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세계 탄소전쟁 ①] EU ‘탄소국경세’ 도입…사실상 추가 관세 韓 철강업체 고심

기후 문제로 촉발된 탈 탄소 과제들
개도국 성장 가로 막는 관세 장벽 논란
글로벌 철강업계 재편시 성장 가능성도

포스코 포항제철소 제1고로에서 직원들이 고로를 막고 있던 흙담을 뚫자 누런 쇳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중앙포토]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선진국이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을 본격화하면서 국내 산업계도 다급해졌다. 탄소를 줄인다는 명분으로 선진국이 수입품에 ‘탄소국경세’를 부과하면 우리 입장에선 사실상 수출 장벽이 높아지는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녹색 전쟁’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수출 감소에 따른 타격이 예상되는 가운데 효과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U, 탄소국경세 본격 도입…국내 철강 업체 긴장  

지난 14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EU로 수입하는 제품 중 역내 제품보다 탄소배출이 많은 제품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 도입을 결정했다. EU는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2030년까지 1990년 기준 최소 55%로 줄인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그 일환으로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업종을 겨냥해 탄소국경세를 매긴다는 것이다. 대상이 되는 품목은 철강‧시멘트‧비료‧알루미늄‧전기 5개다.  
 
EU 바깥에서 생산한 해당 품목에 대해선 탄소배출량에 따라 수입업자가 인증서를 사도록 했다, 2023년부터 본격적으로 과세를 시작해 2026년에는 모든 품목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문제는 탄소국경세가 도입되면 한국 철‧철강업체의 부담이 늘어날 가능성도 커진다는 것이다. 한국 업체들이 철‧철강‧비철금속 등 품목의 EU 수출 비중이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 산업계에 미칠 타격을 외면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한국무역협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철·철강의 EU 수출액은 15억2300만 달러, 수출물량은 221만3680톤으로 집계됐다. 비철로 분류되는 알루미늄 수출액은 1억8600만 달러, 수출물량 5만2658톤에 달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 같은 수출 물량을 고려할 때 한국산 철강제품을 수입하는 EU 업체가 부담해야 할 금액이 연간 최대 339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우리 업체가 이 금액을 직접 부담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EU 업체가 단가 인하를 요구하거나, 수출량을 줄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한국 업체로 넘어오게 된다.
  
.
 

미국도 탈탄소 움직임…선진국의 ‘사다리 걷어차기’ 지적도

탄소국경세 도입은 유럽만의 움직임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19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미 민주당 소속 크리스 쿤스(델라웨어) 상원의원과 스콧 피터스(캘리포니아) 하원의원은 탄소국경세를 도입을 하는 법안을 공동 발의했다. 중국을 비롯해 탄소배출 규제가 느슨한 나라에서 제품을 수입할 때, 해당 제품 제조시 발생한 탄소배출량에 따라 세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이다.  
 
유럽과 마찬가지로 철강·알루미늄·시멘트·천연가스·석유·석탄 등 탄소배출이 많은 산업 부문을 우선 규제 대상에 포함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언론은 이 법안이 통과되면 내년 최대 160억 달러(약 18조원)에 이르는 세수가 추가로 생길 것으로 추산했다. 관세 인상에 따른 수출 장벽이 높아지는 효과와 같다고 해석할 수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 탄소국경세를 도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먼저 국제적 공통 과제인 기후 문제를 해결하려는 고육지책이라는 평가다. 지구 온난화 등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온실가스(탄소)는 반드시 줄여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하지만 온실가스 감축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동안 각국에서는 제품을 생산할 때 발생하는 탄소를 줄이려는 노력을 해왔다. 탄소배출권 거래제 등 정책을 펼치며 탄소배출이 많은 제품 생산을 줄이게 하거나 비용 부담을 늘린 것이다. 탄소국경세도 탄소배출량에 따라 더 많은 책임을 묻는다는 점에서 이와 비슷한 정책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선진국들의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지적도 있다.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이 과거 부담하지 않았던 탄소국경세를 내면서 제품을 생산하고 수출해야 하는데, 이 기준을 맞추려면 가격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탄소 배출에 신경쓰지 않고 산업화에 성공한 선진국들이 탄소국경세를 매기는 것은 진입 장벽을 높여 개발도상국의 경제 발전을 가로막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중국 압박과 탈탄소 경제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유럽과 미국의 또 다른 전략이라는 해석도 있다. 화력발전 비중이 큰 중국은 세계 최대 탄소배출국으로 평가되는데 유럽과 미국이 동시에 탄소국경세를 도입하면 중국의 수출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김성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7월 21일 보고서를 통해 “미국이 탄소 국경을 시행한다면 중국과 멕시코가 가장 큰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 EU에서 탄소국경세 도입을 본격 추진했던 2019년부터 중국은 “일방적 조치”라며 강하게 반대한 바 있다.  
 

韓, 탄소배출권 거래제 강조…또다른 성장 기회 가능성도

우리 정부도 탄소국경세 도입에 따른 대응 마련에 고심 중이다. 문승욱 산업부 장관은 지난 6일 프란스 티메르만스 EU 그린딜 담당 수석부집행위원장을 만나 우리나라가 탄소 배출권 정책을 시행하는 만큼 탄소국경세 적용 제외국으로 인정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우리 기업들이 탄소배출량에 따른 환경 부담금을 내고 있는데, 유럽의 탄소국경세까지 더해지는 사실상의 이중 과세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박진규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은 지난 15일 철강·알루미늄 기업 임원들과의 화상 간담회에서 “철강산업에 대해서는 탄소국경조정제도 도입과 관련해 연구 용역을 거쳐 상세히 분석하고 ‘그린철강위원회’를 통해 민관 합동으로 최선의 대응 전략을 마련해나가겠다”고 밝혔다. 
 
백재승 삼성증권 연구원은 “만약 한국의 탄소배출권 거래제도가 EU로부터 인정되면, 한국 철강사들이 유럽 수출에서 우위를 점해 오히려 수출량이 늘어날 수 있다”며 “친환경 정책 강화가 단기적으로는 철강업종에 어려움을 줄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재무 여력이 풍부한 기업을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北 김여정, 대남 오물풍선에 “성의의 선물…계속 주워담아야 할 것”

2우리은행, 알뜰폴 사업 진출…LG유플러스 망 활용

3소득 끊긴 전공의…의협 ‘100만원 지원’에 2900명 신청

4‘회계기준 위반’ 오스템임플란트, 과징금 15억원 부과 받아

5‘김건희 수사팀’ 유임…검찰 중간 간부 인사

6北에서 날아온 '오물 풍선' 전국서 260여 개 발견

7넷마블 신작 MMORPG ‘레이븐2’, 29일 오후 8시 정식 출시

8남양유업, 이유식 브랜드 ‘아이꼬야 맘스쿠킹’ 신제품 2종 출시

9신용대출보다 ‘주담대’ 받기 더 어렵다...문턱 높아진 이유는?

실시간 뉴스

1北 김여정, 대남 오물풍선에 “성의의 선물…계속 주워담아야 할 것”

2우리은행, 알뜰폴 사업 진출…LG유플러스 망 활용

3소득 끊긴 전공의…의협 ‘100만원 지원’에 2900명 신청

4‘회계기준 위반’ 오스템임플란트, 과징금 15억원 부과 받아

5‘김건희 수사팀’ 유임…검찰 중간 간부 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