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환율 변화가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 [조원경 글로벌 인사이드]
일본 경제 잃어버린 20년 원인
엔고 불황보다 정부 정책 실패
한국 대응, 국내 경기에 초점을
우리나라는 1980년대 중반 단군 이래 최대 호황기라는 경제적 풍요를 누릴 수 있었다. 지금의 암울한 환경을 생각하며 당시를 회상해 본다. 대외 의존적인 우리 경제는 강대국 패권경쟁에 영향을 크게 받았다. 미국이 소련에 대해 취한 저유가 정책으로 국제유가는 1980년 36불에서 1986년 13불까지 폭락한다. 지금 상황과는 정반대 현상이다.
당시 우리 경제를 호황으로 이끈 국제적 요인을 더 꼽자면 저금리 추세였다. 세계 각국 정부는 2차례의 석유 파동 이후 침체에 빠진 경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저금리 정책을 경쟁적으로 실시했다. 금리가 낮아지자 기업이 투자와 생산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었다.
가계 부채 부담도 낮아져 더 많이 소비하고 투자할 수 있어 돈이 시장에 많이 돌았다. 소위 80년 중반 3저 호황’을 이루면서 우리나라 경제가 연평균 10% 이상 급속히 성장하는 기회를 만든 남은 요인은‘저달러’였다.
지금은 유로에 대해서도 엔화에 대해서도 달러가 20년 만의 최고이다. 이 상황에서 한국은행도 7월 13일 사상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올려 2.25%가 되었다. 1980년대 역사에서 배울 점은 없을까?
당시 저 달러의 배경에는 플라자 합의가 있었다. 서울 시청역 근처에 더 플라자 호텔이 있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도 플라자 호텔이 있다. 두 호텔을 바라보면, 저마다의 추억은 다를 수 있겠다. 맨해튼 플라자 호텔을 지나는 나이든 일본인은 역사적인 플라자 합의를 떠올릴지 모르겠다. 플라자 합의는 1985년 9월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미국·프랑스·서독·일본·영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총재가 발표한 환율에 관한 합의다.
당시 미국의 재정적자와 경상수지 적자라는 쌍둥이 적자 문제가 심각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70년대 말기 달러 위기의 재발을 두려워한 선진국들이 달러화 평가절하라는 합의에 이르게 된다. 1980년부터 1985년 사이 미국 달러가 일본 엔, 독일 마르크, 프랑스 프랑, 영국 파운드 대비 약 50% 평가 절상된 상황도 고려되었다.
엔고 불황 저금리 정책으로 부동산·주식 가격 폭등
혹자는 플라자 합의를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하지만 이는 일련의 역사적 사건을 무시한 처사다. 플라자 합의로 일본에서 ‘엔고 불황’ 발생 우려가 제기된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일본정부의 정책 실패였다. 일본은행은 기준금리를 인하하지 않고 5%로 동결시켰고, 무담보 콜금리는 6%미만에서 8%로 올렸다.
이후 엔고에 의한 불황의 발생 우려가 현실화되자 저금리 정책이 실시되고 부동산과 주식 가격 급상승으로 거품 경제 가열이 초래됐다. 엔고로 반값이 된 미국 자산 구입, 해외여행 붐, 자금이 싼 나라로의 공장 이전 등이 이어지고, 1990년 자산가격 버블이 터졌다. 리처드 쿠의 저서‘대침체의 교훈’을 인용하면 1990년 버블붕괴 후 날아가 버린 자산가치가 1,500조 엔으로 이는 당시 일본의 3년치 국내총생산(GDP) 규모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원인으로 거대한 버블과 일본정부의 잘못된 정책대응을 꼽는다. 일본정부는 거품 붕괴 징후가 보이기 시작한 이후에도 사태를 낙관하고 즉각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다. 1997년 소비세 인상이나 2000년대 초 닷컴 버블시 금리 인상도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통화가치 상승의 영향을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다. IMF의 지적처럼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정책대응이다.
미국에 동조할까 독립 운용할까, 한국 통화정책 향방
지금 일본 엔화 가치는 달러에 대해 지속 하락하고 있다. 그렇게 경제는 돌고 도는 모양이다. 엔저로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일본은행이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수정할지 관심이 쏠렸지만 아직은 기존 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7~8월 정책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전망이 유력하게 제기된다. 통화가치의 향방을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IMF의 지적처럼 중요한 것은 정책대응이다.
대내외 환경과 금융불안 요인에 대한 선제 대응이 핵심이지만 합의를 찾기가 쉽지는 않다. 이제 환율은 플라자 합의처럼 인위적인 합의로 조정이 되지 않고 경제 펀더멘탈에 따라 시장에서 결정되고 있다. 혹자는 자본자유화도 중요하나 자본시장의 급격한 쏠림현상의 부작용을 국제사회가 인식해야 할 시기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의 제대로 된 정책 대응이다. 7월 미국의 자이언트 스텝 기조에 맞춰 한국도 통화정책을 사상 처음 빅스텝으로 조정했다. 한국의 거시경제 여건을 우선 고려해 우리 실정에 맞게 금리를 운용한 것이리라 믿는다. 일부에서는 미국 금리에 동조하는 정책보다 국내 물가와 경기 여건에 따라 운용하는 독립적인 통화정책의 효용이 더 클 수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물가상황을 충분히 고려하는 것이 우선순위일 것이나 한·미 간 금리 격차만으로 금리 인상폭을 결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물가안정과 경제성장의 묘수를 찾는 해법은 단기적으로 상당히 어렵다. 하지만 언젠가는 지금의 인플레이션은 해결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더 어려운 문제가 남아 있다. 물가 상승과 경기침체가 동시에 발생할 수 있는 스태그플레이션 논쟁이 한창인 상황에서 생산성 향상을 위한 정책을 꾸준히 추진해야 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 필자는 울산과학기술원(UNIST) 산학협력특임교수다. 국제경제 전문가로 대한민국 OECD정책센터 조세본부장, 기획재정부 대외경제협력관·국제금융심의관, 울산 경제부시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 [앞으로 10년 빅테크 수업] [넥스트 그린 레볼루션] [한 권으로 읽는 디지털 혁명 4.0] [식탁 위의 경제학자들] [명작의 경제]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 등이 있다.
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산학협력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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