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표 주택정책, '공급 신호탄' 쐈는데 '물꼬'도 틀 수 있을까
취임 후 첫 1000가구 대단지 재건축 단지 사업 승인
건축계획안 4건 통과시켜 서울 도심에 3200가구 공급 계획
공공 주도 정비에 조합원으로 첫 참여로 임대 물량 확보
내년 6월까지 임기와 SH 사장 공석, 공약 완성의 ‘암초’
취임 4개월이 지난 오세훈 서울시장의 부동산 정책이 속도를 내고 있다. 1000가구 넘는 재건축 단지 사업을 승인하는가 하면 사상 최초로 공공 주도 정비사업에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등 지지부진했던 도심 주택 공급에 시동을 거는 모습이다.
정부·의회 견제 피해 노후 단지 공략 공급물량 확보
하지만 지난 12일 서울시는 4건의 건축계획안을 통과시켰다. 잠실 미성·크로바 아파트 재건축 단지가 1850가구로 단지 규모가 가장 크다. 이어 방배 신동아 재건축(857가구), 은평구 신사동 19-100번지 주상복합(아파트 262가구, 오피스텔 50실), 광진구 상록타워아파트 리모델링(229가구) 순으로 물량이 많다. 서울 도심에 3200여 가구의 신축 아파트가 공급되는 이번 결정으로 오 시장이 주택공급 활성화 신호탄을 쐈다는 것이 부동산 시장의 평가다.
가장 주목을 끄는 단지는 잠실 미성·크로바 아파트다. 이곳은 2019년 상반기 이주를 마쳤고, 그 해 연말 설계안이 제출된 후 약 1년 8개월간 서울시 건축심의 단계에 묶여있었다. 그동안 서울시는 시공사(롯데건설)가 제안한 스카이브리지 등 특화설계안이 주변과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반려해왔다. 하지만 이번 승인으로 오 시장 취임 후 처음으로 1000가구 이상 재건축 단지 사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서울시의 전향적인 태도 전환은 오 시장의 고육지책이다. 오 시장은 당선 후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 등 정부의 시장 안정화 정책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동시에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완화를 정부에 요구했다. 하지만 국토부 등 정부는 부동산 시장 불안정과 서울 집값 상승을 이유로 사실상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시의회도 재개발·재건축 관련 사업을 놓고 시의회 예산 심의를 받아야 한다며 재건축 규제 완화에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렇듯 정부와 시의회가 부딪히자 정부의 안전진단 규제 영향권에서 벗어난 노후 단지를 대상으로 사업을 승인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서울시가 사상 최초로 정비사업지에 조합원 자격으로 참여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서울시는 마포태영아파트 리모델링 사업에 조합원으로 참여한다. 1999년 준공된 마포태영아파트는 총 1992가구다. 이 가운데 568가구가 서울시 소유 임대아파트다. 이 물량을 활용해 법인으로 주택조합원 자격을 갖추겠다는 계획이다. 그간 서울주택도시공사(SH)를 내세워 공공 주도 정비사업을 사업시행자로 참여하는 것에서 벗어나 일반 소유주들처럼 조합원 자격으로 참여해 사업에 대한 완성도와 파급력을 높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김현아 낙마로 손발 돼줄 SH 사장 공석 부담 커져
부동산 정책 추진에 다시 시동을 걸었지만, 장애물은 도처에 깔렸다. 서울 주택공급의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에 김현아 전 의원을 임명하려다 논란 끝에 자진 사퇴로 끝맺은 사건이 대표적이다. 오 시장의 부동산 공약을 구체화할 산하기관의 수장이 없는 상황이다. 서울시는 이른 시일 안에 재공모에 나선다는 계획이지만 통상 인사 임명까지 3개월 정도 걸린다는 점에서 늦으면 연말까지 SH 사장직은 공석일 가능성이 있다. 당분간 주택 정책의 손발이 돼 줄 인물이 없다는 것은 임기가 내년 6월까지인 오 시장 입장에서는 답답한 노릇이다.
아울러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정책 방향이 다른 정부와 서울시의회의 찬성을 끌어내기도 쉽지 않다는 평가다. 노후 단지 재건축 등 서울시 권한으로 추진할 수 있는 것부터 먼저 손을 대리라는 것이 시장의 관측이다. 오 시장은 올해 하반기 중 서울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한 공급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대책이 발표되면 오 시장의 주택공급 계획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허인회 기자 heo.inho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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