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 강조한 추격자 정몽구 명예회장 '자동차산업 영웅' 됐다
한국인 최초로 ‘자동차 명예의 전당’ 헌액
정의선 회장 “아버지는 자동차 사랑했다”
미국이 현대자동차그룹을 인정했다. ‘3걸음 이상이면 차를 탄다’는 세계 1위 자동차 시장인 미국이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을 ‘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헌액했다. 한국인 최초다. 1939년 설립된 미국 자동차 명예의 전당은 세계 자동차 역사에 남을 성과와 업적을 토대로 산업 발전에 중대한 기여를 한 인물을 엄선해 헌액한다. 2018년에는 토요타 창립자 토요타 기이치로가 2019년에는 FCA그룹 회장이었던 세르지오 마르치오네가 헌액됐다. 특히 벤츠 창립자 칼 벤츠, 포드 창립자 헨리 포드도 헌액된 자동차 명예의 전당은 이른바 ‘자동차 영웅관’으로 불린다.
자동차 명예의 전당은 7월 22일(현지시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연 ‘2020·2021 자동차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서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을 헌액하고 “현대자동차그룹을 성공의 반열에 올린 글로벌 자동차업계 리더”라고 평가했다. 또 “글로벌 생산기지 확대, 고효율 사업구조 구축 등 정몽구 명예회장의 수많은 성과는 자동차산업의 전설적 인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밝혔다. 2001년 2월 정 명예회장(당시 현대·기아차회장)이 기아차 인수 등으로 자동차 명예의 전당으로부터 자동차업계 노벨상인 ‘올해의 자동차산업 공헌상’을 받은 지 20년 만이다.
‘고장이 잦은 싸구려 차’에서 품질 1위로
정 명예회장의 ‘타협 없는 품질’ 경영이 빛을 발했다. 1970년 현대자동차 서울사업소 부품과 과장으로 현대그룹에 입사해 현대건설 자재부 부장, 현대차 서울사업소 이사 등을 거쳐 1999년 현대차 회장으로 취임한 정 명예회장은 취임 후 처음 떠난 미국 출장에서 차량 생산 중단을 선언했다. 당시 품질이 뒷받침되지 못했던 현대차가 소비자들로부터 수없는 리콜 요청을 받으며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어서였다. NBC의 ‘쟈니 카슨 쇼’ 등 미국 코미디 프로그램은 정부의 정책 결정 오류를 현대차 구매 결정과 비교하며 현대차를 ‘현다이(die)’로 불렀다.
당시 현대차는 1986년 엑셀로 미국 시장에 처음 진출한 뒤 첫 해 12만6000대, 다음 해 26만4000대를 판매한 데 취해 '얼마나 잘 만드느냐'가 아닌 '얼마나 많이 만드느냐'에만 관심을 뒀다. 정 명예회장은 1999년 미국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신차 출시 일정을 미루더라도 부실한 생산라인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제이디파워에 품질 관련 컨설팅을 받도록 했고, 품질 문제만큼은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그는 또 경기도 화성시에 세계적 규모의 연구개발(R&D) 센터를 설립하고 한 달에 두 번씩 열리는 품질회의를 통해 품질을 개선했다.
그리고 미국 시장에서 ‘10년 10만 마일 워런티(품질보증)’ 공약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당시만 하더라도 워런티는 ‘2년, 2만4000 마일’이 일반적이었다. 토요타나 혼다 등 일본 완성차업체는 미친 결정이라고 비웃었다. 정 명예회장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객이 믿고 탈 수 있는 자동차를 생산하는 것”이라며 “그 기본이 바로 품질”이라고 받아쳤다. 정 명예회장의 품질제일주의는 미국에서 극적인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2016년 제이디파워가 발표한 ‘신차품질조사’에서 전체 33개 완성차 브랜드 가운데 기아는 1위(83점), 현대차는 3위(92점)에 올랐다.
그는 동시에 ‘빠른 추격자’ 전략을 폈다. 독일이나 미국의 선진 자동차 제조사들을 벤치마킹하거나 제휴해 그들과의 기술적 격차를 줄였다. 2002년 중국, 2004년 미국에 공장을 세우며 생산 물량을 빠르게 늘려나갔다. 그리고 2010년 올해의 자동차산업 공헌상을 수상할 당시인 2001년 시무식에서 밝힌 세계 5대 완성차업체로 성장 비전을 이뤄냈다. 미국 시장에서의 ‘10년, 10만 마일 워런티’는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토대가 됐고, 현대차그룹은 미국 시장 판매량에 힘입어 2010년 토요타, GM, 폴크스바겐, 르노닛산에 5위가 됐다.
품질과 생산 확대를 모두 잡은 정 명예회장은 2013년 또 하나의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를 출범했다. 대중차만 만들던 현대차가 글로벌 고급차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몽구 회장의 마지막 숙원 사업이었다. 일단 제네시스라는 자동차를 내놓은 다음 독립적인 고급차 브랜드로 키운다는 장기적인 계획이었다. 엔진은 물론 강판까지 직접 만드는 완성차 생산 수직계열화를 이룬 정 명예회장은 2013년 11월 제네시스용 강판을 만드는 현대제철을 방문해 “최고 품질의 강판 생산에 매진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자필 서명 명판 디트로이트에 영구 전시
7월 22일 자동차 명예의 전당은 정 명예회장 자필 서명이 음각된 대리석 명판을 미국 디트로이트에 있는 자동차 명예의 전당 기념관에 설치·전시했다. 명판은 헨리 포드, 벤츠 창립자 카를 벤츠 등 자동차업계 전설과 나란히 영구 전시된다. 헌액식에 참석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아버지는 자동차를 사랑하는 분이셨습니다”라며 “탁월한 품질과 성능을 향한 지치지 않는 열정이 현대차그룹 제품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토대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존의 틀을 과감히 탈피하고, 최고의 모빌리티 서비스 구현을 위해 멈추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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