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에서 파열음 내는 자칭 외교전문가 바이든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중국 인권문제에 올림픽 보이콧 꺼낸 바이든
우크라이나 사태 두고 러시아와 긴장 이어가
사우디·UAE·이란에 중동 장악력 약화 진퇴양난
미국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외치에서 계속해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미 연방상원 외교위원장 출신으로 자타가 공인한 ‘외교전문가’인 바이든이 대통령에 취임한 첫해인 올해 외치에서 의외로 삐걱거리는 모습이다. 베이징 겨울 올림픽에 대한 정치적 보이콧(boycott·거부),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 무산, 이란과의 이란핵합의(JCPOA) 복귀 협상 지지부진, 예멘 내전 지원 중지를 둘러싼 사우디아라비아 무기금수로 인한 중동 수니파 국가들의 싸늘한 시선 등 바이든의 외교적 실책은 그치지 않고 있다. 기존 서방 국가와의 형식적인 동맹 강화를 제외하고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가장 먼저 지적할 수 있는 사안이 미‧중 경쟁이 가속하는 가운데 바이든이 주도한 베이징 겨울 올림픽에 대한 정치적 보이콧이다. 정치적 보이콧은 올림픽에 선수단은 대회에 파견하지만, 그간 관행적으로 보내오던 정부나 정치권 사절단은 파견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효과 검증되지 않은 미국의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 카드
미국이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하자 미국의 동맹국들이 줄지어 동참하고 있다. 8일엔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가 의회에서 “장관이나 정부 인사가 베이징 올림픽에 참석하지 않아 ‘사실상’ 외교적 보이콧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호주가 동참하면서 대중국 안보 동맹인 오커스(AUKUS‧미국‧영국‧호주) 전체가 힘을 합쳤다. 뉴질랜드에 이어 캐나다도 동참하면서 미국의 군사 동맹 및 정보 공유 네트워크인 파이브아이즈(Five Eyes: 미국‧영국‧호주‧뉴질랜드‧캐나다)의 모든 회원국이 행동을 통일했다.
이 가운데 호주는 동맹 차원을 넘어 개별 국가 차원에서도 중국과 관계가 악화했다. 외교적 갈등을 벌인 뒤 중국이 호주산 와인‧쇠고기‧석탄 등을 수입 금지하면서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중국은 호주산 석탄 수입 금지 뒤 자국산 석탄 생산 감소 등으로 전력 생산에 차질을 빚어 산업체의 가동 중단 사태를 빚었다. 이 때문에 중국이 외교적 문제를 경제를 무기로 풀려다 외려 역풍을 맞았다는 비판이 있었다.
호주는 오커스를 결성하면서 미국으로부터 원자력 추진 잠수함 기술을 이전받기로 하면서 중국과 새롭게 각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와 기존 계약했던 디젤 잠수함 계약을 파기하면서 프랑스와 미국, 프랑스와 호주가 새롭게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런데도 이를 추진한 것은 중국을 억제하려는 미국과 호주의 강력한 의지가 뒷받침됐기 때문으로 분석할 수 있다.
미국 백악관은 신장 위구르 지역에서 중국의 인권 탄압을 저지르는 상황에서 베이징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참여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국제정치의 ‘규범’보다 ‘도덕률’을 앞세운 셈이다. 뉴질랜드는 자국의 정치적 보이콧이 이러한 중국의 인권문제가 아닌 코로나19를 비롯한 안전상 이유에 무게를 실은 조치라고 주장했다. 미국 주도의 동맹 행동 통일에 동참은 하지만 중국과 각을 질 이유는 없다고 판단한 셈이다.
이처럼 베이징 겨울 올림픽에 대한 정치적 보이콧은 동맹국을 결집하는 효과 외에는 역효과가 더 많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올림픽에 대한 정치적 보이콧은 인류의 축제를 정치에 이용한다는 비난을 부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럽의 미국 동맹국들이 적극적으로 참가하면서 중국을 비난해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중국의 인권이 글로벌 차원의 문제이긴 하지만 이를 이유로 올림픽 가치를 침해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의 인권문제를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정치적 보이콧으로 해결하거나 완화하는 것은 기대난망이다. 그야말로 미국이 인권 침해 국가인 중국에 압박을 가했다는 홍보를 위한 일회성 이벤트 정도의 의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올림픽 보이콧, 그것도 선수단 자체를 파견하지 않는 전면 보이콧으로도 의도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한 사례도 없다. 외려 비난만 자초하고 부작용만 불렀을 뿐이다. 당하는 나라 입장에선 잠시 명성에 먹칠을 할 뿐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부르거나 큰 망신을 부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세 차례에 걸친 올림픽 보이콧의 잔혹사
1976년 몬트리올 대회 때는 27개국이 불참했다. 당시 뉴질랜드가 반인륜적인 아파르트헤이트(흑백 인종 분리) 정책으로 국제 제재를 받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가서 경기를 치른 게 문제였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뉴질랜드의 몬트리올 대회 참가를 금지하지 않자 상당수 아프리카 국가와 이라크 등이 올림픽에 등을 돌렸다. 결국 보이콧에 동참한 29개국을 뺀 92개국 6084명만 참가해 대회가 열렸다.
1980년 모스크바 대회는 1956년 이후 가장 적은 80개국 5179명 참가에 그쳤다. 소련이 1979년 12월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미국의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이 올림픽 보이콧을 주도했다. 인권 외교를 앞세웠던 카터 대통령이지만 동서 냉전 상황에서 올림픽을 정치에 이용해 미국은 물론 서방 진영 거의 전체의 모스크바 올림픽을 보이콧하도록 했다.
결국 한국을 포함해 서방 진영 66개국이 불참했다. 참가국 중에서도 13개국은 국기 대신 올림픽기를 앞세웠고, 3개국은 국가올림픽 위원회기를 들고 각각 입장했다. 소련에 대한 무언의 시위였다. 소련은 끝없는 소모전 끝에 1989년 2월 아프가니스탄을 떠났다. 천문학적인 군사비로 인한 재정난은 공산주의 체제의 근본 모순과 함께 1991년 12월 25일 소련이 몰락한 원인의 하나로 꼽힌다.
이어 열린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선 반대로 소련이 보복 보이콧에 나섰다. 하지만 북한·아프가니스탄·베트남 등 14개국만 소련의 올림픽 보이콧에 동조했을 뿐이다. 로스앤젤레스 대회엔 140개국 6829명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소련으로선 초라한 외교 실적이다. 당시 경제난과 무슬림 국가인 아프가니스탄 침공 등으로 국제사회에서 세력이 밀린 소련의 현실만 각인시켰을 뿐이다.
이처럼 몬트리올·모스크바·로스앤젤레스 대회는 올림픽을 정치로 얼룩지게 한 행사로 기억된다. 하지만 이런 이벤트로 보이콧 주도 세력이 바라는 정치적 목표는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올림픽을 정치적 제스처 기회로 활용해 전 세계에 자신들이 원하는 홍보를 했을 뿐이다. 보이콧은 결국 홍보 행사였던 셈이다.
이어 열린 1988년 서울 대회는 오랜만에 전 세계가 모두 함께한 올림픽으로 평가된다. 서울올림픽이 역사상 가치가 있는 대회인 이유다.
올림픽을 테러의 볼모로 잡는 불행한 사건도 있었다. 1972년 뮌헨 대회는 중동의 모순과 폭력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당시로선 적지 않은 72개국 7170명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지만, 대회 기간 중 비극적인 뮌헨 참사가 터졌다.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인 검은 9월단의 무장대원들이 선수촌에 침입해 이스라엘 선수 11명을 인질로 잡았다가 전원을 살해했다. 경기는 인질극이 시작되면서 전면 중단됐으나 사건이 종료되자 재개돼 폐막식까지 마쳤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올림픽을 계속해야 한다는 인류의 의지를 보여준 대회로 평가된다.
주목할 점은 바이든이 베이징 겨울 올림픽 정치적 보이콧의 깃발을 올려놓은 직후인 12월 9일 첫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주관했다는 사실이다. 이 정상회의는 한국·일본을 비롯한 110개국이 참석한다.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나라들이 모이는 거대한 회의다. 중국과 러시아 등 권위주의 체제에 맞서 민주주의 체제의 우월함과 단결을 보여주겠다는 것이 대회를 여는 의도로 풀이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이 정상회의는 반중‧반러 국제행사가 됐다.
바이든, 러시아 마음을 사는 대신 중국의 불만을 사다
바이든은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해상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인 노르트스트림2를 폐쇄할 수 있다는 위협으로 푸틴을 압박했다. 하지만 이는 미국의 동맹국인 독일의 반발을 살 수 있는 사안이다. 유럽은 최근 신재생 에너지의 불안정으로 대체 발전소 연료인 천연가스의 가격이 오르고, 원자력으로 다시 눈을 돌리는 등 에너지 믹스의 전환기를 맞고 있다.
바이든과 푸틴은 121분간 정상회담을 하며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하게 맞섰다. 백악관은 “명확하고 직접적이며 솔직한 대화가 오갔다”고 발표했다. 직접적이고 솔직한 대화는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에 대한 심각한 비난이 오갔음을 의미하는 외교적 수사다. 뉴욕타임스(NYT)는 “냉전 시대의 동서 정치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바이든은 오랫동안 중국과 힘을 합쳐왔던 러시아를 중국에서 분리하려고 시도했지만 지난 6월 미‧러 정상회담에 이어 12월 7일 화상 정상회담에서도 우크라이나 사태를 두고 팽팽히 맞섰을 뿐이다. 어디에서도 바이든의 외교적 실력은 찾기 힘들다.
주목할 점은 바이든이 베이징 겨울 올림픽 정치적 보이콧의 깃발을 올려놓은 직후인 12월 9일 첫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주관했다는 사실이다. 이 정상회의는 한국·일본을 비롯한 110개국이 참석한다.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나라들이 모이는 거대한 회의다. 중국과 러시아 등 권위주의 체제에 맞서 민주주의 체제의 우월함과 단결을 보여주겠다는 것이 대회를 여는 의도로 풀이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이 정상회의는 반중‧반러 국제행사가 됐다.
이를 여는 목적은 미국 국내정치에는 지난 1월 6일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회를 점거하면서 미국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는 지적을 불식하고, 대외적으로는 민주주의 국가 미국이 돌아왔다는 메시지를 전하면서 미·중 전략 경쟁에서 세력을 과시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공약이다. 취임 11개월 만에 실행에 옮겼다. 바이든의, 바이든에 의한, 바이든을 위한 국제 행사로 볼 수 있다. 바이든은 이 정상회의에서 기본적 자유와 법치·인권·젠더·평등으로 무장한 민주주의가 세계적 도전과제에 맞서기에 더 적합하다는 주장을 펼치는 걸 노렸지만 이를 계기로 미국과 중국‧러시아와의 간극과 갈등을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눈에 띄는 것이 대만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중국의 반대에도 대만이 이 회의에 초청받았다는 사실이다. 중국이 불쾌감을 표시할 수밖에 없다. 폴란드처럼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았지만, 미국에 필요한 나라도 이번 대회 참가국에 포함됐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를 두고 “대회가 개막도 하기 전에 손쉬운 비판 거리를 안겼다”고 지적했다.
이 회의에는 국가 정상은 물론 시민사회단체와 민간기업의 수장 등 다양한 구성원들이 참석한다. 세계 민주주의 포럼이자 반중‧반러 심포지엄인 셈이다. 이젠 시민단체와 민간기업도 미‧중 경쟁에서 편을 골라야 할지 모르는 시대가 됐다. 정치와 경제가 분리되지 않는 심각한 갈등 시대를 예고하다. 이 행사가 끝난 뒤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G7 외교부 장관 회의를 거쳐,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을 방문해 반중 전선 강화를 시도할 예정이다.
사우디·UAE는 무기 수입선 다변화 나서
미국은 지난 8월 아프가니스탄에서 재앙적인 철군과 대피 사태를 겪은 데 이어 바이든의 대선 공약인 이란과의 이란핵합의(JCPOA) 복귀 협상도 트럼프 대통령 시절 일방적으로 탈퇴했던 미국이 경제 제재부터 풀어 먼저 신뢰와 성의를 보여 달라는 이란의 완강한 입장에 막혀 진퇴양난에 빠져있다.
인도주의 참상을 보여주는 예멘 내전도 바이든은 취임 직후인 2월부터 이 전쟁에 주도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지원 중단과 외교적 해결을 촉구하고 무기 금수 조치까지 취했지만 아무런 변화를 이끌지 못하고 있다. 예멘의 후티 반군이 발사한 탄도미사일 공격을 수시로 받는 사우디아라비아는 미사일 요격용 미사일 물량을 확보하려고 러시아 등 다양한 나라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주도의 수니파 연합군으로 참전했던 아랍에미리트(UAE)는 병력을 대거 빼는 바람에 미국의 무기 금수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의 제재와 미 의회에서의 무기 수출 승인 지연 등을 겪으면서 호된 시련을 경험했던 UAE는 한국에서 탄도미사일 요격용 미사일인 천궁2 도입을 추진하고 프랑스에서 라팔 성능개량형 F-4 모델 80대와 카라칼 수송 헬기 12대 등의 구매계약을 하는 등 무기 수입선 다변화에 나서고 있다.
이는 프랑스가 2004년 라팔 수출에 나선 이래 최대 규모의 계약이다. 미국이 사실상 손을 뗀 중동에 프랑스가 새롭게 진출하는 모양새다. 이에 따라 미국은 그동안 중동 국가들을 자국 편으로 묶어두는 데 요긴하게 사용했던 무기 수출과 제공 전략에서 한계를 맞을 수밖에 없게 됐다.
외교전문가라는 바이든 행정부 시대에 미국의 외교는 갈수록 혼미에 빠지고 있다. 바이든은 내년 중간선거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고의 외교 전략가라는 블링컨 국무장관과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바이든 행정부를 이러한 위기에서 어떻게 탈출시킬 것인가.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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