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내 아이디어 이젠 안전할까”
기술 탈취 막는 부정경쟁방지법 시행…손해의 3배 배상금 부과
“대기업이 납품 조건으로 기술 자료를 요청해 어쩔 수 없이 제공했습니다. 그런데 대기업은 그 자료를 경쟁업체에게 제공해 가격경쟁을 시킨 후 우리에 납품가격 인하를 요구했습니다.”
특허청이 밝힌 한 사례로 A사 대표가 기술 탈취 피해를 호소한 내용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10월 하도급 업체의 기술자료를 유용한 현대중공업에 시정 명령과 과징금 2억4600만원을 부과했다.
현대중공업은 특정 납품업체를 지정한 선주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기존 선박 조명기구 납품업체의 기술 자료를 선주가 지정한 업체에게 전달했다. 또한 지정 업체가 선박 조명기구를 납품할 수 있도록 돕는 등 기존 수급 사업자의 기술 자료를 유용했다.
입찰 과정에서 하도급 업체의 기술 자료를 제3의 업체에게 제공해 납품 가능성을 타진하고 납품 견적을 받는 데 사용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기존 업체들은 단가 인하 압박에 노출될 수 밖에 없었다.
'알면서도 당한다'는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편취는 산업계의 해묵은 문제다. 피해를 당한 일부 중소기업들은 문제를 제기하며 목소리를 높여보기도 한다. 하지만 대기업 의존도가 높은 국내 산업계 구도를 의식해 결국 기업 생존을 위해 목소리를 거둬들인다.
중소기업중앙회는 3월 8일 성명을 통해 “지난 5년간 기술 탈취 피해 기업은 246개에 이르며 피해금액이 5400억원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보호하기 위한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 2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 법은 거래과정에서 아이디어를 무단으로 사용해 아이디어 제공자에게 손해를 입히면 손해액의 최대 3배되는 배상액을 물리도록 했다. 특허청은 이번 개정의 취지에 대해 “참신한 아이디어를 정당한 대가 없이 사용하는 기술 탈취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특허청은 이와 함께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에 있는 엘타워에서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 기본계획 수립 추진단’ 출범식을 열었다. 추진단은 부정경쟁방지법에 따라 올해 처음 기본계획을 수립한다. 기본계획은 기술·영업비밀 유출 차단, 데이터 무단사용 금지 등 새로운 유형의 부정경쟁행위를 근절하고 지식재산을 체계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국가차원의 종합계획이다.
추진단은 산업계·학계·법조계 등 30여명의 민간위원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위원들은 앞으로 기술보호, 부정경쟁방지, 디지털·국제협력 등 3개 분과에서 활동하게 된다.
신수민 인턴기자 shin.su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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