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가는 유럽·중국, 커지는 동남아·중동] “뜨거운 지구 안 돼” 정치·경제적 저항 딛고 ‘성큼성큼’
[앞서가는 유럽·중국, 커지는 동남아·중동] “뜨거운 지구 안 돼” 정치·경제적 저항 딛고 ‘성큼성큼’
파리협약 체결 후 보조금 대거 지원, 태양광 보급 확대… 국가간 공조로 ‘신재생 수퍼그리드’ 구축 필요성 “기후 변화는 지구에 가장 큰 위협이다. 많은 사람과 파괴적 영향에 맞서 싸우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기존의 방법들도 더욱 확대하고 싶다.”
제프 베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월 17일(현지시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100억 달러(약 12조원) 규모의 ‘베조스 어스 펀드(Bezos Earth Fund)’를 설립한다고 밝혔다. 이 펀드는 과학자와 비정부기구(NGO) 등을 지원하는 데 쓰이며, 올여름부터 보조금 발행을 시작할 계획이다.
베조스 뿐만 아니다. 손 마사요시(孫正義) 소프트뱅크 회장도 사우디아라비아·인도 등지에 대규모 태양광 농장을 짓고 있다. 구글·페이스북 등 글로벌 기업은 지난해 전력구매 계약으로 재생에너지를 19.9기가와트(GW)나 사들였다. 2년 만에 3배로 급성장했다.
이들의 행보가 지구환경을 지키기 위함인지, 전력 공급 체제의 전환을 노린 것인지 진짜 의도는 그들만이 알 것이다. 다만 세계적 기업들이 친환경 에너지 행보에 나선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며, 확산 속도도 날로 빨라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낸 것은 2015년 12월 파리에서 열린 21차 국제연합(UN) 기후변화협약이다. 당시 195개 당사국이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지구 평균기온이 2℃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온실가스 배출량을 단계적으로 감축하기로 했다. 대다수 국가는 화석 연료의 고갈 가능성과 환경 오염 문제에 우려를 갖고 있다. 태양광을 비롯한 친환경 발전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거스를 수 없는 명제로 자리 잡은 셈이다. 실제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10년 전 태양광 발전이 세계 전력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에도 못 미쳤지만 2019년 말에는 9%로 불었다.
세계에서 태양광 발전을 가장 신속히 도입하고 있는 나라는 중국이다. ‘국제재생에너지정책네트워크(REN21)’가 발표한 ‘2019 재생에너지 세계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글로벌 태양광 발전량(설비 기준)은 505.5GW에 달하며 이중 중국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의 비중은 더욱 커지고 있다. IEA에 따르면 중국의 태양광 발전용량은 2013~18년 49기가와트(GW)가 늘었다. 같은 기간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아시아태평양지역 국가들을 합한 증가분 41GW보다 많다. 중국의 태양광 발전용량은 2019~24년 154GW가 추가로 늘어날 전망이다. 세계 전체 증가량 317GW의 절반에 육박하며, 아시아태평양·유럽·북미 지역을 합한 것보다도 많다.
중국은 2000년대 초 세계 최대 탄소 배출국이 되자 선제적으로 태양광 발전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태양광 전지를 생산하는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한편,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사업자나 지방성에 지원금을 주며 보급을 늘렸다. 태양광 발전 설비의 건설 운영비와 보험료, 5년간의 지붕 대여비, 금융 이자 등에 대해 지원금을 제공해왔다. 2018년 중국 당국이 보조금을 축소했을 때 글로벌 태양광 산업이 충격에 빠질 정도로 규모가 컸다.
중국은 태양광 발전용량뿐 아니라 경제성까지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규모의 경제를 이루며 ‘그리드 패리티(Grid Parity)’에 도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리드 패리티란 태양광 발전의 전기 생산단가가 기존 화석연료 발전을 통해 만든 전기의 가격과 같거나 저렴해지는 것을 뜻한다. 허지지앙 중국 칭화대 교수와 얀진유에 스웨덴 왕립기술연구소 연구원 팀이 중국 일부 성의 태양광 균등화발전비용(LCOE)이 기존 전력 생산 가격보다 낮아졌다는 분석을 지난해 [네이처 에너지]에 발표했다. 중국은 화석연료와 원자력 발전 비중이 여전히 높음에도 보조금을 통해 주요 성을 중심으로 태양광 인프라를 확보한 것이다.
친환경 발전 선진지역인 유럽도 단계적으로 태양광 발전을 추가한 결과 독일 등 일부 국가가 그리드 패리티를 달성했다. 독일은 지난해 전체 전력 생산량에서 풍력·조력 등 친환경 발전 비중이 47.3%로 석탄화력·원자력을 합한 43.4%를 앞섰다. 그 중에서 태양광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다른 유럽 국가들도 태양광 발전 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다. 독일의 ‘아고라 에네르기벤데’와 영국·벨기에의 ‘샌드백’이 지난해 발간한 ‘유럽전력부문 보고서’를 보면 2018년 유럽연합(EU)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전체 발전원 가운데 35%를 차지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포르투갈은 태양광 경매 가격이 전력도매가격(SMP)보다 낮아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현재 EU 회원국 중 15개국이 석탄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쇄하겠다는 입장이라 태양광 발전 비중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미국도 일조시간이 긴 캘리포니아 등 서부지역에서 태양광 발전이 성장하고 있다. 미국은 전기요금을 내리기 위해 개별 주택용 태양광 패널 보급이 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정부는 올해부터 3층 이하 신축 주택에 태양광 설치를 의무화할 계획이다. 한국과 전력 수급 상황이 비슷한 상황인 일본도 태양광 발전을 확대하고 있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전기요금이 지속 상승하고 있다. 이에 일본 경제산업성은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확대하고, 가정·기업의 전기요금 부담을 낮추기 위해 대규모 태양·풍력발전에 일정 수준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FIP)를 논의 중이다. 현재 일본에는 소프트뱅크가 돗토리현 등지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지었고, 국내 LG CNS 등도 야마구치현 등지에 태양광 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동남아시아·중동 등 신흥국이자 자원 부국들도 태양광 발전 비중을 늘릴 전망이다. 원자력·화력 발전소는 대규모의 고도화 발전 설비가 필요한 데 비해 태양광은 태양광 패널과 에너지저장장치(ESS)·송전 인프라만 깔리면 빠르고 쉽게 전력을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력과 자원이 부족한 저개발 국가에 적합한 발전 방식인 셈이다.
앞으로 친환경 발전이 자리 잡으면 석탄·석유의 수출 부진이 예상된다. 동남아, 중동 국가들은 세계적 조류를 따를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가 내놓은 ‘2019년 3분기 태양광산업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태양광 시장에서 개도국 비중이 2017년부터 최근 3년간 큰 폭으로 증가해 2019년에는 40%를 넘어선 것으로 전망된다.
연구소는 베트남·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시장과 아랍에미리트(UAE)·이집트 등 중동 시장이 본격적 성장단계에 진입했다고 분석했다. 중동은 일사량이 많아 태양광 발전 단가가 저렴하고, 소프트뱅크 등 글로벌 기업들이 스마트시티 프로젝트에 대거 뛰어들고 있어 태양광 발전 비중이 빠르게 커질 전망이다.
인도의 태양광 발전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에너지원으로 유명하다. 인도의 ‘ACME 솔라 홀딩스’가 2018년 인도 북서부 사막에 지은 태양광 설비는 200㎿의 전기 생산이 가능하다. 이곳에선 1킬로와트시(㎾h) 당 2.44루피(약 40원) 단가에 전기 판매 업체에 공급한다. 현지에서 석탄을 떼는 것보다 태양광 발전으로 조달하는 전기가 저렴하다. 일본의 주택용 태양광 전력 매입 가격 21엔(약 230원)의 6분의 1 수준이다.
물론 세계 주요국들도 태양광 발전 확대에 적지 않은 난관을 겪고 있다. 태양광은 야간이거나 날씨가 어두우면 전력이 생산되지 않고, 일정한 전압을 유지하기 어렵다. ESS 보급이 동반돼야 하지만 전력의 불안정성 등의 위험 요소가 있다. 독일은 지역별 열병합발전소(CHP)나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통해 이런 전력 수급불균형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화력발전소 등 발전 인프라가 적은 개발도상국은 태양광 발전이 멈추면 전력 공급에 치명적 타격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기존 에너지 회사들의 거센 반발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난다. 싱가포르는 역내 저탄소 리더십 강화를 위해 태양광 발전을 늘리는 한편 탄소세에 높은 세율을 매기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세계 5대 정유·천연가스 허브 국가여서 자국 에너지 기업들의 반발이 크다. 청정에너지 전환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들며 경제·산업 전반에 작지 않은 타격이 있을 거라는 논리다. 이에 싱가포르 정부는 탄소세 인상 등을 추진하면서도, 향후 50년 동안은 천연가스를 사용하겠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발전체제 전환은 외교적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인도는 현재 화력 발전을 위한 석탄 수송에 미국 철도회사의 철로를 이용하고 있다. 만약 태양광 발전 확대로 석탄 수송이 끊어지면 미국과 외교적으로 불편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미국은 특히 원자력·석탄에서 셰일가스로 에너지 공급사슬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동남아 항만에 미국 셰일가스 공급망을 구축해 수출을 늘리는 한편 외교적으로 중국·러시아를 압박하기 위해서다. 미국과 일본·호주는 2018년 동남아 국가들에 저장 탱크, 항만 등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인프라를 갖출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하자고 합의한 바 있다. 한국도 미국산 LNG를 2018년 상반기에만 1104억 세제곱피트를 수입해 이런 행보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
여러 걸림돌을 해소하기 위해 국제기구들에서는 국가 간 공조를 통한 ‘신재생 수퍼그리드 구축’ ‘미국의 리더십 발휘’ 등을 주문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최근 미 스탠포드대학교가 수집, 평가한 47개의 논문을 통해 세계가 신재생 에너지에만 의존할 수 있는지 시나리오를 분석해 대안을 제시했다. WEF는 미국·캐나다·멕시코를 포함한 북미지역을 연결하는 신재생 수퍼 그리드 구축 가능성을 조사한 핀란드 연구진의 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역내 인구와 에너지 수요, 면적 및 전력망 구조를 기반으로 전체를 20개의 하위 지역으로 나눠 에너지 시스템 비용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정부와 투자자, 에너지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극적인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또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ESS 등 에너지 저장 장치가 마련된다면 태양광의 간헐적 특성을 극복하고, 2050년 국가 에너지 수요의 79%를 태양광으로 채울 수 있다고 내다봤다.
WEF는 “국가들이 에너지 전환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영향력 있는 에너지 부문 챔피언을 식별하고, 협업을 추진하기 위한 운영 구조를 확립하는 한편 특정 이정표 및 행동 계획을 정의해야 한다”며 “제3세계 국가들이 신재생에너지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장려해 지속가능성장, 안보, 경제성, 포용성에 기반을 둔 에너지 시스템이 구축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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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베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월 17일(현지시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100억 달러(약 12조원) 규모의 ‘베조스 어스 펀드(Bezos Earth Fund)’를 설립한다고 밝혔다. 이 펀드는 과학자와 비정부기구(NGO) 등을 지원하는 데 쓰이며, 올여름부터 보조금 발행을 시작할 계획이다.
베조스 뿐만 아니다. 손 마사요시(孫正義) 소프트뱅크 회장도 사우디아라비아·인도 등지에 대규모 태양광 농장을 짓고 있다. 구글·페이스북 등 글로벌 기업은 지난해 전력구매 계약으로 재생에너지를 19.9기가와트(GW)나 사들였다. 2년 만에 3배로 급성장했다.
이들의 행보가 지구환경을 지키기 위함인지, 전력 공급 체제의 전환을 노린 것인지 진짜 의도는 그들만이 알 것이다. 다만 세계적 기업들이 친환경 에너지 행보에 나선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며, 확산 속도도 날로 빨라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낸 것은 2015년 12월 파리에서 열린 21차 국제연합(UN) 기후변화협약이다. 당시 195개 당사국이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지구 평균기온이 2℃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온실가스 배출량을 단계적으로 감축하기로 했다. 대다수 국가는 화석 연료의 고갈 가능성과 환경 오염 문제에 우려를 갖고 있다. 태양광을 비롯한 친환경 발전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거스를 수 없는 명제로 자리 잡은 셈이다. 실제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10년 전 태양광 발전이 세계 전력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에도 못 미쳤지만 2019년 말에는 9%로 불었다.
세계에서 태양광 발전을 가장 신속히 도입하고 있는 나라는 중국이다. ‘국제재생에너지정책네트워크(REN21)’가 발표한 ‘2019 재생에너지 세계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글로벌 태양광 발전량(설비 기준)은 505.5GW에 달하며 이중 중국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 발전량 세계 최고, 경제성 확보도
중국은 2000년대 초 세계 최대 탄소 배출국이 되자 선제적으로 태양광 발전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태양광 전지를 생산하는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한편,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사업자나 지방성에 지원금을 주며 보급을 늘렸다. 태양광 발전 설비의 건설 운영비와 보험료, 5년간의 지붕 대여비, 금융 이자 등에 대해 지원금을 제공해왔다. 2018년 중국 당국이 보조금을 축소했을 때 글로벌 태양광 산업이 충격에 빠질 정도로 규모가 컸다.
중국은 태양광 발전용량뿐 아니라 경제성까지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규모의 경제를 이루며 ‘그리드 패리티(Grid Parity)’에 도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리드 패리티란 태양광 발전의 전기 생산단가가 기존 화석연료 발전을 통해 만든 전기의 가격과 같거나 저렴해지는 것을 뜻한다. 허지지앙 중국 칭화대 교수와 얀진유에 스웨덴 왕립기술연구소 연구원 팀이 중국 일부 성의 태양광 균등화발전비용(LCOE)이 기존 전력 생산 가격보다 낮아졌다는 분석을 지난해 [네이처 에너지]에 발표했다. 중국은 화석연료와 원자력 발전 비중이 여전히 높음에도 보조금을 통해 주요 성을 중심으로 태양광 인프라를 확보한 것이다.
친환경 발전 선진지역인 유럽도 단계적으로 태양광 발전을 추가한 결과 독일 등 일부 국가가 그리드 패리티를 달성했다. 독일은 지난해 전체 전력 생산량에서 풍력·조력 등 친환경 발전 비중이 47.3%로 석탄화력·원자력을 합한 43.4%를 앞섰다. 그 중에서 태양광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다른 유럽 국가들도 태양광 발전 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다. 독일의 ‘아고라 에네르기벤데’와 영국·벨기에의 ‘샌드백’이 지난해 발간한 ‘유럽전력부문 보고서’를 보면 2018년 유럽연합(EU)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전체 발전원 가운데 35%를 차지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포르투갈은 태양광 경매 가격이 전력도매가격(SMP)보다 낮아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현재 EU 회원국 중 15개국이 석탄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쇄하겠다는 입장이라 태양광 발전 비중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미국도 일조시간이 긴 캘리포니아 등 서부지역에서 태양광 발전이 성장하고 있다. 미국은 전기요금을 내리기 위해 개별 주택용 태양광 패널 보급이 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정부는 올해부터 3층 이하 신축 주택에 태양광 설치를 의무화할 계획이다.
동남아·중동 성장일로, 글로벌 기업도 뛰어들어
이런 가운데 동남아시아·중동 등 신흥국이자 자원 부국들도 태양광 발전 비중을 늘릴 전망이다. 원자력·화력 발전소는 대규모의 고도화 발전 설비가 필요한 데 비해 태양광은 태양광 패널과 에너지저장장치(ESS)·송전 인프라만 깔리면 빠르고 쉽게 전력을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력과 자원이 부족한 저개발 국가에 적합한 발전 방식인 셈이다.
앞으로 친환경 발전이 자리 잡으면 석탄·석유의 수출 부진이 예상된다. 동남아, 중동 국가들은 세계적 조류를 따를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가 내놓은 ‘2019년 3분기 태양광산업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태양광 시장에서 개도국 비중이 2017년부터 최근 3년간 큰 폭으로 증가해 2019년에는 40%를 넘어선 것으로 전망된다.
연구소는 베트남·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시장과 아랍에미리트(UAE)·이집트 등 중동 시장이 본격적 성장단계에 진입했다고 분석했다. 중동은 일사량이 많아 태양광 발전 단가가 저렴하고, 소프트뱅크 등 글로벌 기업들이 스마트시티 프로젝트에 대거 뛰어들고 있어 태양광 발전 비중이 빠르게 커질 전망이다.
인도의 태양광 발전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에너지원으로 유명하다. 인도의 ‘ACME 솔라 홀딩스’가 2018년 인도 북서부 사막에 지은 태양광 설비는 200㎿의 전기 생산이 가능하다. 이곳에선 1킬로와트시(㎾h) 당 2.44루피(약 40원) 단가에 전기 판매 업체에 공급한다. 현지에서 석탄을 떼는 것보다 태양광 발전으로 조달하는 전기가 저렴하다. 일본의 주택용 태양광 전력 매입 가격 21엔(약 230원)의 6분의 1 수준이다.
물론 세계 주요국들도 태양광 발전 확대에 적지 않은 난관을 겪고 있다. 태양광은 야간이거나 날씨가 어두우면 전력이 생산되지 않고, 일정한 전압을 유지하기 어렵다. ESS 보급이 동반돼야 하지만 전력의 불안정성 등의 위험 요소가 있다. 독일은 지역별 열병합발전소(CHP)나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통해 이런 전력 수급불균형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화력발전소 등 발전 인프라가 적은 개발도상국은 태양광 발전이 멈추면 전력 공급에 치명적 타격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기존 에너지 회사들의 거센 반발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난다. 싱가포르는 역내 저탄소 리더십 강화를 위해 태양광 발전을 늘리는 한편 탄소세에 높은 세율을 매기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세계 5대 정유·천연가스 허브 국가여서 자국 에너지 기업들의 반발이 크다. 청정에너지 전환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들며 경제·산업 전반에 작지 않은 타격이 있을 거라는 논리다. 이에 싱가포르 정부는 탄소세 인상 등을 추진하면서도, 향후 50년 동안은 천연가스를 사용하겠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외교적 걸림돌, 글로벌 리더십으로 풀어야” 주장도
미국은 특히 원자력·석탄에서 셰일가스로 에너지 공급사슬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동남아 항만에 미국 셰일가스 공급망을 구축해 수출을 늘리는 한편 외교적으로 중국·러시아를 압박하기 위해서다. 미국과 일본·호주는 2018년 동남아 국가들에 저장 탱크, 항만 등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인프라를 갖출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하자고 합의한 바 있다. 한국도 미국산 LNG를 2018년 상반기에만 1104억 세제곱피트를 수입해 이런 행보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
여러 걸림돌을 해소하기 위해 국제기구들에서는 국가 간 공조를 통한 ‘신재생 수퍼그리드 구축’ ‘미국의 리더십 발휘’ 등을 주문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최근 미 스탠포드대학교가 수집, 평가한 47개의 논문을 통해 세계가 신재생 에너지에만 의존할 수 있는지 시나리오를 분석해 대안을 제시했다. WEF는 미국·캐나다·멕시코를 포함한 북미지역을 연결하는 신재생 수퍼 그리드 구축 가능성을 조사한 핀란드 연구진의 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역내 인구와 에너지 수요, 면적 및 전력망 구조를 기반으로 전체를 20개의 하위 지역으로 나눠 에너지 시스템 비용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정부와 투자자, 에너지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극적인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또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ESS 등 에너지 저장 장치가 마련된다면 태양광의 간헐적 특성을 극복하고, 2050년 국가 에너지 수요의 79%를 태양광으로 채울 수 있다고 내다봤다.
WEF는 “국가들이 에너지 전환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영향력 있는 에너지 부문 챔피언을 식별하고, 협업을 추진하기 위한 운영 구조를 확립하는 한편 특정 이정표 및 행동 계획을 정의해야 한다”며 “제3세계 국가들이 신재생에너지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장려해 지속가능성장, 안보, 경제성, 포용성에 기반을 둔 에너지 시스템이 구축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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