 영입된 미국 항공우주국(NASA) 출신 신재원 부사장, 인공지능(AI) 개발을 전담하는 AIR랩장 김정희 상무 등이 대표적이다. 정 수석부회장의 든든한 지원을 받고 있는 지 사장은 이제 투자의 결실을 거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제네시스 고급브랜드 안착 | 이용우 제네시스사업부장 부사장
현대차의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는 최근 브랜드 최초 SUV GV80를 내놓기 직전 조직을 뒤흔들었다. 2016년 제네시스 브랜드 론칭 직후 영입했던 맨프레드 피츠제럴드 부사장을 해임한 것. 피츠제럴드 부사장의 빈자리에 투입된 건 이용우(61) 부사장이다. 이 부사장은 현대차 아중동사업부장과 해외판매사업부장, 브라질법인장, 북미권역본부장 등을 거쳐 미주권역지원담당을 지낸 현대차의 대표적인 ‘해외영업통’이다.

이 부사장은 현대차가 브라질에 진출한 이듬해인 2013년 브라질 법인장으로 임명돼 2018년까지 현대차가 브라질 시장에 안착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연 18만대를 생산할 수 있도록 지어진 브라질 공장은 그가 떠날 무렵 22만대 케파의 공장으로 증설됐다. 그는 2018년 6월부터 북미권역본부장을 맡았고 같은 해 10월부터는 미국 법인장을 겸직했는데, 미국 판매량을 끌어올리는 성과를 보였다. 지난해 현대차의 미국 판매량은 71만대로 2016년 이후 3년만에 70만대를 넘었다. 현재 제네시스 브랜드가 처한 상황과 이 부사장의 이력을 고려할 때 임무는 단순하면서도 확실하다. 미국 시장에 제네시스 브랜드를 안착시키고 유럽과 중국 시장 진출의 길을 여는 것이다.

이 부사장은 피츠제럴드 전 부사장보다 훨씬 나은 환경에서 제네시스의 해외판매 전략을 전반적으로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피츠제럴드 부사장이 겸하던 제네시스고객경험실장 직무는 이인아 상무가 맡게 됐으며, 미국 시장에는 동일한 롤을 가진 전문가가 조력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벤틀리와 아우디 등 럭셔리 브랜드를 이끈 마크 델로소를 제네시스 북미 담당 최고책임자(CEO)로 영입한 바 있다. 아우디 미국법인 최고운영자로 재직 당시 77개월 연속 판매 증가 기록을 세운 전설적인 인물이다.
 GBC 준공 지원 | 정진행 현대건설 부회장
현대차그룹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착공이 다가오는 가운데 정진행(61) 현대건설 부회장의 역할론이 커지고 있다. 현대차 전략기획담당 사장을 맡아 그룹의 각종 핵심 업무를 담당하던 정 부회장은 2018년 연말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해 친정인 현대건설로 이동했다. 그의 승진과 계열사 발령은 다양한 해석을 낳았다. 그룹 현안의 핵심에서 멀어졌다는 해석과 GBC 건설 등에 집중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견이 공존했다.

GBC는 당초 2016년 착공해 2021년 준공을 목표로 했지만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한 현대차그룹의 숙원사업이다. GBC를 위한 태스크포스(TF)팀 성격의 신사옥 추진사업단의 단장은 김인수 현대건설 부사장이 맡고 있다. GBC의 건축허가를 놓고 최근까지 신사옥추진단과 협의를 이어온 서울시 관계자는 “김 부사장이 대부분의 현안을 담당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GBC의 착공이 눈 앞으로 다가오며 정 부회장의 역할론이 대두하고 있다. 신사옥추진단이 맡는 임무는 건설과 관련한 실무 영역인데, 이보다 더 큰 틀에서 사업을 관리할 인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현대차그룹이 지난해 GBC를 외부투자자와 공동개발하는 방향으로 정하면서 이런 역할론은 더욱 커지고 있다. 우유철 현대로템 부회장이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물러났지만 정 부회장이 자리를 지킨 것에 대한 다양한 해석 중 하나다.

한편 정 부회장은 현대건설로 옮겨와 해외 수주에 집중하고 있다. 1년 내내 중동과 동남아시아 등을 돌며 해외수주를 챙겼다. 정 부회장의 활약으로 현대건설은 지난해 5년 만에 해외건설협회 기준 해외수주 1위를 탈환했다.

-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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