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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호시절이 진다’ 변화 절실한 정유업계] 당장은 코로나19 탓하지만 ‘영광 끝났다’ 위기감

[‘100년 호시절이 진다’ 변화 절실한 정유업계] 당장은 코로나19 탓하지만 ‘영광 끝났다’ 위기감

정유 4사 상반기 영업적자 5조원…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가 생존 가를 것
미국의 대표 석유 기업 엑손모빌이 8월 24일(현지시간) 다우존스 산업평균 지수에서 제외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파장을 불러왔다.
#1. 8월 24일 미국 최대 석유업체 엑손모빌이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DJIA, Dow Jones industrial average)에서 제외되면서 파장을 불러왔다. 다우존스산업 평균지수는 단 30개 종목에게만 자리를 허용하는 미국 대표 우량주 지수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어서다. 엑손모빌은 1928년 스탠더드오일오브뉴저지로 다우지수에 이름을 올린 뒤 90년 넘게 자리를 지키던 터줏대감이다. 2000년대 이후 GE와 애플 등 대표적인 IT기업들과 미국 증권시장 시가 총액 1위 자리를 두고 자웅을 겨루기도 했다. 그랬던 엑손모빌이 제외된다는 소식은 투자자들에게 석유화학의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다는 신호로 여겨졌다.

#2. 국내 정유화학 업계에서는 시기의 문제일 뿐 예고된 수순이라는 반응이 우세하다. 대표적인 신호는 지난 2019년말 상장한 세계 최대 석유업체 아람코다. 아람코는 비상장기업을 포함한 전 세계 기업가치 순위에서 항상 첫손가락에 꼽히던 곳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1980년 아람코 지분 100%를 확보한 이후 40년 동안 일반인들에게 투자 기회를 열어주지 않았다. 당시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비전 2030’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었기에 아람코 상장으로 확보한 자금을 활용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이 프로젝트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석유 의존형 경제에서 탈피하게 하겠다는 프로젝트다.
 2020년이 정유업계의 희비 변곡점 되나
국내 정유업계가 과거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이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난 100년간은 석유의 시대였다는 평가를 뒤로 하고 업계 모두가 실적 부진에 신음하고 있어서다. 세계 최대 석유회사 아람코는 지난 2분기 순이익이 65억7000만 달러(약 7조7800억원)에 그치면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3.4%나 줄었다.

국내에서도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는 2020년 상반기 영업적자가 5조원을 넘어섰다. 2분기 실적만 놓고 보면 현대오일뱅크가 영업이익 132억원을 냈지만, 현대오일뱅크는 1분기 5632억원의 적자를 낸 바 있다. 국내 정유업계가 어려움을 겪는 일차적 원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다. 감염병의 세계적인 유행으로 국내외 연료 소비가 줄고 정제 마진이 축소되면서 수익을 내는 곳을 찾기 어렵게 됐다.

정유업체들의 실적 바로미터인 정제마진은 지난 4월부터 마이너스(- )로 전환했다. 정제마진은 석유제품 가격에서 생산비용을 뺀 금액으로 마이너스 상태라면 정유업체들이 석유제품을 판매할수록 손해라는 의미다. 단순 정제마진은 지난 6월말 플러스(+)로 전환하는가 싶더니 7월에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8월 중순 이후에서야 다시 플러스 상태다. 정유사 관계자는 “상반기 적자라지만 1분기와 2분기의 원인은 다르다”며 “1분기에는 유가 급락에 따른 재고손실이 컸지만 2분기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수요 감소가 직격탄이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코로나19가 지나간 이후에도 녹록치 않다는 점이다. 지난 100년간은 석유의 시대였지만 최근 정유업계는 셰일 혁명 이후 낮아진 유가 수준, 환경 이슈로 인한 화석연료 수요의 감소 등을 거치면서 위축됐다. 세계 최대 석유회사 아람코는 상장 당시 제출했던 투자설명서를 통해 전 세계 석유 수요가 2030년을 정점으로 점차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할 정도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는 “코로나 이후에도 정유업계가 과거와 같은 성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며 “인수합병 등을 통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정유업체들은 정제시설에 대한 투자를 늦추는 한편 성장할 만한 분야에 투자하기 위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가장 앞서 나가는 곳은 SK이노베이션이다. 다른 정유업체들과 달리 화학 중간지주사로 종합화학업체로 이미 다각화된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는 SK이노베이션은 고부가가치 화학제품은 물론 배터리 등에 투자하고 있다. 덕분에 SK이노베이션은 439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2분기에도 화학사업과 윤활유사업에서는 각각 682억원, 374억원의 이익을 냈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에도 우려는 남는다. 미래 먹거리 확보 차원에서 투자를 지속했던 배터리 분야에서 LG화학과 영업비밀 침해 소송이 암초다. 더구나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서는 지난 2월 SK이노베이션의 조기패소 예비 판정을 내린 상태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지금 시점에서는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 이외에는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며 “다만 SK루브리컨츠 지분 매각 등을 소송 관련 비용 마련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고 투자 재원 마련이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에쓰오일 순차입금 6조원 넘어 불안
다른 업체들도 산업 연계성이 좋은 화학업종으로 투자를 진행하고 있지만 전망이 갈린다. 원유 정제 후 남은 부산물로 화학제품을 생산해 판매하면 수익성을 높일 수 있어 너도나도 투자에 나섰기 때문이다. GS칼텍스는 2021년 상반기 가동을 목표로 MFC(올레핀 생산시설)에 투자를 진행 중이다. MFC는 석유화학제품의 기초 유분인 에틸렌, 프로필렌 등을 생산하는 시설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자회사인 현대케미칼을 통해 2022년까지 2조7000억원을 투자해 정유 부산물 기반 석유 화학공장을 신설하기로 했다. 이 공장에서는 연간 폴리에틸렌 75만톤, 폴리프로필렌 40만톤을 생산할 전망이다.

에쓰오일은 이미 2018년 가동에 들어간 잔사유 고도화시설(RUC)과 다운스트림(ODC)에 4조8000억원을 투자했다. 여기서는 폴리프로필렌(PP)과 산화프로필렌(PO) 등을 생산한다. 올해 상반기 실적에서는 석유화학 및 윤활유부문에서는 모두 흑자를 냈으나 대규모 투자로 차입금 역시 급증했다. 에쓰오일의 순차입금은 지난 2016년 5000억원에 불과했지만 2019년말 6조원을 넘었다. 송수범 한국기업평가 연구원은 “신규 설비 가동효과 등을 바탕으로 재무구조가 점진적으로 회복될 가능성은 있지만 차입금 절대규모가 대폭 증가한 상태여서 본격적인 재무구조 개선에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 황건강 기자 hwang.kunkang@joongang.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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