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중화체전으로 만들었나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올림픽을 중화지상주의로 물들인 중국
외교 기조 바꿔 경제·군사력 강화에 주력
세계 최강국 꿈꾸며 자국중심주의 드러내
2월 4일 개막한 베이징 겨울 올림픽에서 중국이 연일 거친 모습을 보여주면서 한국과 국제 사회에서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4일 개막식에선 한복이 등장하며 한국, 특히 한국의 청년층과 문화충돌을 일으켰다. 주한 중국대사관은 8일 이를 지적하는 한국의 정치인과 언론에 ‘한복’이란 표현 대신 ‘조선족 의상’이란 표현을 쓰며 “조선족 의상은 한반도의 것이며 조선족의 것”이라며 “조선족의 감정을 존중하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국이 자랑스럽게 전 세계에 소개하고 문화적 영향력을 확산해온 한복을 중국 55개 소수민족의 하나인 조선족의 의상으로 치부한 것이다.
7일 쇼트트랙 경기에선 한국 선수가 줄지어 탈락하는 판정 논란이 벌어졌으며 결과적으로 예선에서 1위에 오르지도 못한 중국 선수들이 결승에 올라 메달을 수확하는 수혜자가 됐다. 이는 불공정에 민감한 한국 청년세대를 분노하게 했다.
언론과 온라인 공간이 들끓었다. 급기야 대선전이 한창인 각 당의 대선후보들까지 나서서 비판 발언과 성명을 내고 청년들의 분노에 공감했다. 인류의 제전인 올림픽의 ‘중화 체전’ 행사가 됐다는 비판까지 나올 정도다
2008년과 사뭇 다른 2022년 베이징 올림픽 풍경
도대체 중국은 전 세계 91개국에서 손님을 불러놓고 겨울 올림픽을 치르면서 왜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일까. 중국의 눈에는 중국만 보이는 것일까.
주목할 점은 2008년 베이징 여름 올림픽과 2022년 베이징 겨울 올림픽의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2008년 여름 올림픽에선 획일성 등 일부 지적에도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이라는 모토와 어울리게 국제 협력을 추구하는 글로벌 제전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얻었다.
하지만 이번 겨울 올림픽에선 ‘함께 미래로’라는 모토가 무색하게 일방적인 ‘중화 올림픽’의 분위기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모토에서 말한 ‘함께’라는 말은 빛을 잃었으며, ‘미래’라는 단어도 중국이 강대국으로 자리 잡는 미래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이번 올림픽과 관련해 중국이 보여준 중화지상주의, 국수주의, 실적 제일주의는 우려를 부르기에 충분하다. 1월 25일 중국 선수단 출정식에서 나온 “지도자에게 보답하기 위해 목숨을 걸자. 일등을 다투고 패배는 인정하지 않는다. 총서기와 함께 미래로 가자”란 구호는 듣는 이가 섬뜩할 정도다.
올림픽을 중국 애국주의를 드높이는 ‘중화 체전’으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넘친다. 그야말로 공세적 중화 민족주의다. 최대의 메달을 얻어 실적으로 전 세계에 중국의 성취를 보여주겠다는 실적주의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문화·국적 차이를 넘어서고 공정 경쟁으로 우정·연대감을 드높여 평화롭고 더 나은 세계의 실현에 공헌한다는 국제 올림픽 정신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무조건 승리를 차지해 지도자에 보답하자는 목소리만 높다. 이런 베이징 올림픽에서 축제나 화합이란 올림픽의 본질적 의미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평화공존 5항 원칙, 도광양회 대체한 시진핑의 중국몽
도대체 중국은 왜 이러는 것일까. 2022년 베이징 겨울 올림픽 성화 봉송과 컬링 예선이 시작된 2월 2일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를 보면 실마리가 드러난다. 인민일보는 이날 1면 기사에서 “시진핑(習近平) 총서기가 겨울 올림픽으로 가는 길을 인도했다”고 이번 올림픽을 그의 업적으로 칭송했다.
시 주석은 현재 중국공산당(중공‧中共) 중앙위원회 총서기,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주석, 중국공산당과 중국의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각각 맡고 있다. 당직인 중공 총서기와 중공 중앙군사위 주석은 2012년 11월 15일부터, 국가직인 국가주석과 중국 중앙군사위 주석은 2013년 3월 14일부터 각각 맡고 있다.
문제는 중국과 중국공산당이 시진핑 시대에 접어들면서 공세적으로 변했다는 사실이다. 자국에서는 강력한 홍색 통제를 강화하고, 대외적으로는 다른 나라들에 중국의 이익과 가치관, 규범을 강요하며 거친 모습을 보인다.
중국은 1954년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 겸 외교부장이 인도와 외교 관계 수립을 계기로 ‘평화적 공존, 호혜적 상호협력, 상대방의 주권과 영토 존중, 내정 불간섭, 상호 불가침’이라는 ‘평화공존 5항 원칙’을 수립해 대외정책의 기조로 삼아왔다. 강대국과는 다른 모습으로 비동맹 세계를 이끄는 주도국이 되겠다는 의지였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제국주의의 피해자이지 제국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중국은 개혁·개방을 시작했던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년) 시절 도광양회(韜光養晦) 전략을 앞세워 몸을 낮추고 힘을 기르며 때를 기다려왔다. 함부로 발톱을 드러내 외국의 견제를 부를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바탕이 됐다. 덩샤오핑은 박태준 당시 포스코 회장을 비롯한 한국의 기업인에게 경제발전과 관련해 한 수라도 배우려고 정성을 다했다.
하지만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시대의 중국은 이런 전통적인 기조에서 벗어나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며 힘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저우언라이의 평화공존 5항 원칙이나 덩샤오핑의 도광양회는 역사적 유물이 되어갔다. 대신 시 주석의 중국몽이 이를 대신하고 있다.
중국몽은 모호한 단어지만 크게 중국과 중국공산당이 전 세계를 주도하는 세력이 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동안 중국 당국이 발표하거나 지도자들과 당국자들이 언급했던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우선 중국은 2020년까지 샤오캉(小康) 사회를 이룬다는 목표를 추구해왔다. 샤오캉 사회는 큰 걱정 없이 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는 사회를 뜻한다.
시 주석과 중국 공산당은 창당 100년을 맞는 2021년까지 전면적인 샤오캉 사회 건설을 목표로 삼고 2020년 국내총생산(GDP)을 2010년의 두 배로 늘리는 목표를 앞세웠다. 하지만 2020년 중국의 양회 폐막식 연설에서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중국에서 6억 명의 월수입이 1000위안(약 17만원)이 되지 않는다”며 “이는 월세를 내기에도 힘든 수준”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와 경기 부진, 미중 무역전쟁 등으로 경제 성장이 더뎌진 데다 코로나19까지 타격을 주는 바람에 목표 달성이 어려워진 것이다. 그런데도 중국 경제가 어느 정도 선방한 것은 사실이다.
이와 함께 군사력 분야에서는 인민해방군의 기계화‧정보화를 이루고 전략적 능력 부문에서 중대한 진척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며 이를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본다. 또 군사이론과 조직형태, 군사인력, 무기‧장비를 현대화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이를 상당 부분 이뤘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항공모함을 2척 운용하고 있으며, 추가로 건조하고 있다. 스텔스 전투기를 개발하는 등 항공과 미사일 분야에서도 성과를 거뒀다. 실전 능력이 없이 중국군의 실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을 제외하고 외형적으로는 중국의 군사력 성장은 전 세계의 경계심을 부르기에 충분하다.
그 다음 단계로 2020~2035년은 샤오캉 사회를 기반으로 사회주의의 현대화를 이룬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개혁‧개방을 시장하면서 중국 경제 성장의 견인차 구실을 했던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수정해 공산당이 기업보다 우위에서 지도하고 통제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최근 마윈(馬雲) 알리바바 창업자에 대한 압박에서 보듯 공산당이 당원인 홍색 자본가라고 할지라도 기업인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 그 하나로 볼 수 있다. 군사 부문에서도 국방과 군대의 현대화 기본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세계 패권국 노리는 중국의 민낯 미리 본 올림픽
중국이 세계 최강국이 되는 것으로 설정한 해는 신중국 수립 100년을 맞는 2049년이다. 이를 위해 2035~2050년 사회주의 강국과 세계 일류의 군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대외적으로 종합 국력과 국제 영향력 면에서 세계 최선두 국가를 실현한다는 것이 중국공산당의 야심 찬 목표다. 지난해 중국공산당이 창당 100주년을 맞으면서 시 주석과 공산당은 더욱 강력하게 당 중심, 지도자 중심의 중국을 추구하고 있다.
특히 2019년 12월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비난이 쏟아지자 전례 없이 공격적이고 호전적인 대외정책으로 전 세계와 충돌하고 있다. 게다가 중국은 폐쇄적인 중화 제일주의와 공세적인 대국주의로 국내를 강력하게 통제하고 한국을 비롯한 이웃 나라와는 물론 국제사회 전반과 파열음을 일으켜 왔다.
중국 내에선 민주주의를 외치는 홍콩 주민을 핍박해 ‘홍콩은 홍콩인이 통치한다’는 항인치항(港人治港)의 원칙을 친중 세력이 관리하는 ‘홍인치항(紅人治港)’으로 바꿔놓았다. 한족과 문화적으로 차이가 있는 신장위구르의 무슬림(이슬람신자)에 대한 인권탄압 논란을 빚었고, 대만도 군사적·경제적으로 압박해 왔다.
중국은 남방의 아세안 국가들과는 해양 영유권 분쟁을 일으켜 왔다. 1978년 개혁·개방 이래 국력을 기른 중국이 국내에선 획일적인 통치체계를 갖추고, 다른 나라는 기세등등하게 몰아치는 돌돌핍인(咄咄逼人)에 나선 셈이다. 19세기 서세동점의 시대에 서양 제국주의 세력의 침탈을 받던 중국이 국력을 회복하자 오히려 전 세계를 거칠게 핍박하는 근육질 국가로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미국·유럽 등 서방이 인권과 민주주의 문제를 끊임없이 지적하는 이유다. 그 결과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방 진영은 베이징 겨울 올림픽에 선수단은 보내되 고위 정치인은 보내지 않는 외교적 보이콧으로 중국을 압박하기에 이르렀다.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이 충성 경쟁이다. 올 하반기 중국공산당은 제20차 전국 대표대회(약칭 20대·二十大)를 열어 차기 지도부를 정한다. 이미 4년 전 개헌으로 국가주석의 임기 제한을 없앤 시 주석은 20대에서 3연임을 노린다.
미·중 패권 경쟁이 한창인 상황에서, 미국을 제치고 세계 패권 국가가 되는 임무를 자신이 맡아야 한다고 강조할 전망이다. 시 주석의 권력이 장기화‧공고화해질 것이 확실해지고 베이징 올림픽이 ‘중화 올림픽’ 성격을 띠면서 중국 각계각층에서 과잉 충성 경쟁에 휩싸였을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런 과정에서 열린 2022년 베이징 겨울 올림픽은 중국이 종합 국력과 국제영향력 면에서 세계 최선두에 올랐을 때의 모습을 미리 볼 수 있는 쇼케이스 역할을 하고 있다. 올림픽을 계기로 보는 중국의 민낯이다.
사실 중국은 경제 규모가 커졌음에도 과도한 자국중심주의로 전 세계에서 존경을 받지 못하고 경계와 대상이 되어왔다. 민주주의나 인권·관용·포용·다양성 등 보편적인 가치를 서구식이라고 일축해왔다. 그 대신 돈을 앞세운 은탄(銀彈) 외교와 군사력과 거친 입을 앞세운 ‘전낭(戰狼) 외교’ 또는 ‘늑대 외교’로 자신들의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고 믿는다.
시 주석이 집권한 2013년 이후 중국은 ‘제 할 일은 주도적으로 한다’는 주동작위(主動作爲)을 넘어서서 코로나19 시대를 전후해 무력과 독설, 그리고 보복을 앞세운 ‘전낭(戰狼) 외교’를 앞세운 것으로 평가받는다.
전낭(영화 제목은 전랑)은 중국이 인민해방군 홍보를 위해 만든 애국주의 액션 영화 제목이다. 중국 준군사조직인 인민무장경찰부대(武警) 출신의 주인공이 2015년 개봉한 1편에선 미국 네이비실 출신의 악당들을, 2017년 나온 2편에선 유엔도 포기하고 미군도 철수한 아프리카에서 납치범을 각각 물리치는 내용이다.
이 영화들에서 중국과 주인공은 의지와 용기, 그리고 첨단 무기로 세계를 구하는 ‘21세기 카우보이’로 등장한다. 전낭은 영어로 ‘울프 워리어(Wolf Warrior)’로 쓰며 ‘늑대 전사’로 옮길 수 있다.
이처럼 시 주석 시대 중국의 외교는 국제관계를 철저하게 힘의 눈으로 바라보고 이를 통해 해법을 모색하는 현실주의적 시각이 바탕이 되고 있다. 그 기저에는 과거 중국이 서구 제국주의에 당했던 것은 우월한 문화나 의지가 있었음에도 힘이 없어서였다는 ‘황비홍’ 영화식 역사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럴수록 중국을 더욱 경계할 수밖에 없다. 국제질서는 국력의 순위와 압박의 강도로 결정되는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베이징 올림픽은 우리가 사는 21세기의 국제 상황을 분명히 보여준다. 두려울 수밖에 없지만, 반드시 극복해야 할 현실이다.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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