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소비세 무용론] 세금 깎아준다고 차 판매 늘어나나
[개별소비세 무용론] 세금 깎아준다고 차 판매 늘어나나
수시로 감면책 나오자 효과 떨어져… “유류세 인하가 더 효과적” 목소리도 정부가 자동차 개별소비세(개소세) 인하 정책을 다시 살려냈다. 코로나19 사태가 자동차 산업에도 타격을 입히자 2019년 말 종료했던 개소세 인하 정책을 또 내놓은 것이다. 이번 정부가 개소세 인하 정책을 처음 편 것은 2018년 7월이다. 이후 1년을 연장했다. 지난해 말 종료했는데 2개월 만에 같은 카드를 뽑아들었다. 이렇다 보니 개소세 무용론마저 나오고 있다.
개소세는 이른바 사치품에 붙는 세금으로, 본래는 특별소비세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과거엔 에어컨, 냉장고, TV에도 부과됐는데 지금은 보석, 기름, 자동차, 담배, 도박장 등에만 부과한다. 이 가운데 논란이 되는 항목이 자동차다. 2019년 12월 기준 국내에 등록된 자동차 누적 등록 대수는 약 2368만대. 다섯 명 중 2명은 차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승용차 개소세를 유지하는 게 맞느냐는 물음도 있지만 폐지되지 않고 있다. 이런 논란에도 경기 침체가 이어지거나 예상되면 정부가 가장 먼저 들고나오는 카드가 ‘자동차 개소세 인하’다.
승용차에 붙는 개소세는 차 가격의 5% 수준이다.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정책의 골자는 개소세를 70% 내리겠다는 것이다. 이전까지 30% 인하 정책만 주로 나왔던 것과 비교하면 더 강력해진 처방이다. 단 비싼 차를 살수록 더 많은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위해 한도를 100만원으로 잡았다. 예를 들면 1억짜리 차를 살 때 500만원이 개별소비세로 붙는데, 한도를 제한하지 않으면 소비자는 350만원의 혜택을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혜택을 100만원 이상 받지 못하게 벽을 쌓았다. 교육세, 부가가치세가 함께 떨어지는 효과를 더하면 소비자는 최대 143만원의 혜택을 볼 수 있다. 문제는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많다는 데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소비를 늘리려 한다기보다 죽어가는 소비를 붙들어 두기 위해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개소세 인하 폭 확대를 미끼로 소비절벽만은 막아보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것이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이전 정책을 똑같이 되풀이해 봐야 효과가 크지 않다는 걸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있다”며 “정부도 이런 상황을 알고 더 큰 인하폭을 내놨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소비자에게 ‘내성’이 생겼다고 지적한다. 최근 5년(2015년~2019년) 동안 개소세 감면이 이뤄진 기간은 약 2년 5개월에 달한다. 수시로 세금 감면책이 나오는 탓에 효과도 줄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의 승용차 내수 판매량 자료를 보면 2018년 판매 대수는 129만7937대, 2019년엔 129만4139대를 기록했다. 4000대 가까이 판매량이 줄었다. 2018년에는 하반기에만 세금을 감면해 줬지만, 2019년엔 일 년 내내 했다는 걸 고려하면 개소세 인하 효과에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해 9월 발간한 ‘자동차 개별소비세 정책 동향 및 개선과제’ 보고서에서 “개소세 인하로 인한 국산 차 판매 촉진 효과가 크지 않다”며 “승용차 판매량 변화가 해당 시점의 경기 상황, 신차 출시 등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개소세율 인하에 따른 효과성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승용차 개소세를 폐지하는 게 낫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민 소득 수준과 환경을 고려하면 승용차를 사치품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승용차 개소세 인하는 선택적 복지의 성격이 짙어 유류세를 내리는 보편적 복지가 낫다는 견해도 있다. 차를 사는 일부 소비자만 혜택을 얻는 대신 차를 보유한 2300만 명이 유류세 인하 효과를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적어도 운전을 피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유류세 인하가 확실하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폐지를 주장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정부의 신뢰도 하락 문제 때문이다. 세금 감면 정책을 반복해 사용하면 효과가 떨어질 뿐 아니라 국민이 정부를 믿지 않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재부의 한 공무원은 “1~2월에 차를 산 사람이 ‘나는 왜 세금 감면 혜택을 못 받느냐’고 항의하는데 할 말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논란 속에 ‘1, 2월 자동차 개소세 소급, 환급 바랍니다’라는 제목의 청와대 청원도 등장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세무학)는 “세금 부과는 정부와 국민의 약속이라 안정성을 유지해야 한다”며 “자칫 국민이 정책을 신뢰하지 못하면 이후 정부가 다른 정책을 내놓더라도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했다. 정부가 세금 감면 효과를 부풀리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2월 28일 정부가 발표한 코로나19 파급영향 최소화와 조기극복을 위한 민생·경제 종합대책 자료엔 한시적 조세 감면을 통한 소비 유인 제고 정책이 들어있다. 여기선 개소세 인하를 통한 세수 감소 효과를 4700억원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지난해 6월 정부가 ‘승용차 개소세율 한시 인하 방안’을 연장하며 발표한 세수 감소효과는 1000억원이었다.
당시 개소세 감면율은 30%였지만, 기간이 6개월로 이번 정책보다 2개월 길었고, 감면액 상한도 정해지지 않아 비싼 차를 사는 소비자는 더 많은 혜택을 볼 수 있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이번 정책으로 세수 감소 효과가 5배 가까이 늘어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세제실 관계자는 “2019년엔 소비자가 2000만~2500만원짜리 차를 주로 살 것이라 가정했고, 이번엔 3000만원짜리 차를 산다는 가정 아래 계산한 수치”라고 말했다. 시기에 따라 가정을 달리하고 예상되는 세수 효과를 내놓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세제 효과를 발표하면서 사전 조사도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세제실에선 이번 자료는 “소비자가 어떤 차를 살지 알 수 없어 가장 많은 혜택(143만원 감면)을 받을 거라는 상황을 가정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서 승용차 내수 판매량을 파악할 수 있다. 지난 1월 국내 승용차 판매량은 8만2504대. 이 가운데 차 값 3000만원 미만인 차량은 아반떼(2638대), 셀토스(3508대) 티볼리(1608대) 등 1만4000여대에 달한다. 쏘나타, K5 등 3000만원을 밑도는 일부 모델 판매량을 더하면 그 비율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모든 소비자가 3000만원을 웃도는 차를 살 거라는 가정 아래 세수 효과를 계산해 발표한 것이다. 세제실에선 “지난해와 올해 정책이 다르기 때문에 효과에 차이가 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계 관계자는 “정책 효과를 너무 낙관적으로 보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했다.
김우철 교수는 정부가 정책 결정의 순서를 잘못 설정하면 나올 수 있는 문제점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번에 20조원을 풀 테니 그에 맞는 정책을 내놓으라고 하니 기존에 쓰던 정책들을 재탕해 끼워 넣는 과정에서 규모나 예상 실적이 부풀려질 우려가 있다”고 했다.
-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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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세는 이른바 사치품에 붙는 세금으로, 본래는 특별소비세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과거엔 에어컨, 냉장고, TV에도 부과됐는데 지금은 보석, 기름, 자동차, 담배, 도박장 등에만 부과한다. 이 가운데 논란이 되는 항목이 자동차다. 2019년 12월 기준 국내에 등록된 자동차 누적 등록 대수는 약 2368만대. 다섯 명 중 2명은 차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승용차 개소세를 유지하는 게 맞느냐는 물음도 있지만 폐지되지 않고 있다. 이런 논란에도 경기 침체가 이어지거나 예상되면 정부가 가장 먼저 들고나오는 카드가 ‘자동차 개소세 인하’다.
승용차에 붙는 개소세는 차 가격의 5% 수준이다.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정책의 골자는 개소세를 70% 내리겠다는 것이다. 이전까지 30% 인하 정책만 주로 나왔던 것과 비교하면 더 강력해진 처방이다. 단 비싼 차를 살수록 더 많은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위해 한도를 100만원으로 잡았다. 예를 들면 1억짜리 차를 살 때 500만원이 개별소비세로 붙는데, 한도를 제한하지 않으면 소비자는 350만원의 혜택을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혜택을 100만원 이상 받지 못하게 벽을 쌓았다. 교육세, 부가가치세가 함께 떨어지는 효과를 더하면 소비자는 최대 143만원의 혜택을 볼 수 있다.
내성에 ‘약발’ 안먹히자 인하폭 늘려
일각에선 소비자에게 ‘내성’이 생겼다고 지적한다. 최근 5년(2015년~2019년) 동안 개소세 감면이 이뤄진 기간은 약 2년 5개월에 달한다. 수시로 세금 감면책이 나오는 탓에 효과도 줄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의 승용차 내수 판매량 자료를 보면 2018년 판매 대수는 129만7937대, 2019년엔 129만4139대를 기록했다. 4000대 가까이 판매량이 줄었다. 2018년에는 하반기에만 세금을 감면해 줬지만, 2019년엔 일 년 내내 했다는 걸 고려하면 개소세 인하 효과에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해 9월 발간한 ‘자동차 개별소비세 정책 동향 및 개선과제’ 보고서에서 “개소세 인하로 인한 국산 차 판매 촉진 효과가 크지 않다”며 “승용차 판매량 변화가 해당 시점의 경기 상황, 신차 출시 등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개소세율 인하에 따른 효과성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승용차 개소세를 폐지하는 게 낫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민 소득 수준과 환경을 고려하면 승용차를 사치품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승용차 개소세 인하는 선택적 복지의 성격이 짙어 유류세를 내리는 보편적 복지가 낫다는 견해도 있다. 차를 사는 일부 소비자만 혜택을 얻는 대신 차를 보유한 2300만 명이 유류세 인하 효과를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적어도 운전을 피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유류세 인하가 확실하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폐지를 주장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정부의 신뢰도 하락 문제 때문이다. 세금 감면 정책을 반복해 사용하면 효과가 떨어질 뿐 아니라 국민이 정부를 믿지 않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재부의 한 공무원은 “1~2월에 차를 산 사람이 ‘나는 왜 세금 감면 혜택을 못 받느냐’고 항의하는데 할 말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논란 속에 ‘1, 2월 자동차 개소세 소급, 환급 바랍니다’라는 제목의 청와대 청원도 등장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세무학)는 “세금 부과는 정부와 국민의 약속이라 안정성을 유지해야 한다”며 “자칫 국민이 정책을 신뢰하지 못하면 이후 정부가 다른 정책을 내놓더라도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했다.
입맛대로 바뀌는 정책 효과, 고무줄 계산 논란
당시 개소세 감면율은 30%였지만, 기간이 6개월로 이번 정책보다 2개월 길었고, 감면액 상한도 정해지지 않아 비싼 차를 사는 소비자는 더 많은 혜택을 볼 수 있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이번 정책으로 세수 감소 효과가 5배 가까이 늘어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세제실 관계자는 “2019년엔 소비자가 2000만~2500만원짜리 차를 주로 살 것이라 가정했고, 이번엔 3000만원짜리 차를 산다는 가정 아래 계산한 수치”라고 말했다. 시기에 따라 가정을 달리하고 예상되는 세수 효과를 내놓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세제 효과를 발표하면서 사전 조사도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세제실에선 이번 자료는 “소비자가 어떤 차를 살지 알 수 없어 가장 많은 혜택(143만원 감면)을 받을 거라는 상황을 가정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서 승용차 내수 판매량을 파악할 수 있다. 지난 1월 국내 승용차 판매량은 8만2504대. 이 가운데 차 값 3000만원 미만인 차량은 아반떼(2638대), 셀토스(3508대) 티볼리(1608대) 등 1만4000여대에 달한다. 쏘나타, K5 등 3000만원을 밑도는 일부 모델 판매량을 더하면 그 비율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모든 소비자가 3000만원을 웃도는 차를 살 거라는 가정 아래 세수 효과를 계산해 발표한 것이다. 세제실에선 “지난해와 올해 정책이 다르기 때문에 효과에 차이가 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계 관계자는 “정책 효과를 너무 낙관적으로 보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했다.
김우철 교수는 정부가 정책 결정의 순서를 잘못 설정하면 나올 수 있는 문제점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번에 20조원을 풀 테니 그에 맞는 정책을 내놓으라고 하니 기존에 쓰던 정책들을 재탕해 끼워 넣는 과정에서 규모나 예상 실적이 부풀려질 우려가 있다”고 했다.
-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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