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보험금 달라"…'분쟁 피로도' 커진 삼성생명, 이미지도 실추
삼성생명 즉시연금 지급 소송 1심서 패소
재판부 "삼성생명 설명의무 다하지 않았다"
자살·암보험금 이어 즉시연금 분쟁… 고객과의 갈등 언제까지
즉시연금 지급 소송에서 삼성생명이 패소했다. 아직 1심이고 삼성생명이 항소를 검토한다는 입장이어서 최종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보험사 맏형'의 패소는 즉시연금 분쟁에서 생보사들이 결코 유리한 상황이 아님을 시사하고 있어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삼성생명은 몇년 전 자살보험금 분쟁에 이어 최근 암환자들과 암 보험금 지급 분쟁에 휘말리는 등 '분쟁 피로도'가 쌓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즉시연금 지급 소송에서도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돼 난감한 상황이다.
재판부 "설명의무 부실", 1심서 가입자 손 들어줘
즉시연금이란 목돈을 한번에 넣고 매달 연금을 받다가 만기 때 원금을 돌려받는 상품이다. 2000년대 초 출시된 상품으로, 시중금리와 연동된 공시이율을 적용해 연금을 줬다. 가입자가 10억원을 한번에 납입하면 이율을 적용해 매달 연금을 지급받고 만기가 되면 원금도 돌려받을 수 있다. 자산을 넣어두면 매달 연금도 받고 전액 환급도 가능해 고액 자산가들에게 인기를 끌 수밖에 없는 상품이었다.
문제는 지난 2017년, 즉시연금 가입자들이 매달 받기로 한 연금액이 당초 예상보다 적은 것을 확인하고, 금융감독원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연금이 약속한 ‘최저보증이율’에 미치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보험료에서 사업비를 떼는 방식에 대한 이해 문제에서 불거졌다. 보험사들은 통상적으로 처음 받은 보험료(원금)에서 사업비를 떼어간 후 남은 보험료를 굴려 수익을 낸다.
하지만 즉시연금은 만기 때 처음 떼어갔던 사업비를 더한 금액인 원금(보험금)을 그대로 돌려줘야 한다. 이 때문에 보험사들은 사업비를 충당하기 위해 매달 주던 연금(보험료 운용 수익)의 일부를 떼어 원금 환급용으로 따로 적립했다. 이에 애당초 약속한 이자율에 비해 더 낮은 금리를 적용해 매달 연금이 지급됐다. 가입자들은 보험사들이 보험료 운용 방식을 소비자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재판부 판단도 가입자들의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 재판부는 "삼성생명은 가입자들이 받는 금액이 아닌 '만기시 환급되는 보험료 상당액을 모두 지급받기 위해 일부를 떼놓는다'는 점을 특정해서 알려야 설명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있다"며 "하지만 그런 내용이 약관이나 상품 판매 과정에서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삼성생명은 연금액 변동가능성이 가입설계서에 설명이 돼있다는 입장이지만, 법원은 삼성생명이 약관에서 보험료 일부를 떼 적립하는 방식을 가입자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고 해석했다.
2018년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는 삼성생명에게 즉시연금을 덜 받은 보험 가입자 5만5000여명을 일괄 구제하라고 권고했다. 일괄구제시 삼성생명이 가입자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즉시연금액은 약 4300억원(분조위 추정)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당기순익(9287억원) 절반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생보업계 전체로 확장하면 즉시연금 미지급액은 약 1조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결국 생보사들은 "법원의 판단을 받겠다"며 공을 법원으로 넘겼다. 하지만 이미 교보생명과 미래에셋생명, 동양생명도 같은 이유로 소송에서 패소했다. 전체 지급액 중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삼성생명의 1심 판결에 업계의 이목이 쏠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삼성생명은 아직 항소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최종 판결문을 받은 뒤 항소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라며 "저희 측 입장도 판결문을 수령한 뒤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보험사들이 소송전을 진행하는 이유가 소멸시효 때문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장덕조 서강대 로스쿨 원장은 "삼성생명이나 다른 보험사들이 항소해서 대법원까지 간다해도 모두 패소할 것으로 본다. 그만큼 이 소송은 쟁점이 명확한 사안"이라며 "그럼에도 보험사들이 항소에 나서고 소송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려는 것은 결국 소멸시효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소멸시효는 권리자의 권리가 소멸되는 일정 기간을 말한다. 국내 보험금 청구권 소멸시효는 3년으로 해외 선진국(8~10년)에 비해 짧아 보험소비자들에게 불리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즉시연금 지급 소송이 장기화되면 소멸시효가 끝나는 즉시연금 지급 건이 생긴다. 결과적으로 보험사들이 소송에서 패한다해도 소멸시효가 된 지급건은 제외할 수 있어 전체 지급액이 적어진다. 법조계나 학계에서 보험사들의 소송전을 두고 '소멸시효'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이에 대해 삼성생명 측은 "이미 법원에서 추가지급 의무가 있다는 판결이 확정될 경우 금감원이 지급을 권고한 2017년 11월 이후에 소멸시효가 완성되는 부분은 소멸시효와 상관없이 전액 지급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고 설명했다.
잇따른 분쟁… 맏형의 고충?
당시 금감원은 보험소비자 손을 들어주며 삼성생명에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당시 CEO 징계절차까지 겹친 삼성생명은 결국 미지급 자살보험금 이자를 포함한 전액을 수익자에게 지급키로 결정했다. 지급 규모는 지연 이자를 포함해 약 1700여억원이다.
또 삼성생명은 2017년부터 암 보험금 지급 여부를 두고 암환자들과 분쟁을 겪어왔다. ‘보험사에 대응하는 암환우 모임(보암모)’은 삼성생명 서초 사옥 2층을 점거하며 장기간 농성을 진행해왔다.
최근 양측은 타협점을 찾아 합의하며 보암모의 농성은 중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삼성생명은 이번 합의가 비공개로 진행된 상황이라 구체적인 합의내용 공개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암 보험금이 지급된 형태의 합의가 아니라면 양측의 분쟁이 완전히 해결됐다고 보기 어려울 수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자살보험금 문제로 신뢰의 금이 간 상황에서 즉시연금 문제까지 겹치며 많은 고객의 머릿속에는 보험사가 '줄 돈을 안 준다'는 인식이 자리잡기 시작했을 것"이라며 "특히 삼성생명은 가입자가 가장 많은 보험사인 만큼 이런 분쟁이 생길 때마다 '비난의 중심'에 서왔다. 소송전의 의도와 별개로 즉시연금 분쟁이 지속될수록 업계 맏형 위치에 있는 삼성생명 이미지는 악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훈 기자 kim.junghoo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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