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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상권 침해냐 소비자 이익이냐] 대기업 신(新)시장 개척에 ‘생계 침해’ 맞불

[골목상권 침해냐 소비자 이익이냐] 대기업 신(新)시장 개척에 ‘생계 침해’ 맞불

완성차의 중고차시장 진출, 포스코의 물류자회사 설립… “대기업에만 과도한 잣대” 지적도
서울 장안동 중고차 시장 / 사진:연합뉴스
현대·기아자동차 등 국내 완성차 업체의 중고자동차 매매업 진입에 대해 찬반 양론이 거세게 부딪치고 있다. “골목상권 침해”라는 반대 목소리와 “소비자 이익”이라는 찬성의 목소리가 팽팽하다. 한편에선 “골목상권 침해를 이유로 대기업에만 과도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대기업의 신(新)시장 진출과 관련해 골목상권 침해 부분도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지만, 그보다 소비자 실익에 중점을 둔 정책 결정이 필요하다”며 소비자 이익을 강조한다.

자동차업계 등에 따르면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는 중고차 매매업에 대한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시한을 넘겼지만, 현재까지도 지정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앞서 동반성장위원회(동반위)는 지난해 11월 중고차 매매업이 생계형 적합업종에 부적합하다는 의견을 중기부에 전달한 바 있고, 그로부터 7개월이 지났다. 중기부 관계자는 “중고차 매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는 없다”고 했다.
 매출 1조원 회사 있는데 생계형 지정?
2018년 12월 시행된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생계형적합업종법)’에 따르면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동반위가 생계형 적합업종의 지정을 추천할 날부터 3개월 이내에 심의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생계형 적합 업종을 지정·고시해야 한다. 1회 한정 3개월 연장이 가능해 최대 6개월간 심의할 수 있다.

전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자동차매매조합) 등 중고차 매매업계에서는 “대기업의 중고차 매매업 진출은 명백한 골목상권 침해”라며 반발하고 있다. 자동차매매조합은 지난 7월 15일 자료를 내고 “현대차 등은 완성차 제조·판매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이용·전이해 중고차 판매 시장에서도 손쉽게 시장을 지배할 것”이라며 “소수 대기업 위주의 독과점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고차 매매업계는 “중고차 매매업은 양질의 매물을 확보한 사업자가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시장 구조라 중고차 매입이 관건인데, 완성차 업체의 경우 독보적인 시장 지위를 활용해 다수 매물을 확보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국내 1위 중고차 매매업체인 ‘케이카’의 노동조합 관계자는 “완성차 업체가 중고차 매매업에 진출하면 중고차 매매업체의 60~70%는 도산할 것”이라며 “현대자동차의 시장점유율을 감안하면, 중고차 매매업체 대부분이 물량을 확보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국내 완성차 업체가 회원사인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측은 “연간 약 22조원에 달하는 중고차 시장을 골목상권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맞서고 있다. 김주홍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상무는 “연간 약 220만대가 거래되는 중고차 시장을 골목상권이라고 보긴 어렵다”며 “연간 수백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업체를 비롯해 수입자동차 판매 업체들도 진출한 중고차 매매업에 대해 대기업만 진출을 막는 것은 역차별”이라고 했다. 동반위 관계자도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요건으로 영세성을 중점 검토하는데, 중고차 매매업은 소상공인만 놓고 보면 영세하지만 산업 전체로 보면 영세하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규모가 커 중기부에 부적합 의견을 전달했다”고 했다.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중고차 매매업을 매출 규모별로 파악한 결과, 전체 중고차 매매업체 5913개 가운데 연간 매출이 10억~50억원 미만인 업체는 약 35%(2073개)로 가장 많았다. 이들 업체의 매출 합계는 4조1272억원에 달했다. 2018년에는 전체 6361개 업체 중 연간 매출이 10억~50억원인 업체가 약 40%(2519개)로 증가했다. 2018년 연간 매출이 1억원 미만인 업체는 12%(791개)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김주홍 상무는 “중고차 시장은 이미 대형 업체들이 주도하고 있는 시장”이라며 “중고차 시장의 빈익빈부익부만 가속화되고 있다”고 했다.

실제 국내 1위 중고차 매매업체인 케이카의 경우 지난해 연간 매출액이 1조원을 넘어섰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케이카의 운영회사인 에이치씨에이에스의 지난해 매출액은 1조1854억원으로 2018년 매출액(7428억원)과 비교해 4000억원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07억원에서 292억원으로 두 배로 늘었다.
 “생계 위협” vs “소비자 이익 증대”
중고차 매매업은 지난 2013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지정된 이후 2016년에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재선정되면서 사실상 대기업 진출이 제한된 시장이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선정되면 3년간 해당 업종에 대해 대기업의 사업 철수나 사업 확장 자제 등이 권고되기 때문이다. 법적 강제성은 없지만, SK그룹이 2017년 11월 SK엔카(현 케이카)를 사모펀드인 한앤컴퍼니에 매각한 이후 중고차 시장에서 대기업은 자취를 감췄다.

중고차 매매업계는 지난해 초 중고차 매매업에 대한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이 만료되자 중기부에 생계형 적합업종을 신청했다. 생계형 적합업종은 중소기업 적합업종과 달리 법적 강제성을 갖는다. 대기업 등은 생계형 적합업종의 사업을 인수·개시 또는 확장할 수 없고, 관련 법 위반 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생계형적합업종법에 따라 중기부의 시정 명령을 이행하지 않는 회사에는 매출액 5% 이내의 이행 강제금도 부과된다.

중고차 매매업계는 “중고차 매매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지속 지정된 데다,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신청할 수 있는 업종이라는 것 자체로도 대기업 규제가 필요한 시장이라는 뜻”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생계형적합업종법에 따라 소상공인단체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업종·품목 중에 1년 이내에 합의 기간이 만료되는 업종·품목에 대해 생계형 적합업종을 신청할 수 있다. 대기업 등이 사업을 인수·개시 또는 확장하면서 소상공인이 현저하게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는 업종·품목도 해당된다.

반면 한국자동산업협회 등은 중고차 허위 매물 등의 피해가 지속되는 상황을 감안하면 소비자 이익을 위해 대기업의 중고차 매매업 진출이 허용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아직까지도 중고차 허위 매물 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중고차 시장에 대한 소비자 신뢰는 바닥 수준”이라며 “대기업의 중고차 매매업 진출을 통해 중고차 시장의 신뢰성을 높이고 판매·정비 등까지 아우르는 일원화된 서비스가 제공돼야 한다”고 했다.

실제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중고차 시장에 대한 소비자 인식 조사’에 따르면 국내 중고차 시장이 ‘불투명·혼탁·낙후됐다’고 답한 비율은 전체의 76.4%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정적 답변의 이유로는 차량 상태 불신(49.4%), 허위·미끼 매물 다수(25.3%) 등이 대표적으로 거론됐다.

같은 조사에서 중고차 시장에 대한 대기업의 신규 진입의 찬성 비율은 전체의 51.6%로 조사됐고, 반대 비율은 23.1%에 불과했다. 한경연은 “중고차 시장에서 소비자 피해가 자주 발생하고 있어 신뢰가 매우 낮다”며 “수입차 브랜드가 이미 국내 중고차 시장에서 활동 중인 만큼, 국내 대기업에 대해서도 진입장벽을 철폐해 소비자들에게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자동차매매조합 관계자는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에 진출한다고 중고차 허위 매물 등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지 않는다”며 “오히려 대기업의 진출로 중고차 매물 가격만 오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양준모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국내 중고차 시장은 선진국과 비교하면 신뢰도가 상당히 낮은 편”이라며 “중고차 시장을 골목상권으로 분류하기보다는 대기업의 시장 진출을 허용한 뒤에 특정 기업의 영향력이 과도하다고 판단되면 문제점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대기업 전문자회사 설립도 골목상권 침해?
포스코의 물류통합 자회사 설립에 대한 반대 근거로도 “골목상권 침해”가 거론된다. 포스코는 지난 5월 이사회를 열어 ‘그룹 물류업무 통합운영 계획안’을 의결하고 연내에 물류통합 운영법인 ‘포스코GSP(가칭)’를 출범한다고 밝혔다. 그룹 물류관리를 일원화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해양산업총연합회 등 해운업계는 지난 5월 기자회견을 열어 포스코의 물류 자회사 설립 철회를 요구했다. 이 자리에서 임현철 한국항만물류협회 상근부회장은 포스코의 물류 자회사 설립에 대해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와 마찬가지”라고 했다.

지난 6월 23일에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성명을 내고 “포스코는 물류 자회사 설립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한국노총은 성명서에서 “우리나라 원자재 수출입 물량을 독점하다시피 한 채 최저가 경쟁 입찰을 부추기고, 결국 그 모든 고통은 회사 눈치에 더해 화주 눈치까지 봐야 하는 선원과 항만하역 노동자들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해운업계에 이어 노동계까지 나서 포스코의 물류 자회사 설립을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해운업계 안팎에선 포스코의 물류 자회사 설립에 대해 “대기업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이라는 원색적인 비난마저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철강업계에서는 “연간 매출이 수조원에 달하는 해운업체들이 골목상권 침해라고 주장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철강업체 가운데 물류 자회사가 없는 회사는 포스코가 유일하다”며 “기업이 업무 효율화를 위해 자회사를 설립하는 것을 골목상권 침해라고 볼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포스코 측은 “물류 효율성 제고 및 전문성 강화를 위해 자회사 설립을 추진하는 것이고, 향후 해운업과 운송업에 진출할 계획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계에서는 “대기업의 업무 효율화 작업까지 골목상권 침해를 이유로 반대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이창훈 기자 lee.cha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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