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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재가 만난 사람(44) 인태연 청와대 자영업비서관] 공정성 확보 위한 조치는 규제 아니라 균형

[이필재가 만난 사람(44) 인태연 청와대 자영업비서관] 공정성 확보 위한 조치는 규제 아니라 균형

첫 자영업비서관으로 자영업자 출신 “현장에 답 있어”
사진:전민규 기자
“자영업자가 많은 건 우리나라 경제 구조의 특성입니다. 뉴질랜드와 싱가포르가 각각 농업, 금융 비중이 큰 것과 마찬가지에요. 무급 가족종사자 포함해 인구의 20~25%가 자영업을 해 그동안 먹고살았고 국가가 건강하게 유지됐다면 산업으로서 나름의 가치가 있는 겁니다.”

인태연 청와대 자영업비서관은 자영업의 산업적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이 논밭을 경작한다면 벤처는 바다에 뛰어들어 블루오션을 개척하는 업종입니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는 논밭과 바다 사이에 펼쳐진 갯벌에서 재생을 합니다. 논밭에서 수확한 걸 재생해 바다로 내보내고, 바다에서 잡힌 것을 재생해 뭍으로 보내는 역할을 하죠. 기업에서 밀려난 사람이 자영업이라는 시장에서 재기에 성공하기도 하고 힘에 부쳐 다시 회사를 들어가거나 벤처를 창업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공급과잉이라 조정이 필요하지만 자영업 시장도 나름의 생태계라는 거죠. 창업-성장-폐업이 선순환적으로 이루어지는 자영업 생태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이들 자영업 종사자 560만명은 160만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고, 그 가족까지 합치면 1500만~2000만명의 소비자 집단입니다. 자영업은 독자적인 산업 영역일뿐더러 소비의 주체라는 거죠.”

경제의 실핏줄인 자업업자가 무너졌을 때 시장에 미칠 영향을 유통 대기업이 감안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는 “자영업을 한다고 불쌍한 사람도 아니고 적선의 대상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늘이 짙은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단적으로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영업자는 1030명으로, 전체 자살자 중 비중이 가장 큰 직업군이다.



산업 정책 차원의 구조조정이 필요하지 않나요.


“유통 대기업이 지금보다 점포를 늘리는 건 막고, 개인 자영업자도 너무 많이 들어오지 않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한편 창업 교육을 시켜야죠. 그러면 해결되고, 저는 그게 바로 상생이라고 봅니다.”



자영업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유통 대기업이 골목상권에 들어선 데 이어 온라인 유통의 가세로 대기업, 자영업자, 온라인 유통 간의 균형이 깨진 겁니다. 여기에 급격한 임대료 상승, 각종 수수료 부담 증가, 불공정한 거래 관행 등이 작용했죠.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인건비 부담이 가중됐습니다.”



유통 대기업, 골목상권의 상생 방법은.


“양쪽 다 온라인 시장의 급성장으로 위기에 직면했고 서로 상생하지 않고는 생존이 어려운 상황이에요. 새로운 상생 모델을 찾아야 합니다. 자본과 경영 능력을 갖춘 유통 대기업, 밀레니얼 세대가 찾는 개성, 지역성과 체험을 살릴 수 있는 자영업자가 각자의 장점을 결합하면 온라인과 경쟁해 볼 만합니다.”
 대기업·자영업자가 장점 서로 결합해야
사진:전민규 기자
인 비서관은 자영업자 출신으로 지난해 8월 첫 자영업비서관 자리에 임명됐다. 그는 10개 자영업단체 사람들과 민관 TF를 만들어 ‘자영업자와 함께 만든 자영업 성장혁신 종합대책’을 마련한 것을 가장 큰 성과로 꼽았다. 이 대책에 따라 카드 수수료 인하, 상가임대차 보호 강화, 자영업·소상공인 전용상품권 발행 확대, 상권 르네상스 확대 등이 이루어졌다. 인 비서관은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장을 지냈다. 그가 현장과의 소통에 강한 배경이다. “통계로 표시되는 현실엔 다양한 오류가 있을 수 있어요. 오류를 바로잡으려면 현장을 찾아야 합니다. 고통스러워하는 현장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 통계에 숨은 이면의 진실을 제대로 알 수가 없어요.”



취임 후 ‘기울어진 운동장’이 평형을 회복했나요.


“방향성을 제대로 잡았다고 봅니다. 과거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는 중소기업 끄트머리에 있었습니다.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늘 밀렸죠. 자영업비서관실을 신설한 거 자체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독자적인 정책의 대상으로 존중한다는 의미가 있어요. 생계형 적합 업종제 도입, 가맹점·대리점을 상대로 대형마트·아울렛·면세점 본사가 표준계약서를 작성토록 한 것 등이 핵심 성과라고 할 수 있죠.”

과거 가맹점 본사는 수수료를 멋대로 책정했고 1년 단위 계약을 강요했지만 표준계약서 덕에 이런 일방적인 ‘갑질’이 줄어들었고 매출이 떨어지면 어느 정도 조정도 요구할 수 있게 됐다.



임차인 보호에 대한 정책은.


“그동안 상가 임대료 인상률의 상한을 9%에서 5%로 내렸고, 계약 갱신 청구권 행사 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했습니다. 괄목할 만한 성과죠. 또 환산보증금제도의 적용 대상을 연 내 100%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해결되나요. 국회 통과 전망은.


“매년 5%를 초과해 상가 임대료를 올릴 수 없으니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거죠. 입법 과정에서 여야가 다투겠지만 이 문제는 해결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마련됐다고 봅니다. 일부 건물주 빼고는 다 찬성할 거예요. 지역을 살리고 건물의 가치를 올리는 건 장사하는 자영업자들입니다.”



카드 수수료에 대한 의견 격차는 여전합니다.


“마땅히 요율이 같아야죠. 지금은 대기업에 제공하는 마케팅 비용을 제하면 사실상 더블입니다. 시장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이런 규제는 규제라기보다 균형을 잡아 주는 겁니다. 벤처가 창의적인 비스니스를 하거나 대기업이 신산업에 진출할 때 하는 규제와는 범주가 다르다는 거죠.”

그가 자영업과 인연을 맺은 건 대학 4학년 때의 일이다. 가게를 운영하던 아버지가 쓰러지는 바람에 그가 떠맡았다.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 인천 부평역 부근에서 옷가게를 했고, 그 전엔 식당도 했다.



자영업 시절 나름의 영업비법이 있다면.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고객과 오랜 시간에 걸쳐 신뢰를 쌓고, 같이 일하는 사람과는 유대감을 형성해야죠. 직원들에게는 아침에 기분 좋게 나오는 직장이 됐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또 시장의 변화를 꾸준히 관찰하는 한편 자신이 취급하는 아이템에 대해서는 애정이 있어야 하죠. 자영업을 해도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창업 준비하는 사람에게 조언한다면.


“대형 유통업체가 골목상권에 본격 진출한 2000년 이전엔 기본적인 아이템이 있고 부지런하면 먹고 살았습니다. 지금은 달라요. 창업은 신중히 해야 하고, 성공에 대한 조급증에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창업은 어떤 의미에서는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아는 상인이 20년 이상 자신이 버틴 건 돈을 벌 때까지 장사를 했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무엇보다 사전 준비를 제대로 해야 돼요. 기본적으로 성실성과 해당 업종, 거래처에 대한 정보, 지역에 대한 안목, 나름의 장사 노하우를 갖춰야 합니다. 요즘 창업 준비 기간이 평균 9.5개월입니다. 3개월~6개월 미만도 23%나 되죠. 제가 다시 창업을 한다면 해당 업종 가게에 들어가 1~2년 간 수업을 할 겁니다.”

그가 서울 창신동의 한 봉제공장을 찾았을 때의 이야기다. 한때 직원이 10명이었다는 이 공장은 현재 직원 두 명이 일한다. 사장에게 ‘왜 이렇게 사업 하기가 힘드냐’고 묻자 망연자실하던 사장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글쎄, 저도 그걸 모르겠어요. 너무 힘든데 그 이유를 모르겠어요.”
 자영업 무너지면 1500만명 소비 시장도 붕괴
인 비서관은 가슴이 아팠지만 힘들어 하는 소상공인들 대부분 비슷한 심정일 거라고 말했다. “유통 과잉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건 대기업입니다. 복합쇼핑몰이 대표적이죠. 대형마트의 5배~30배에 이르는 대형 몰이 전국적으로 몇 십 개입니다. 또 주요 온라인 몰 매출이 대형 유통업체의 25%에 이르는데 이들이 대기업의 자회사입니다. 대기업의 제살 깎아먹기식 진출이죠. 코끼리 다리 만지기식 대책이 되지 않으려면 이런 현실을 균형 있게 들여다봐야 해요. 그런데 이런 무한경쟁에도 골목시장의 자영업자들은 좀처럼 장사를 접지 않아요. 빚 내 시작한 장사라 낭떠러지 끝까지 가기 때문이죠. 결국 상대가 죽을 때까지 버티는 벼랑 끝 싸움이 이어지고 있어요. 대기업들이 멈춰 균형점을 찾아야 합니다. 자영업자가 나가떨어지면 대기업 시장은 넓어질지 몰라도 1500만~2000만명 소비시장이 무너집니다. 소비 위축의 위기가 닥칠 거라는 거죠.”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한 대책이 뭔가요.


“중소 상인을 전방위로 퇴출시킬 게 아니라 건강한 개체는 살리고 아닌 개체는 제3 섹터로 넘어갈 수 있도록 해야죠. 다른 부처와 협력해 자영업자의 재기 및 재창업을 지원하는 한편 농어촌 가기, 노동 현장으로 돌아가기 등 빠져나갈 다른 구멍을 찾고 있습니다.”

그는 대형 유통업체가 골목시장·구시장에 진출할 때 실시하는 상권 영향 평가의 시행규칙을 강화해 악영향이 예상될 경우 고민을 더 하게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편으로는 전통시장 젊은 상인들에게서 희망을 본다고 말했다. 광주 1913송정역시장에서 김부각을 파는 창업 4년 차 노지현 대표는 나이 서른셋의 여성이다. 그는 느린 먹거리 김부각을 모르는 친구들이 많은데 먹고 나면 대부분 좋아하는 것에 착안해 7평짜리 가게를 차렸다. 4년 만에 가게는 20평으로 넓어졌고 연 매출액이 15억2000만원에 이른다. 이 중 11억원어치를 법인에 납품하고 8000만원어치를 수출한다. 공장을 기계화해 인건비를 절약하라는 주변의 충고를 그는 이렇게 받아넘긴다. “한 사람이라도 더 식구가 돼 일하면 좋죠. 사람이 소중하잖아요.” 인 비서관은 청년 상인들이 전국적으로 네트워크를 결성해 전통시장을 젊게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거셉니다. 이런 변화가 자영업계에 어떻게 파급될 거로 보나요.


“일례로 소상공인들도 온라인 판매를 둘러싸고 고민 많이 합니다. 그러나 자본이 달려 키오스크 정도를 활용하는 데 그치는 게 현실이죠. 10년이 지나면 자영업도 새로운 세상을 맞을 겁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소상공인의 온라인 시장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해당 예산을 지난해 75억원에서 올해 313억원으로 늘렸습니다. 주요 지자체에 연내 스마트 상점가, 스마트 미러 도입 가게를 만들고 스마트 맵도 도입할 겁니다.”



최저임금 인상 문제에 대한 생각은.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최저임금 지급 대상인 노동자도 같은 국민으로서 현 상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해요. 고용을 하는 자영업주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최저임금을 지급해야 할 주체가 줄어들 수 있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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