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경영 본격 시동…키워드는 '반도체·기술·초격차' [이재용의 과제①]
8·15 복권 이후 첫 공식 행보
기흥 캠퍼스, 삼성 반도체 역사의 시작
'뉴 삼성' 본격화하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본격적인 그룹 경영에 시동을 걸었다. 첫걸음은 ‘반도체’였다. 이 부회장은 지난 19일 삼성전자 기흥캠퍼스에서 열린 차세대 반도체 R&D(연구개발) 단지 기공식에 참석해 ‘도전과 기술을’ 강조하며 초격차 의지를 밝혔다. 8‧15광복절 복권 이후 첫 공식행사에 참석해 존재감을 드러내며 삼성의 변화와 앞으로의 방향성을 예고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재용 부회장의 기흥 반도체 R&D단지 참석은 여러 의미를 지닌다. 공식적으로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것과 그 시발점을 반도체로 잡았다는 점이다.
지난 15일, 정부는 특별사면·복권 대상자에 이재용 부회장을 포함시켰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는 그는 지난달 29일 형기가 종료됐지만, 5년간 취업 제한에 발이 묶여 경영 전면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을 방문했을 당시 직접 안내를 맡았지만, 총수로서의 ‘경영’이라기보다는 국빈에 대한 예우 차원의 행동으로 풀이됐다. 하지만 복권으로 취업제한 족쇄가 풀린 직후 기흥 반도체 R&D 단지 기공식이라는 삼성전자 공식 행사에 참여한 것이다.
기흥 반도체 R&D 단지는 약 10만9000㎡(3만3000여평) 규모로 건설될 예정이다. ▶메모리 ▶팹리스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 등 반도체 R&D 분야의 핵심 연구기지 역할을 하게 될 전망이다. 회사 측은 미래 반도체 기술을 선점하기 위한 최첨단 복합 연구개발 시설로 조성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삼성그룹이 향후 5년간 총 450조, 국내에만 360조원가량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20조원이 해당 R&D단지에 들어간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 사업이 삼성전자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기술 기술 기술”…삼성전자, 초격차 전략 본격화
이재용 부회장이 복권이 이뤄지기 직전에도 유럽 출장을 통해 반도체 네트워크를 다진 점도 삼성전자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 6월 네덜란드를 헤이그를 방문해 마르크 뤼터(Mark Rutte) 네덜란드 총리와 만났다. 두 사람은 총리 집무실에서 ▶최첨단 파운드리 역량 강화를 위한 협력 확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문제 해소 등 포괄적이고 전략적인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후 ASML 본사를 방문한 이재용 부회장은 피터 베닝크(Peter Wennink) CEO(최고경영자), 마틴 반 덴 브링크(Martin van den Brink) CTO(최고기술책임자) 등 경영진을 만나 양사 간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ASML은 최첨단 반도체를 만드는 핵심 기구인 극자외선(EUV) 장비를 만드는 유일한 업체로 알려진 곳이다. 반도체 회로 선폭 10㎚(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이하 수준의 반도체를 효율적으로 만들려면 이 장비가 필수적이다. 삼성은 초격차 기술로 업계 1위인 대만 기업 TSMC를 따라잡기 위해 해당 장비 도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삼성전자의 1등 전략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다. 지난 6월 이 부회장은 11박 12일간의 유럽 출장에서 돌아오며 “아무리 생각해봐도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째도 기술이 중요하다”고 했었다. “(경제)시장의 여러 가지 혼동, 변화, 불확실성이 많은데, 저희가 할 일은 좋은 사람을 데려오고 조직이 예측할 수 있는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유연한 문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기술에 투자하는 게 삼성이 나아갈 길이라고 본 것이다. 기흥 반도체 R&D 단지 기공식에서 삼성전자가 내놓은 슬로건 역시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든다’였다.
기흥, 삼성 반도체 역사의 시작
이재용 부회장은 “40년 전 반도체 공장을 짓기 위해 첫 삽을 뜬 기흥사업장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고 이날 기공식에 대한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차세대뿐 아니라 차차세대 제품에 대한 과감한 R&D 투자가 없었다면 오늘의 삼성 반도체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기술 중시, 선행 투자의 전통을 잇고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들자”고 말했다. 이는 이병철 선대회장의 기술투자, 반도체 중시 기조를 잇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이병철 회장은 도쿄 선언 이후 “무자원 반도인 우리의 자연적 조건에 맞으면서 해외에서도 필요한 제품을 찾아야 한다”, “이것(반도체)이 곧 고부가가치, 고기술 상품, 즉 첨단기술 상품이다”, “반도체, 컴퓨터 등 첨단산업 분야는 세계시장이 무한히 넓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병희 기자 leoybh@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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