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 철수에 타격 입은 러시아 경제…원유·가스가 ‘생명줄’
맥도날드·넥플릭스 등 글로벌 기업 러시아서 손 떼
IMF, 올해 러시아 경제 -8.5%로 역성장 전망해
러시아는 유가 상승에 올해 경상수지 흑자 가능성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국제사회의 제재와 글로벌 기업의 철수로 경제적 타격을 입고 있다. 그러나 원유와 천연가스가 여전히 러시아의 중요한 자금줄 노릇을 하며 서방의 제재도 힘이 빠지는 모양새다.
미국 예일대 경영대학원 제프리 소넨펠드 교수팀에 따르면 이달 16일 기준 약 1000개의 글로벌 기업이 러시아 내 사업을 축소·중단·철수했거나 이 같은 계획을 발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1990년 1월 모스크바 시내 푸시킨 광장에 1호점을 연 이후 러시아의 개방과 시장경제화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미국 패스트푸드 체인점 맥도날드가 16일(현지시간) 러시아 시장 철수를 결정했다.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맥도날드는 이날 보도문을 통해 “러시아에서 30년 이상 영업한 뒤 현지 시장에서 철수할 것임을 밝힌다”며 “러시아 사업 매각 절차에 착수했다”고 전했다. 사업 철수 배경에 대해 맥도날드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예측 불가능성 증대로 러시아 내 사업의 지속적 유지가 바람직하지 않으며, 맥도날드의 가치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맥도날드 외에도 여러 기업이 러시아에서 손을 떼고 있다. 세계 최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넷플릭스는 러시아 서비스를 중단했다. 현대차는 러시아 공장 가동을 멈췄으며, 다국적 호텔기업 힐튼은 러시아 신규 투자를 보류한 상황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러시아 내 신규 판매를 중단했다.
러시아의 우방국인 중국도 러시아에 대한 전자제품 수출을 줄였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지나 러몬도 상무부 장관은 17일(현지시간) 중국 측 무역 통계를 인용해 올해 3월 중국의 대러시아 노트북 수출이 2월 대비 40% 감소했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스마트폰 수출은 3분의 1로 줄었고, 통신네트워크 장비 수출은 98% 급감했다. 이에 대해 러몬도 장관은 중국이 제재 위반에 대해 주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역성장과 인플레이션에 경기 침체 위기 맞은 러시아
이처럼 러시아는 다른 국가와의 정상적인 경제 활동에 제동이 걸리며 경기 침체를 맞을 전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4.7% 성장한 러시아 경제가 올해는 -8.5% 역성장을 할 것으로 지난달 내다봤다. 올해 1월 예상치인 2.8%와 비교하면 경제성장률이 11.3%포인트 추락한 것이다.
IMF는 내년 러시아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2.1%에서 -2.3%로 낮췄다.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은 IMF보다 더 비관적이다. EBRD가 내놓은 올해 러시아 성장률 전망치는 -10%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코트라)는 올해 4월 말 내놓은 ‘우크라이나 사태와 경제 제재:영향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서방의 경제 제재 가운데 단기적으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 러시아를 퇴출하고, 수출 규제를 가한 것이 가장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봤다.
보고서에서 코트라는 경제 제재가 지속하면 러시아의 정보기술(IT) 등 혁신 산업 부문의 훼손, 외부와의 협력 단절, IT 엔지니어 등 인력 유출 가속으로 저성장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러시아는 루블화 가치 폭락에 물가가 큰 폭으로 상승하고 있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올해 자국 인플레이션이 18~23%까지 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 로이터 통신은 이달 13일(현지시간) 러시아 연방 통계청을 인용해 올해 4월 러시아의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전년 대비 17.83%로 2002년 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물가상승률은 3월에도 전년 대비 16.7%를 기록했다. 다만 전월 대비 4월 물가 상승률은 1.56%로, 2월 대비 3월(7.61%)보다 다소 둔화했다.
화석연료로 무장한 러시아, 세수 증가에 경상수지 흑자 기대
이 같은 위기 상황에서 러시아는 원유·가스 등 화석연료를 자국 경제의 버팀목으로 삼고 있다. 러시아는 천연가스 세계 1위, 원유는 2위 수출국이다. 미국이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 수입을 금지했지만 유럽연합(EU)은 주저하는 기색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산 가스와 원유에 대한 EU의 수입 의존도는 30~40%에 달한다. EU 각국은 이를 단기간에 탈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EU는 향후 6개월간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단계적으로 중단하고 내년 1월까지 석유제품까지 수입을 끊는 6차 제재안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러시아 의존도가 높은 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 등의 반대로 실현이 불투명하다. 올해 말까지 러시아산 가스 수입량의 3분의 2를 줄이고 2030년까지 완전히 끊는 구상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미국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역내 업체가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위반하지 않고 러시아 가스 구매 대금을 어떻게 지불할 수 있는지에 대한 최신 지침을 내놓기도 했다.
EU 집행위는 이달 13일 회원국들과 공유한 최신 지침에서 업체는 기존 계약서에서 합의된 통화로 러시아 가스 구매 대금을 지불하고 해당 통화로 거래가 완료됐다고 신고하는 한 러시아에 가스 대금을 지불할 수 있다고 확인했다.
원유와 가스는 러시아 경제를 지킬 주요 무기가 된 상황이다. 유럽 각국이 러시아산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지 못하는 사이 인도와 중국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늘리고 있고, 러시아는 이들 국가에 할인가를 적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에너지 연구·컨설팅업체인 리스타드에너지는 러시아가 원유 생산이 급감해도 원유 가격 급등에 올해 세수가 지난해보다 45% 많은 1800억달러(약 229조원)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유가 상승과 제재로 인한 내수 감소에 힘입어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일종의 불황형 흑자다. 국제금융협회(IIF)는 지난달 3일 러시아의 올해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2000억~2400억 달러(약 242조1800억~290조62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역대 최대 흑자였던 지난해 1200억 달러(약 145조3100억원)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강필수 기자 kang.pil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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