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유일 민주국가’ 이스라엘, 12년 장수 총리 물러나고 새 시대 시작 [채인택 글로벌 인사이트]
베네트 신임 총리… 미국과 동맹 강조, 이란 핵 합의 복귀에는 반대
이스라엘에서 12년 만에 정부 수반인 총리가 바뀌면서 중동의 사실상 유일한 세속 민주국가로 자리 잡은 이 나라의 정치 제도에 관심이 쏠린다.
새 정부는 이스라엘 크네세트(국회)가 6월 13일 표결에서 극우·중도·좌파·아랍계 등 8개 정당이 참가한 새 연립정부를 승인하면서 탄생했다. 이로써 2009년 3월부터 연속 12년간 총리로 재직했던 베냐민 네타냐후(71)는 자리에서 물러나 야당인 리투드(통합)의 대표가 됐다.
이스라엘은 ‘포스트 네타냐후’ 시대를 맞았다. 네타냐후는 1996~1999년 이어 2009~2021년까지 모두 15년간 총리를 지내 이스라엘의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웠지만 이번엔 연정 구성에 실패해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번 총리 교체로 이스라엘은 네타냐후가 6월 1일 교체한 해외정보공작기관 모사드의 다비드 바르네아 국장, 크네세트가 6월 2일 선출해 7월 9일 취임할 이삭 헤르초크 대통령까지 국가 권력의 실질적인 3대 핵심 자리가 바뀌게 됐다. 이스라엘로서는 정부를 대표하는 세 인물이 한꺼번에 교체되면서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는 셈이다.
이스라엘은 2019년 4월과 9월, 그리고 2020년 3월과 올해 3월 23일 등 지난 2년간 총선을 네 번씩 치를 정도로 극심한 정치적 분열과 위기 상황을 겪었다.
신임총리, ‘초강경 우파’ 나프탈리 베네트
새 총리는 극우 정당인 야미나(우파)의 나프탈리 베네트 대표(49)가 첫 2년 간 맡게 된다. 그 뒤 2년은 연정 구성 당시 합의에 따라 중도자유주의 정당인 예시 아티드(미래는 있다)의 야이르 라피드(57) 대표가 이어받기로 했다. 연정이 무너져 새 총선을 치르게 되면 합의는 무효가 된다.
정체성이 극과 극인 다른 정당들이 반(反) 네타냐후와 정권 획득이라는 목적 아래서 손을 잡은 연정인 만큼 이 약속을 지킬 수 있을 정도로 길게 갈지는 알 수 없다.
네타냐후가 지난해 3월 36석을 획득한 상황에서 정적인 베니 간츠 전 군참모총장이 이끄는 청백연합과 연정을 구성하면서도 총리를 우선 네타냐후가 맡은 뒤 간츠에게 물려주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네타냐후는 그 전에 크네세트를 해산하고 3월 23일 새 총선을 치렀다. 총리직 물려주기 약속의 정치적 허망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동안 이스라엘에선 네타냐후 총리가 팔레스타인에 맞서는 등 지나치게 우파 드라이브를 건다는 비판이 많았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등에 유화적인 반네타냐후 그룹이 서로 힘을 합치는 일이 맞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독특하게도 네타냐후보다 더 강력한 반팔레스타인 정책을 외치면서 극우파 소리를 듣는 베네트가 총리를 맡는 일이 벌어졌다. 이스라엘 정치의 아이러니다.
베네트 신임 총리는 이날 연설에서 “모든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고 말했지만, 발언대로 정치를 펼지는 의문이다. 우파 중에서도 팔레스타인을 독립시키는 2국가안에 반대하고,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강하게 지지하며, 가자지구를 장악한 이슬람주의 무장 정파인 하마스를 폭격으로 무너뜨려야 한다고 주장해온 초강경파이기 때문이다.
그와 비교하면 강경파로 분류되는 리쿠드와 네타냐후 전 총리도 유화파로 보일 정도다. 리쿠드와 네타냐후는 중도 우파, 또는 우파로 분류되지만 베네트는 우파 또는 극우파로 분류된다.
베네트는 네타냐후의 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했지만, 팔레스타인 등에 더욱 강력한 압박을 주장하면서 2013년 유대인의 집이라는 정당 대표로 나갔으며, 2018년 신우파 대표를 맡았다가 2019년 야미나(우파)를 창당해 대표를 맡고 있다. 2013년 이후 리쿠드와의 연정에 참여하면서 경제·종교·디아스포라·교육·국방·지역 장관 등을 맡아왔다.
이번 연정 구성에서 리쿠드 및 네타냐후와 일시 결별한 셈이어서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할 가능성이 있다.
베네트는 미국과의 동맹을 강조하면서도 조 바이든 행정부의 이란 핵 합의(JCPOA) 복귀에는 반대의 목소리를 높인다. 베네트는 신임투표 직전 연설에서 “이란의 핵무기 획득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바이든 행정부를 향해선 “JCPOA 복귀는 세계에서 가장 폭력적인 정권을 정당화하는 실수”라고 주장했다.
중동 지역에서 이스라엘의 가장 숙적인 이란에 대해선 이스라엘 정치인들이 여야 할 것 없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인다. 이스라엘의 생존과 관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란은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댄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알라위파(시아파의 한 분파) 정권과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장파인 헤즈볼라를 군사적으로, 재정적으로 지원한다.
레바논에서 가끔 이스라엘 북부 하이파 인근으로 떨어지는 로켓은 이란이 헤즈볼라에 지원한 무기로 볼 수 있다. 이란은 가자지구를 장악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발사하는 로켓의 원료와 기술을 제공했을 것으로 의심을 받는다.
따라서 이란에 유화적인 이스라엘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없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스라엘에서 일부 유대교 ‘원리주의자’가 이란이 여는 국제 행사에 참여하기는 한다. 이들은 초정통파 유대교도의 일부로 ‘인간이 이스라엘을 인위적으로 건국한 것은 하느님의 뜻과 어긋난다’고 주장하며 이스라엘의 건국 자체에 회의적인, 독특한 분파다.
베네트는 이란에 특히 반대의 입장을 표시한다. 문제는 새로 들어선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가 탈퇴했던 이란 핵 합의(JCPOA) 복귀를 추진한다는 점이다. 이란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미국과의 동맹 강조는 정치적으로 이율배반적이다. 여기에 베네트의 과제가 있다.
이번 정권 교체로 이스라엘의 민주주의 체제가 새삼 관심을 받는다. 이스라엘 하면 흔히 안보에서 일사분란하고 국론이 통일된 나라로 한국에 알려졌다.
하지만 이스라엘 정치를 살펴보면 각자 서로 다른 목소리 내는 다원주의와 민주주의를 추구해도 안보와 경제가 문제없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이스라엘임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을 안보중심·일사불란·극론통일의 나라로 여기는 것은 한국에서만 진행됐던 안보 ‘상징조작’의 일부인 셈이다.
이스라엘, 다원주의 정치의 실천현장
이스라엘 총선은 의원내각제이며, 선거는 정당명부제 투표로 치른다. 유권자는 개별 후보가 아닌 정당에 투표한다.
2019년 4월 이스라엘 총선을 현장에서 참관했더니 거리에 붙은 각 정당의 홍보 현수막이나 벽보에는 대표의 얼굴 사진만 보였다. 투표소에 가봤더니 각 정당의 약자가 검게 히브리문자로 적힌 기다란 투표용지 샘플이 벽에 붙어 있었다. 당시엔 50개가 넘는 정당이 나왔는데, 올해 3월 23일 총선에선 39개 정당이 나왔다.
‘팔레스타인 폭격’으로 하마스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대놓고 외치는 극우, ‘사회주의 실현’을 주장하는 극좌, 중도파에다. 유대교 종교 정당,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이주한 스파르드 유대인 정당, 동유럽에서 이주한 아슈케나즈 유대인 정당, 러시아에서 이주한 유대인 정당, 이스라엘 건국 뒤에도 고향에 남은 아랍인들이 만든 아랍계 보수 정당까지 다양한 정당이 존재한다. 이스라엘 정치는 그야말로 다원주의 정치의 실천 현장이다.
이스라엘 총선은 3.25% 이상 득표한 정당만 의석을 배분 받는다. 나머지 정당은 해산되고 다음 총선 때 다시 창당할 수 있다. 올해 총선에선 13개 정당만 3.25%의 벽을 넘어 의석을 배분 받았다.
이번 총선에선 리쿠드당이 24.19%의 지지율로 지난번보다 7석이 줄어든 30석으로 제 1당을 차지했지만 연정 구성에 실패해 정권을 넘겨줬다.
무지개 연합에 참여한 이스라엘의 정당을 살펴보자. 중도 정치인 야이르 라피드가 대표를 맡은 예쉬 아티드(미래는 있다)가 13.93%의 지지율로 4석을 늘려 17석을 차지해 제 2당이 됐다. 네타냐후가 연정을 구성하지 못하자 구성권은 제2당 당수인 라피드에게 넘어갔다. 라피드는 연정을 구성해 네타냐후를 총리 자리에서 밀어내기 위해 6.21%의 지지율로 7석을 차지한 극우 정당 야미나의 베네트 대표를 총리로 민 것으로 알려졌다.
베니 간츠 전 군 참모총장이 이끄는 청백연합은 6.63%의 지지율로 지난번보다 6석이 줄어든 8석으로 이번 연정에 참여했다. 지난해 네타냐후와 연정을 구성해 국방부 장관을 맡았던 간츠도 무지개 연합으로 말을 갈아탔다.
간츠는 원래 반네타냐후 정치인으로 그에게 날을 세워왔다. 하지만 지난해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다시 선거를 치르기도 만감한 상황이 되자 일단 총리직을 순차적으로 맡기로 하고 연정 구성에 합의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당이 정체성 혼란을 겪고 지지율도 떨어져 의석수도 줄면서 원래의 반네타냐후로 복귀한 것으로 보인다.
전통의 좌파 정당인 노동당은 6.09% 지지로 7석 확보에 그쳤다. 중도우파 정당인 이스라엘 베이테이누(이스라엘 우리의 집)이 5.63%로 7석을, 좌파 정당인 메레츠가 4.59%로 지난 선거 때보다 3석이 많은 6석을 각각 배분 받았다.
민족주의·자유주의 정당인 새희망이 4.74% 지지로 6석을 차지했다. 여기에 아랍인 정당인 라암(아랍연합의 약자)이 3.79%의 지지율이라는 턱걸이로 4석을 배분 받았다. 이렇게 모두 8개 정당이 연정을 구성했지만, 라암은 내각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이렇게 극우·극좌·아랍 정당까지 반네타냐후 ‘무지개 연합’ 8개 정당이 함을 합쳐 정권을 교체한 것이다. 지난해 총선 이후 네타냐후의 리쿠드 등과 연립정권을 이뤘던 청백연합의 간츠 국방부 장관은 새 정권에 참여해 국방부 장관 자리를 계속 유지한다. 만일 네타냐후가 크네세트 해산과 새 총선을 치르는 대신 사임했다면 간츠는 총리 자리를 물려받아 남은 크네세트 임기 동안 이스라엘을 통치했을 것이다.
복잡한 정치에도 ‘안보와 경제’ 두 마리 토끼 잡아
국제통화기금(IMF) 2020년 추정치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명목 금액 기준으로 1인당 GDP가 4만4474달러로 세계 19위의 부자 나라다. 한국과도 경제와 군사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으며 발전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
이스라엘이 비즈니스 아이디어 중심의 스타트업 산업은 발달했지만 이를 글로벌 경제 현장으로 연결한 산업체는 별로 없어 한국과 협력하면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 2021년의 정권 교체로 관심을 받는 ‘중동 유일 민주국가’ 이스라엘은 이렇게 다양성을 추구하는 정치로 안보와 경제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 온 셈이다.
문제는 한 정당이라도 반대하면 법안을 통과 못 하는 독소 조항을 이번 연정 조건에 삽입했다는 점이다. 베네트의 극우 정책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정치적 장치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분열 가능성을 키우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2차례 15년 집권했다. 이번에 물러난 네타냐후 전 총리가 총리로서 마지막 연설에서 “예상보다 빨리 돌아오겠다”고 말한 배경이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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