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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 트럼프의 코로나 정치기술] 트럼프 발언으로 드러난 백신의 정치학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 트럼프의 코로나 정치기술] 트럼프 발언으로 드러난 백신의 정치학

희망고문으로 승기 잡으려는 트럼프 VS 정책실수 꼬집는 여론과 등돌리는 측근
미국 언론인 밥 우드워드가 트럼프 대통령과 9시간 녹음한 대화를 모아 최근 발간한 책 [격노(Rage)]. 코로나19에 대한 트럼프의 잘못된 판단과 근거를 보여줘 미국 정계에 파문이 일고 있다. / 사진:EPA=연합뉴스
오는 11월 3일 재선을 위한 대선을 앞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캠프가 최근 내놓은 선거광고가 눈길을 끌고 있다.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간절한 희망을 담았기 때문이다.

트럼프 재선 캠프가 최근 주요 격전지에서 내놓은 광고다. 먼저 이런 소리가 들린다. “백신 개발 경쟁에서 결승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In the race for a vaccine, the finish line is approaching).” 그런 다음 ‘코비드19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이라는 표식이 붙어있는 의약품 병이 등장한다. 누가 봐도 트럼프 행정부가 코로나19를 이길 백신을 곧 공급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다. 트럼프의 코로나19 확산 책임론을 덮고 트럼프를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미국 국민을 살릴 구세주로 그린 내용이다. 30초 분량의 이 방송 광고는 9월 첫 주 노스캐롤라이나·조지아·플로리다·위스콘신·미네소타·미시건 주 등에서 방영됐다. 이 광고는 팬데믹으로 닫힌 경제를 다시 시작한 사람은 트럼프이며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는 이를 바꾸려고 한다는 주장도 담았다.

미국 시사잡지 [타임]은 최신호에서 ‘트럼프는 언제나 코로나19 백신에 정치적인 배팅을 해왔다. 백신은 시간에 맞춰 그의 기대에 부응할까’라는 제목으로 미국 대선 정국에서 백신의 정치화를 다뤘다. 9월 9일 인터넷 판에 실린 이 기사는 트럼프가 지난 7월 27일 노스캐롤라이나주 모리스빌에 있는 ‘후지필름 디오신스 바이오테크놀로지(FDB)’의 바이오프로세스 이노베이션 연구센터를 방문해 두툼한 마스크를 착용하고 생산시설을 돌아보는 사진을 함께 실었다. FDB는 1923년 설립돼 인슐린 등을 생산해온 바이오·제약 기업인 디오신스를 일본 후지필름그룹이 2011년 인수해 만든 회사다. 제약사에서 필요한 원료를 개발하고 생산하는 기술 중심의 바이오업체다. 현재 코로나19 백신 개발과 관련한 원료를 생산한다. 백신 개발에 정치적 사활을 걸고 있는 트럼프가 방문한 게 하나도 이상할 게 없는 기업이다.
 대선 전 코로나19 백신 발표 서두르려는 트럼프
트럼프 선거 캠페인의 한 자원봉사자가 9월 10일 미국 미시건주 새기노에서 코로나19 증상을 갖고 있는 사람은 캠페인 행사에 참여하지 말라는 경고문을 들고 있다. / 사진:REUTERS=연합뉴스
게다가 노스캐롤라이나는 미국의 주요 경합주라는 사실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경합주는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율이 엇비슷해 박빙 승부를 펼치거나, 선거 때마다 지지 정당이 오가는 주를 가리킨다. 미국의 대선은 유권자가 후보에 직접 투표하는 대신 주별로 각 후보를 지지하는 선거인단을 선택해 투표하는 간접 선거다. 거기에 주별 투표권을 강화한다는 이유로 더 많은 지지를 받은 후보가 해당 주의 선거인단 전체를 차지하는 ‘선거인단 독식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메인과 네브라스카는 제외) 미국 전체 540명의 선거인단 중 15명이 배정된 노스캐롤라이나 주는 트럼프로선 대선 승리 전략에 중요할 수밖에 없다. 전체 여론조사에서 밀리는 트럼프가 승리하려면 ‘승자독식’이라는 제도적 허점을 최대한 이용해 경합주에서 승리를 거줘야 한다. 경합주는 백신만큼 트럼프에게 중요하다.

트럼프 진영은 코로나19 백신을 올해 말까지 확보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으며 그 시기를 더욱 앞당길 수 있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해왔다. 일부에선 대선 직전인 10월쯤 백신 개발과 허가를 완료해 미 국민에게 대량 접종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을 흘려왔다. 그 엄청난 코로나 팬데믹이 백신 한방으로 말끔히 제거된다는 설정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문제는 현실에서 이를 믿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트럼프는 지난 9월 7일 백악관에서 기자들 앞에서 20분에 걸쳐 선거 캠페인을 방불케 하는 연설을 할 때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이 연설에서 트럼프는 바이든을 맹공격하면서 백신 문제를 거론했다. 트럼프는 기자들 앞에서 “(백신은) 아주 짧은 기간 안에 완성될 것이며, 이르면 10월 안에 될 수도 있다”고 말하고 “우리는 조만간 백신을 갖게 될 것이며 아마도 특별한 날 이전일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어떤 날을 말하는지 여러분은 알 것이다”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말한 특별한 날은 두말할 것도 없이 11월 3일 대선일이다. 트럼프는 그동안 미국을 세계 최대 코로나19 피해국가로 만들었던 자신의 정책적 실수를 백신 개발과 생산, 공급으로 일거에 만회할 꿈을 꾸고 있음을 다시금 증명한 회견이다. 이는 민주당의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지난 8월 31일 펜실베이니아 주 유세에서 트럼프가 백신 개발 일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고 비난한 다음에 나왔다. 백신 개발과 코로나를 둘러싸고 트럼프와 바이든이 장군멍군식 대결을 펼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언론인 밥 우드워드는 9월 15일 발간되는 신간 [격노(Rage)]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일격을 가했다. 우드워드는 지난 1974년 공화당 선거본부의 민주당 사무소 도청 스캔들인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해 리처드 닉슨 대통령 사임을 이끈 탐사보도 기자다. 9월 9일 워싱턴 포스트(WP)와 CNN 등의 보도에 따르면 이 책은 트럼프가 코로나19가 미국에 퍼지기 시작한 1월 말부터 2월 초사이에 이 병이 독감보다 훨씬 치명적이라는 정보를 들었음에도 이를 대놓고 무시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트럼프가 코로나19의 위험성을 미국 국민에게 숨기는 바람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피해를 키웠다는 이야기다.
 트럼프의 오판을 지적하는 언론 보도
트럼프가 7월 27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모리스빌에 있는 코로나19 백신 성분을 개발 중인 후지필름 디오신스 바이오테크놀로지(FDB) 연구센터를 방문하고 있다. / 사진:REUTERS=연합뉴스
글로벌 통계 사이트인 월도미터에 따르면 코로나19의 확산으로 9월 11일 현재 전 세계적으로 2830만명 이상의 학진자가 나오고 91만명 이상이 숨진 가운데 미국에서만 658만명 이상의 확진자와 19만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다. 우드워드의 신간은 대선을 두 달도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그야말로 트럼프에게 결정타를 날린 셈이 됐다. 코로나19 확산 책임의 상당수가 트럼프에 있음을 탐사보도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풀리처상을 두 차례나 받은 우드워드는 지난해 12월 5일부터 올해 7월 21일까지 18차례 트럼프 대통령을 인터뷰하는 등 관계자들을 인터뷰해 직접 이야기를 듣고 이 책을 썼다.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7일 우드워드를 만난 자리에서 “이것(코로나19)은 치명적이고 대단히 까다로우며 다루기 미묘한 것”이라며 “당신이 걸린 지독한 독감보다도 더 치명적”이라고 말했다는 내용이 신간에 담겼다. 이날은 트럼프가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통화하며 코로나19에 대해 이야기한 바로 다음날이었다. 트럼프는 그 뒤 우드워드를 만난 자리에서도 “코로나바이러스는 독감보다 5배나 더 치명적일 수 있다”며 “아주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고 신간은 기록했다.

우드워드의 신간에 따르면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코로나19가 “국가안보에 큰 위협이 될 수 있으며 임기 중에 맞을 가장 힘든 일이 될 것”이라고도 보고했다. 매슈 포틴저 당시 부보좌관도 1918년 독감과 비슷한 수준의 보건 비상사태를 맞을 것이 분명하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여기서 말한 독감은 1918~1920년 전 세계에서 5000만~1억명의 사망자를 냈던 스페인 독감을 가리킨다.

트럼프는 3월 19일 우드워드를 만나 자리에서 “대통령으로서 공포감을 조성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위험을 가볍게 말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무서운 전염병의 실상을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않아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보도에 따르면 우드워드는 신간에서 인터뷰한 전문가들의 말을 빌어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대응 리더십을 맹공했다. 백악관 코로나19 태스크포스팀의 핵심인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회의에 집중하지 않았으며 방향타가 제대로 없는 리더십을 보였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파우치 소장은 사람들에게 “그가 지속적으로 주의를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마이너스나 다름없다”고 얘기했으며 “트럼프의 유일한 목적은 재선”이라는 말도 했다고 우드워드는 전했다. 파우치는 “치어리더처럼 모든 것이 훌륭했다고 말하는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에게 특히 실망했다”는 말도 했다.
 고집스런 트럼프를 멀리하려는 공화당 주변인들
우드워드는 트럼프가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해결책을 찾기 위한 소통에 제대로 나서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도 트럼프의 곡해를 우려해 만나지 않으려 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의 측근이던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백신 개발과 관련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에게 트럼프 대통령과 이야기해보라고 건의했지만 부시 전 대통령은 “내가 한 말은 무엇이든 오해할 것”이라며 이를 거절했다고 전했다. 트럼프에 대한 주변의 평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조지 W 부시는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를 지지하게 않겠다고 선언한 공화당 인사 중의 한 명이다.

더욱 황당한 일은 우드워드가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M)’ 시위와 관련해 백인과 특권층은 흑인들의 분노와 고통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자 트럼프는 “나는 에이브러햄 링컨 이후 어떤 대통령보다 흑인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했다”고 주장했다는 사실이다. 트럼프 자신이 생각하는 트럼프는 주변에서 그를 보는 시각과 상당히 차이가 있다는 이야기다. 과대망상이나 자기애라는 단어로는 잘 표현할 수 없는 트럼프 특유의 고집이다. 이런 고집이 코로나19 방역 실패를 이끈 원인이 된 게 아닐까. 미국은 가장 위기의 시기에 가장 빈약한 리더십에, 가장 위험한 대통령을 둔 셈이다.

우드워드는 이같은 트럼프의 코로나19 리더십 실패를 지적한 뒤 “트럼프는 문 뒤의 다이너마이트이며 그 일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미 국민이 신뢰하는 언론인이 트럼프를 18차례나 직접 만나고, 그와 함께 일한 사람들의 증언을 모아 낸 책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는 사실은 트럼프의 재선 가도에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이러한 불리한 상황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현실적으로 코로나19 백신의 조기 개발밖에 없다. 하지만 이도 여의치 않을 악재가 이어지고 있다. 영국 제약사 스트라제네카가 9월 8일 영국의 임상시험 참가자 중 한 명에게서 원인 미상의 질환이 발견돼 시험을 잠정 중단했다고 블룸버그 통신 등이 전했다. 트럼프의 호언대로 대선 이전에 백신이 나올 가능성은 갈수록 작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의 백신 조기개발 전망에 부정적인 의료인들
BBC 방송에 따르면 아스트라제네카는 영국과 인도에서 제2상 임상시험을, 브라질과 남아프리카공화국 그리고 60개가 넘는 미국 지역에선 제3상 임상시험을 하고 있었다. 원칙적으론 2상을 마쳐야 3상 시험을 시작할 수 있지만, 비상 상황에서 개발 속도를 높이기 위해 2상과 3상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다.

조만간 문제 원인이 밝혀지고 시험이 재개될 수는 있지만 조기 개발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제네카는 립서비스인지는 몰라도 개발 목표 시기는 연말이지만 이르면 10월쯤 백신을 공급할 수도 있다는 낙관적인 전망도 있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시험 중단 다음날인 10일 파스칼 소리오 아스트라제네카 최고경영자(CEO)는 온라인 회의에서 “임상시험이 재개되면 연말까지 백신 효능을 입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목표대로 연말까지 백신 개발을 완료하겠다는 이야기다.

가급적 이른 시일 안에 백신을 시중에 출시하겠다는 트럼프의 장밋빛 발언과 달리 미국의 의약품 허가 당국은 부정적이다. 개발 중인 제약회사도, 과학자들도 조기 개발에 부정적이다. 오히려 안전성과 유효성을 정밀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난 9월 9일 상원의 보건·교육·노동·연금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프랜시스 콜린스 국립보건원(NIH) 원장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콜린스 원장은 백신 개발이 11월 초의 특정 날짜(대선일을 가리킴) 전후의 특정한 주에 이뤄질지를 예측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어렵다는 의견을 에둘러 말했다. 그는 상원의원들 앞에서 안전하고 효과적이지 않은 백신이 대중에게 유통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반복해서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 국민이 정치인들이 아닌 과학자들로부터 정보를 얻길 희망한다”라고 대답했다. 백신의 정치화에 대해 에둘러 비판한 셈이다.

결국 트럼프는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백신에 목을 걸고 있는 셈이다. 트럼프는 아직도 대선일 직전에 백신이 개발됐다는 뉴스가 신문의 지면과 방송 화면을 장식하는 상황을 꿈꾸고 있는가. 하지만 현실적으로 트럼프의 희망은 갈수록 실현 가능성이 작아지고 있다. 행정부를 장악하고 있는 트럼프가 연방 공무원을 압박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다. 백신의 정치화를 통해 코로나19 책임론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트럼프는 백신에 집착하다 백신이 만드는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 11월 3일로 가는 대선 시계는 쉬지 않고 재깍거리고 있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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