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쇼크에서 시작한 석유비축기지 건설 41년만에 마무리
1030만배럴 규모의 울산 비축기지 19일 준공
전국 비축기지 9곳 1억4600만배럴 능력 보유
현 석유 비축량 9700만배럴 106일 버티는 양
전세계 자원 전쟁이 다시 불거지고 있는 요즘, 정부가 추진해온 석유비축기지 건설 사업이 41년 만에 마무리됐다. 2016년 착공한 울산 비축기지 건설이 완료되면서 우리나라의 석유비축 계획 추진이 41년여 만에 실현된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석유공사는 19일 석유공사 울산지사에서 울산 석유비축기지 준공식 열고 석유비축기지 시설의 일부를 공개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울산 석유비축기지(저장능력 약 1030만배럴) 준공을 포함, 전국 비축기지 9곳(구리·거제·곡성·동해·서산·여수·용인·울산·평택)에서 총 1억4600만배럴의 저장 능력을 확보하게 됐다.
정부가 현재 비축 중인 석유는 총 9700만배럴에 이른다. 이 비축양은 국제에너지기구(IEA) 국제기준을 적용해 추산하면 외국에서 석유 추가 수입이 없다는 가정 하에 우리나라 국민이 106일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여기에 민간 보유량(약 1억배럴 추산)까지 합산하면 약 200일 버틸 수 있는 양이다.
정부는 1980년부터 석유비축기지 건설을 추진해왔다. 1970년대에 세계 석유 파동을 두 차례나 겪으면서 전략을 수립하게 됐다. 1차 석유파동은 1973년에 발생했다. 제4차 중동전쟁 발발 후 페르시아만 연안의 6개 산유국들이 가격 인상과 생산 감축으로 석유를 무기로 사용하는 전략을 썼다.
이로 인해 선진국들은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경제불황과 물가상승이 동시에 발생하는 상태)이 발생했으며 우리나라도 물가 급등과 무역 적자 급증을 겪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으로 전환하는 시기여서 석유 파동의 충격이 컸다.
5년 뒤인 1978년 이후 2차 석유 파동이 발생했다. 1978년 이슬람 혁명을 일으킨 이란의 석유 수출 중단 선언,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 1981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무기화 선포 등 일련의 사태로 석유 값이 천정부지로 급등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는 당시 정치적 혼란에 경제적 오일 쇼크까지 겹치면서 경제성장률 마이너스, 실업률과 물가 상승, 환율 급등 등을 겪어야 했다
이에 우리나라는 1980년부터 석유비축계획을 세우고 석유비축사업을 추진해왔다. 그 일환으로 2016년 울산 비축기지 지하공동 건설에 착수한 것이다.
정부는 이날 준공식에서 비축기지 건설에 기여한 손준택 석유공사 차장 등 총 8명에게 산업부 장관과 석유공사사장 표창을 수여했다. 이와 함께 시공사인 SK 에코플랜트, 설계·감리를 맡은 삼안과 벽산엔지니어링, 터널굴착공사·기계설비공사 협력사 동아지질과 유벡에 감사패를 전달했다.
박기영 산업부 제2차관은 “3년 만에 국제유가가 최고에 이르고, 최근엔 요소수 등 원자재에 대한 수급 불안정 사태가 나타나는 등 에너지와 주요 원자재의 수급 불안정성이 갈수록 증가하는 시기에 에너지 자원을 비축하는 석유저장시설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됐다"고 축사했다.
이날 준공식엔 박기영 산업부 제2차관을 비롯해 이채익 의원, 권명호 의원, 울산광역시 부시장, 석유공사 사장 및 비축건설 관련 기업 임직원들이 참석했다.
박정식 기자 park.jeongsi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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